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88
88화
* * *
이른 새벽, 설화는 어김없이 일어나 연무장으로 향했다.
늦게까지 가문의 어른들에게 술잔을 받던 청운이 곤히 잠들어 있었기에,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외당 연무장으로 가지는 않았다.
적룡대원들 역시 청운과 같은 상태일 것이 뻔하니 어젯밤 령을 통해 새벽 수련을 쉬겠다고 전해둔 참이었다.
설화는 오랜만에 내당의 직계들을 위한 연무장으로 향했다. 섭무광에게 받은 검을 처음으로 휘둘러보았던 연무장이었다.
연무장에 도착해 문을 막 넘어서던 설화는 걸음을 멈추었다.
“하! 하앗!”
연회 직후라 아무도 없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연무장 안쪽에선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의외이긴 했지만, 이상할 것은 없었다. 남궁이 무가인 만큼 성실하게 수련에 열심을 다 하는 사람은 당연히 있을 테니까.
다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조금 궁금했다.
설화는 멈추었던 걸음을 움직여 연무장 안으로 들어섰다. 연무장 안엔 정말로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남궁웅?’
남궁청해의 둘째 아들이자 남궁소룡의 동생.
땀을 뚝뚝 흘리며 수련용 타격대에 목검을 휘두르고 있던 그가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검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길 잠시. 남궁웅의 동그란 눈이 크게 올라갔다.
그가 헐레벌떡 달려와 설화에게 허리를 납죽 굽혔다 폈다. 거친 숨을 가다듬는 얼굴엔 해맑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설화 누님. 간밤은 평안하셨나요?”
그 맑은 미소의 얼굴 뒤로 지난 생의 남궁웅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던 앳된 청년의 얼굴이.
‘이들을 죽이려면 먼저 나를 베어라.’
남궁세가의 장원에 쳐들어가 불을 지르고 남궁의 식솔들과 무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있을 때였다.
그는 부상을 당하거나 늙어버려 거동이 불편한 남궁의 식솔들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도련님이라도 도망치십시오! 도련님께선 남궁의 희망이 아닙니까!’
‘웅아, 가거라! 우리 목숨 따위는 중요치 않으니 어서…!’
그가 지키고 있던 식솔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도망치라 소리쳤다.
그것이 옳았다. 남궁웅은 남궁의 핏줄이고, 그가 살아야 남궁의 부활을 언젠간 도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남궁웅은 미련하게도 끝까지 남아 그들의 앞을 지켰다.
‘내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남궁을 지킬 것이다! 이 남궁은! 남궁의 정신은! 너 같은 것이 함부로 짓밟는다 하여도 결코 꺾이지 않는다!’
팔 한쪽을 잘리고 눈 하나를 잃고 온몸에 입은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려도.
제 형과 어머니는 가문을 버리고 이미 도망쳐버렸음에도.
그는 끝까지 남궁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의 말대로 그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어쩌면 이 남궁에서 가장 남궁인다운 사람은 남궁웅일지도.’
남궁을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이라면, 남궁웅은 남궁의 표본과도 같은 이였다.
“수련을 하러 오신 건가요?”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물어오는 물음에 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제를 치르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정말 대단하세요!”
“너도 그러네.”
“앗… 저는….”
남궁웅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누님처럼 멋진 모습은 보여드리지 못했는걸요. 아, 어제 누님의 검, 정말 멋있었어요. 누님을 뵈면 이 말을 꼭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
“수련장에서는… 죄송했습니다.”
“수련장?”
“남궁대주께서 누님께 일부러 검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걸 몰랐어요. 형님께서 막대하실 때도 제가 좀 더 형님을 말렸어야 했는데.”
남궁웅의 얼굴엔 죄책감이 가득했다.
어른스러운 척하고 있어도 남궁웅은 아직 열 살짜리 어린애였다.
형과 또래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껏 행동하는 것만으로 이미 대단한 일이었다.
“괜찮아. 어쨌든 잘 끝났으니까. 그리고….”
남궁장양은 연회 시작 전에 비풍검대원들에게 끌려 나갔다.
연회 내내 남궁무강이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어젯밤부터 심문받고 있을 터였다.
“수련장의 일도 잘못은 네가 아니라 소룡이 했어. 소룡의 잘못을 네가 대신 사과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입을 꾹 다물고 생각하던 남궁웅이 도리질을 쳤다.
아무래도 형을 대신하여 사과하고 다니는 게 익숙한 모양이었다.
‘백도 애들은 이게 문제야.’
사리 분별을 하기도 전에 무조건 정의, 정직, 청렴. 이런 것만 강요하니까.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닌 것에 사과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는 거지.
