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98
98화
진소약의 절맥증은 음양대절맥(陰陽大絕脈).
육양(六陽)과 삼음(三陰)의 절맥이 만나 몸의 기운이 모이지 못하게 하고, 기혈의 흐름에 혼란을 주는 절맥 중 하나였다.
지금의 소약과 같이 어린 시절엔 근력이 약한 것 외에 특별한 증세는 없지만, 음양대절맥의 무서움은 열 살이 가까워지며 시작된다.
발현이 시작되면, 얼굴에 푸른 빛이 돌고 시시때때로 온몸에 극심한 고통이 찾아온다.
그간 쌓여온 이상증세가 기혈의 뒤틀림으로 이어져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발작의 시작은 곧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의미.
한 번 발작이 일어나면 수시로 고통이 찾아오고 종국에는 완전히 뒤틀린 기혈로 인해 온몸의 구멍으로 피를 쏟아내며 죽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진소약이 가진 음양대절맥의 증상이다.
‘진소약은 화린이와 같은 여섯 살.’
아직 절맥증의 증세가 겉으로 드러날 시기는 아니라 눈치채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이미 알고 있다니, 운이 좋은 편이다.
‘이전 생에서 진소약은 살아 있었다.’
어디 살아 있다, 뿐이었겠나?
‘피를 탐하는 살귀(殺鬼)가 되어 있었지.’
맹등호의 이전 생의 별호 흑살귀(黑殺鬼).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여 흑살귀라 불리던 그가 살인을 저지른 것은 전부 그의 아들, 진소약 때문이었다.
맹등호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았을 뿐 진짜 살귀는 맹등호가 아닌 진소약이었던 것이다.
혈교 내에서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육 혈주의 권역 내에 속한 혈교인뿐이었다.
설화는 혈주들의 대화에서 얼핏 들었는데, 맹등호의 아들 이름을 몰랐기에 잊고 있었다.
‘광적으로 피를 탐하는 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현재 진소약의 모습은 설화에겐 매우 의외였다.
‘어릴 땐 이렇게 명랑한 효자였다니.’
수로채에서 자랐다는 환경 외에는 그저 평범한 어린아이였다. 놀기 좋아하고 잘 웃는.
절맥증 탓인지 약해 보이긴 하지만, 그 외에 아픈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이전 생엔 절맥증을 어떻게 치료한 거지?’
치료 방법을 쉬이 알아낼 순 없었을 텐데?
설마, 이전 생에서 맹등호가 육 혈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유가….
그때였다.
“!”
일행의 근처로 강한 기운을 가진 이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설화는 기척을 지우고 배 뒤편으로 몸을 숨기며 가까워지는 이를 살폈다. 다가오는 이들은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맹등호 그리고 그의 옆에는 수적치고는 마른 몸의 다소 빈약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저 사람은….’
그를 알아본 설화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마종의.’
이전 생에 맹등호와 같이 육 혈주의 아래에 있던 사람이다.
맹등호가 개였다면 마종의는 여우였달까.
육 혈주의 곁에 붙어 간사한 말로 육 혈주의 마음을 사고 꾀를 내어 세력을 움직이던 책사 같은 존재였다.
다소 멍청하고 저돌적이던 육 혈주의 세력이 혈교에서 그나마 인정받을 수 있던 것도 저 여우 같은 마종의 덕분이었다.
‘마종의가… 왜 여기 있지…?’
마종의를 바라보는 설화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의문은 길지 않았다.
납치한 아이를 자유로이 풀어두고, 끼니마다 밥을 챙겨 먹이고, 불편하지 않은 잠자리를 내어주고.
아이를 납치한 이유가 온정을 베풀기 위해서가 아닌 이상, 아무래도 이상한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답은 하나뿐이니까.
‘맹등호에게 남궁의 아이를 납치해오라고 한 사람이 마종의구나.’
마종의라면 가능한 일이다.
여섯 혈주들은 지금 이 시기에 이미 혈마와의 계약을 마치고 자신들의 세력을 포섭하는 것에 힘쓰고 있을 것이다.
수로채를 기반으로 세력을 구축한 육 혈주 역시, 혈교가 출두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수로채를 집어삼키려 할 터.
고작 5년 뒤 장강 18채의 총채주의 자리를 꿰차게 될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육 혈주 옆에 마종의가 있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맹등호. 그리고 때마침 나타난 마종의.
‘맹등호는 육 혈주의 아래로 들어가기 전이고, 마종의는 이미 육 혈주의 사람이 되었다.’
이제야 모든 조각이 맞물리고 있었다.
설화는 두 사람이 더 가까워지기 전에 유강에게 전음했다.
– 채주가 오고 있어.
– 응.
– 나는 여기 없는 거야. 혹시라도 찾으면 측간에 갔다고 해. 맹등호랑 같이 오는 사람이 날 알아볼지도 몰라.
유강이 다가오는 두 사람을 슬쩍 보는 것이 보였다.
– 알겠어.
유강은 다시 아이들과 노는 척을 했다.
그러나 맹등호와 마종의는 세 사람에게서 열 걸음 떨어진 곳에서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무어라 나누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지만, 화린을 힐끔거리는 마종의의 눈매가 연신 휘어지는 것으로 보아 화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납치한 아이를 확인하러 온 건가.’
두 사람은 곧 발걸음을 돌려 채주의 막사 쪽으로 멀어졌다.
