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돌아온 히어로 (3)
다음날 아침.
비키르는 여인숙의 허름한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난밤 요새의 귀빈실로 와서 묵으라는 하이시스의 제안은 거절했다.
이미 지불한 숙박비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내려와 1층에 발을 디뎌 놓으니 지난밤 여인숙 앞에서 보초를 서던 경비대원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경례를 올렸다.
“충성!”
“……나는 모르그가 소속이 아니니 경례는 하지 않아도 된다.”
“비키르 님은 붉은 송곳성의 영웅이십니다! 또 2년 전 수해에서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를 저희들은 잊지 않고 있기에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진심을 담아 존경을 표……!”
비키르는 거기까지만 듣기로 했다.
앞으로 들려오는 경례나 치하의 말 등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았다.
일일이 낯뜨거움을 느낄 수는 없으니까.
그때, 어제의 여종업원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비키르에게 보따리 하나를 건넸다.
“저, 저기…… 괜찮으시다면 가시는 길에 요기 하시라고…….”
소고기의 좋은 부위를 꼬치구이로 만든 것과 허브 항신료, 차가운 유리병에 담긴 흑맥주였다.
그러자 그 광경을 본 경비대원들이 깊게 탄식했다.
“저 세상 싸가지 없던 여자가 웬일이래?”
“불친절의 대명사, 여인숙의 찬바람 낸시가 저렇게 친절할 수 있다니……”
“갑자기 서비스 정신이 투철해졌나 보네.”
“더러운 세상. 역시 얼굴이 다인가.”
하지만 바뀐 이는 낸시뿐만이 아니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아침 해가 뜨자마자 비키르가 있는 여인숙으로 세 필의 말이 다가왔다.
선두를 달리는 말 세 마리 뒤에는 수많은 다른 마차들과 시종들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맨 앞의 말에 타고 있는 이들은 모르그의 삼화.
모르그 하이시스, 모르그 미들시스, 모르그 로우시스이다.
그녀들은 왜인지 어제의 모습과는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일단 하얀 피부, 붉은 입술, 짙은 눈썹, 한층 더 또렷해진 이목구비가 눈에 띈다.
화장을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극도의 시간과 돈, 노력이 투입된 풀메이크업.
더군다나 평소에는 절대 입지 않는 격식 있는 예복을 입었다.
이윽고, 비키르를 마중 나온 모르그의 삼화들은 말에서 내렸다.
심지어 성깔 더럽기로 소문난 하이시스는 자신의 발을 받쳐 주는 시종에게 상냥한 목소리로 ‘고마워’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비키르는 세쌍둥이 자매들에게 말했다.
“전시상황인데 비무장으로 다녀도 되는 건가?”
별다른 의도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이것도 무장이랍니다.”
“그것도 완전무장이지요. 일명 ‘전투준비풀메태세’라고.”
“호호호, 언니들의 화장은 무장이라기보다는 위장에 가깝지만요.”
막내인 로우시스의 말에 순간 두 언니들의 표정이 굳는다.
“어머? 위장이라니. 그런 건 네가 솔질로 광대 숨긴 걸 두고 얘기하는 거야~”
“나는 광대만 숨겼지 언니들은? 아예 턱 윤곽을 깎아 버렸잖아. 쉐딩으로 코도 엄청 세웠구만 뭘. 그 정도면 거의 토목공사 수준이라구~”
“알겠으니까 앞머리카락 좀 치워 봐 얘, 이마에서 축구 좀 하게.”
갑자기 서로 싸우기 시작하는 모르그의 삼화, 그녀들의 주위로 마력의 기류가 스산하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분명 웃는 얼굴들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기온은 점점 싸늘하게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싸움은 비키르의 한 마디로 이내 중지되었다.
“바스커빌가에 연락은 보냈나?”
그러자 하이시스가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대답했다.
“네! 어제 바로 올빼미를 보내 소식을 전했습니다! 비키르 씨가 귀환하셨다고요.”
은근슬쩍 호칭이 ‘님’에서 ‘씨’로 변경되었다.
좀 더 친근해지고자 하는 하이시스 나름대로의 노력인 셈이다.
물론 비키르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럼 됐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가지.”
여기서부터라고 해도 아직 여인숙 앞이다. 그냥 아예 혼자 가겠다는 뜻.
세 자매는 노골적으로 아쉬워했다.
“……안 데려다줘도 되시겠어요?”
“요새 경계까지가 은근 멀어서요.”
“길도 복잡해요. 잃어버리실 수도.”
“바쁠 텐데 괜찮다.”
“하나도 안 바빠요! 진짜 안 바쁜데!”
“저희 너무 일이 없어서 요즘은 맨날 잠만 자요! 야만족들도 잠잠하구, 저희도 잠잠하구.”
“그냥 가시는 김에 저희랑 같이 가셔요! 저희가 관광명소 안내도 좀 해 드리구……”
“아니, 괜찮다. 말이나 한 필 빌려주면 고맙겠군.”
비키르는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본가로 돌아가면 모르그가의 파견인력들이 농땡이를 치고 있다고 보고해야겠군.’
남의 땅을 빌리고 있는 주제에 한가하게 잠만 잔다니, 이런 불성실함은 용서할 수 없다.
그때. 하이시스가 뒤에서 하얀 백마 한 필을 끌고 왔다.
특이하게도 두 귀만 분홍색으로 염색되어 있는 말이었다.
