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대만찬(大晩餐) (3)
뾰족한 첨탑의 끝에 타는 듯한 저녁놀이 걸릴 무렵.
바스커빌가에 대만찬의 저녁이 왔다.
비키르는 본가에 적을 둔 사람들, 그중에서도 중요한 직책에 있는 이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내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내성 1층이 바로 만찬장이었다.
검은 돌을 깎아 만들어진 커다란 석실 내부는 그다지 호화롭지도 휘황찬란하지도 않았지만 크고 웅장한 것은 확실했다.
고딕풍의 내부에는 으스스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가족 식사가 이루어지는 자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다.
음식을 날라 오는 하인들의 태도 역시도 기묘했다.
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얼굴이 희고 표정이 없었다.
마치 인형처럼 움직여 음식을 나르고 도구들을 배치하며 일이 없을 때에는 벽에 붙어 시립해 선 채 주인의 명령을 기다린다.
한편.
커다란 원형의 테이블에는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딱딱하고 각이 져 있는 벽과 천장에 드리워진 길고 음울한 그림자.
그 끝에는 철혈검가 바스커빌의 가주 휴고가 앉아 있다.
휴고 레 바스커빌. 그는 여전히 냉혹하고 날카로운 기세를 뿌리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천천히 고기를 자르고 그것을 씹고 삼킨다.
그 지독하게도 단조롭고 반복적인 작업을 계속하는 동안 그는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반면, 휴고의 양 옆쪽에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는 두 명의 남자는 시종일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보스턴테리어 레 바스커빌. 그리고 그레이트데인 레 바스커빌.
각각 핏불 기사단과 마스티프 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이 둘은 만찬장에 들어올 무렵부터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었다.
“커흠!”
보스턴테리어 백작이 헛기침을 하며 포크를 빙빙 돌렸다. 그리고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거, 고기가 조금 덜 익지 않았나?”
보스턴테리어의 말에 테이블에 있던 모두가 일순간 포크질을 멈췄다.
포크를 들어 눈앞에 있는 스테이크를 신경질적으로 쿡쿡 찌르던 보스턴테리어는 이내 포크 끝에 고기를 걸어 들어 올렸다.
접시 위로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핏기가 가시지 않은 고기를 보는 하인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특히나 조리장의 표정은 너무나도 하얗게 질려 마치 종잇장을 보는 것 같았다.
이윽고, 휴고가 고개를 돌렸다.
“보스턴테리어야. 고기가 마음에 안 드느냐?”
그러자 보스턴테리어는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엇, 아닙니다 형님. 그런 것이 아니오라. 맞은편에 있는 접시의 고기를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보스턴테리어의 맞은편을 향한다.
“…….”
그곳에는 거구의 남자 하나가 앉아 묵묵하게 칼질을 하고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레어 스테이크를 말없이 씹어 삼키는 남자.
그가 바로 마스티프 기사단의 단장인 그레이트데인 백작이었다.
“……뭐가 또 불만이지?”
그레이트데인은 보스턴테리어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보스턴테리어는 얼굴의 흉터를 일그러트리며 이죽였다.
“아니. 고기가 너무 날것 그대로인 듯해서. 조금 더 익혀 드시라고 하는 말이지.”
“……나는 이 정도가 딱 알맞다.”
“아하. 그러시군.”
그레이트데인의 무뚝뚝한 대답에 보스턴테리어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목구멍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언제나 날로 집어 드시는 분다워. 고기도 그렇고 신입 기사들도 그렇고.”
그 말에 그레이트데인이 포크질을 멈췄다.
“……내가 뭘 날로 먹는다고?”
“아이쿠. 그게 들렸나? 귀가 참 밝아.”
“다시 말해 봐라. 내가 뭘 날로 먹어?”
“……귀가 아주 밝은 건 또 아니구만. 다는 못 들은 모양이지?”
보스턴테리어가 대답 대신 이를 드러내며 웃자 그레이트데인이 입을 꾹 다물었다.
둘의 대립에 만찬장의 분위기가 더더욱 차가워졌다.
보스턴테리어가 그레이트데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고기는 날로 많이 먹어. 쳐먹고 식중독 걸려 뒈지든 말든 알 바 아니니. 그런데 기사단 신입만큼은 날로 받을 생각 말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만찬장에서 이 무슨 경우 없는 언행인가?”
“네놈이 내 사랑스러운 조카를 그 비리비리하기 짝이 없는 마스티프 기사단에 집어넣을 속셈으로 여기에 온 것 다 알고 있다는 말이다.”
보스턴테리어는 이제 아주 대놓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레이트데인은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면서도 침착하게 대꾸했다.
“사랑스러운 조카? 그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그 앞의 말에는 문제점이 있어. ‘내’ 사랑스러운 조카라니. 비키르는 자네의 조카이기도 하지만 내게도 조카라네. 그리고 숙부로서 조카를 바른 길로 훈육하고 인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애를 비루먹은 마스티프 기사단에 집어 처넣는 것이 왜 바른 길이냐?”
“……말조심해라. 둔하고 미련한 핏불 기사단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마스티프 기사단에 들어오는 것이 훨씬 낫다.”
“나는 말조심할 테니 너는 개조심해라. 곧 물려 뒈질 것 같으니까.”
“피아식별도 못 하고 짖어대는 꼬라지를 보니 한숨만 나오는군.”
