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70
70화
* * *
‘저, 저도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설화 아가씨께서 돌아오시기 전 주루에 계셨고, 기녀가 되기 위한 가르침을 받으셨다고…. 제, 제가 퍼트린 소문이 아닙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
세 사람은 전각으로 돌아왔다.
설화는 말없이 방에 들어갔고, 여율과 령은 그런 설화에게 끝내 더 묻지 못했다.
“어떻게 해요, 무사님. 제가 실수한 거죠? 실수한 거 맞죠? 아가씨께서 계신 줄 알았다면 말하지 않았을 텐데.”
엉엉 울며 자책하는 여율의 곁에서 령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에라도 허튼 소문을 퍼트리는 시비들을 잡아다가 곤장이라도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들을 그냥 보낸 것은 설화였다.
아가씨께서 용서하신 것을 자신이 마음대로 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허헝… 내 입이 문제야, 내가… 허엉….”
거기다.
‘당장 가주님께 말씀드려 소문을 낸 자들을 잡아들여야 합니다! 분명 악의적인 목적이 있을 겁니다!’
‘아니. 내가 말할 때까지 보고하지 말고 기다려.’
‘하나, 아가씨. 이건 심각한 사안입니다. 가문의 사용인들이 아가씨를 모욕하는 것을 두고 볼 순 없습니다!’
‘네 주군은 누구지? 령.’
‘…아가씨이십니다.’
‘그럼 기다려. 할아버지껜 때가 되면 내가 직접 말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보고도 못 드리게 생겼다.
아가씨의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 가주께서도 이 소문을 들으실 테지만, 그때는 이미 가문 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이후일 텐데.
“하아….”
“허엉… 역시 제 탓인 거였어요. 이 멍청한 입… 허어엉….”
그때였다.
방문이 열리고 설화가 밖으로 나왔다.
여율과 령이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화는 수련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이었다.
“아, 아가씨….”
“아가씨, 설마… 오늘도 가시려는 겁니까?”
이런 소문이 도는데?
그 물어뜯을 궁리만 하는 개떼가 득실대는 연무장을 가시겠다고?
“아가씨 오늘은 쉬시는 것이….”
설화는 대수롭지 않다는 가볍게 계단을 내려와 두 사람의 앞에 섰다.
“어차피 하루아침에 사라질 소문도 아니야. 소문이 무섭다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시간만 아깝지. 그럼 나만 손해야.”
“하지만….”
“그리고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니까.”
설화가 어깨를 으쓱였다.
령과 여율의 눈이 동그랗게 올라갔다.
“…예?”
“히끅.”
“남궁으로 돌아오기 전에 주루에 있었던 거 맞거든. 술은 안 따랐지만.”
정확히는 주루로 위장한 혈교의 세력이었고, 하던 일은 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지만.
‘사실에 비하면 소문이 훨씬 나은 셈이지.’
이곳은 백도 정파이니 둘 다 보는 시선이 곱진 못하겠지만, 살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보단 나은 상황이었다.
“가자. 늦겠다.”
어버버, 말을 잇지 못하는 두 사람의 사이로 설화가 걸어갔다.
여율과 잠시 시선을 나눈 령은 황급히 그녀의 뒤를 쫓았다.
* * *
시비들을 중심으로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일 공자님 딸, 이번에 돌아온 아가씨 말이야. 지금껏 주루에 있었대.”
“헉. 그럼 정말 그 소문이 사실인 거야?”
“그런가 봐. 그 왜 있잖아, 주루에서 어린 여자애들 데려다가 가르쳐서 크면 기녀로 부린다고 하잖아.”
“설마… 기껏해야 예기(藝妓) 아니었을까?”
“예기도 기녀지. 남궁의 아가씨가 그런 걸 배우다니… 좀 그렇지 않아…?”
“가문 밖 사람들이 알면 수치… 아닌가….”
소문이 퍼져 나가는 사이에도 설화는 다른 때와 다르지 않게 살았다.
적룡단과의 수련도, 가문의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시비들과 무사들이 그녀를 보며 수군거려도 개의치 않았다.
다른 이였으면, 그것도 다른 열셋의 아이였으면 방에 틀어박혀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텐데.
이미 부모님에게 달려가 이르고 그 품에 안겨서 위로를 받았을 텐데.
‘아가씨께선….’
폭풍의 중심은 고요하다 하였는가.
령은 설화가 마치 폭풍의 중심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주위로 세상이 요동치고 있지만, 그녀만은 고요했다. 너무 고요해서 무서우리만큼.
문제는 소문이 퍼진 이틀 뒤의 새벽에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저희의 불찰입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1차 선발이 나흘 남은 시점. 새벽 수련에 나온 적룡단원들은 침울했다.
“무슨 일이죠?”
“저희 모두… 이번 승급 시험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저희의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사건은 이러했다.
어젯밤, 저녁 식사 후.
연무장에서 자유 단련을 하고 있는데, 평소 11단과 사이가 좋지 않던 14단의 단원들이 몰려와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수련해도 평생 내당 무사가 될 일은 없을 테니 헛수고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저희보고 닭대가리들이라고 했습니다! 태생이 천하니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을 날 일은 없을 거라고요!”
적룡 11단은 실력은 뛰어나지만 뒷배가 없는 이들이 모여 있는 조였다.
외당에서는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위치지만, 더 이상 높이 오르지 못하는 이들이 고이게 되는 조.
