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소약이 제 작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죽으면 우리 아빠는 많이 슬퍼하겠지?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매일 안아줄 사람도 없고, 생일마다 놀잇거리를 선물해 줄 아이도 없어지는 거니까. 나는….”
아이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아빠 곁에 있어 줄 수 없을 거야….”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단단해지기로 했던 아이는 금세 결심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크게 울음을 터트리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습관이 되어온 것인지, 소약은 꾸역꾸역 울음소리를 삼켰다.
“내 형제가 되어줘…. 이거 전부 너 줄게.”
소약이 자신의 보물 꾸러미를 화린의 앞에 밀어주었다.
그것은 소약이 간직한 아빠와의 추억이었다. 소약은 새로이 아빠의 자식이 되어줄 이에게 제 모든 것을 넘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응?”
화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소약이 아빠에 대해 자랑할 때, 화린은 사실 제 아빠, 남궁청산을 떠올리고 있었다.
우리 아빠도 그런데. 얘네 아빠도 멋있네.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의 집 아빠의 딸이 되라니.
“화린아, 잠시만.”
멍하니 굳어 있는 화린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유강이 앞으로 나왔다.
빙긋 웃는 그의 미소에 화린은 안심하며 뒤로 물러났다.
유강이 소약의 앞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형이 내 형 해 주게?”
“아니.”
소약이 시무룩해졌다.
유강이 그런 소약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대단하네. 이런 기특한 생각을 다 하고. 너희 아버지가 좋아하시겠다.”
유강이 꾸러미를 다시 소약의 앞으로 밀었다.
“근데, 이건 네가 갖는 게 좋겠어. 아버지께서 네게 주신 거잖아.”
“하지만… 난 이제 이것들을 가지고 놀 수 없는 걸…. 그리고 이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들이야.”
새로 맞을 형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보물. 어린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대가.
“그 물건들은 너희 아버지가 너를 생각하면서 고른 걸 거야. 네가 아닌 다른 아이가 가지고 있으면 더 슬퍼지기만 하실걸.”
“…그럴까?”
유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건 대가를 주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소약의 보물 중엔 나무를 직접 깎아 만든 것 같은 작은 조각상도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받은 것인지, 조각상 곳곳이 반질거렸다.
소약이 조각상을 집어 소중하게 쥐었다.
“사실 나도 주고 싶지 않아.”
“그래. 그건 네 거야.”
아이가 빼앗기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비단 조각상만은 아니었다.
소약이 코를 문지르며 맹맹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나 운 거 티나?”
“아니? 전혀.”
유강이 씩, 웃으며 소약의 눈가에 묻은 흙을 털어주었다.
“강하구나. 소약.”
* * *
등불이 일렁이는 저녁.
조용하게 문이 열렸다.
창밖에 떠오른 달을 구경하던 소약은 문을 열고 들어온 이를 보며 활짝 웃었다.
“아빠!”
맹등호 역시 제 아들의 미소에 입꼬리를 휘었다. 그는 자연스레 아들의 침상 곁에 앉았다.
이불을 덮으며 자리에 눕는 아들의 이마 위에 거친 손을 얹었다.
아이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오늘은 무엇을 했지?”
“친구들이랑 놀았어요! 수채 구경도 시켜주고 숨기 놀이도 하고, 잡기 놀이도 하고요.”
“친구?”
“오늘 새로 수채에 온 애들인데, 나이 많은 형, 누나랑 또래 여자애 한 명이에요.”
맹등호는 낮에 보았던 세 아이를 떠올렸다.
부하들을 시켜 납치해 온 남궁의 여식과 새로 들어왔다는 두 아이.
‘한 명은 화산의 무학을 익혔었지.’
한 명은….
‘여자였던가?’
남자아이와 달리 무학을 익힌 것도 아닌 것 같고. 존재감이 워낙 없던 터라 기억도 잘 안 난다. 그보단.
‘남궁의 여식이 잘 있나 확인해 봐야겠군.’
얼마 전, 강소성(江蘇省) 남경(南京)에 세력을 둔 혈사채(血邪寨)의 채주가 거래를 제안해 왔다.
아들의 절맥증을 치료할 방법을 알려줄 테니 남궁의 여식을 데려오라는 거래였다.
소약의 절맥증을 고치기 위해 곳곳의 의원들을 찾아다니던 맹등호에겐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혈사채의 채주에게 진정 절맥증의 치료법이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시도해 볼 수밖에 없는.
“…재미있었겠구나.”
