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3
13화 폭식하는 파리 (2)
‘오로지 바스커빌가의 핏줄만이 이 ‘바알제붑’을 뽑을 수 있으리라.’
글귀에는 바스커빌이라는 성과 칼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었다.
“……이게 여기서 발견된 유물이었던가.”
비키르는 깨진 루비 파편들이 내뿜는 극히 미세한 빛줄기로 칼의 외형을 더듬었다.
루비처럼 둥글고 불그스름한 세 구슬 모양의 칼 받침대에 길쭉한 주둥이가 툭 튀어나와 있는 것처럼 생긴 검은 송곳.
투박한 손잡이 부근은 녹색으로 번들거리고 있는 외형이 마치 한 마리의 커다란 파리를 보는 듯한 모양새다.
비키르는 이 유물(遺物)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전생의 유년시절, 신화책 한 페이지의 삽화에서 분명 보았던 기억이 있다.
‘폭식하는 파리 바알제붑(בַעַלְזְבוּב)’
이 칼의 유래를 설명하자면 길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먼 옛날의 신화 속, 이 대륙을 침범했던 전대미문의 대마수, 일명 ‘7대 재앙’이라 불렸던 악마성좌들이 있었고 전 대륙의 모든 인간들이 힘을 합쳐 이 마성좌들을 쓰러트렸다.
그리고 이 일곱 악마성좌의 유해(遺骸)는 물질이든 관념이든 어떠한 형식을 빌려 현세에 남게 되었는데 더 이상 인과율에 간섭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전의 힘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게 되었다.
그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이 칼 ‘바알제붑’이었다.
바스커빌가의 초대 가주를 비롯한 일곱 가문의 수장들이 나서 각각 하나의 악마성좌를 쓰러트렸고 그 당시 바스커빌가의 가주는 폭식의 증좌 바알제붑을 맡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연유로 바스커빌가의 영지에 바알제붑의 유해가 보관되게 되었고 이 유물이 내뿜는 강렬한 마기는 근처로 강대한 마물들을 불러 모으게 되었다는, 지금은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옛 전설이다.
‘하지만 그 전설은 사실이었고 훗날 이 칼은 마족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지.’
이 잊혀진 유물은 어느 날 갑자기 전쟁터에 등장했고 수많은 인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마족들 사이에서도 이 칼의 주인은 계속해서 바뀌었으며 어쩌면 이 칼에 의해 죽은 인간들의 수보다 마족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처지가 조금 다르게 되었다.
바알제붑의 유해는 비키르의 손에 들어왔다.
전생에서는 마족들에 의해 도굴당했고 도굴당한 사실을 알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윙윙윙윙-
칼이 비키르가 내뿜는 마나에 공명하기 시작했다. 귓가에 파리 날갯짓 소리가 요란하다.
비키르가 손을 뻗어 어루만지자 송곳 바알제붑은 놀랍게도 마치 비키르의 육체 일부인 것처럼 손바닥으로 스르르 흡수되기 시작했다.
…팟!
비키르가 손을 뻗어 힘을 주자 손목의 동맥 쪽에서 시커먼 송곳이 이빨을 드러낸다.
바알제붑은 이렇게 비키르의 몸속에 잠잠히 숨어 있다가 주인의 명령이 내려졌을 때 튀어나와 여벌의 송곳니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러나.
바알제붑은 악마성좌의 시체로 만들어진 기묘한 칼.
고작 이 정도가 이능(異能)의 끝이 아니다.
…꼬르륵!
바알제붑이 몸속에 깃들게 되는 순간 갑자기 엄청난 허기가 비키르의 뱃속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비키르는 조금 당황했다.
전생에서는 일주일 동안 굶고 한 끼에 모든 것을 몰아먹는 생활에 익숙했다.
야전으로 나가면 한 달 동안 물만 마시며 잠복했던 적도 많았다.
그렇게 혹독하게 단련된 위장은 어지간해서는 떼를 쓰지 않는다.
아무리 어린아이의 몸으로 돌아왔어도 이렇게까지 철이 없을 리는 없는데.
…꼬르륵!
한 번 더, 위장이 발악하듯 꼬인다.
비키르는 이 극한의 배고픔이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를 달라는 거냐?”
그 말이 맞다.
벨제붑은 파리 날갯짓 소리로 윙윙거리며 비키르를 보챘다.
킁킁-
후각도 예민해졌는지,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
그것은 마(魔)의 냄새. 던전 밖에서부터 솔솔 풍겨오는 먹음직스러운 내음.
