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7
7화
남궁의 무사는 그녀를 곧장 내당으로 이끌었다.
‘바로 내당으로 안내될 줄은 몰랐는데.’
세가의 구조는 남궁의 직계가 사는 내당과, 남궁의 방계와 핏줄은 아니지만 그 이름 아래 모인 이들이 사는 외당으로 나뉜다.
듣기로는 사라진 남궁의 아이라 찾아오는 이들은 가장 먼저 외당에서 걸러진다고 하였는데.
‘이쪽은… 천호전으로 가는 길이네.’
지난 생에 일화는, 남궁을 무너트리기 위해 남궁의 모든 것을 연구했다.
남궁세가의 내부 구조는 기본적으로 파악하고 있었기에 천호전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섭무광이 손을 써 놨구나.’
섭무광과 함께 다니던 무사들이 있었으니, 아마 그들을 시켜 가문에 연통을 보내 놓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곧장 내당, 그것도 천호전으로 안내될 리는 없을 테니까.
어찌 되었든 일화로서는 번거로운 일을 피할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한편, 장로들과 직계들이 떠나간 천호전에는 세 명이 남아 있었다.
가주 남궁무천과 총관 남궁문, 섭무광이었다.
― 이보게, 비풍검. 그 아이가 도착한 거요?
갑작스레 가문의 회의를 파한 상황에 총관이 눈치껏 섭무광에게 물었다.
섭무광이 가주의 손녀로 보이는 아이를 찾았다는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아이가 오늘 도착한다는 소식까진 몰랐던 그였다.
― 그렇소. 아주 귀엽고 까칠한 녀석이 곧 당도할 거요.
― 내 드디어 그 아이를 보는군.
총관은 섭무광이 보내온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어떤 아이일지 궁금하던 차였다.
드디어 그 아이를 보게 되다니.
긴장된 표정으로 천호전의 정문을 응시하기를 잠시, 드디어 누군가 걸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터벅터벅 계단은 올라오는 걸음 뒤로 자박자박 걷는 소리가 따르고 있었다.
‘왔구나!’
잠시 후, 무사 하나와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총관은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쭉 빼내어 아이를 보았다.
뒤로 올려 묶은 검은 머리에 살짝 올라간 눈꼬리. 새하얀 얼굴에 불그스레한 젖살이 오른 뺨.
오뚝한 작은 코와 야무지게 닫힌 입.
‘아가씨…?’
아이의 모습엔 총관이 기억하는 남궁설화의 어릴 적 얼굴이 담겨 있었다.
그사이 키가 크고 아기 티가 벗겨지긴 했지만, 분명 남궁설화의 어릴 적 모습이었다.
‘통관 할찌! 나! 아나!’
남궁설화가 처음으로 자신을 부르며 안아 달라 다가오던 기억이 떠올라, 울컥 감정이 솟아올랐다.
코끝이 시려 왔다.
― 크크크, 나도 저 꼬맹이를 처음 봤을 때 비슷했소. 하나, 너무 속단하진 마쇼. 아직 아무것도 확실해진 건 없으니.
섭무광의 전음을 듣고서야 총관은 서둘러 감정을 갈무리했다.
그의 말이 맞다. 아직 속단하기엔 이르다.
남궁의 아이를 구별하는 자리다.
이 아이가 남궁설화임이 확실해지기 전까진 말과 행동을 허투루 해선 안 될 터였다.
* * *
천호전의 안으로 들어선 순간, 일화는 저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춰 섰다.
온몸을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이 화살처럼 날아와 꽂힌 탓이었다.
정면을 바라보자, 그가 보였다.
높고 웅장한 천호전의 가장 깊고 높은 곳.
‘천룡검황… 남궁무천….’
희끗희끗하여 회색빛을 띠는 머리, 살짝 올라간 눈꼬리 탓에 매서워 보이는 인상.
굳게 입을 다문 얼굴에선 어떠한 생각도 읽어 낼 수 없었고, 장엄함마저 느껴질 정도의 듬직한 체구에선 그야말로 천하를 내려다보는 듯한 위압적인 기세가 풍기고 있었다.
아득하게 느껴지는 심후한 공력은 경지를 가늠할 수조차 없었지만, 일화는 그의 경지를 알았다.
‘화경의 고수.’
손을 대지 않고 기의 운용만으로 물건을 옮기고 항상 몸에 갑옷을 두른 듯 육체가 단단하며 허공에 발을 디딜 수 있다는.
천하에 단 열 명밖에 없다는 절대 고수.
그 아득한 간극은 그야말로 거대한 용 앞에 선 생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저 손짓 한 번만으로 순식간에 목이 떨어질 수 있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일진대.
‘…뭐지?’
