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대만찬(大晩餐) (5)
보스턴테리어는 방금 전까지 부글부글 끓던 포도주 잔을 들어 올리더니 한입에 털어 삼켰다.
그레이트데인 역시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오는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한입에 삼켜 버렸다.
“조카가 끓여 주는 술이라 그런가 풍미가 기막히군!”
“그래듀에이터의 아우라로 익힌 고기라니. 별미일세.”
두 백작은 강렬한 눈빛으로 중앙에 있는 비키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비키르를 자기의 기사단으로 데려오고 싶은 눈치였다.
한편. 비키르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그래듀에이터 중급의 경지까지만 드러내는 것이 좋겠군.’
사실 이 정도의 힘은 예전에도 몇 번 얼핏얼핏 드러낸 적이 있었다.
클럽 버닝 서스펜션에서 샴페인 타워를 폭발시킬 때도 비슷한 퍼포먼스를 연출했었고 수해의 마담을 처음 만났을 때도 딱 이 정도만큼의 힘을 공개했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숨겨 놓은 실력이 그래듀에이터 최상급에 닿아 있다는 것이다.
전생의 힘을 완벽하게 되찾은 데다가 스틱스 강의 축복, 바스커빌 식 상위검술, 거기에 마검 바알제붑까지 가세하고 있는 지금, 1:1 승부로는 현재의 칠백작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나저나, 2년 전에 잠깐 선보였던 그래듀에이터 중급의 실력이 아직 아무에게도 퍼지지 않았단 말이지?’
비키르는 시선을 흘끗 돌려 대만찬 테이블의 말석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하이브로, 미들브로, 로우브로 세쌍둥이가 말없이 앉아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
“…….”
“…….”
눈치로 판단컨데 녀석들은 수해에서 마지막으로 목격했던 것들을 휴고에게 보고하지 않은 듯싶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도움이 되었다. 여차하면 그래듀에이터 상급의 경지까지 공개해야 하나 싶었는데.’
힘을 최소한으로만 드러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비키르는 대만찬이 끝난 뒤 하이브로, 미들브로, 로우브로 세쌍둥이의 입을 다시 한번 엄하게 단속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포크를 들었다.
한편.
보스턴테리어와 그레이트데인은 비키르의 성취를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테이블에 손을 대 마나 공명을 일으키는 것만으로 고기를 익히고 술을 끓이다니, 이것은 보통의 마나 숙련도로는 될 게 아닌데. 허허, 정말 대단하구만. 나는 저 나이 때 기껏해야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었는데 말이야.”
“그래듀에이터 중급자 정도 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할 마나 컨트롤이지. 이거 바스커빌가에 사상초유의 천재가 나타난 것 같은데. 내가 서른세 살 때 저 정도 경지였으니까.”
바스커빌가의 일반적인 사냥개들이었다면 서른다섯이 되어야 겨우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비키르는 불과 17살의 나이에 해냈다. 거의 20여 년 정도를 앞당겨 이뤄낸 성과였다.
보스턴테리어와 그레이트데인은 휴고를 바라보며 외쳤다.
“그래듀에이터 중급이라니! 제가 서른셋에 이르러서야 보인 성취를 불과 열일곱에! 세상에 이런 경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하, 좋으시겠습니다 형님. 이는 가문 전체의 흥복입니다. 자랑스러운 조카의 성취에 건배를!”
완전히 반해 버린 듯한 두 남자.
심지어 휴고마저도 이 상황에 흐뭇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누가 봐도 웃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선명한 입꼬리로.
이윽고, 휴고와 두 백작은 비키르를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담소의 90% 이상은 비키르를 자기 기사단으로 보내달라는 청탁이었다.
어른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잠시 쏠려 있을 때.
비키르에게 말을 걸어오는 새로운 목소리가 있었다.
“동생아.”
정확한 발음, 차가운 목소리.
비키르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검은 커튼처럼 길게 늘어진 장발과 그 사이로 빛나고 있는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오시리스 레 바스커빌’.
현 바스커빌가 최강의 후기지수. 가문 계승권 제 1후보자. 가주 부재 시 가주를 대신하는 소가주(小家主) 직책에 올라 있는 남자.
그가 지금 비키르의 대각선 자리에 앉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
비키르는 오시리스의 눈을 마주 보았다.
회귀하기 전에는 감히 시선조차 마주할 수 없었던 작은 절대자, 더없이 오만하고 고고했던 지존.
하지만 지금 비키르는 그런 존재와도 당당히 마주할 수 있는 실력과 힘을 갖추고 있었다.
비키르는 한 점의 미동도 없이 오시리스의 눈빛을 마주 대했다.
이윽고, 오시리스가 입을 열었다.
“열심히 했구나.”
그 말을 들은 비키르의 동공이 조금 커졌다.
저자가 먼저 말을 걸어 온 것도 놀라운데 덕담까지? 회귀 전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잘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거라.”
오시리스는 비키르에게 덕담을 연속해서 말했다.
여전히 표정 변화 한 점 없는 차가운 음성,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가 화가 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이다.
