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실력 테스트 (2)
‘모르그 밴시’ 교수.
기름기가 흐르는 칠흑 같은 머리칼에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 짙은 눈썹과 퀭하게 패인 눈.
짙은 다크서클과 검은 눈동자에 전신을 가리고 있는 올블랙 패션은 그를 음침하고 깐깐해 보이도록 만든다.
그는 마도종가 모르그 가문, 그 중에서도 암당(暗黨) 출신의 엘리트이다.
일찍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그는 졸업 후 가문으로 귀환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한 뒤 아카데미의 교수직에 임용되었다.
그 뒤로 수십 년간 열병기부에서 각종 전공수업들을 맡아 강의하고 있으며 때때로 이렇게 이론 위주의 교양필수 수업을 강의하기도 한다.
평소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마찬가지로 엄격한 성격인 밴시 교수는 특출 난 천재들과 모범생 몇몇을 제외한다면 학생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으며 특히나 게으르거나 우둔한 이들을 유난히도 경멸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에 조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쾌함과 경멸을 표했다.
그것도 ‘감히’ 개강 첫날부터 말이다!
“……열병기부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냉병기부가 형편없는 것인지도 모르겠군. 저 한심한 광경을 보면 말이야.”
밴시 교수는 자신의 수업에 유난히도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분노, 그리고 노골적인 폄훼의 의도를 느낀 열병기부와 냉병기부의 모든 학생들은 벌써부터 희비가 엇갈리고 있었다.
“열병기부 선배들이 마법으로 만든 ‘잘 녹지 않는 얼음’을 나눠 준 이유가 있었어. 목덜미에 계속 대고 있으니 안 졸리네.”
“와, 부럽다. 냉병기부 선배들은 작은 쇠꼬챙이 나눠 주던데. 졸리면 이걸로 허벅지를 찌르라더라.”
“그나저나, 저 비키르라는 녀석은 큰일 났네. 밴시 교수에게 첫날부터 제대로 찍히겠어.”
“으아아, 망했다. 저 교수님은 잘하든 못하든 무조건 단체 점수를 준다던데.”
“아까 싱클레어 씨의 태도점수에 10점 주고 열병기부 전체의 태도점수에도 1점씩 줬잖아.”
“수석 잘 둬서 좋겠다, 열병기부는.”
“반면 냉병기부는 시작부터 망했군. 웬 멍청한 트롤 녀석 하나 때문에 말야.”
“어떻게 수업 시작부터 졸 수가 있지? 아무리 긴장감 없는 바보라고 해도…….”
학생들은 밴시 교수의 눈치를 보며 저희들끼리 작게 숙덕거린다.
……딱 한 사람.
비키르만 빼고 말이다.
“…….”
정작 논란의 당사자인 비키르는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도 모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죽인 놈들 모두 뭔가가 이상했었지.’
어젯밤 오티에 참석하기 전, 아카데미 바깥으로 몰래 나가 암살했던 스물아홉의 얼굴들을 떠올린다.
한 놈도 빠짐없이 악마 특유의 악취가 짙게 배어 있었음은 물론 죽은 즉시 ‘얼굴’이 녹아내렸었다.
그것은 지금 자신이 쫓고 있는 십상시 중 아홉 번째, 구번시(九僠尸)와 가장 연관이 있는 특징이었다.
‘아마도 ‘그 놈’이 얽혀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 씬디웬디에게도 그쪽을 중심으로 조사하라고 해야…….’
비키르가 다음 번 악마 사냥을 위해 앞으로의 계획을 수립하고 있을 그때.
“……비, 비키르. 비키르!”
피기가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소곤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눈을 뜨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울상이 된 피기의 표정, 그리고 이쪽을 향해 쏟아지고 있는 냉병기부 동기들의 사나운 눈초리였다.
열병기부 학생들이 잘됐다는 듯 소리 없이 킥킥 웃고 있는 너머로 밴시 교수의 화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밴시 교수는 양 입꼬리에 비틀린 미소를 건 채 비키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냉병기부 B반의 비키르? 벌점 기록을 보니 벌써 태도부터가 엉망이군. 대체 어떻게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지? 개강 첫날부터 꾸벅꾸벅 졸기나 하는 둔재가 말이야.”
밴시 교수의 말에 냉병기부 학생들은 한숨을, 열병기부 학생들은 비웃음을 머금는다.
비키르 하나 때문에 냉병기부 전체의 태도 점수가 감점될 것이고 이는 곧 열병기부의 상대적 이득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때.
모든 학생들을 일거에 경악시킬 만한 일이 벌어졌다.
“안 졸았습니다.”
비키르가 말대꾸를 한 것이다.
“……?”
밴시 교수는 순간 본인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에게 말대답을 하는 신입생을 그는 교수직에 임용된 이래 20년 동안 처음 보았다.
지적 한 마디에 울음을 터트리거나 오들오들 떠는 녀석들은 많이 봤어도 말이다.
밴시 교수의 밀랍인형과도 같은 창백한 무표정과 모르그가의 암당 출신 흑마법사들이 으레 가지고 있는 음울한 기운 앞에서 감히 반박을 할 수 있는 신입생이 있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4학년 학부생이나 대학원생, 아니 같은 교수들조차도 어려워하는 이가 그이거늘.
그래서 밴시 교수는 자신의 귀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점검을 하는 동시에 비키르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안 졸았다고?”
