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그리운, 그리고 그리울 (4)
마담 여덟다리가 사라진 지 두 달이 지났다.
그새 바키라는 아버지가 되었다.
다섯 마리의 새끼 늑대들이 어미의 품에 안겨 젖을 먹는 평화로운 광경.
한편.
“…….”
비키르는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암컷 늑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꼬물거리는 새끼 늑대들 사이에 검은 공 같은 것 하나가 끼어 있었다.
마담 여덟다리의 알. 커다란 흑진주 같은 외형이지만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가졌다.
비키르는 혹시 몰라 지난 두 달 동안 이 알을 늑대들에게 품도록 해봤다.
하지만 늑대들이 따듯하게 품어 보살펴도 알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다만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들이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알을 자꾸만 앙앙 깨물며 침을 묻혔기 때문에 그것을 닦아 주는 비키르만 고역이었다.
비키르는 마담의 알에 관련된 더 이상의 실험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고 이내 다시금 먼 여정에 오를 채비를 꾸렸다.
복귀. 제국으로의. 그리고 바스커빌로의.
철혈검가 사냥개의 회귀.
이제는 왔던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비키르가 발락의 마을을 떠나겠다고 선언하자 발락의 전사들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의 모든 부족들이 사절단을 보냈다.
아퀼라는 떠나겠다고 선언한 비키르를 잡지 않았다. 노예도 아닌데 왜 막겠는가?
한번 가족이 되었으면 끝까지 가족인 법, 먼 거리로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가족의 연결고리는 짙어지면 짙어졌지 결코 끊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아퀼라는 비키르를 환송하기 위해 모여든 각 부족의 사절단들까지 초청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비키르와의 이별을 장식했을 뿐이다.
환송연에 모여든 모든 이들이 비키르를 사랑했고 또 존경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비키르에게 ‘또 봐’라거나 ‘다시 만나’ 따위의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발락의 언어에는 그런 말이 없지.”
아퀼라는 비키르에게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말 자체를 하지 않았다.
또 보자는 말은 발락의 언어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번 맺어진 관계는 절대로 끊어지지 않으며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결속력과 영속성을 가진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었다.
그래서 굳이 작별이라는 것을 기약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퀼라는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비키르에게 말했다.
“어느 때이든, 어느 곳에 있든. 너는 발락의 사냥조장이다. 그리고 우리의 가족이야. 이 점을 잊지 말아다오.”
그 말에 비키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가슴 속 깊은 곳 한 구석에서 무언가 뜨듯하고 간질간질한 것이 차오르는 느낌이다.
회귀하기 전, 그 어떤 곳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소속감’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비키르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수해를 떠나 바스커빌가로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퀼라는 말을 이었다.
“너는 자랑스러운 발락의 전사, 나아가 온 수해의 영웅이다. 네가 곤경에 처한다면 그곳이 어디든, 상대가 누구든 우리들이 너를 있는 힘껏 도울 것이다.”
아퀼라의 말에 호응하는 이들은 단순히 발락의 전사들만이 아니었다.
주술사 부족 로코코, 광전사 부족 르네상스 등등 수해의 모든 원주민 부족들이 아퀼라의 말에 환호를 보내며 비키르를 격려했다.
“우리들의 영웅! 언제든 불러 달라구! 도우러 갈 테니!”
“가끔 우리들 생각도 해 줘! 사랑해!”
“멋지다 비키르! 돌아가서 제국도 접수해 버리라고!”
“영웅의 앞길에 오직 축복만이 가득하기를……”
무엇보다 지난 2년간 함께 울고 웃고 뒹굴었던 발락의 젊은이들이 비키르와의 작별을 제일 아쉬웠다.
특히나 아훈이 그 정도가 제일 심했다. 숫제 눈물까지 글썽거릴 정도.
그는 고릴라처럼 가슴을 쾅쾅 치며 외쳤다.
