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55
55화
“마물을 죽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검을 세운 채로 설화가 물었다.
“원숭이들이 어째서 마물이 되었는지, 알고 계셨잖아요.”
“…네가 말해 주었지.”
“어떠셨어요? 그 마물들을 죽이면서요.”
청운은 답할 수 없었다.
마물을 벨 때의 감각만이 손끝에 저릿하게 저며 올 뿐이었다.
“그 마물 중에는 눈앞에서 자식의 뇌가 파먹히는 걸 지켜본 원숭이도 있었을 거예요.”
인간에게는 신선함을 알리는 방울 소리는, 그것을 지켜보는 어미 원숭이에겐 자식의 마지막 생을 알리는 소리다.
딸랑이는 방울 소리가 마침내 멎었을 때, 어미 원숭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버지가 저를 잃었을 때 그러했겠죠.”
아이의 울음이 거센 물살에 삼켜질 때.
온 감각이 곤두선 채 추락하는 아이의 울음을 듣고 있던 그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힘이 없다는 건 그런 거 아닐까요? 비통하고 원통한 건 결국, 약함의 방증일 뿐이죠.”
약하기에 비통하고, 약하기에 원통한 것이다.
힘이 있다면 반격하고 복수하겠지만, 그럴 만한 힘이 없으니, 그저 비통함을 키우고 원통함을 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전 생의 혈교인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도 억울함에 맞설 힘이 없어서, 원통함을 풀 기회가 없어서, 그들은 항상 분에 차 있었다.
분(忿)은 혈(血)이 되어 세상을 피로 물들이고 또 다른 억울함과 원망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은 굴레였다. 누구 하나 끊어 내지 못해 점차 질겨지고 억세질 뿐인 굴레.
“…설화야….”
청운의 시선에 설화는 외로워 보였다. 홀로 선 아이의 외로움이 너무나도 짙어서, 가슴이 욱신거렸다.
청운이 설화를 향해 손을 뻗을 때였다. 설화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
카앙―!
남궁청운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칼날을 막았다.
정확하게 목덜미를 노리고 들어온 일격.
막지 않았다면 단칼에 베였을 것이 분명한 일격이었다.
“설….”
카캉!
“화야…!”
청운이 숨을 짧게 들이켰다.
카앙! 캉! 카앙―!
아이의 검은 멈추지 않고 연신 청운의 급소를 노리고 들어왔다. 청운은 뒤로 물러나면서 아이의 검을 막아 냈다.
검을 받아 내면서, 청운은 목구멍이 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아이의 검에는 한이 서려 있었다.
지독한 비통함과 원통함이 아이가 휘두르는 검에서 느껴졌다.
마치 왜 자신을 잃어버렸느냐고, 왜 자신을 붙잡지 못 했느냐고, 왜 자신을 지키지 않았느냐고…. 원망하는 것만 같았다.
그 원망을 토해 내듯.
카앙―!
“크윽….”
아이가 검을 토해 냈다.
부딪치는 검격 속에 불꽃이 튀었고, 그 불꽃 속에서 청운은 한 사람을 보았다.
캉!
그것은 추락하는 한 떨기 연꽃이었으며―.
아비를 부르짖는 백설이었으며―.
카앙―!
낭떠러지 끝에 꿇어앉아 비참함에 몸부림치던 자신이었다.
“아버지.”
설화의 검은 열셋의 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거웠다.
“전 아버지가 가주가 되셨으면 좋겠어요.”
아이의 원이 실린 만큼.
“기왕이면 힘을 가진 가주가요.”
무겁고, 무거운 검이었다.
청운이 으득, 이를 다물며 검을 다잡았다.
카앙―!
아이의 일격을 힘을 주어 내쳤다.
설화가 원통함을 쏟아 냈다면, 청운은 비통함을 토해 냈다.
“나는 너와 함께하는 것만으로 이미 족하다. 설화 네가 살아서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 이미 행복하단 말이다. 그것으론 안 되겠느냐? 굳이 위험한 자리로 아득바득 올라가야겠느냐?”
카가가각….
검이 맞물렸고, 원이 맞물렸다.
“그런 어중간한 태도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요.”
안 되느냐고?
‘당연히.’
이전 생에 남궁의 가주는 남궁청산이었다.
남궁청산은 남궁을 이끌기에 충분치 않았다. 그 또한 최선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청산이 지키지 못한 남궁이 무너져 가는 동안 청운은 딸을 찾기 위해 강호를 떠돌았다.
그리고 딸의 손에 죽었다.
그 얼마나 허망한 죽음이던가.
“무엇을 이루어야 하느냐? 가주가 되면 무언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더냐? 대체 무엇을 위해 그 자리를 탐하여야 하느냐?”
“허무한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요?”