비키르는 던전 밖으로 기어나가 그대로 수해의 뿌리굴을 파고들었다.
경계지역으로 접근해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갈수록 냄새는 더욱 짙어진다.
제일 먼저 만난 것은 헬하운드의 시체였다.
바알제붑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먼저 이빨을 툭 내밀었다.
원래대로라면 주인이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이빨을 드러내는 사냥개는 체벌을 가해야 한다.
하지만 비키르는 이번만은 예외로 두었다.
놈과 공유하는 허기가 너무나도 격렬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오래도 굶었나 보군.’
바알제붑이 박혀 있던 바위와 그 근처의 흙은 아주 바짝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아니, 이 적과 흑 산맥 전체가 말라죽은 고목과 바싹 마른 흙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어쩌면 이 바알제붑의 미친 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이놈의 폭식증을 달래 주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먹이를 공급해 줘야 하지?
“…….”
비키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잡생각을 털어 버렸다.
바알제붑이 가지고 있는 힘은 그 정도 대가를 감수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니까.
이윽고.
비키르가 알고 있는 바알제붑이 그 힘을 여실하게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헬하운드의 시체, 목 부근에 박힌 바알제붑은 놀라운 속도로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피와 내장 즙이 바알제붑의 송곳 관을 통해 비키르에게로 들어온다.
주린 창자가 채워진다. 뒤틀려 있던 내장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반짝!
비키르는 바알제붑이 가지고 있는 세 개의 눈알 중 하나가 유난히 더 빨갛게 빛나는 것을 목격했다.
‘스킬을 얻었다.’
그렇다. 비키르의 직감이 맞다.
폭식하는 파리 바알제붑은 살아생전 상대방의 고유 특성이나 특기를 훔쳐 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 흡수폭은 무한대에 가까웠으며 수많은 이들이 바알제붑에게 자신이 평생 이룩해 온 성명절기들을 모두 빼앗기고 무능력자, 폐인으로 변해 버렸었지.
아쉽게도 이것은 유해(遺骸)인지라 그 정도 파급력은 없다.
상대방의 스킬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은 3개에 한정이다.
비키르의 바알제붑은 헬하운드의 피를 빨아들임으로써 한 가지 스킬을 얻었다.
/ 송곳
-1슬롯: 출혈(出血) -헬하운드(B+)
-2슬롯: 없음
-3슬롯: 없음
오로지 비키르의 의사에 의해서만 발현되는 능력.
이 송곳에 찔린 이는 지옥의 사냥개가 가진 이빨의 필멸적인 힘을 고스란히 다 느끼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피가 나지 않을 정도의 얕고 경미한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피를 끄집어내게 되며 보통의 상처보다 훨씬 더 오래 출혈이 지속된다.
한편.
쭉쭉쭉쭉쭉-
바알제붑은 헬하운드의 시체가 거의 미이라가 될 때까지 빨아먹고서야 떨어졌다.
스킬이야 진즉에 빼앗았지만 그냥 단순히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비키르 역시 허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꼬르륵!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배가 고프다.
코끝을 스치는 맛있는 냄새는 여전히 저 멀리서 풍겨 오고 있었다.
비키르는 서둘러 수해를 빠져나갔다.
이윽고 익숙한 경계선이 보인다.
요람.
바스커빌가의 어린아이들이 시험을 치르는 공간이 보인다.
슬그머니 경계선을 넘자 저 멀리 바위 아래에 자신이 파 놓은 구덩이가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영도견들의 감시는 오지 않은 듯하다.
하긴, 아무리 ‘요람’이라고는 해도 면적이 꽤 넓은 편이다. 시험장의 모든 곳까지 영도견들의 감시가 닿진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많은 시간을 구덩이 속에서 그저 죽치고 앉아 있었을 뿐이니 이미 비키르는 안전한 감시대상으로 분류되어 감시가 소홀했을 것이 분명하다.
비키르는 경계선을 넘어 아지트로 내려갔고 살짝 덮어 놓았던 흙과 낙엽들을 모두 걷어냈다.
이윽고,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케르베로스. 그것이 죽었을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윙윙윙윙-
기름진 고기 냄새를 맡은 바알제붑이 아주 좋아 죽는다.
파리 날갯짓 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윽고, 바알제붑은 케르베로스의 시체에도 송곳니를 박고 열심히 고기와 내장을 폭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키르는 바알제붑을 뜯어말렸다.
