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2
12화 폭식하는 파리 (1)
축 늘어진 케르베로스.
세 개의 아가리와 하나의 항문에서 기름기 많은 침과 분변이 흘러나온다.
동시에.
츠츠츠츠츠……
케르베로스가 죽은 직후, 놈의 몸에서 뽑혀 나온 영혼이 비키르의 전신에 깃들었다.
업보, 카르마, 경험치 등등으로 불리는 이 신비로운 기운은 마물을 퇴치한 자의 육체와 정신을 한층 더 고결하게 만든다.
“이건 들고 가기도 힘들겠는데.”
비키르는 케르베로스의 시체를 옮겨 보려다가 이내 포기했다.
그리고 케르베로스의 사체를 그냥 이곳에 방치해 두기로 했다.
어차피 케르베로스의 사인(死因)이야 명확할뿐더러 이곳 아지트에서 목창을 깎는 비키르를 본 영도견들도 많기에 증명해 줄 사람은 많았다.
그러니 몇몇 중요 부위와 내장만 떼어내 은밀한 곳에 파묻어두면 될 일이다.
……무엇보다.
“지금 이런 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비키르는 케르베로스의 시체 너머, 놈이 왔던 깊은 수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케르베로스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영토를 지키려는 습성을 타고난 수문장 타입의 몬스터이다.
놈이 야만인에게 밀려서 여기까지 밀려왔든 어쨌든 간에, 아마 이 근처에는 케르베로스가 지키고 있던 ‘던전’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던전이란 으레 모험가들의 목표가 되곤 하는,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동굴 형태의 장소를 뜻하는데 대부분은 강력한 고위 마물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케르베로스가 죽었으니 아마 텅 비어 있을 가능성이 크겠군.”
일반적으로 마물은 강한 마기에 끌리는 법이니 케르베로스가 있던 던전에도 강한 마기를 가지고 있는 유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컸다.
막말로, 케르베로스가 아무 땅굴에서나 대충 살 만한 급의 몬스터는 아니니까.
비키르는 바스커빌의 사냥개들이 으레 가지는 기감(氣感)을 예리하게 곤두세운 채 경계지역 바깥을 수색했다.
케르베로스의 분변을 몸에 살짝 묻힌 것만으로도 헬하운드를 비롯한 어지간한 마물들은 저 멀리 도망쳐 버렸다.
사냥꾼의 눈은 말라 바스러진 흙, 썩은 낙엽, 축축한 뿌리와 음침한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케르베로스의 발자국과 침 흘린 자국을 역추적 한다.
말라죽은 가시나무와 불타버린 뿌리, 썩어서 푹 주저앉은 고목들의 밑을 기다시피 빠져나가니 이내 수해의 심부가 드러나 보였다.
던전(Dungeon).
그것은 커다란 흙더미 사이에 낮게 위치해 있는 토굴이었다.
위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게끔 딱 절묘한 위치에 박혀 있다.
케르베로스가 만든 것은 아니고, 아마 꽤 오래 전부터 저곳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이 장소 역시 비키르의 기억 속에 있는 장소였다. 앞으로 한 10년 뒤에나 발견되겠지.
“……하지만 그때는 텅 비어 있는 던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썩은 냄새 이면에 숨겨져 있는 마(魔)의 냄새.
미숙한 사냥개라면 섣불리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비키르는 용케도 그것을 맡았다.
…와르르!
비키르는 바짝 말라비틀어진 흙더미를 부수고 토사와 함께 비탈길을 쓸며 내려갔다.
이윽고 붉으죽죽한 흙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던전이 보인다.
적과 흑 산맥의 지류인 붉은 송곳산과 이어져 있는지 흙더미 바깥으로 루비 광맥이 대놓고 불거져 나와 있었다.
동굴의 암흑 속으로 들어가자 깊고 구불구불한 통로가 눈에 들어왔다.
손으로 더듬어 짚어나가야 할 만큼 어둡고 깊은 곳.
하지만 의외로 던전의 안쪽은 넓고 밝았다.
꽤 널찍한 석실이 존재했고 주변에는 주먹만 한 루비 원석 하나가 툭 튀어나와 어스름한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루비 빛에 의해 피처럼 붉게 물든 석실.
비키르는 석실 벽에 길게 드리워지는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던전인가.”
석실 안은 그저 텅 비어 있을 뿐이었다.
아니, 아주 텅 비어 있지는 않았다.
비키르의 긴 그림자가 닿아 있는 곳 끝에는 해골 한 구가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칼에 난자당한 듯 몸 곳곳의 뼈가 잘리고 부러져 있는 해골.
자세히 보니 루비 빛으로 물든 석실 안은 온통 피범벅이다.
갈색으로 말라붙은 핏자국을 보니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았다.
이윽고. 비키르는 해골의 옆에 적혀있는 수기(手記) 한 페이지를 발견했다.
일단 내 이름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 대충 ‘가인’이라고 칭하겠다.
이 순백의 종이를 굳이 내 이름으로 더럽힐 필요가 있을까.
몇 번이나 고민하던 끝에, 후대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게끔 하기 위한 목적으로 몇 자 적는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일지였다.
비키르는 붉은 핏빛에 의지해 글자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비키르는 이 글자가 바스커빌 가문에 내려오는 서체로 적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바스커빌의 선조들인가?”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이 석실은 가문 내에서 전설로 회자되던 고대의 던전으로 나와 동생은 이곳을 우연히 발견, 탐험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련을 뚫고 결국 이곳 ‘최후의 방’까지 도달했다.
