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촤아아아-
배는 빠르게 뭍으로 가까워졌다.
설화는 옷을 끌어 올려 최대한 하관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겉으로 보기엔 두려움에 위축된 모습이었으나, 혹시 자신을 알아볼 사람이 있을 것을 대비해 얼굴을 숨긴 것이었다.
– 이거 큰일이네.
유강이 난감한 목소리로 전음해 왔다.
그는 등에 화린을 업고 있었다.
이틀 동안 수적들의 반응을 살핀 결과, 그들은 화린을 묶어두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강 한복판에서 도망칠 곳이 없기도 했고, 애초에 화린에게 해를 끼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유강이 화린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흘낏, 쳐다보고 말 뿐 크게 관심을 갖는 이들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유강과 잘 어울리는 화린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듯했다.
– 분위기가 심상찮아. 고수가 있는 것 같아.
수로채에 가까워졌을 뿐인데, 유강은 무언가를 느낀 듯했다.
– 장강의 악귀라고 들어봤어?
– 장강의 악귀?
– 장강의 악귀 맹등호. 100대 고수에 드는 사람이야. 창을 쓰는 걸로 유명해.
100대 고수라는 말에 유강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100대 고수라는 건 적어도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라는 것.
그것만으로 상대가 안 되는데, 맹등호 이외에도 절정은 되어 보이는 고수가 열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 우리… 도망칠 수 있을까…?
– 아니.
– 어쩌지?
– 우선은 남궁에서 지원군이 오길 기다려 봐야지. 그때까진 우리 정체가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맹등호 정도면 우리가 평범한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볼 거야.
되도록 맹등호를 마주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 혹시 모르니 핑곗거리 생각해 놔. 무공을 익히게 된 계기 같은 거.
– 응.
* * *
배가 드디어 육지에 정박했다.
“자, 빨리, 빨리 움직여!”
유강은 화린을 설화에게 넘기곤 배의 짐을 옮기러 갔다.
짐 정리가 거의 끝날 때쯤, 배의 우두머리였던 수적이 세 사람에게 따라오라 명했다.
그는 절정의 고수로 두 사람이 타고 있던 배에서 가장 무위가 강한 이였다.
“잠시 여기서 기다려라.”
한 막사 앞에 도착한 그는 세 사람을 그대로 두곤 홀로 막사에 들어갔다.
수로채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하였고, 크기도 가장 큰 것으로 보아 수로채주의 막사인 것 같았다.
– 망했다. 채주한테 인사해야 하나 봐.
유강도 맹등호를 마주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는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하기야 수로채에 처음 왔으니, 채주에게 인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남궁의 아이를 납치해오라 시킨 것도 수로채주일 테니, 화린을 보려 할 것이고.
‘맹등호는 나를 알아볼까?’
이 나이대에 맹등호를 마주친 적이 있던가.
여러 가지 벌어질 일의 가능성을 놓고 고심하던 때였다.
막사 안으로 들어갔던 수적이 나왔다.
“따라와라.”
유강과 설화는 시선을 나눴다.
– 화린이는 내가 데려갈게.
유강이 화린이를 데려가 제 왼편에 세우고 설화의 옆에 섰다.
– 너희 은근히 닮아서 혹시라도 알아보면 곤란하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의 설화는 남궁의 아이라는 것을 숨기고 신입의 신분이었으니.
막사의 안은 어두웠다. 그 어두운 막사 안쪽에, 맹등호는 커다란 의자에 삐딱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햇빛이 그의 얼굴을 반쯤 비추고 있었는데, 그 탓에 눈이 보이지 않아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읽기 어려웠다.
“그 아이인가.”
“예. 채주님.”
수적이 유강에게 턱짓으로 아이를 내보내라 지시했다.
잠시간 고민하던 유강은 아이의 손을 붙잡은 채로 채주 앞으로 나아갔다.
“저 멍청한 놈이…!”
수적이 이를 뿌득, 가는 것이 들려왔다.
아이만 앞으로 보내라는 뜻이었는데 저까지 나서다니!
“넌 누구냐.”
아니나 다를까, 맹등호가 유강에게 물었다.
마치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굵은 목소리였다.
유강은 화린의 손을 잡은 채 맹등호를 향해 꾸뻑,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채주님! 막내 강이라고 합니다!”
어두운 막사의 분위기를 뒤엎는 해맑은 목소리였다.
정적이 흘렀다.
해맑은 유강과 과묵한 맹등호가 잠시간 대치했다. 그 어색한 정적을 깬 것은 같이 들어온 수적이었다.
“채, 채주님! 걔는 이번에 저희 배에서 막내로 들인 놈입니다! 안 그래도 채주님께 인사를 시켜드리려….”
맹등호가 손을 들어 수적의 말을 막았다.
“정파의 무공인가?”
“!”
유강의 미소에 금이 갔다.
맹등호가 단번에 내공의 성질을 알아본 것이다.
유강은 애써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대답했다.