“네.”
“자네가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모두가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따위 변명을 내뱉는가?”
“눈은 감았지만 졸지는 않았습니다.”
그러자 밴시 교수의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동시에 모든 학생들의 표정 역시 점점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밴시 교수는 입가에 더욱 더 비틀린 미소를 걸었다.
그리고 시니컬한 목소리로 재차 말을 이었다.
“그래? 내가 오해했던 모양이군. 그저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인 학생에게 게으른 둔재라는 오명을 씌웠으니 말이야.”
“괜찮습니다. 오해하실 수도 있지요.”
“…….”
비키르의 태연한 대답에 동기들은 물론 천하의 밴시 교수조차 일순간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순간 ‘내가 진짜로 오해했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뿌득!
밴시 교수가 입을 다물자 그 속에서 무서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이빨 갈리는 소리에 앞자리에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모두 어깨를 바짝 움츠려야 했다.
흑마법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모두 각별히 주의해야 하지만 이것은 그 이전의 문제였다.
교실 전체의 온도가 1도 정도 낮아진 듯한 분위기 속에서, 밴시 교수가 비키르를 향해 날카로운 어조로 아까의 질문을 던졌다.
“좋아. 졸지 않았다면 내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겠지. 나는 자네에게 친절을 베풀어 아까의 문제를 다시 한번 알려 주겠네.”
밴시 교수는 작정이라도 한 듯 비키르를 노려보며 아까의 문제를 다시 내었다.
“내가 지금껏 강의한 것을 잘 외우고 이해했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게야. 지금껏 야만부족 발락의 사냥꾼들이 제국의 군대와 교전을 벌였던 곳들을 말하고 그 장소들의 위치를 토대로 그들의 본거지가 있는 장소를 추측해 보시게.”
말을 마친 그는 맨 앞자리에서 똘망똘망한 표정으로 있는 싱클레어와 그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있는 튜더, 그리고 비앙카를 번갈아 보았다.
밴시 교수는 비키르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까 자네의 동기들은 나에게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대답들을 제시했지. 이렇게 나름의 답을 낼 수 있는 동기들조차도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내 수업을 듣는데 설마 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네가 눈을 감고 내 수업을 들었다는 것은 아니겠지? 자, 그럼 대답 기대하지.”
밴시 교수는 아예 작정을 한 듯 강단을 나서 비키르가 있는 책상 앞까지 다가왔다.
이번 기회에 어차피 도태될 둔재 하나를 미친 듯이 갈궈서 전체 학생들에게 기선 제압을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오, 아카데미의 어린아이들은 이런 류의 문제를 푸는가 보군.’
당연하게도, 비키르는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그저 신기해할 따름이다.
수십 년간 전장에서 닳고 닳았던 전쟁 베테랑 비키르에게 이런 문제야 신발끈 묶는 것보다도 쉬운 일.
무엇보다도 목숨이 직접적으로 달려 있는 문제였기에 뼈와 살에 각인이 되어 있는 답안들이었다.
단순히 종이에 만년필로 슥슥 작성하는 이론과는 당연히 그 깊이가 차원이 다를 수밖에.
다만 비키르는 이런 종류의 문제들의 답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머지 밴시 교수가 일부러 학생들이 풀지도 못할 정도의 어려운 문제를 기선제압용으로 내놓았다는 사실까지는 짐작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만 줄줄줄 대답해 버리는 우를 범하고야 말았다.
“발락과 제국의 접전이 벌어졌던 장소들은 서부전선의 제 1고지, 4고지, 5고지, 7고지, 8고지, 14고지, 27고지, 30고지, 75고지, 207고지, 306고지이고 이 중 상당수가 분지와 봉우리 지형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으나 실상 대부분의 전투는 대부분 겨울에 이루어졌기에 얼음과 눈이 쌓이거나 녹고 나면 전체적으로 양봉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지형입니다. 발락의 전사들은 초장거리 저격과 게릴라전을 주로 펼치는 특성이 있으며 먼 거리와 높은 지형을 쉽게 이동하는 동시에 늑대를 길들여 평지에서의 기동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거주지는 유목민들의 일반적인 특성을 따르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동선을 감안하건데 수해 깊숙한 곳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음이 확실합니다. 저 지도상으로 따진다면 A포인트와 B포인트 사이를 기준으로 서쪽의 소금강, 서해안과 맞닿아 있는 폭포지대 일대가 유력하겠군요.”
심지어 군사기밀(軍事機密), 학계에 아직 보고되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말이다.
‘어차피 아흐헤만 사건 이후 발락의 원주민들은 거주지를 아예 다른 곳으로 옮겼으니 상관없는 일이지.’
심지어 알려 준다고 해도 그곳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맹수와 독충, 각종 위험한 식물들과 가혹한 지형, 풍토병 등이 제국인들의 출입을 엄금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키르는 발락의 원주민들에게 폐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나름대로 적당한 대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비키르가 밴시 교수가 낸 문제에 대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실 안의 정적은 변하지 않았다.
“?”
비키르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의아한 풍경이 보인다.
…….
옆자리의 피기, 그 건너편의 튜더와 비앙카, 그리고 그 너머의 싱클레어, 마지막으로 모르그 밴시 교수까지.
열병기부, 냉병기부, 학생과 교수를 막론하고 강의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린 채 비키르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