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예.”
청운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욕심을 보인 것은 설화였으나, 설화의 뜻은 곧 청운의 뜻이 되었다.
목숨을 걸기로 한 이상 청운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 단호한 대답에 풍학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네 녀석이 어제 천호전에서 보여 준 모습은 썩 괜찮았지. 몇몇 원로들도 그리 생각하는 듯하였고.”
“그리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 8년의 공백을 단번에 메울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말거라. 그것은 심욕(心慾)이다.”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원주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흐음.”
풍학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굳이 따지자면, 풍학은 청운을 가엾이 여기는 쪽이었다.
눈앞에서 부인과 딸을 잃고 지키지 못하였다는 죄책감에 근 한 달을 골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폐인처럼 죽어 가던 그였다.
그런 그를 다시 일으킨 것은 딸이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
그 가능성조차 그저 딸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었지만, 그 희박한 가능성을 붙잡고 일어선 그는 미친 듯이 딸을 찾아 돌아다녔다.
장장 8년을.
모두가 죽었으리라 예상했고, 헛수고라 여겼다. 하지만 청운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를 살리는 것이 딸의 존재이니 그를 말릴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8년. 8년 만에 그 딸이 정말로 살아 돌아왔는데 어떤 아비가 딸을 뒷전으로 둘 수 있을까.
“불과 닷새 전만 해도 가주의 자리엔 관심조차 없어 보이더니. 어찌 마음을 다잡은 것이냐? 혹, 네 딸 때문이더냐?”
“아니라곤 할 수 없겠습니다.”
“허허허!”
“솔직한 것은 좋다만 이럴 땐 아니라고 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배우겠습니다.”
“허허. 무천이가 어찌 네게 마음을 쓰는지 조금은 알겠군.”
풍학이 제 수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늙을수록 말을 줄여야 하는 법이지. 하나, 늙은이들이 본디 더 말이 많은 법이다. 아는 것이 많아지니 보이는 것이 많아지고, 보다 보면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는 법이거든.”
“그렇습니까.”
“대부분의 원로들은 청해를 지지한다.”
청운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원로원주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왔다.
“원로원주인 내가 입을 다물고 있기에 뜻을 표명하지 않는다 생각할 뿐이지, 원로들의 마음은 이미 청해로 굳은 것이나 진배없다.”
청운이 올곧은 시선을 들어 풍학을 마주했다.
힘을 실어 달라는 얘기를 한 제게 굳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이유가 있을 터.
“원로원주라고 원로들의 뜻을 마음대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묵언과 무시는 전혀 다른 의미이니.”
“예.”
“그러니 네가 어디 한번 원로들의 마음을 돌려 보거라.”
풍학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3할. 3할의 마음을 돌이킨다면, 내 나머지는 어떻게든 해 보마.”
3할.
마음이라는 건 본디 부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돌이키고자 한다고 쉽게 돌이켜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8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굳어 온 것이라면 더욱이.
그러나 아주 작은 이유로도 휙휙 뒤바뀌는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일지니.
“이번 천무제에서 네 가치를 증명하거라. 네가 과연 이 남궁의 무게를 짊어질 이로 보인다면 3할이야 금방 돌아서겠지.”
“해 보겠습니다.”
“자신만만하구나. 숨겨 둔 수가 있더냐?”
청운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꼬리가 선선히 휘어졌다. 설화와 닮은 미소였다.
“이제부터 찾아볼 생각입니다.”
* * *
수련을 마치고 전각으로 돌아오니 익숙한 얼굴과 못 보던 얼굴이 설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가씨!”
한 명은 천객원에서 설화에게 살갑게 대했던 시비였고, 한 명은.
‘절정 고수.’
긴 머리를 질끈 묶은 그녀는 눈매가 얄팍하고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딱딱하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의 무사였다.
입고 있는 옷으로 보아 흑룡대의 대원인 것 같았다.
흑룡대원이 설화에게 다가와 포권을 취하며 꾸벅, 허리를 숙였다.
“흑룡 1대 남궁령. 설화 아가씨를 뵙습니다.”
“헉!”
놀란 것은 그의 옆에 서 있던 어린 시비였다.
사실 설화를 기다리며 줄곧 같이 서 있었지만, 기세가 무서워 한 마디도 걸지 못하던 그녀였다.
흑룡대원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1, 1대…!”
흑룡 1대. 그들은 남궁 내에서 비풍검대 다음으로 강하기로 소문난 대원들이 집합해 있는 대대다.
한 명, 한 명이 절정 고수로 남궁의 중심 무력대라고 알려졌는데! 그런 분을 직접 뵙게 되다니!
‘아가씨도 많이 놀라셨겠지?’
그런 생각으로 설화를 돌아보는데, 놀랍게도 설화의 표정은 덤덤해서 시비는 도리어 제가 시무룩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설화가 남궁령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인가요?”
“예. 오늘부터 설화 아가씨의 호위를 맡으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설화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한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곁에 있던 시비는 저도 모르게 흑룡대원과 설화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치를 보았다.