알고 보니 이 던전은 한때 꽤나 험난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나 보다.
지금은 텅 빈 쓸쓸한 토굴로만 남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수기를 적은 이와 여기 널브러진 해골은 분명 쌍둥이 형제 사이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나와 동생은 무수한 마물들을 죽이고 이곳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석실에서 받은 최후의 과제는 우리 형제의 발을 단단히 묶어두었다. 무려 3년 동안이나!
비키르는 고개를 들었다.
필자가 말하는 ‘과제’란 무엇일까?
그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해골의 두개골이 향하는 방향의 석벽에 음각되어 있는 글귀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들어올 때는 하나, 들어온 것은 둘, 나가는 것은 하나.’
기묘한 수수께끼였다.
비키르는 다시 수기를 보았다.
이 음침한 문구를 두고 나와 동생은 한참 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이 던전이 우리 바스커빌 가에 전설로 회자되며 전승되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뜻은 명백하다.
나와 동생. 둘 중 하나만이 이 던전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나?
던전에 들어온 쌍둥이 형제.
그들은 어미의 뱃속에 잉태되어 있을 때 본디 하나였으나 세상에 나올 때 둘로 갈라졌다.
그리고 이 던전에서 원하는 것을 얻고 나가려면 그들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쌍둥이의 몸이 하나로 붙을 수는 없는 일이니 그들은 서로를 죽여 온전한 하나로만 남아야 했던 것이다.
안 그래도 형제들끼리의 경쟁을 당연하게 부추기는 것이 바스커빌 가의 풍습.
두 형제는 서로를 향해 기나긴 칼부림을 시작했고 결국 동생이 죽음으로써 승부는 마무리되었다.
“그럼 여기 있는 동생이 ‘아벨’이 되는 건가.”
가인과 아벨.
‘선택’을 받기 위해 동생을 죽여야만 했던 형.
비키르는 바닥에 널브러진 해골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죽은 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바람 한 점 없는 석실에서도 거의 풍화된 해골.
하지만 수기의 내용은 꽤나 의외였다.
나는 치열한 접전 끝에 아우를 죽였다. 이제 이 석실에 남은 이는 나 하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실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점점 광기로 물들어가는 수기.
글씨체 역시도 점점 삐뚤빼뚤해져 종국에는 거의 해독하는 수준으로 글자의 의미를 파악해야 했다.
분명 둘에서 하나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는 나갈 수 없어!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만 마지막 수기만큼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작성되었는지 정갈한 글씨체로 되돌아와 있었다.
나는 이제 시간낭비를 그만두고 여기서 나간다.
먼 훗날 이곳을 찾아올 용맹한 후손이 있다면 권하고 싶다.
당장 이곳을 나가라고.
사람을 현혹시켜 희롱할 뿐인 이 마귀굴 속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말이다.
결국 수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백했다.
그 모든 관문을 뚫고 여기까지 왔지만 개털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발주자들 역시 괜히 힘 빼지 말고 왔던 길을 돌아가라는 권유.
……하지만 비키르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쌍둥이가 아닌데 말이야.”
비키르는 쌍둥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과제가 던져 주는 내용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는 것은 여기에 있었던 가인과 아벨이 글귀의 내용을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 된다.
“들어올 때는 하나였지만 들어온 것은 둘이라, 나갈 때는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바스커빌은 뒤의 동굴을 바라보았다.
빛 한 점 없는 칠흑이 아가리를 벌린 채 비키르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앞에는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석실.
이윽고, 비키르는 고개를 돌려 해골을 바라보았다.
해골 끝에 걸려 있는 것은 자신의 그림자. 그림자!
“……그렇군.”
비키르는 주먹을 들었다.
그리고 석실을 붉게 비추고 있는 큼지막한 루비 광석을 주먹으로 두들겨 깨 버렸다.
쨍그랑!
루비가 깨지자 그 안에 희미하게 담겨 있던 마력도 사라진다.
석실 안이 일순간 어둠에 잠겼다.
그러자.
쿠구구구구국- 콰쾅!
이변이 일어났다.
석실 한쪽의 석벽이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어찌나 두터운지 그 두께만도 수십 미터에 이를 법한 벽.
문이라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못할 정도의 규모다.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수께끼의 정답은 간단했다.
그림자.
들어올 때는 암흑의 통로 속에서 온전히 하나이나 루비 빛이 비추는 석실에 들어오는 순간 그림자는 분리된다.
그리고 루비를 제거해 완연한 암흑이 찾아오면 그림자는 도로 몸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석실의 최종 스테이지가 개방되는 것이다.
비키르는 조심스럽게 앞을 더듬어 나갔다.
다행스럽게도 석벽 너머의 공간은 평탄한 외길이었고 별다른 함정들도 없었다.
우글거리던 마물들이야 가인과 아벨이 오래 전에 정리했을 테니 남아 있는 것은 던전의 보상을 확인하는 것뿐.
이윽고, 비키르의 손끝에 무언가 차가운 것이 닿았다.
그것은 한 자루 칼의 손잡이.
칼은 바위에 수직으로 단단히 박혀 있었고 그 앞에는 글귀가 음각되어 있었다.
비키르는 손끝을 더듬거려 그 글귀를 읽었다.
‘오로지 바스커빌 가의 핏줄만이 이 ‘……’을 뽑을 수 있으리라.’
글귀에는 바스커빌이라는 성과 칼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었다.
그리고 칼의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벼락과도 같은 충격이 비키르를 때렸다.
“……이게 여기서 발견되는 유물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