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설화는 놀란 얼굴의 적룡단주를 덤덤히 바라보았다.
자신이 찾아올 것을 전혀 예상치 못한 표정이 썩, 마음에 들었다.
“나, 남궁설화…?”
“아가씨라고 해야죠. 감히.”
설화의 눈동자가 어둠 아래 살기로 번득였다.
짙게 피어오른 살기가 뱀처럼 흘러가 적룡단주의 목덜미를 휘감았다.
적룡단주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이내 담벼락에 가로막혀 털썩, 주저앉았다.
“무, 무슨 일, 일로…?”
“재미있는 짓을 벌이셨더라고요.”
설화는 주저앉은 적룡단주에게 자박자박,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짙은 살기로 그의 숨통을 옥죄자, 적룡단주가 점차 숨을 헐떡였다.
적룡단주가 황급히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저, 적룡 11단의 일 때문입니까? 그,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단원들이 세가 내에서 무력 다툼이라니요! 비무도 아니고, 그런 건 제대로 된 벌을 주어야 무력단의 질서가…!”
설화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휘어졌다.
“고작 그것 때문에 내가 당신을 찾아왔을까.”
이 밤에. 그것도 이렇게 몰래.
설화의 모습이 그림자 밖으로 완전히 드러나자, 그녀의 주위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붉은 기운이 더욱 짙어 보였다.
설화는 외당 삼 형제가 조사해 온 적룡단주의 죄목을 읊었다.
“흑도 방파를 이용해 합비를 드나드는 상인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이용하던 흑도 놈들을 남궁의 단원으로 들인 것도 모자라, 뒷돈을 받고 단원들의 수준을 멋대로 평가하고.”
“…!”
“이것 말고도 많은데. 더 읊어 줄까?”
“그, 그게 무슨… 나,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모르는 것치곤 겁에 질린 표정이네.”
설화는 적룡단주의 턱을 붙잡아 올렸다.
그의 눈동자는 바람 앞에 등불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제, 제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원하는 것이라… 글쎄….”
굳이 말하자면 공포를 원한다. 하지만 그건 혈교에 있을 때에나 얻으려 했던 것이고.
“그건 네가 알아내야지.”
남궁에선, 남궁에 어울리는 방식이 있을 터였다.
“적룡단주. 남궁수학. 적룡대주 남궁장양과는 사촌지간. 남궁장양이 나와는 촌수로 12촌지간이니. 당신은 나와….”
설화가 어깨를 으쓱였다.
“남이나 다름없네?”
설화가 살기를 더 짙게 끌어올렸다.
적룡단주의 이가 딱딱, 부딪혔다. 외당 무력대의 단주이지만, 그는 살면서 이렇게 짙고 숨 막히는 살기를 마주해 본 적 없었다.
“내가 여기서 당신을 죽이면, 누가 당신을 기억해 줄까?”
무력단주로 단원들 위에 군림해 보기만 했을 뿐, 외당 무력단은 위험한 임무를 맡을 일도 없었다.
상식적으로 남궁의 아가씨가 내키는 대로 살인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만, 그 정도 기본적인 판단조차 두려움에 굳어 버린 그의 머리로는 불가능했다.
“…제, 제발 살, 살려 주십시오….”
“살려 줄 수야, 있지. 그래도 우린 같은 성씨를 가졌는데.”
설화가 남궁단주의 발목을 지그시 짓밟았다.
“근데 말이야.”
발에 힘을 싣자, 적룡단주가 사색이 되었다.
“아, 안…!”
설화가 그의 아혈을 점했다.
적룡단주의 공포에 질린 눈동자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남의 날개를 꺾어 놓고, 고작 발목을 아까워하진 말자.”
설화의 입꼬리가 싱긋, 휘어졌다.
“…!”
* * *
“아가씨!”
이른 아침을 소란으로 물들인 사람은 여율이 아닌 령이었다.
오늘은 내당대원 1차 선발이 있는 날.
단원들과의 수련 대신 개인 연무장에서 새벽 단련을 마친 뒤 씻고 옷을 입던 설화는 방문 쪽을 돌아보았다.
방문 너머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길 잠시, 령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풀렸답니다! 선발전에 지원할 수 있게 풀어 줬답니다!”
감격에 벅찬 목소리였다. 옷깃을 정리하던 설화는 미소지었다.
천무제가 시작되었다.
* * *
카앙―!
남궁지평의 이마에 핏대가 올랐다.
“끄으으으….”
힘을 주어 검을 밀자, 상대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상대의 눈동자가 남궁지평의 얼굴과 다리를 번갈아 훑었다.
‘무, 무슨 이런 괴력이…!’
적룡 11단이 어떤 조인지 모르는 적룡단원은 없다.
그들은 무위는 강하지만, 뒷배가 없어 올라가지 못한 채 고여 있는 자들이었다.
몇 번은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애쓰지만 보이지 않는 벽을 깨닫고 나면 스스로 남궁을 나가는 이들.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조.
그중 남궁지평은 고여 있다 못해 썩어 버린 물이었다. 깨닫고도 제 발로 나가지 않는 그를 골치 아파하던 적룡단주를 많이 보았다.
‘최근엔 수련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들었는데…!’
이번 승급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궁과 연을 맺고 싶어 하는 자신의 상단에도 중요한 기회가 될 터.
그러기에 쓴 돈이 얼마인데!