“비키르! 언제든 돌아와! 우리는 여기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게! 그리고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부르고!”
“비키르 오빠. 종종 소식 전해 주셔요. 꼭. 꼭 그래 주셔야 해요. 아니면 저는…….”
그 옆에서는 그간 키가 많이 큰 아휼이 촉촉한 시선으로 비키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2년간 15세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키가 많이 큰 그녀는 떠나는 비키르에게 잎사귀로 싼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도시락 안에는 귀한 음식인 크림 맛이 나는 애벌레 꼬치가 들어있었다.
비키르는 건조한 미소를 양 입가에 머금었다.
회귀 전에도, 후에도 그다지 웃어 본 기억이 없었는데 이곳 수해에 와서 참으로 많이 웃고 간다.
전생의 40년 동안 웃은 것보다 이곳에서 4개월 동안 웃은 것이 더 많았으니까.
“잘 가, 비키르! 우리들의 영웅!”
‘또 보자’라는 말이 없는 발락의 전사들은 유쾌함과 아쉬움이 섞인 눈빛으로 비키르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이윽고.
비키르는 모든 이들의 환송 속에 그간 정들었던 수해를 떠났다.
…….
……아니.
모든 이들은 아니었다.
비키르는 수많은 환송인파들 사이에서 한 명의 얼굴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끝끝내 찾지 못했다.
아이옌.
그녀는 어째서인지 비키르가 마을을 떠나겠다고 말한 것을 들었을 때부터 쭉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더니 결국 비키르의 환송식에도 불참해 버린 것이다.
평소에 비키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늘 졸졸 따라다니던 그녀인지라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비키르는 마을 바깥에 서서 텅 빈 아이옌의 막사를 한번 흘끗 돌아보고는 그 자리에 몇 초간 멈춰 있었다.
그리고 이내 발걸음을 돌려 그동안 정들었던 발락의 마을을 등졌다.
수해의 경계가 있는 방향으로 내딛는 발걸음은 처음 몇 발자국 정도는 힘이 없다가 이내 다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로 집에 갈 시간이다.
* * *
비키르는 곧 수해의 끝자락을 벗어났다.
높은 바위 봉우리 위에 서자 저 앞으로 익숙한 성채가 보인다.
‘붉은 송곳성’.
그것은 모르그가의 마법사들이 붉은 송곳산의 루비를 캐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광산 성채였다.
거대한 흙벽과 목책, 그리고 석조 건물들이 투박하지만 웅장하게 솟구쳐 있었다.
아무래도 원주민들의 습격을 막기 위해 지난 2년간 엄청나게 견고히 쌓아올린 듯싶었다.
붉으죽죽한 루비 광맥이 끝없이 이어진 대지. 그 위로 소용돌이를 그리며 모여들고 있는 먹구름.
여전히 적과 흑의 불길한 색으로 물들어 있는 풍경이었다.
“……아직도 루비를 채굴하는 중인가.”
비키르는 모르그가의 성채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2년 만에 다시 오는 곳이다.
문득, 저곳의 총 책임자였던 모르그 까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아직도 저기에 있을까?
멀쩡하게 잘 컸다면 지금쯤 혼인 적령기를 맞이한 열일곱 살의 완숙한 처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귀족가의 영양들이나 그렇고, 모계사회인 모르그가에서 태어난 까뮤는 처지가 꽤 많이 달랐다.
‘그러고 보니 너 아카데미 입학은 언제 해? 나랑 맞추자. 나는 아마 1~2년쯤 빠르게 조기 입학을 할 것 같은데. 우리가 함께 1학년이 된다면 아주 재미있을…….’
문득 2년 전 그녀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조잘거리던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콜로세오 조기입학을 생각 중이라고 했었나?’
2년 전 15세일 때도 이미 아카데미 조기입학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었으니 어쩌면 벌써 아카데미로 갔을지도.
‘나 같은 것은 이제 잊어버렸겠지.’