“워- 워- 이건 실기평가의 증거라고. 너무 훼손하면 나중에 부검할 때 해명이 곤란해져.”
그래도 바알제붑은 아랑곳 않고 주둥이부터 들이민다.
비키르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안 돼!”
짝!
비키르는 자기의 손등을 세차게 내리쳤다.
자기 손등을 자기가 내리쳤으니 당연히 아프다.
그리고 비키르가 아프면 바알제붑도 아프다.
끼잉……
바알제붑은 그제야 눈치를 보며 케르베로스의 시체에서 송곳니를 뺐다.
비키르는 손등의 동맥을 타고 흐르는 새로운 피와 능력을 확인했다.
/ 송곳
-1슬롯: 화상(火傷) -케르베로스(A+)
-2슬롯: 출혈(出血) -헬하운드(B+)
-3슬롯: 고속재생 -시궁쥐 노르베기쿠스(F)
케르베로스가 더욱 더 강대한 마물이어서일까?
1슬롯을 케르베로스의 피가 차지했다.
2슬롯으로 밀린 헬하운드.
그리고 어이없게도 3슬롯에는 시궁쥐의 피가 깃들었다.
아마도 케르베로스의 시체 밑에 먹다 버린 시궁쥐의 뼛조각과 가죽들이 널브러져 있었던가 보다.
‘더욱 강한 마물을 잡으면 이전의 스킬을 삭제할 수 있는 모양이군.’
비키르는 손목에 펄떡이는 세 개의 동맥 줄기들 가운데 시궁쥐의 피가 흐르는 동맥이 유난히 기가 죽어 쪼그라든 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일단 빈 슬롯으로 두느니 뭐라도 있는 것이 낫겠다 싶어 비키르는 그것을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무엇보다, 지옥번견 케르베로스의 ‘화상(火傷)’ 스킬을 얻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이제 이 시커먼 송곳에 찔린 이는 지옥번견 케르베로스가 가진 기름세계의 불길에 의해 결코 자연적으로 아물지 않는 화상을 입게 된다.
일단 한번이라도 찔리게 되면 죽을 때까지 화끈거리는 통증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고통 중 하나가 작열통(灼熱痛)임을 생각해 보면 헬하운드가 가진 출혈 스킬보다 훨씬 더 지독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자. 이제 이 산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전부 다 얻었다.”
이제 뭐 별로 할 일도 없다.
이대로 실기평가 종료가 될 때까지 느긋하게 있다가 영도견들에게 케르베로스의 시체를 제출하고 1등 평가를 받으면 끝.
그리고 아마도 비키르에게는 이에 대한 포상이 주어질 것이다.
“…….”
비키르는 눈을 감고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그는 마법사로 따지면 벌써 4서클 정도의 마나를 쌓았다.
칼로 그려낼 수 있는 바스커빌 식 이빨의 개수는 3개. 아니, 이제는 어쩌면 4개.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서 그래듀에이터 초입을 바라보는 단계이다.
‘박하게 평가하면 익스퍼트 최상급, 후하게 평가하면 그래듀에이터 초급인가.’
실전에서는 제 실력보다 반수는 낮게 발휘되니 익스퍼트라고 보는 것이 맞다.
지난번 생에서는 마나가 아무리 많이 쌓이고 실전 경험이 노련해진다고 해도 익힌 검술의 한계 때문에 이빨 4개 이상을 그려내지 못했다.
참고로 현재의 휴고는 7개의 이빨을, 회귀하기 전의 휴고는 9개의 이빨을 그러낼 수 있는 검술법을 알고 있었다.
바스커빌 9식(九式).
이것은 가주와 오로지 그 직계, 가문을 이을 적장자와 그를 보좌할 서자에게까지만 이어지는 검술.
비키르가 익힌 4식(四式) 따위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고강하고 정교한 검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10식.”
바스커빌 10식(十式). 열 개의 이빨.
현세의 그 어떤 바스커빌도 닿을 수 없는 궁극의 경지.
먼 과거 7대 재앙 소속의 악마성좌를 토벌했다던 초대 가주의 가르침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전설의 검술교본.
비키르는 그 보물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지.’
그것은 의외로 아주 가까운 곳, 너무 흔하고 가까워서 아무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잡서(雜書)들 틈에서 썩어 가고 있다.
그것을 누가 주냐고?
바스커빌 가의 가주(家主) 휴고 레 바스커빌.
그가 직접 비키르에게 넘겨줄 것이다.
본인이 넘겨주는 잡서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못 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