허무하게 쓰러져 간 남궁인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 허무하게 던져진 당신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난 다른 무언가를 지키다 가족을 잃는 비참함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 가주가 되면 모두를 지켜야 하겠지. 하나, 나는 너만 지키면 된다. 너만, 내 딸만 지킬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은…!”
아이가 검을 휘둘렀다. 구름이 물러가고 기운이 요동쳤다.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제비처럼, 아이의 검이, 아이에게서 흘러나오는 붉은 기운이 하늘을 휘감았다.
남궁의 검법.
창궁비연검(蒼穹飛燕劍).
제1식 천공연무(天空演舞).
하늘에서 춤을 추듯 유려하게 쏟아지는 검을 보며 청운은 땅을 디딘 하체에 힘을 실었다.
카아앙―!
온 힘을 쏟아부어 아이의 검을 받았다. 아이의 원을 받았다.
쿠우우웅―
붉은 기운과 푸른 기운이 봉우리를 무너트릴 기세로 맞붙었다.
“전 필요해요.”
그 거센 기세 속에서 흘러나온 설화의 차가운 목소리가 청운의 비통함을 베었다.
“힘이 필요해요. 가문이 필요해요. 저를 지켜 줄 울타리가 필요해요.”
누군가는 생사도 모르는 딸을 찾겠다고 헌신한 그 삶이 어리석다 할 것이다.
결국에는 딸의 손에 죽임당한 생의 끝이 한심하다 할 것이다.
작은 것을 위해 큰 것을 포기하였다 할 것이다.
하지만, 설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부모가, 어느 미물이. 제 자식이 골이 파여 죽어 가는 소리를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추락하며 자신을 부르짖는 제 자식의 울음을 듣고도 다른 어떤 것을 우선할 수 있겠는가.
“권력을 손에 쥐어 주세요. 힘을 가져 주세요. 남궁을 다스려 주세요. 그것으로….”
한낱 미물조차 원(怨)을 쌓는데.
인간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저를 지켜 주세요.”
다만, 이번 생엔 당신의 헌신을 헛되이 만들지 않겠다.
오로지 자식을 위해 일평생을 바쳤던 당신의 삶이 허무한 죽음으로 끝나게 하지 않겠다.
과거를 베고 원(怨)을 베었으니, 남은 것은 나아가는 것뿐이다.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딸의 존재라면.
“가주가 되어 주세요. 아버지.”
나를 위해 정상을 밟게 하겠다.
검과 검이 떨어졌다.
설화가 청운에게서 두어 걸음 멀어졌다. 두 사람의 기운이 가라앉고 고요가 내려앉았다.
청운이 이마를 짚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
8년 만에 돌아온 딸아이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인지.
저 작은 몸 안에 100년 묵은 이무기라도 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하나.
“그래.”
그것이 딸의 소원이라면. 그것이 딸을 지키는 방법이라면.
기꺼이.
“해 보마.”
목숨을 다하여서 하겠다. 그것이 바로, 제가 사는 이유이기에.
그리고 청운이 결연한 시선을 들 때였다.
“…?”
그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설화와의 갑작스러운 전투로 잠시 흩어졌던 구름 사이로 드러난 바닥이었다.
검을 나누지 않았다면 흩어지지 않았을 구름이 걷힌 그 자리. 드러난 바닥이 반짝이고 있었다.
“잠시… 잠시 기다려 보거라! 설화야!”
황급히 검을 집어넣은 청운은 구름이 다시 아득히 메워 가는 바닥 쪽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청운은 몰려드는 구름 속을 더듬듯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한참 동안 구름 속을 배회하던 그의 손이 어느 순간 우뚝, 멈추었다.
달그락.
빽빽한 구름 아래로, 무언가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운이 감격한 시선으로 설화를 바라보았다.
“진법이다.”
“….”
“진법이었다, 설화야!”
이윽고 봉우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구름이 서서히 흩어지며 땅이 드러났다.
남궁청운의 눈이 더욱 크게 올라갔다.
봉우리를 이룬 지면은 평범한 땅이 아니었다.
빛을 머금고 또 반사하는 광물로 이루어진 봉우리는, 구름이 몰려가자 온전한 빛을 받아 일곱 색깔로 찬란하게 반짝였다.
‘무지개…!’
천궁이었다.
봉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빛깔은 무지개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구름이 물러간 자리. 무지개의 끝에, 사람의 손바닥만 한 거북 형상이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구름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자리였다.
“처, 천궁…귀두…!”
청운의 얼굴이 더 없는 경악으로 물들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천궁귀두가 실제로 존재했고, 그것을 정말로 찾아낸 것이다.
설화를 돌아보는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눈물과 함께 반짝이는 그 미소는 어딘가 개운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정말로 찾았구나. 설화야.”
설화의 입꼬리가 옅게 휘어졌다.
“아버지께서 찾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