“네. 내일도 놀 거예요. 내일은 낚시를 해보려고요. 아빠가 만들어 주신 그물로 물고기를 잡을 생각이에요. 많이 잡으면 아빠도 드릴게요!”
“그래.”
제 아들을 내려다보는 맹등호의 시선은 한없이 부드럽기만 했다.
“기대되는구나.”
* * *
소약이 돌아가고 설화 일행은 낮에 배정받은 막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유강은 잠든 화린을 등에 업고 말없이 앞서 걸어갔다.
소약과의 일이 있은 후, 유강은 평소답지 않게 표정이 어두웠다.
무엇을 생각하는 건지, 말수도 적어져서 화린이 잠든 후부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설화 역시 소약의 말을 들은 이후 생각이 많아졌기에 두 사람은 침묵 속에 막사로 향했다.
그렇게 막사에 다다랐을 무렵, 설화가 걸음을 멈추었다.
– 채주 아들이야.
설화의 말에 유강 역시 걸음을 멈추곤 그녀를 돌아보았다.
– 진소약. 맹등호의 아들이야. 성이 다른 건 죽은 맹등호 부인의 성을 붙였기 때문이고.
“그렇구나.”
그럴 것 같긴 했지만, 대충 예상은 한 눈치였다.
하기야 그도 하루 종일 진소약과 붙어 다니면서 진소약의 눈치를 살피는 수적들을 보았을 테니까.
“이건 기회야.”
설화의 말에 유강이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 진소약을 인질로 삼으면 여길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달빛 아래 유강과 설화가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침묵하던 유강이 어둠에 스며드는 것 같은 목소리로 나직이 입을 열었다.
“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
“…뭐?”
“네 말대로 그런 방법이면 해볼 만도 하겠지.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잖아.”
진소약을 인질로 삼고 싶지 않잖아.
설화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살짝, 말아 쥐었다.
“…내가 왜?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
약한 것을 인질로 삼는 것은 적을 압박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다.
진소약은 명확하게 맹등호의 아들이다. 거기다 자신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인질이 제 발로 다가오는 좋은 기회인데, 내가 이 기회를 원하지 않는다고?’
웃기는 소리.
이전 생의 모든 경험과 생존 본능이 말하고 있는걸.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을 거라고.
“난….”
“너.”
“….”
“지금 되게 울고 싶은 표정이야. 알아?”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이 혼탁해지면서 생각이 멈춘 기분이었다.
‘내가… 울고 싶어해…?’
설화는 주먹 쥔 손을 제 가슴에 얹었다.
어느샌가 가슴이 쿵, 쿵, 뛰고 있었다. 마치 머리에서 내린 판단을 가슴에서 맹렬하게 거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거부….’
왜지?
분명, 이렇게 명확한 방법이 있는데 어째서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일까.
‘…동정…하고 있나…?’
진소약을…?
혼란스러웠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의 동요에 숨마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숨을 가다듬는 설화의 귓가에 유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조금만 더 지켜보자. 다행히 우리가 화린이를 돌볼 수 있는 상황이니까.
설화가 유강을 바라보았다.
유강이 괜찮다는 듯 싱긋, 미소 지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 괜찮을 거야.”
* * *
다음날.
소약은 아침 일찍 설화 일행을 찾아왔다.
강에 나가 물고기를 잡자는 말에 세 사람은 흔쾌히 소약의 뒤를 따랐다.
어제는 수로채의 구조와 울타리 쪽을 중심으로 둘러보았으니, 오늘은 물가의 지형과 수로채의 배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차에 마침 좋은 기회였다.
“여기에 이렇게 밥을 넣어서 던져두면 물고기가 잡혀있을 거야.”
“우와-”
“형이 던져 줄까? 멀리멀리?”
설화는 커다란 배의 그림자 아래에 앉아 그물을 던지기 위해 강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세 사람을 구경했다.
설화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되는 건가.’
모르겠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하는데.
‘남궁에선 우리를 찾고 있겠지.’
사색이 되어 있을 남궁청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미 한 번 딸을 잃어본 그를 또다시 딸을 잃었다는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나는 착한 딸은 될 수 없나 보다.’
낮게 한숨을 내쉬는 설화의 시선은 신나서 떠들고 있는 진소약에게로 향했다.
‘맹등호의 아들. 진소약.’
어젯밤, 진소약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제야 잊고 있던 지난 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스쳐 지나가듯 들어 기억에 깊이 남지 않았던 맹등호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절맥증 때문에 고생을 했었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