17살이면 이제 다 큰 어른이 아닌가.
8살 시절의 풋사랑쯤은 그저 수줍게 한번 부끄러워하고 말 추억거리에 불과할 것이다.
비키르는 건조한 미소를 머금은 채 황야로 향했다. 흐드러지게 핀 목화밭에 부는 바람을 따라서.
……바로 그때.
“야! 노예!”
뒤에서 비키르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은흑발의 뾰족귀, 이제 막 열아홉을 맞이한 여인이 비키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이옌. 그녀가 눈시울이 뻘겋게 물든 채 목화바람을 등지고 서 있었다.
“가는 거야?”
“…….”
“진짜로?”
아이옌이 푹 잠긴 음성으로 물었고 비키르는 이에 침묵으로 답했다.
그러자 아이옌이 비키르의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갈 거면 이거 가지고 가.”
아이옌이 떨리는 손을 뻗어 비키르에게 덥썩 안겨 주는 것, 그것을 본 비키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그것은 바로 커다란 활. 온통 시커먼 빛을 띠고 있는 흑궁(黑弓)이었다.
과거 아도나이가 사용했다던 거대한 활.
심지어 없던 활시위까지 생겨나 있는 것이 보인다.
비키르는 이 검은 활에 메어져 있는 희고 질긴 시위가 마담 여덟다리의 거미줄낭을 무두질해서 만든 것임을 눈치 챘다.
마담이 거미줄을 만들어 저장했던 그 질긴 샘이 시위가 되어 흑궁을 완전한 하나의 활로 만들어 주었다.
‘아누비스’, 발락 역사상 최강의 활이 드디어 완벽한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이걸 만드느라 그동안 안 보였던 건가.’
비키르가 흑궁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철컥!
아이옌이 비키르의 목에 무언가를 채웠다.
길이가 짧은 검은 목걸이.
그것은 초커, 옥스베어의 질긴 가죽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이 옥스베어는 일찍이 아이옌과 비키르가 함께 잡았던 첫 사냥감이었다.
아이옌은 비키르의 목을 메어 주며 목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절대 풀지 마. 어디서든.”
“알겠다.”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옌을 내려다보았다.
아이옌 역시 그런 비키르를 올려다본다.
“…….”
“…….”
지난 2년 사이의 둘의 위치는 많이 바뀌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비키르를 내려다보며 고압적으로 명령을 내리던 아이옌.
하지만 지금 비키르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쪽도 아이옌이다.
그때는 그보다 머리 하나가 컸던 그녀이지만, 지금 그녀는 그보다 머리 하나가 작았다.
그동안 키가 훌쩍 큰 비키르는 아이옌을 향해 말했다.
“키가 많이 작아졌군.”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한 나름의 농담, 비키르 특유의 재미없는 코드였다.
하지만 아이옌은 그런 시시한 농담 따위에 대꾸해 주지 않았다.
다만.
저벅저벅-
빠른 발걸음으로 당당하게 걸어오는가 싶더니.
퍽!
그대로 주먹을 날려 비키르의 배를 강타한다.
난데없이 배를 맞은 비키르가 신음을 삼키며 허리를 굽힐 때.
…콱!
아이옌은 그대로 비키르의 목에 걸린 초커를 잡아챘다.
이윽고, 아이옌의 손아귀에 목줄을 잡힌 비키르는 속절없이 앞으로 끌려왔다.
그리고.
“……!”
허리를 굽힌 비키르와 까치발을 든 아이옌의 키가 완벽하게 똑같아지는 순간.
둘의 입술이 정확히 같은 높이에서 맞닿아 포개어졌다.
…….
찰나와도 같은 영원, 영원과도 같은 찰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이옌은 비키르의 가슴팍을 확 밀쳐냈다.
그리고 숨을 멈춘 비키르를 등진 채 물기 어리게 돌아섰다.
“……또 봐.”
여전히 어눌한 제국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