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아카데미 입학 (3)
“……에?”
피기는 멍한 표정으로 비키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몹시 당황한 듯한 어조로 물었다.
“오, 오티를 안 간다고?”
“그래. 안 가.”
비키르는 여전히 단호했다.
몇 안 되는 짐을 풀고 있는 비키르를 향해 피기가 허둥거리며 손짓 발짓을 했다.
“아, 안 돼! 가야 해! 오티에 안 가면 선배들에게 찍힌다고! 그리고 동기들 사이에서도 아싸가 되고 말 거야! 그러면 정보나 인맥 습득에도 지대한 어려움이 생길 텐데…….”
아싸. 아웃사이더(Outsider)를 지칭하는 말로 집단에 소속되지 못하고 겉도는 이를 뜻한다.
이들은 불시에 생긴 공강이나 수업 시간표 변경, 조별과제 등 집단의 힘이 필요한 상황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인맥이나 정보 습득에도 불이익을 받는다.
따라서 오티에는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는 피기의 말은 지당했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신입생의 경우에는 말이다.
하지만 비키르의 경우에는 오히려 아싸가 되는 것을 바라던 바, 모두의 눈에 띄지 않는 편이 훨씬 더 활동하기에 편했다.
한편, 비키르는 울상이 된 피기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피기의 시선에서는 진심으로 비키르의 학교생활을 걱정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여전히 호구에 가까울 정도로 착한 녀석이다.
‘이런 성격으로는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울 텐데.’
피기는 소심하지만 신중한 성격이고 정보 수집이나 분석에 능하다.
씬디웬디가 본다면 당장에 스카웃 하겠다고 난리를 칠 정도로.
하지만 당장 아카데미 신입생들 사이에서는 피기야말로 이용당하거나 괴롭힘당하기 딱 좋은 성격이었다.
필기나 이론보다는 실기와 실전이 훨씬 더 대접받는 것이 이곳 아카데미의 학풍.
그것은 콜로세오뿐만 아니라 마법 교육기관인 마탑이나 체술 교육기관인 바랑기안 등 최고의 교육기관들 사이에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사조(思潮)이다.
즉, 아카데미 안에서는 힘이 최고다.
유치하게 막싸움을 벌이거나 주먹구구식으로 결투를 하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실기평가의 성적.
그것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목받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피기는 머리가 좋아서 정보 수집이나 분석에 능했지만 단지 그뿐, 냉병기에도 열병기에도 그다지 재능이 없어서 실기시험에서 늘 물을 먹었었다.
좋게 말하면 배려심 있는 성격, 나쁘게 말하면 소심한 성격 때문에 은근한 조롱과 멸시, 따돌림이 따라온 것은 물론이었다.
‘더군다나 재수 없게도 첫 학기의 룸메이트로 악독하기 그지없던 바스커빌가의 하이브로를 만났으니.’
이후 피기는 늘 주눅 들어 살았다.
하이브로의 성격 상 피기는 거의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고 다른 학급, 혹은 상급생들까지도 늘 피기를 괴롭히거나 이용해 먹고는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착한 피기.
자기보다 더 약한 사람이 있으면 언제나 손을 내밀어 주고 최선을 다해 도와주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
비키르는 그런 피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한편, 피기는 비키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오티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중이었다.
“이번 오티에는 쟁쟁한 선배님들이 엄청 많이 오셔! 학생회장인 돌로레스 성녀님도 오신다더라! 그리고 동기들도 굉장해! 돈키호테 가문의 장자인 튜더랑 어셔 가문의 장녀인 비앙카는 너도 들어봤지? 그뿐만이 아냐! 바스커빌가에서는 무려 세쌍둥이가 입학했대! 다들 하나같이 엄청난 실력자들이라더라! 그리고 북방의 용병길드에서 온 산쵸라는 애도 있는데 얘는 바랑기안에 수석으로 합격한 거 뿌리치고 여기로 온 거래! 그리고 또 열병기부 수석에 싱클레어라는 애도 있는데 얘도 마탑에 수석으로 합격한 거 마다하고 콜로세오로 왔다더라! 근데 콜로세오 열병기부에서도 수석인 걸 보면 진짜 대단하지 않아? 이 친구들은 벌써부터 차세대 영웅으로 손꼽히는 친구들이니만큼 꼭 보러 가야 한다구! 아, 내가 이런 대단한 사람들과 동기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
사실 이런 정보들을 벌써부터 꿰고 있는 피기 역시도 대단하다.
재학생 선배들이 들었다면 정보 수집력과 분석력만으로도 자기 동아리나 가문에 스카웃 제의를 해 올 정도로.
“어때? 이제 조금 갈 마음이 들지? 응? 응?”
피기는 칭찬을 바라는 것처럼 눈빛을 반짝이며 비키르를 올려다본다.
하지만 비키르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그래도 안 가.”
“뭐어? 왜? 대체 왜애-”
같은 방 친구와 같이 오티에 가서 서로 의지하고 싶었던 피기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고야 말았다.
사실 지금껏 신입생 새내기가 오티 불참을 선언하는 경우는 거의, 아니 아예 없었으니까.
이 합당하고도 당연한 의문에 비키르는 짧게 대답했다.
“그냥 가기 싫으니까.”
그게 끝이었다.
비키르는 짐을 정리한 뒤 빠르게 방을 나가 버렸다.