얼음이라도 얼 것 같은 냉기에 시비는 황급히 제 소개를 했다.
“저, 저도! 저도 오늘부터 아가씨를 섬기게 되었어요.”
설화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남궁여율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설화 아가씨.”
헤실거리는 웃음에 설화는 문득 유강을 떠올렸다.
지금쯤 남궁을 떠났을까?
금세 생각을 지우며 시비에게 물었다.
“넌 천객원의 시비잖아?”
“아가씨의 시비를 새로 뽑는다기에 얼른 지원했죠. 히히. 아가씨께서 천객원을 나가시고 얼마나 뵙고 싶었는지 몰라요.”
허당처럼 보이지만 남궁에서 천객원의 시비라 함은 시비 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나다는 의미였다.
여율의 나이는 고작해야 설화보다 두어 살 많아 보일까.
어린 나이에 천객원의 시비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인정받는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설화의 시비로 발탁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앞으로 잘 부탁해.”
설화는 미소로 여율을 맞이했다.
“네에….”
조금 전 남궁령과는 전혀 다른 반응에 여율은 저도 모르게 령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어… 아, 맞다! 아가씨 오늘부터 검술 수련을 받으시지요?”
“응.”
오늘부터 설화는 정식으로 남궁의 검술 수련에 참여하기로 했다.
남궁무천에게 배웠다고 말하기엔 한계가 있었기에 검법 수련에서 배웠다는 것을 핑계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남궁 직계와 뛰어난 방계들로 이루어진 수련이 궁금하기도 하고.
“어서 준비해요! 첫날인데 늦으면 안 되잖아요.”
여율이 설화를 재촉했다.
어쩐지 자신보다 신나 보이는 여율을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설화는 그녀를 따라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던 남궁령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 * *
여율이 어찌나 서둘렀는지, 설화는 가장 먼저 연무장에 도착했다.
훈련이 이루어지는 연무장은 내당에서 가장 넓고 화려하게 꾸며진 곳이었다.
연무장이 어째서 화려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수련동과 비슷하게 기운이 가득 모여 있는 기분이 드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진법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령은 연무장에 들어서자 한쪽에 가서 가만히 서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줄곧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이야, 이게 누구냐?”
“…?”
소란스러운 소리에 설화는 연무장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남궁소룡을 필두로 한 열댓 명의 무리가 연무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누님!”
남궁웅이 설화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누가 누님이야! 내가 쟤 알은척하지 말랬잖아!”
“악! 아픕니다! 형님!”
소룡이 웅의 뒤통수를 때렸다.
씩씩거리며 제 동생에게 화를 내던 소룡은 이내 비열한 웃음과 함께 설화에게 다가왔다.
아이들이 그 뒤를 따라 몰려왔다.
‘소룡과 웅을 제외하면 전부 방계 쪽 아이들이구나.’
남궁화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어려서 같이 훈련받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의 연령대를 대략 가늠해 보고 있는데, 남궁소룡이 피식거리며 말을 걸었다.
“야,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왔냐? 여긴 너 같은 거지는 안 받아 주거든?”
설화가 고개를 기울였다.
“거지? 내가 거지야?”
“그래. 그럼 여기 너 말고 거지가 또 있냐? 어우, 썩은 내. 너 대체 8년 동안 어디서 구르다 왔냐?”
소룡은 코까지 쥐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남궁소룡의 한껏 비꼬는 말에 방계의 아이들은 일제히 키득댔다. 마치 그것이 익숙하다는 듯이.
‘직계라는 이유로 방계 위에 군림하는 거구나.’
얼핏 보아 소룡보다 강해 보이는 아이도 있는데, 하나같이 소룡의 유치한 놀이에 동조하고 있다.
혈족 사회에선 직계의 힘이 크니 어쩔 수 없다지만.
‘멍청하긴.’
진짜 잘 보여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말이지.
설화의 시선이 한쪽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남궁웅을 향했다.
모인 이들 중 유일하게 소룡의 놀이에 동참하지 않은 아이였다.
설화의 눈동자는 남궁웅에게서 흘러나오는 정순하고 고강한 기운을 읽어 내렸다.
기운을 보면 무인을 알 수 있다.
남궁웅은 이 아이들 중 누구보다 남궁의 기운에 걸맞은 아이였다.
“이게 내 말을 무시해?”
설화가 반응하지 않자 소룡이 그녀의 어깨를 밀치며 소리쳤다. 그러나 소룡은 곧장 당황했다.
‘뭐, 뭐야!’
왜… 왜 안 밀리지…?
분명 넘어트릴 요량으로 힘주어 밀쳤는데? 꼼짝도 하지 않잖아?
마치 돌덩이를 누르고 있는 것만 같은 감각.
“너, 너…!”
“썩은 내가 난다고?”
설화가 그의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너 코 좋구나?”
“무, 무슨…!”
“어때?”
불쑥 가까워진 그녀의 얼굴에 소룡이 저도 모르게 주춤, 주춤, 물러났다.
분명 웃고 있는데,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소룡의 숨통을 조여 왔다.
“시체 썩는 냄새 같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