일화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남궁무천을 마주한 순간 왜인지 손이 저릿하기도 하고 간지러웠다.
가슴 언저리가 콩콩, 뛰고 목덜미가 시큰해져 오는 것이, 아무래도 긴장한 탓인 듯했다.
위축되는 것이 이런 느낌이었나?
‘괜찮아. 지금은 적이 아니잖아. 괜찮아.’
일화는 주먹을 말아 쥐고 대전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 사람의 시선이 다가오는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가주 남궁무천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총관 남궁문이, 왼편엔 섭무광이 서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섭무광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헤어진 지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무척이나 반가운 기색이었다.
일화는 인사를 대신하여 그를 짧게 일별한 뒤 남궁무천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남궁세가의 가주님을 뵙습니다.”
이전 생엔 아득하기만 하였던 적을 제 핏줄로서 마주한 순간이었다.
“어서 오거라.”
짧은 인사에도 목소리의 울림에 전율이 일었다.
다시 한번 짧게 허리 숙여 인사하자, 남궁무천의 곁에 서 있던 총관이 흠, 목을 풀며 한 걸음 앞서 나왔다.
그가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일화는 자연스레 그를 바라보았다.
“설화라 해요.”
총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러나 이내 차분한 얼굴로 돌아와 이어 물었다.
“네 스스로 가문이 찾는 아이가 너라고 주장하였다고 들었다. 사실이더냐?”
일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가문이 찾는 아이는 남자아이다. 하나, 너는 보다시피 여자아이구나. 더군다나 목덜미의 반점 또한 확인할 수 없다고 하던데?”
“그런 건 모르겠어요. 전 그저 어릴 적 남궁에서 자란 기억이 떠올라 찾아왔어요.”
“기억이라….”
총관이 턱을 쓸며 일화를 빤히 바라보았다.
근엄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그는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 아이가 남궁이 8년이나 찾아다닌 아이가 맞을지, 아닐지. 마음은 전자이길 바랐다.
첫인상부터 아가씨를 떠올리게 한 아이는 이 아이가 처음이었으니.
“그 기억을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겠느냐?”
일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상했던 질문이기에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짧게 숨을 내쉰 일화는 기억을 더듬듯 눈을 내리깔았다.
모두의 긴장된 기다림 속에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양귀비 꽃길….”
그 짧은 단어 하나에도 총관의 표정에 작은 균열이 일었다.
일화가 시선을 들어 그를 마주 보았다.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연못가 근처에서 양귀비가 가득한 꽃길을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 손이 누구의 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일화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련한 표정엔 그리움이 가득했다.
“크고 딱딱했던 기억이 나요. 굉장히 따뜻했고요. 전 그분의 엄지손가락밖에 잡지 못했던 것 같지만요.”
덤덤하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천호전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싸해진 분위기를 느끼며 일화는 손을 말아 쥐었다.
‘놀랄 만해.’
버드나무와 연못, 그리고 양귀비가 가득한 꽃길이 있는 곳은 남궁무천이 머무는 가주전 정원이니까.
‘전생의 기억이 이렇게 도움이 되는구나.’
가주전 정원에 양귀비가 가득하다는 것은 이전 생에 남궁을 쳐들어왔을 때 보아서 아는 것이다.
남궁에 남은 식솔들을 전부 죽이고 가주전에 들어갔을 때, 양귀비 꽃길 앞에서 일화는 알 수 없는 기억을 떠올렸다.
조금 전 총관에게 말한, 누군가의 손을 잡고 꽃길을 걷던 그 기억이었다.
‘그땐 그것이 이상해서 꽃밭을 전부 불태워 버렸었지.’
관상용 양귀비였음에도 독초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면 그런 이상한 환상이 떠오를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사실은 그것이 자신의 진짜 기억이었는데도.
‘참 어리석었구나. 나도.’
과거의 자신에게 다시금 조소한 일화는 말아 쥔 주먹을 내리며 시선을 들었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은 잃어서 이게 다예요. 충분할까요?”
일화의 말에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총관이 아차 하며 황급히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남궁무천이 손을 들어 총관을 막았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양귀비는 중원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꽃이다. 연못이나 버드나무는 돈깨나 있는 놈들이면 개나 소나 만들고 감상하는 것들이고. 그것들로 네가 남궁의 아이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일화는 고개를 들어 남궁무천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남궁의 아이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스스로 남궁의 아이라며 찾아오는 아이들이 수천 명이고 그중엔 더러 여자아이도 있었을 테니까.
거기다 목덜미의 반점도 확인하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소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남궁무천의 눈썹이 꿈틀, 휘어졌다.
“이해할 수 없다? 무엇을?”
“사라진 아이를 찾는 것은 남궁이 아닌가요? 한데, 어찌하여 제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