이번엔 반드시 올라가기로 내정되어 있었을 터인데…!
그걸 위해 영약까지 먹었는데…!
‘그런데도 밀린다고? 내 힘이…?’
검이 밀렸다. 더 이상 남궁지평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대론 안 된다!’
콰악―!
12단 적룡단원은 다급한 마음에 남궁지평의 발을 밟았다. 그러나.
“백 근! 백 근! 백 근! 백 근! 도합 사백 근!”
“…?”
뭐라는 거지?
“사백 근을 버텼는데 네놈 발장난 하나 못 버티겠냐아아아!”
쿵.
남궁지평의 다리에 사백 근을 버텨 냈던 힘이 실렸다.
12단 단원은 그 순간, 그의 몸이 딱딱한 바위가 되었다고 착각했다. 그와 동시에.
“으아아아아!”
“으아악!”
부우웅―
12단 단원의 몸이 허공을 부웅 날아갔다.
맞부딪친 검을 밀어내는 힘과 밟힌 발을 떼어 내는 힘에 밀려 넘어진 것도 아니라 날아간 것이다.
쿵! 쿵! 쿵! 하는 소리와 함께 12단 단원의 몸이 비무장을 굴렀다.
그는 이내 충격에 몸을 부르르 떨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하… 하아… 하….”
끅끅거리는 12단 단원을 보며 숨을 가다듬던 남궁지평은 어느 순간 짜릿한 감각을 느꼈다.
‘…이겼다.’
그것도 너무 쉽게.
1차 선발전에서 상대를 이긴 적은 있어도 이렇게 쉽게, 압도적으로 이긴 적은 없는데. 머릿속이 찌릿찌릿할 정도로 짜릿하다.
이건, 이 승리는 정말….
‘너무 쉬웠다고…!’
그간의 수련을 한순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참을 수 없는 벅차오름에 남궁지평이 감격에 찬 포효를 내지르려던 그때였다.
“남궁지평. 실격.”
“…!”
청천벽력 같은 판정이 그의 귓가를 강타했다.
양손을 말아 쥔 채 손을 들어 올릴 자세를 취하고 있던 남궁지평이 멍하니 심사석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자신의 승리가 또다시 바닥으로 처박히고 있음을 직감했다.
“적룡 11단 남궁지평. 검을 나누라 하였지 힘을 자랑하라 하였나?”
그렇게 말하는 적룡단주의 목소리엔 비웃음이 가득 실려 있었다.
다섯 단주들의 심드렁한 표정 역시 너무나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대체 언제쯤 제대로 된 검을 보여 줄 건가? 자네가 11단에 머문 지도 꽤 된 것 같은데.”
“크큭, 그렇군.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 했네. 이런 걸 거지 근성이라 하나?”
“이 사람아, 거지 근성이라니. 저 나름대로 열심히 해 보겠다는 사람한테 그게 무슨 말인가? 뭐, 좀 멍청한 것 같긴 하지만.”
단주들이 낄낄거리며 남궁지평을 깎아내리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 웃음 속 가장 즐거워하는 이는 다름 아닌 지평이 속한 적룡단의 단주.
한쪽 다리에 두꺼운 붕대를 칭칭 감은 그는 그 누구보다 비열한 표정으로 남궁지평을 비웃고 있었다.
‘남궁의 아가씨라도 이 비무장 안에선 아무 힘도 없다 이거야.’
남궁설화의 협박에 못 이겨 적룡 11단에게 내린 근신을 풀어 주었다. 하나, 이대로 쉬이 내당 무사 자리를 내어 줄 순 없었다.
‘내당 무사에 애먼 놈이 올라가면 그분을 어찌 보라고.’
그분의 눈 밖에 나면 다리 하나 부러지는 것으론 끝나지 못할 것이다.
단주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남몰래 죽임당할 수도 있으니.
‘일단은 나도 살고 봐야지.’
적룡단주는 1차 선발 비무를 곧장 비공개로 바꾸고, 비무장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을 다섯 단주들과 비무를 치르는 무사 둘로 제한했다.
아무리 남궁의 직계라도 비공개 비무에 쉬이 난입할 순 없을 터.
‘가주님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 이 비무장에서 일어나는 비무의 결과는 우리 손에 있다!’
“주제 파악도 정도껏 하게! 아니, 하기야 주제를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는 법이지, 암! 실력도 없는 것들이 본래 끈질긴 법이고, 암! 하하하!”
단주들이 웃으며 나누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지평의 가슴을 후벼 팠다.
마지막은 힘으로 밀어붙이긴 했어도 검을 아예 나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비무는 강함과 약함을 판단하기 위함이지, 오로지 ‘검술’만을 보는 것이 아닐 터인데.
‘또구나.’
검을 쥔 지평의 손에 핏줄이 돋을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이번만큼은 피를 토하도록 노력했고, 자신 있었고, 결과 역시 압도적이었는데.
‘역시, 안 되는 것이구나. 나는….’
신청조차 금지당한 것을 아가씨께서 힘을 써서 풀어 주셨건만. 이번 역시 결과는 똑같다.
지평은 그저, 자신을 믿고 우직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설화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남궁을 떠나자.’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짝, 짝, 짝, 박수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지평과 단주들 그리고 비무장 바닥에 누워 있던 12단 단원까지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누구지?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텐데?’
적룡단주 역시 싸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외당에 훌륭한 인재가 숨어 있었군.”
그들은 일제히 경악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