“허우대만 크고 속은 텅텅 빈 놈이 뭐라는 거야.”
보스턴테리어와 그레이트데인은 계속해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전부 다 비키르를 자기 기사단으로 유치하기 위한 다툼이다.
“…….”
가운데에서 조용히 밥을 먹던 비키르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핏불 기사단(knightage Pit Bull)’이라면 예전에 딱 한번 통솔해 본 경험이 있기에 그 전력을 대충 알고 있다.
일백 명의 그래듀에이터들로 이루어진 ‘싹쓸이 전문’ 기사단.
그들은 바스커빌가뿐만 아니라 제국 전역을 통틀어서도 가장 포악한 기사단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비키르가 언더독 시의 부집정관으로 있을 당시, 언더독 지하의 불법 노예경매소에는 제국 전역에 수배가 내려져 있을 정도로 상당한 거물급 범죄자들이 득실거렸었다.
핏불 기사단은 이 거대한 범죄조직의 흉수들을 불과 반나절 만에 모조리 도륙내고 참살했던 전적이 있었다.
그도 모자라 사치와 향락, 불법과 범죄의 온상지였던 클럽 버닝 서스펜션을 불싸질러 버리기까지 했으니 그 위명이 제국 전역에 자자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은 전부 비키르의 주도 하에 벌어졌던 일.
그것이 지금의 보스턴테리어 백작이 조카인 비키르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조카야. 이 숙부만 믿고 따라오너라. 너를 최강의 핏불로 만들어 주겠다.”
그는 핏물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씹으며 비릿하게 웃는다.
나름대로 상냥한 표정을 지은 것이겠지만 주변의 하인들은 공포에 덜덜 떨고 있었다.
하지만. 보스턴테리어만 구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크흠! 조카야. 불 마스티프 기사단도 나쁘지 않단다. ……뭐. 꼭 내가 단장으로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괜찮아서 추천하는 게야.”
그레이트데인. 그 역시도 비키르를 향해 아까부터 계속 살가운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그가 이끌고 있는 ‘마스티프 기사단(knightage Mastiff)’ 역시 핏불 기사단에 뒤지지 않는 엘리트 집단이다.
핏불 기사단이 일방적인 학살과 도륙을 통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싹쓸이 전문 기사단’으로 통한다면 마스티프 기사단은 상대방을 정식으로 굴복시키기 위한 ‘전쟁 전문 기사단’으로 통했다.
핏불과 마찬가지로 일백 명의 그래듀에이터가 여기에 몸담고 있다.
그들은 정식으로 결투나 전쟁이 선포되었을 경우에만 동원되어 정정당당한 힘 대 힘 승부로 상대방을 꺾어 굴복시킨다.
한번 출동하면 반드시 피를 본다는 점에 있어서는 비슷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암살도 서슴지 않는 핏불 기사단과는 운영방식이 조금 달랐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평가받는 기사단의 등급 자체는 엇비슷한 터, 그래서 지금 보스턴테리어 백작과 그레이트데인 백작은 서로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것이다.
“공문 없이는 이빨도 못 드러내는 샌님들이 누구 조카 앞날을 망치려고, 에잉! 양심이 어디로 출타한 게야?”
“네놈이야말로 개념을 머나먼 북해도로 유배 보낸 모양이구나. 더럽고 치졸한 수로 상대방을 죽이기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내 조카의 기사도 정신을 오염시키지 마라.”
“더럽고 치졸? 우리 덕에 빤들빤들한 갑주 한 벌 얻어 입고 폼 잴 수 있는지나 알아라.”
“남 좋은 일만 하고 다닌다는 걸 제 입으로 밝히는군. 빛 나쁜 개살구 같으니.”
이 모든 다툼은 기대주 슈퍼루키 ‘비키르’를 서로 자기 기사단의 신입으로 영입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비키르를 자기 기사단으로 영입할 수만 있다면 비키르의 모든 미담과 업적들이 자기 기사단의 휘하로 들어오는 것임은 물론 기사단의 미래 역시도 창창해진다.
불과 열일곱, 스물도 되지 않은 나이에 그래듀에이터 중급의 경지에 도달한 공전절후의 인재가 들어온다면 기사단장의 입장에서는 신바람이 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더군다나 강함 그 자체를 동경하고 사랑하고 숭상하는 것이 바스커빌가의 풍조이니만큼 두 백작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거리상의 문제로 아쉽게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나머지 다섯 백작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정작 비키르는 기사단에 들어갈 생각이 눈꼽만치도 없었다.
‘왜냐하면 둘 다 먹어치워 버릴 것이거든.’
둘뿐인가? 나머지 다섯, 그러니까 바스커빌가의 칠대 기사단을 모조리 발아래 둘 것이다.
바스커빌가(家) 전체를 통째로 집어삼켜 버리려는 생각. 그것은 회귀한 이후부터 지난 17년간 쭉 구상하고 있었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단 이 자리에서의 분쟁은 확실히 곤란한 일이다.
비키르를 사이에 두고 계속해서 티격태격 으르렁거리는 보스턴테리어와 그레이트데인, 이 두 백작의 대립은 계속해서 첨예해지고 있었다.
입장이 난처하게 된 비키르는 짐짓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돌렸다.
가주이자 대만찬의 주최자인 휴고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
비키르는 이내 황당함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휴고가 두 이복동생의 다툼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