그것을 비웃은 것이다.
“거기까진 괜찮았습니다. 평소에도 듣는 말이니까요. 한데….”
남궁지평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의 팔이 부들거리며 떨려 왔다.
“그것들이 감히… 아가씨를… 욕보이는 말을 하는 바람에….”
‘아, 그러고 보니 니들 무공을 가르치는 게 기루 출신이라며?’
‘술장사나 하던 곳에서 자란 게 남궁의 아가씨라니. 가당치도 않지. 낄낄. 분 냄새는 옷으로 감춰지는 게 아니거든.’
‘기루 출신한테 뭘 배우냐? 분칠하는 법?’
설화를 대놓고 까 내리는 말에 결국, 남궁지평은 참지 못했다.
남궁지평이 달려드니 조원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싸움판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한바탕 난투극이 벌어졌고―.
“적룡단주님께 불려 갔습니다. 저희와 14단 전원… 이번 승급 시험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하시더군요.”
남궁지평이 고개를 푹, 숙였다.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가씨. 아가씨께서 저희들을 위해 해 주신 것들을… 저희가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적룡단원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니, 들 수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내당 무사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뒷배가 없던 그들의 뒤에는 남궁의 아가씨가 든든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절정 고수들의 비무를 보았고, 이제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다.
한데. 한순간의 실수로 그 모든 것을 날리게 되었으니. 고개를 들 수 있을까.
“그래서….”
“….”
“이겼나요?”
남궁지평이 멍하니 고개를 들어 설화를 바라보았다.
분명, 화를 내실 것이라 생각한 아가씨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예?”
“그 싸움이요. 이기셨나요?”
적룡단원들이 멍한 시선을 나눴다.
그러다 이내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봇물 터지듯 말을 쏟아 냈다.
“당연하죠! 14단은 원래부터 상대가 안 되던 놈들이었습니다!”
“아가씨께서 해 주신 수련 덕분인지, 솔직히 너무 쉬웠습니다.”
“저희는 이렇게 멀쩡한데 그놈들은 한 군데씩 부러졌습죠.”
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어요. 못 봐서 아쉽네요.”
너무나도 태평해서 황당할 지경이었다.
마치 어제저녁에 무엇을 먹었는가에 관한 얘기를 마친 듯이 설화는 태연하게 목검을 집어 들었다.
적룡단원들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뭐 하세요? 수련 안 할 건가요?”
“…저… 아가씨. 이제 수련은 의미가….”
그의 눈앞에 눈 깜짝할 새에 목검이 드리워졌다. 남궁지평이 저도 모르게 호흡을 멈추었다.
“수련을 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강해지기 위해서지 내당 무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내당 무사가 되면 수련을 멈추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요?”
“그, 그건 아니지만….”
“제가 말했잖아요. 여러분은 끝까지 포기하지만 말아 달라고요.”
“…!”
남궁지평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적룡단원들의 눈빛도 울듯이 흐려졌다.
“아가…씨….”
모든 것이 끝났다고 포기한 그들이었다. 또다시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낙담했다.
그러나 마치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이 설화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했던 대로 여러분은 수련에만 매진하세요. 승급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금보다 강해지는 것만 신경 쓰세요.”
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나머지는 제가 해결해 드릴게요.”
* * *
전각으로 돌아온 설화는 가문 수련장으로 가는 대신 령과 여율에게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전각 뒤편 개인 연무장으로 향했다.
어수선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최고의 방법은 아무 생각 없이 검을 휘두르는 것이다.
검을 휘두르다 보면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고, 모든 것이 명확해지곤 했다.
그것은 이전 생부터 이어진 설화의 습관 중 하나였다.
쉭― 쉬익―
날카로운 진검의 날이 공기를 베고 기운을 베었다.
‘내가 적룡단의 수련을 봐주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수련할 때 몰래 다녀간 이들이라면 가문 중직자들의 ‘눈’ 정도겠지.
그러니 적룡단을 자극해 승급 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지시한 이는 적어도 중직자 이상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거기다 천무제를 앞두고 시기 좋게 퍼진 소문.
‘이번 천무제는 소가주로서의 자질을 시험받는 시험대이다.’
그러니 이 모든 일은 결국, 소가주의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분쟁의 일환이라는 말이다.
‘나를 흔들어 아버지의 위신을 떨어트리려는 수작인가?’
역시 그 여자인가?
가문의 권력에 집착하는 이는 많지만, 이런 더러운 수작을 부릴 이는 이 남궁에 한 사람뿐이다.
남궁의 일원이지만, 남궁에서 자라지 않은 여자.
남궁청해의 부인. 연소란.
‘그 여자가 이런 더러운 수작질로 나온다면….’
쉭― 쉬익―
‘이쪽도 조금 더럽게 놀아 줘 볼까.’
붉은 검로가 허공에 잔물결을 남기며 끝없이 이어졌다.
령과의 비무 때보다도 훨씬 빠르고 선명한 기운이었다.
쉴 틈 없이 움직이는 탓에 숨이 벅차기도 하련만, 차오르던 숨은 어느 순간 더 이상 버겁지 않았다.
바람도, 소리도, 숨소리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가 그녀의 주위를 감쌌다.
자신이 검을 휘두르는 것인지, 검이 자신을 휘두르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 되었을 때.
“그러다 죽는다.”
카앙―
누군가의 검이 그녀의 검을 가로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