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72
72화
자신은 왜 섭무광에게 검을 배우고 싶은가.
왜 그에게 제자로 삼아 달라고 말하고 있는가.
섭무광의 검법이 탐나는가?
그건 아니다. 그의 검을 닮고 싶지만, 그의 검을 따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다면 왜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짧게 고민한 설화는 당당히 시선을 들어 섭무광을 마주했다.
“저는 제 길을 가고 싶어요. 다른 누군가가 닦아 놓은 길이 아닌, 저의 길이요.”
“…!”
섭무광의 눈이 크게 올라갔다.
설화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진정한 무인이라면 자신의 무학을 세우고 극의를 쫓아 대성을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가전 무공이 탄탄하게 잡힌 세가의 아이들은 보통 이미 잘 닦인 길을 걸어가려 할 뿐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려 하지 않는다.
쉽고 확실한 길을 두고 굳이 힘들고 불확실한 길을 가려는 수고를 감당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 시간에 세가의 무공을 열심히 익히면 아주 잘하면 가주가 될 수 있고, 못해도 가문의 장로 정도는 될 수 있다.
그리되면 가문의 이름에서 오는 힘과 권력을 자연스레 손에 쥘 수 있으니, 무공을 익힐 거라면 가문의 무공을 익히는 것이 나았다.
한데 대체 얘는 왜.
“부탁드려요. 검을 가르쳐 주세요.”
아이의 눈동자에서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제 감정을 모르는 아이이니, 이 감정은 무의식에서 흘러나오는 것일 테다. 무의식인 만큼 진심이라는 것이고.
“…돌겠네. 진짜.”
섭무광이 난감한 표정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 * *
가주전으로 돌아가며, 섭무광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고작 열세 살짜리가 스스로의 무학을 세울 생각을 한다니. 이게 말이 되나?
‘나 열세 살 땐 뭐 했지?’
참으로 탐나는 놈이다. 그래서 더 안 되는 일이고.
하여, 또다시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넌 역시 남궁의 검을 배워야겠다. 내가 볼 땐 네 녀석이 이 남궁의 미래 같거든? 남궁의 검은 배우고 싶어도 아무나 못 배우는 거니까….’
한데 당돌하게도 아이의 대답은 이러했다.
‘할아버지께서 허락하시면 가르쳐 주실 건가요?’
어느 누가 제 유지를 잇고 싶다는 아이를 예쁘게 보지 않을 수 있을까.
안 그래도 계속 탐이 나서 아까워 죽겠는데, 끈질기게도 붙잡고 늘어지는 그 말에 섭무광은 결국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단, 떼쓰거나 억지 부리지 말거라. 그건 무효다.’
“에이 씨, 역시 거절했어야 했나. 형님 얼굴을 어떻게 본담….”
남궁의 검을 배우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하나에 집중할 때보단 당연히 성취가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
“적당히 거절하시겠지.”
반짝이던 아이의 눈동자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섭무광이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 내던 중이었다.
“그렇다니까? 기녀였대.”
“헉, 그럼 아가….”
얼핏 들려오는 대화에 섭무광은 전각의 지붕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대화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시비들의 처소로 향하는 길목. 수많은 시비 속 그 말을 한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잠시 그곳을 바라보던 섭무광은 이내 가주전으로 걸음을 돌렸다.
* * *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설화는 령과 함께 거리로 나왔다.
남궁의 뒤편으로 넘어가는 해는 흐린 하늘 탓에 잘 보이지 않았으나 구름 뒤편에서 신비로운 색으로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가씨.”
설화는 제 곁으로 다가오는 령을 바라보았다. 검은 장포로 흑룡대의 무복을 가리고 죽립을 눌러 써서 정체를 가린 모습이었다.
설화 역시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대체 어디를 가시려고 이리 입으신 겁니까?”
“약속을 지켜야지.”
“약속이요?”
“단원들에게 약속했잖아. 전부 해결해 주겠다고. 부당하게 뺏긴 기회를 되찾아 줘야지.”
령이 아, 낮게 탄식했다.
“가주님께 말씀드리려던 것이 아니셨습니까?”
“할아버지께?”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지 않습니까.”
“음.”
그렇겠지.
남궁무천에게 적룡단원들의 사정을 얘기하고 기회를 달라고 부탁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눈앞의 문제만 해결할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도움은 받을 거야.”
결국엔 가주님이 나서 주어야 하는 일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전에 나도 준비할 게 있어서.”
“준비할 것이요?”
“응. 약점.”
“약점….”
저들의 일을 가주에게 보고하기 전에 그 근거를 준비하겠다는 것이었다.
근거 없는 주장은 떼쓰는 것이 되지만, 근거를 갖춘 주장은 고발이 될 테니까.
‘하지만….’
“가자. 늦겠다.”
그 약점을 대체 어디서 찾으시려는 거지?
령은 고개를 갸웃하며 앞서가는 설화의 뒤를 따랐다.
* * *
드르륵―
객잔의 문이 열렸다.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웅성거리는 대화 소리가 짧은 순간 멎고, 음식을 먹던 이들이 문 쪽을 흘낏거렸다.
“어서 오십…! 헉…!”
주방에서 달려 나오던 점소이는 인사를 채 끝마치지 못했다.
얼마 전, 무전취식하고 간 남궁의 무사들을 대신해 남궁에서 두둑한 전낭을 주고 간 일이 있었다.