회귀하기 전 어렸던 비키르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나이를 먹고 다시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오시리스의 표정과 목소리는 분명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그 속에는 아주 작고 미약한 온기가 깃들어 있었다.
얼굴이나 몸짓, 말로는 표현되지 못하는.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한, 실로 서투른 온기가 말이다.
‘……지금 이렇게 보니 마냥 무서운 사람은 아니었군.’
비키르는 오시리스에게 꾸벅 목례를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회귀하기 전에는 왜 그렇게 저 사람이 무서워 보였을까? 가문의 소가주라서? 오만하고 고고해 보이는 표정과 목소리를 이유로? 엄청난 신분의 격차와 힘이 차이 때문에? 아니면 단순히 그가 자신보다 열 살이 넘게 많아서?
하지만 지금의 오시리스는 비키르가 실제로 먹은 나이보다 훨씬 어리다.
그러자 새삼 오시리스가 가지고 있는 어딘가 서투르고 어설픈 모습들이 잘 들여다보이기 시작했다.
은근히 나이프질을 잘 못 하는 모습이라든지, 싫어하는 식재료는 슬쩍 골라내고 먹는 모습이라든지, 술이 엄청 약한지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표정을 구긴다든지, 구겨진 냅킨을 자꾸만 손으로 펴 판판하게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라든지…….
‘의외로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어.’
절대 범접하지 못할 천상계의 윗사람이라는 편견을 걷어 내자 비로소 제대로 된 모습이 보인다.
오시리스 레 바스커빌.
그는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그리고 비키르가 회귀 전에 기억하고 있던 것처럼 피도 눈물도 없이 완전무결한 초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이야. 큰형님이 동생에게 칭찬을 하다니. 이거 놀라운 일인데.”
비키르의 옆자리에서 또다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자 유난히도 희고 창백한 살결을 가진 미남자가 비키르를 향해 윙크를 날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짙은 다크서클이 인상적인 흑발 적안의 미남자.
그가 바로 휴고의 차남인 ‘세트 레 바스커빌’이다.
그는 친근하게 웃으며 비키르에게 소곤소곤 말을 걸어왔다.
“오시리스 형님이 누군가를 칭찬하는 거, 나 처음 봤어. 저렇게 기분 좋게 활짝 웃는 것도.”
……저게 활짝 웃은 거였나?
비키르는 슬쩍 시선을 돌려 오시리스를 바라보았다.
오시리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여전히 누가 보면 화가 난 줄로 착각할 법한 표정이었다.
‘저래서 회귀 전 모든 이들이 오시리스를 두려워했지.’
하지만 저게 미소 짓는 표정이었다니, 다시 들어도 놀라운 일이다.
“…….”
비키르가 말이 없자 세트는 피식 웃었다.
“너도 오시리스 형님처럼 포커페이스구나? 하긴 우리 집안 사람들이 다 그렇지. 무뚝뚝하고 다들. 아쉬워.”
세트는 오시리스와 달리, 아니 가문 내 그 누구와도 다르게 표정이 풍부했다.
아쉽다는 표정으로 웃는 세트를 비키르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비키르가 기억하는 세트 바스커빌은 좋은 사람이었다.
검술에 대한 재능이 떨어지고 마음이 모질지도 못하지만 가문 내의 그 어떤 사람이라 해도 살뜰하게 챙겨 주던 이.
심지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하녀의 불편함마저도 신경 써서 들어주던 온화한 사람.
직계혈족들 중 죽은 사냥개들의 묘비에 국화꽃을 헌화하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세트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아버지와 형을 위해 죽어 가는 모든 동생들이 불쌍하다며 눈물짓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아버지나 형에게 나약한 놈이라며 무시 받은 날에는 혼자 화원에 가서 눈물을 떨어트리곤 하던 그 안쓰러운 모습들도.
그리고 그것은 회귀한 이후인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휴고나 오시리스는 세트를 거의 무시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강자존인 바스커빌가 안에서 약자인 세트가 이토록 무시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비키르는 회귀하기 전 세트를 마음속으로 동정하고 또 존경했었다.
그 때문에 얻는 것 하나 없이도 그의 라인을 타고 밑으로 들어가 그를 위해 일했었고.
세트가 마음이 유약하다는 이유로 구박받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고 그런 구박을 참으면서도 자기와 같은 사냥개들에게 잘해주는 것이 너무도 고마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비키르는 어제 씬디웬디가 전해 주었던 정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계급: 언더독 시의 집정관-하원의원
작위: 영작(影爵)
무위: 그래듀에이터 중급
기타: 바스커빌가의 가주 ‘휴고 레 바스커빌’의 차남. 현재 제 2가주계승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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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하고 따듯한 성격. 병약함. 검술에 재능 없음. 휴고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음. 가문 내 모든 아랫것들에게 잘해 주고 인망도 두터움. 언더독의 집정관 자리를 오래 비우고 있음. 폐관수련 중 대만찬을 위해 잠깐 외출함……
비키르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이 시시콜콜하게 나열되어 있던 자료.
하지만 그 끝에는 비키르조차 처음 보는 내용이 한 줄 적혀 있었다.
‘세트 레 바스커빌’은 인간이 아닌 것으로 추측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