“제가 제일 아끼는 아이에요. 이름은 ‘뽀삐’고 새끼 때부터 길러온 친구랍니다. 이 아이를 타고 계실 때는 항상 저를 타고…… 아니, 아니! 저와 함께 타고 있다고 생각해 주세요, 흑흑.”
“언니, 그 말 어젯밤에 마시장에서 급하게 사 왔잖아.”
“맞아 맞아. 제일 좋은 놈 고른답시고 마상인들 엄청 독촉했는데 완전 진상이었지~”
하이시스는 동생들을 향해 이를 뿌득 갈며 웃어 보인다.
뭐 아무튼.
비키르는 말 위에 올라탔다.
그때까지도 세 자매는 누가 붉은 송곳성의 경계 끝까지 비키르를 안내하는지를 두고 티격태격거리고 있었다.
그때.
“……아. 잠시 물어볼 것이 있다.”
비키르가 고개를 돌렸다.
그 눈빛을 맞받은 세 자매는 일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멍한 표정으로 비키르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마치 홀린 듯한 눈빛.
하지만 뒤이어진 비키르의 말에 그녀들은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까뮤는 어디에 있지?”
까뮤. 모르그 까뮤.
그 이름을 듣자 세 자매들은 찬물이라도 한 바가지 뒤집어쓴 듯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그, 그, 그렇네. 맞아, 까뮤가 있었지, 으응.”
“……우리 이러다 뒤질 수도 있겠는데?”
“그러니까 내가 아까부터 그러지 말자고 했잖아 언니들!”
세 자매는 그제야 자신들이 했던 행동들을 깨닫고 허둥거렸다.
이윽고, 하이시스가 비키르의 질문에 대답했다.
“까뮤라면 지금 폐관수련에 들어갔어요.”
“……폐관?”
비키르가 반문하자 하이시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대략적으로나마 설명해 주었다.
비키르가 실종된 이후 까뮤가 추격대를 편성해서 적과 흑 산의 수해를 여러 해에 걸쳐 수색했다는 것은 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 비키르를 구하기는커녕 시체조차도 건져내지 못하자 까뮤는 돌연 수색을 중단하고는 폐관수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모르그의 세 자매를 통해 들은 내용은 놀랄 만한 것이었다.
“걔 아돌프 숙부랑 갈라섰어요.”
하이시스는 자기도 의외라는 듯 말했다.
까뮤는 비키르 수색을 중단한 시점부터 조금 달라졌다고 들었다.
괄괄하던 성격도 많이 죽었고 말수도 적어졌다.
그러더니 돌연 모르그 아돌프가 최고의원으로 있는 명당(明黨)의 탈퇴를 선언해 버렸다.
숙부이자 명당의 당대표였던 아돌프를 평소 부모처럼 따르던 까뮤인지라 모르그가 내부에서도 충격이 컸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돌프는 아무런 공식 의견도 내비치지 않았다.
다만 탈당을 한 까뮤가 명당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암당(暗黨)에 입당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다.
“……암당(暗黨)이라.”
비키르는 표정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모르그가에는 두 파벌이 있다.
마법들을 사용하여 대내외적으로 실적을 내는 명당(明黨).
그리고 대내외적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가문 내에서 마법들을 깊이 연구하고 개발하는 암당(暗黨)이 바로 그것이다.
명당의 소속원들은 가문 안팎을 돌아다니면서 마물을 토벌하거나 건물을 짓는 등 다양한 현장 활동을 한다.
반면 암당의 소속원들은 대체로 가문 밖으로 잘 나서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특정한 분야, 장르의 마법을 깊이 연구하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들을 거쳐 새로운 마법을 발견해 내고 재창조해 낸다.
말하자면 현장직과 연구직의 차이인 것이다.
비키르는 속으로 생각했다.
‘현재 명당의 수뇌는 모르그 아돌프, 암당의 수뇌는 모르그 스네이크일 것이다.’
모르그 스네이크. 그는 모르그의 암당을 이끄는 대마법사이며 제국의 후작 작위를 가지고 있다.
가주인 모르그 레스파네와 같은 작위이며 그녀의 먼 친척뻘 되는 인물로 세간에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어마어마하게 꼬장꼬장하고 깐깐하다는 평가만이 황실에 오르내릴 뿐.
……물론 멸망의 시대를 거쳐 온 비키르는 모르그 스네이크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나름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예상 밖의 일인데.’
비키르는 표정을 찌푸렸다.
회귀하기 전의 까뮤와 스네이크는 사이가 극도로 좋지 않았었다.
다만 이번 생에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까뮤가 난데없이 스네이크와 손을 잡았다.
대의원 1명, 중의원 20명, 소의원 400명으로 구성된 것이 모르그의 정당이니 까뮤는 아마도 중의원 급으로 들어갔을 공산이 컸다.
어쩌면 의원직 자체를 맡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비키르는 약간 고민하던 끝에 입을 열었다.
“까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나?”
그러자 하이시스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누구의 부탁인데요.”
“좋아. 그러면 짤막하게 한 줄 부탁하지.”
비키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 자매 모두 펜과 종이를 꺼내 받아 적을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정작 비키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척이나 간단한 것이었다.
-시간 되면 얼굴이나 한번 보자.
……?
이게 다인가?
2년 만에 다시 재회하게 된 애절한 사이 아니었던가?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하이시스, 미들시스, 로우시스 세 자매.
그녀들을 향해, 비키르는 방금 생각났다는 듯한 마디를 툭 추가했다.
“아, 그리고. 암당은 꼭 탈당하라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