“아하하, 그게, 제가 살던 동네에 화산의 무관이 있었거든요. 아아, 그렇다고 무관에 다녔다는 건 아니고요. 무관에 다닐 형편은 안 됐고, 무공은 배우고 싶어서….”
유강이 주먹을 말아쥐어 내보였다.
“줘패서 배웠습니다. 무관 다니는 놈한테.”
그가 히히, 웃었다.
설화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생각한 이유가 저거인 건가?’
어이없는 이유인데, 썩 나쁘지 않다.
정파의 내공을 가지고 있는, 사파다운 이유랄까. 참 유강다웠다.
“그렇군.”
그것이 맹등호의 짧은 감상이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채주님!”
유강이 다시금 꾸벅, 인사했다.
수적이 뒤로 빠지라는 눈치를 보냈지만, 유강은 무시하며 화린의 곁에 서 있었다.
다행히 맹등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맹등호의 시선이 화린에게 잠시 머물다가 유강에게 말했다.
“이 아이를 잘 돌봐라.”
“예! 채주님!”
그것이 끝이었다.
채주는 유강에게 이만 나가보라 말했고, 유강은 화린의 손을 붙잡고 돌아 나왔다.
맹등호의 시선이 잠시간 뒤에 있던 설화에게 머물렀으나 이내 관심을 돌렸다.
세 사람은 맹등호와의 짧은 만남 후에 곧장 막사를 빠져나왔다.
퍽!
수적의 주먹질이 유강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이 멍청한 놈! 거기서 네가 나가긴 왜 나가? 채주께서 신경 안 쓰셨기에 망정이지! 목숨줄 붙어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
“악! 아파요!”
유강이 얻어맞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 걸음 도망쳤다.
“형님께서 나가라고 하셔서 나간 건데 왜 뭐라 그러십니까?!”
“그게 너 나가라는 거였냐고! 아오! 이걸 콱!”
수적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쾅쾅 쳤다.
“따라와! 너희 셋 다!”
수적이 데려간 곳은 작은 막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었다.
채주의 막사가 있는 곳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는데, 대부분이 여인들이고 빨랫감이나 물동이 같은 것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이 수로채의 식생을 담당하는 곳인 것 같았다.
위치도 수로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여차하면 강이나 산으로 도망칠 수 있는 곳.
‘수적들의 가족들인가?’
세 사람을 데려간 수적이 그중 한 여인을 붙잡고 무어라 설명했다. 그러곤 설화와 유강에게 돌아와 말했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일을 도우면 된다. 아까 채주님께서 하신 말씀 들었겠지만, 그 녀석을 관리하는 것 역시 너희 일이고.”
수적이 화린을 가리켰다.
“채주님께서 특별히 신경 쓰라고 하셨으니까, 밥 굶기지 말고. 잠자리 잘 봐주고. 뭐, 여기선 도망칠 곳도 없을 테지만, 혹시라도 도망 못 치게 잘 데리고 있어라. 다시 데리러 올 때까지. 알겠냐?”
“예, 형님!”
“새끼, 형님은.”
유강의 등을 툭, 치곤 수적은 이내 가버렸다.
“…진짜 갔는데?”
유강이 멀어져서 점이 된 수적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가 그렇게 믿음직한가? 어렵게 납치해 온 애를 우리 같은 애들한테 맡기고.”
“우리가 믿음직해서가 아니야.”
설화가 시선을 돌려 수로채를 전체적으로 살폈다.
“풀어 놔도 도망치지 못할 걸 아니까 그런 거지.”
조금 전, 도망칠 곳도 없다는 수적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수로채는 강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정말로 도망칠 수 없는 구조였다. 굵고 커다란 통나무를 엮어 울타리를 쳐놓고 드나들 수 있는 문은 동, 서쪽으로 두 개를 만들어 놓았다.
울타리 둘레엔 일정한 간격으로 망대가 세워져 있고 망대의 위와 아래로는 수적들이 경계를 서고 있어, 그들의 눈을 피해 수로채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만약 어찌어찌 도망친다 해도 빽빽한 숲이니, 길 잃어버리기도 딱 좋을 테고.
애초에 수로채이니 본채를 드나들 땐 육로가 아닌 수로를 이용할 테고, 육로는 길조차 제대로 닦여있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남궁의 아이를 납치해 놓고 그냥 방치할 리가 없지.’
이들은 확신이 있는 것이다. 아이 혼자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리란 걸.
‘맹등호.’
그는 설화를 알아보지 못했다.
채주의 막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설화는 그를 은밀히 주시했지만, 자신을 향한 맹등호의 관심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정파의 내공을 가진 유강에게 관심을 보였지.
‘나를 알아보지 못한 건 그나마 다행이야.’
덕분에 운신이 자유로울 때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 소도장.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여길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보는 게….
그때였다.
“거기 니들!”
가까운 막사 뒤편에서 버럭 소리치는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강과 설화는 동시에 그곳을 바라보았다.
막사 곁에 세워진 짚더미 뒤에 화린처럼 어려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이쪽을 손가락질하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