흑도 놈들은 잘못을 인정하는 법을 모르는 게 문제라면, 백도의 사람들은 일단 머리를 숙이고 보는 것이 문제다.
이것이 자라면 위선이 되고 자만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남궁웅은 그런 경우는 아니지만.
“그보다 원래 이 시간에 수련해?”
“아, 네! 새벽 수련이 집중도 잘 되고 몸도 개운한 느낌이어서요.”
“그렇구나.”
수련할 줄 아네.
설화는 조금 전까지 그가 내려치던 타격대와 남궁웅의 손을 훑었다.
남궁웅의 손은 물집이 터진 것인지 피가 묻어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검을 쥔 손에는 단단하게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남궁웅의 무공을 보지 못했다. 령에게 듣자 하니 대연검법이 5성이라는 것은 알지만….
‘어릴 때는 어땠을지 좀 궁금하네.’
“비무할래?”
설화의 말에 남궁웅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조금 반짝이고 있었다.
“비무요? 제가 누님과요?”
“응.”
남궁웅이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아무래도 무위 차이를 걱정하는 듯했다.
“살살해줄게.”
그 순간, 맑은 눈동자 속에서 작은 불꽃이 화르륵, 타올랐다.
검을 맞대어 보기도 전에 상대에게 낮잡아 보이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비록 질 것 같을지언정 실력을 보이기도 전에 형편없어 보이고 싶진 않으니까.
“아니요. 최선을 다해주세요. 저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슬쩍 도발해본 것이었는데, 꽤나 야무진 무인의 반응이 나왔다.
“좋아. 진심으로 상대해줄게.”
두 사람은 연무장 중심의 비무대로 향했다.
비무대에 오르기 전, 웅이 설화의 목검을 손수 챙겨와 공손하게 내밀었다.
‘형이랑은 정말 다르네.’
웅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검에 대한 존중이 묻어 나온다.
제멋에 취해 검을 휘두르는 놈들과는 다른, 제가 걸어가는 도(道)를 아는 자의 태도였다.
“고마워.”
설화는 마다하지 않고 목검을 받아 비무대로 올라갔다.
그녀를 따라 비무대에 오른 남궁웅이 설화의 선 맞은편으로 향했다. 그가 목검을 쥐고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설화 역시 제대로 된 자세로 응수했다.
“나 역시 잘 부탁해. 먼저 들어올래? 내가 먼저 갈까.”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제 실력을 자만하지 않는 태도까지.
썩 맘에 드는 아이였다.
“좋아.”
설화는 들어올 공격에 대비해 자세를 잡았다.
남궁웅 역시 제가 배운 검식의 기수식을 취했다. 자세를 잡고 호흡을 정리하는 그의 눈빛이 조금 전과는 달리 날카로운 예기를 띠었다.
“하앗!”
짧고 강렬한 기합과 함께 남궁웅의 검이 설화를 향해 날아왔다.
남궁웅이 펼치는 검법은 예상한 대로 기본 검법인 대연검법. 훌륭한 선택이었다.
검법을 익히는 것은 화려한 밥상 위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는 것이 아니다.
갓 태어난 아기 때는 모유를, 조금 더 크면 미음을 더 크면 쌀밥을 그리고 고기를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순서를 지켜야 더 튼튼하고 높이 자라날 수 있다.
타탁- 탁!
남궁웅의 검은 화려하거나 특색있지 않아도 한 번 한 번 휘두르는 격에 힘이 실려 있었다.
동작은 일정한 검로로 오차가 거의 없이 날아왔다.
남궁웅이 그동안 얼마나 같은 동작을 반복하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기특하네.’
검을 한 번 휘둘러도 똑같은 동작을 수천, 수만 번을 연습하여 제 것으로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변형도 가능해진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검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 화려한 검술을 펼치고 싶은 마음에 쉽게 간과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조차 제대로 된 길을 따르고 있었다.
‘…그럼 뭐가 문제인 거지?’
이쯤 되니 설화는 의아해졌다.
‘남궁웅의 성장 속도를 봤을 때 이런 식으로만 검술을 연마했다면 최소 초절정의 극에는 올라야 했는데?’
그런데 왜 이전 생에선 많이 잡아봐야 절정의 극 정도였던 것일까?
내공이야 가문에서 지원하는 영약만 제대로 섭취해도 쌓일 테니 문제가 없었을 텐데.
‘깨달음이 부족했다고?’
어째서?
이렇게 어릴 때부터 치열하게 검에 대해 고민하고 옳은 길을 따르려 노력하는 사람이.
타탁! 타악!
“하앗-!”
설화는 더욱 날카로운 시선으로 남궁웅의 검을 지켜보았다.
설화의 눈빛이 어느 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
‘알겠다.’
남궁웅의 성장이 멈춰버린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