신입생들이 와글와글거리는 복도 저편으로 금세 사라져 버리는 비키르의 뒷모습.
피기는 그 모습을 보고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쿨해. 내 룸메이트는 멋진 사람이구나! 나도 저런 단호한 모습을 보고 배워야지!”
언제나 긍정적인 피기였다.
* * *
어둑어둑해진 저녁. 아카데미의 높은 성벽 위로 타는 저녁놀.
강의동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에는 벌써 수많은 신입생 새내기들이 몰리고 있었다.
반짝반짝 꾸미고 나온 여학생들, 번듯하게 차려 입은 남학생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고 풋풋한 분위기들이다.
서툰 화장들과 과하게 힘 준 헤어스타일들이 아직까지는 눈치를 보며, 다소 쭈뼛쭈뼛 서 있다.
소년 소녀들은 당장 어디론가 붕 떠 날아가 버릴 듯한 분위기로 서로의 그룹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재학생 선배들은 그런 신입생들을 부드럽게 이끌며 오티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자~ 냉병기부 A반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열병기부 C반! 이쪽 빨간 깃발 아래로 모일게요~”
“학생회 소속 집행부들은 각각 새내기들 인솔해서 오티 장소로 이동하시겠습니다!”
저녁놀이 지는 강의동, 아직 개강 시즌이 오지 않아 텅 빈 강의실마다 재학생과 새내기들이 들어간다.
금세 사람들이 와글와글해진 강의동의 복도에서는 이번 신입생들에 대한 소문, 찌라시들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번 신입생들이 진짜 쟁쟁하긴 하네. 다들 실기평가 성적이 장난 아니야~”
“역시 튜더랑 비앙카, 싱클레어가 제일 기대주겠지?”
“개인 역량으로만 따지면 그렇겠지. 하지만 바스커빌의 세쌍둥이가 있잖아? 난 그 녀석들이 모여서 내는 시너지가 더 기대되는걸.”
“근데 이번에 그…… 찌라시 돈 거에 의하면 바스커빌가에서 ‘그 사람’이 입학한다고 하지 않았어?”
마지막 말에 신입생들의 수다가 더욱 더 가열차진다.
“아아, 비키르 말이야? 그거는 뜬소문 같던데?”
“애초에 십대 후반에 그런 업적을 세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꾸며낸 가공의 인물 아니야?”
“맞아 귀족 가문에서는 자기 가문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 은근슬쩍 부풀린 찌라시들을 퍼트리기도 하니까. 또 바스커빌가는 원체 폐쇄적인 곳이다 보니…….”
“이번 신입생들 중에 비키르라는 이름 가진 녀석만 열 명이 넘어. 죄다 평민이었고.”
“그래도 그중에 눈에 띄는 애가 하나 있긴 하던데? 필기시험 1위한 애 이름도 비키르랬다.”
“필기시험? 에이, 이론만 빠삭한 샌님이 뭐 대단하다고. 난 그런 공부벌레는 매력 없더라~ 운동부 애들이 멋있지!”
어느덧 복도의 수다는 점점 잦아 들어간다.
강의동에 있는 모든 반 교실에 새내기들이 입장 완료했다.
남남, 여여, 남녀남녀.
잠깐의 수다, 눈인사로도 금세 친해진 동년배들.
비록 급조된 친분이지만 삼삼오오 모여 앉은 그들의 사이에서는 벌써 설익은 우정이 싹틔우고 있다.
“다 왔나요~ 20학번 새내기 친구들 출석 한번 불러 볼게요~”
학생회 선배들이 명단에 있는 이름들을 호명하며 반의 출석체크를 진행해 나간다.
그리고 이내 수많은 이름들이 호명되는 아래.
“비키르.”
“네.”
“비키르.”
“네.”
“비키르.”
“네.”
“비키르.”
“…….”
“비키르?”
흔한 이름들이 몇 번인가 불리던 중 발생한 한 명의 결석생.
비키르 반 바스커빌. 아니, 이제는 그냥 ‘비키르’.
그는 과연 오티에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학생 ‘비키르’가 아닌 ‘밤의 사냥개’라는 이름으로 검은 망토와 가면을 뒤집어썼을 뿐.
…탁!
비키르는 검은 망토와 중세 역병 의사들이 사용하던 황새 부리 모양의 방독면을 쓴 채 아카데미의 첨탑 지붕을 밟았다.
어지간한 성벽만큼이나 높은 담장을 넘으면 바로 황도의 도시, 수없이 많은 물길과 교각들이 즐비한 아름다운 시가지가 나온다.
비키르는 칠흑에 젖은 도시로 소리 없이 녹아들었다.
20학번 동기들이 술을 마시며 선배, 동기간의 우정을 돈독히 하는 밤.
그동안 비키르는 살생부에 올라있는 인물들의 저택을 하나하나 방문할 것이다.
악마. 그리고 내통자들.
인류의 배신자들이 드글드글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이곳 황도가 아니던가!
‘……전우들이여, 조금만 기다리시게. 지금부터 자네들의 복수를 해 줄 터이니.’
비키르는 배신당해 죽어 간 사냥개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전생의 악연(惡緣)들을 복기했다.
이윽고.
도시 전역에서 옅게 느껴지는 마(魔)의 냄새를 쫓아.
밤의 사냥개가 드디어 사냥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