그들을 바라보는 설화의 표정이 어두웠다.
‘역시 한가하게 물고기나 잡고 있을 때가 아니었는데.’
마종의는 맹등호와 같이 허술한 사람이 아니다. 자유로이 풀려있는 화린을 보고도 내버려 둘 사람이 아니었다.
마종의가 다녀간 이상, 그는 어떻게든 화린을 제 손아귀 안에 두려 할 터였다.
‘그렇게 되면 도망칠 기회는 없다.’
설화는 강가를 바라보았다. 화린과 소약이 강가에서 예쁜 돌을 찾으며 놀고 있었다.
강 너머로 기울어 가는 노을빛이 그런 두 아이의 천진함을 비추고 있었다. 이곳이 적진의 한복판이 아니었다면 퍽 아름다운 광경이었으리라.
설화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던 유강의 곁으로 다가갔다.
“지금 당장 여길 벗어나야 해.”
속삭이듯 나직이 하는 말에 유강이 설화를 돌아보았다. 설화가 앉으려는 자리의 흙을 손으로 가볍게 쓸어 없애며 물었다.
“왜?”
“주동자가 화린이를 보고 갔어. 머지않아 화린이를 데려갈 이들이 올 거야.”
“아까 그 사람?”
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강의 눈빛이 심각한 빛을 띠었다.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하다간 화린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네 말대로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방법이 없어.”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건 소약을 인질로 삼아 추적을 최대한 늦추는 것뿐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무사히 수적들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배들을 살펴봤어.”
유강의 말에 설화는 의외라는 듯 그를 돌아보았다.
절대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던 그 역시, 선택지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너무 큰 배는 우리만으로 움직일 수 없을 거야. 작은 배는 느리고 뒤집어질 위험이 있긴 하지만….”
“가까운 육지에 내리면 돼.”
“응. 아무래도 육지가 숨기도 편하고 조금이라도 도망치는 데에 유리할 거야.”
같은 생각이다.
수로채로 오는 동안 봐 둔 지점이 있다. 배의 상태는 그곳까지 갈 수 있을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
배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수록 불리한 것은 자신들이니.
“약속 하나만 해줘.”
“?”
– 육지에 도착하면 소약이는 풀어주겠다고.
설화는 저만치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려고 했어. 그때부턴 같이 다니는 게 오히려 짐이야.”
“…그래.”
유강이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됐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유강과 설화는 화린과 소약에게 다가갔다. 두 아이를 데리고 유강이 봐 두었던 배로 가 볼 생각이었다.
‘우선은 물고기를 잡는 것처럼 소약이가 배를 풀어 오면….’
수적들이 그것마저 내버려 둘까? 우선은 아무렇지 않게….
그때였다.
콰앙-! 하는 소리가 수로채의 한쪽에서 들려오며 연기가 치솟았다.
설화의 일행이 있는 반대 방향. 숲으로 이어지는 울타리 쪽이었다.
“!”
설화와 유강이 동시에 두 아이를 향해 달려갔다. 유강은 가까이에 있던 화린을, 설화는 소약을 끌어당겼다.
쿠구궁-
땅이 진동하자 무공을 익히지 못한 두 아이가 비틀거렸다. 그러나 설화와 유강이 잡아준 덕분에 아이들은 넘어지지 않았다.
‘뭐지?’
설화는 연기가 치솟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땡! 땡! 땡! 땡! 날카롭게 위험을 알리는 경종 소리가 수로채를 울렸다.
“적이다!”
“기습이다! 방어하라!”
“무기를 들어!”
‘적?’
수적들이 무기를 들고 굉음이 난 곳으로 달려갔다. 평범한 어민 같던 이들조차 돌변하여 검은 두건을 뒤집어썼다.
수로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설마, 벌써…?’
남궁의 추적조가 벌써 도착한 건가?
지금 수로채를 습격할 이들이라면 남궁 밖엔 없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따라왔다고?
‘확인해야 한다.’
설화는 소약을 유강에게 넘겼다.
“애들 데리고 여기 있어.”
유강이 소약을 받아 드는 것과 동시에 설화의 팔목을 붙잡았다.
“기다려! 혼자 뭘 어쩌려고!”
“습격한 이들이 누구인지 보고 올게.”
이것은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위기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수로채를 습격한 이들이 남궁이라면 아이들을 데리고 합류하면 되지만, 남궁이 아니라면 일이 복잡해진다.
‘여차하면 혼란한 틈을 타서 도망쳐야 해.’
그러니 우선은 수로채를 습격한 이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숨어있어.”
“야, 야!”
타앗-!
설화는 두 아이를 유강에게 맡겨두고 움직였다.
기척을 숨기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살수였던 설화의 특기였다.
그녀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순식간에 굉음이 들려온 곳에 다다랐다.
쾅-! 콰앙! 쾅!
“으아악!”
“더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폭발이 일어났던 울타리는 통나무가 부러지고 쓰러져 이미 역할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뚫린 입구로 적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순식간에 전투가 벌어졌다.
수로채 역시 공격을 어느 정도 예상하였던 것인지, 뚫린 입구 주위로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맞춰 습격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카캉! 캉!
“밀리지 마라! 물러서지 말고 다 같이… 커흑!”
몰려든 수적들 사이로 푸른 기운이 넘실거렸다.
설화는 단번에 습격자를 알아보았다.
‘아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