횡포를 부리던 남궁 무사들이 그날 이후로 객잔을 찾지 않기에 남궁세가에서 호되게 혼을 낸 줄 알았는데…!
“뭐 해? 빈자리 없어? 손님 세워 둘 거냐? 앙?”
“아, 아닙니다! 이, 이쪽으로…!”
점소이는 험상궂은 세 남궁 무사를 흘낏거리며 그들을 빈자리로 안내했다.
그들을 발견한 손님들 역시 연신 흘낏거리며 수군거리기 바빴다.
“만두 아홉 판, 소면 여섯 개!”
“예, 예에…! 금방 내오…!”
그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탁자가 울렸다.
“히익!”
점소이는 그때의 일로 세 사람이 보복을 하는 것이라 짐작하고 화들짝 놀라며 방어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둔탁한 고통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음식값이다!”
믿기지 않는 호통에 점소이가 팔을 내리며 탁자 위를 바라보았다.
탁자 위에는 놀랍게도 정말로 은자들이 놓여 있었다.
점소이는 눈치껏 후다닥 은자들을 챙기고는 얼른 허리를 숙였다.
“금방 내오겠습니다!”
휭하니 주방으로 사라지는 점소이를 보던 일룡이 흥, 하며 코웃음을 쳤다.
맞은편 대각선에 앉아 있던 삼봉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다른 점포 가시지. 저렇게 벌벌 떨어 가지고 또 오해라도 받으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여기 만두랑 소면이 이 거리에서 제일 맛있는 걸 어쩌란 말이냐!”
“혹시라도 그놈을 다시 만나면요?”
“뭔 상관이야! 음식값도 제대로 냈구먼! 그놈의 고약인지 고단인지 때문에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정직하게 사는 건 처음이다!”
삼봉이 화들짝 놀라며 속삭이듯 말했다.
“고독입니다…! 그리고 그런 건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 약점이라고요!”
일룡이 살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뫼가 삼봉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쯧, 그놈의 그거 때문에 이게 뭔 짓인지! 그냥 확 튀면 안 되겠냐? 그 뒤로 뭐 별일도 없고, 괜찮지 않을까?”
“아 글쎄! 죽고 싶으면 그러쇼. 죽고 싶으면!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뭔 줄 모르니까 이리 경각심이 없지!”
“뭐? 근데 이 자식이….”
그때였다.
타탓, 탓, 탁!
일룡, 이뫼, 삼봉은 익숙한 감각에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세 사람은 탁자에 앉아 있는 상태 그대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오랜만이야.”
삼봉은 어느새 제 앞자리에 앉아 있는 죽립인을 바라보았다.
아니, 죽립을 쓴 꼬맹이를.
‘뭐, 뭐야… 뭔데 이 꼬맹이는?’
죽립이 살짝 들리며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싱긋, 웃는데 또다시 소름이 돋았다.
한순간 알 수 있었다. 이 아이가 자신들의 목숨을 손에 쥔 그때의 그 고수라는 것을.
“음식 나왔습니다―!”
음식을 잔뜩 들고 온 점소이가 신나는 얼굴로 음식들을 탁자 위에 올렸다.
“어, 좀 전까진 안 계시던 일행이 생겼네요?”
설화가 죽립을 들어 올리며 점소이에게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들이 맛있는 거 사 준다고 해서요.”
“이야, 좋은 삼촌들이네―.”
점소이가 의외라는 듯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속으로만 살려 달라고 소리칠 뿐, 눈동자만 열심히 굴릴 뿐,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점소이가 떠나갔다.
일룡, 이뫼, 삼봉은 울고 싶어졌다.
설화는 만두 한 판을 가져와 제 앞에 두고 흥얼거리며 만두를 집어 먹었다.
“역시 이 집 만두가 최고야. 그치?”
세 사람은 그녀가 만두 한 판을 전부 비울 때까지 그냥 그대로 지켜봐야만 했다.
만두 한 판을 다 먹은 설화는 야무지게 물도 한 잔 비웠다.
그녀가 양손을 맞잡고 턱을 괸 채 맞은편의 삼봉을 바라보았다.
― 소란 피우지 않는다고 하면 풀어 줄게.
삼봉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 대답은 눈 깜박.
삼봉이 눈을 미친 듯이 깜박였다.
일룡과 이뫼에게도 똑같은 말을 전한 설화는 이윽고 세 사람의 점혈을 풀어 주었다.
그제야 세 사람은 한숨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설화는 그들 앞에 손수 만두를 한 판씩 놓아주었다.
“어서 먹어. 식겠다.”
삼봉은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만두 바구니의 뚜껑을 열었다.
달각. 뚜껑을 여는 순간, 삼봉은 아주 잠깐 이 뚜껑을 냅다 아이의 얼굴에 던질까,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 알 수 없는 감각이 마치 커다란 구렁이처럼 몸을 타고 올라와 삼봉의 목덜미를 옥죄었다.
숨이 턱 막히고 몸이 덜덜 떨리며 움직일 수 없었다. 일룡과 이뫼 역시 마찬가지였다.
점혈을 짚인 것이 아님에도 굳어 있는 세 사람의 귀에 소름 끼치도록 맑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혈과 마혈을 짚었는데. 사혈이라고 못 짚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