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빌런의 정체 (3)
또다시 새날이 밝았다.
아침 6시가 되자 학생들은 기상나팔 소리에 눈을 부비며 일어나 기숙사동 앞의 운동장으로 향한다.
운동장을 반으로 나눠 한쪽은 여자, 한쪽은 남자. 전원이 회색의 츄리닝.
그들은 맨 앞에 서 있는 교관의 체조 동작을 따라 하며 남은 잠을 차디찬 새벽 공기에 털어 버렸다.
이후 체조가 끝나면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일부는 덜 깬 잠을 마저 자러 가고 일부는 바로 목욕탕으로, 일부는 바로 식당으로 향한다.
여학생들의 경우에는 화장이라는 긴 여정에 곧바로 돌입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카데미의 목욕탕은 시설이 꽤나 잘 구비되어 있어서 냉탕, 온탕은 물론 사우나까지 존재했다.
어딘가 꼬릿한 발냄새가 나는 탈의실을 지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새벽 공기에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나면 잠이 달아나는 것은 물론 입맛도 살아난다.
비키르와 피기는 룸메이트니만큼 체조가 끝난 뒤 바로 목욕탕으로 향했다.
“으아, 이 시간대의 공기는 너무 차. 제발 새벽 체조 좀 안 시켰으면 좋겠어.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자면 뇌가 더욱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침잠이 많은 피기는 매번 체조 시간마다 온몸이 부서져 가는 사람처럼 끙끙거린다.
비키르는 그런 피기를 다독이며 목욕탕으로 향했다.
그러자 비키르와 피기를 본 두 명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이쪽도 같은 방을 쓰고 있는 튜더와 산쵸였다.
“어이! 비키르, 피기. 오늘도 바로 목욕탕으로 왔구나.”
“맞아. 체조 끝나고 바로 와야 샤워기가 비지. 아침밥을 먹고 오면 샤워기 앞에 줄 서야 하거든.”
튜더와 산쵸는 비키르를 따라 바로 샤워를 하고 온탕에 들어간다.
“너희들은 목욕 끝나고 뭐 할 거야? 바로 밥?”
“난 오늘 입맛이 없어서 거르려고. 바로 강의동으로 가서 못한 과제나 해야지.”
“나는 좀 더 자다가 식당 문 닫기 직전에 가서 밥을 먹을 것이다. 그때 가야 남은 반찬을 많이 먹을 수 있거든. 근데 오늘 반찬 뭐냐?”
피기와 튜더, 산쵸는 아침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눈다.
그때 비키르가 한마디 했다.
“나는 바로 밥 먹으러 간다.”
비키르는 언제나 같은 패턴이다.
남의 스케쥴에 자신의 계획을 변경하지 않고 늘 마이웨이를 걸어간다.
피기, 튜더, 산쵸 역시도 잠시 고민하던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밥 먹으러 가야지.”
“흠. 생각해보니 밥을 거르면 점심 때까지 배가 고프겠어. 나도 밥!”
“그런가. 바로 밥을 먹으러 가는가. 그렇다면 나도 따라가야지. 밥은 같이 먹어야 맛있으니까.”
비키르의 늘 일정한 생활습관은 주변의 친구들에게 슬슬 어떠한 기준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이다.
비키르는 정확히 10분이 되었을 무렵 탕에서 나와 샤워를 하고 목욕탕을 나섰다.
피기와 튜더, 산쵸 역시도 그렇게 했다.
목욕탕을 나서며 튜더가 고개를 갸웃했다.
“희한하단 말야.”
“뭐가?”
산쵸가 묻자 튜더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비키르 저 녀석.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옆에 서게 돼.”
“그런가?”
“그렇지. 마치 듬직한 길잡이, 아니 형을 보는 것 같아. 나는 집안에 형이 없어서 그런가?”
“하긴. 저 녀석은 항상 기계처럼 일정하게 움직이곤 하지. 함께 움직이면 나도 일상의 페이스를 지킬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본받을 만해.”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데, 워낙에 딱딱한 녀석이라서 참. 곁을 쉽게 안 내주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앞으로 4년 동안 볼 사이인데.”
그것은 튜더와 산쵸의 대화를 듣는 피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비키르는 정말 대단해.’
지체 높은 돈키호테 가의 튜더, 그리고 북방 용병 길드 출신의 장학생 산쵸조차도 먼저 친해지고 싶어 하는 녀석.
심지어 공부도 잘 하고 여자들에게 인기까지 많다.
장기자랑에서 쩔쩔매던 자신을 도와줄 정도로 마음도 따듯했다.
그런 녀석과 룸메이트라는 것이 자신에게는 참으로 행운이라고 피기는 생각했다.
‘나도 비키르가 나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느끼게끔 좋은 룸메이트가 되어야지!’
피기가 속으로 혼자 다짐하고 있을 바로 그때.
“이봐. 피기.”
저 앞에서 일정한 보폭으로 걷던 비키르가 문득 멈춰 서더니 이쪽을 돌아본다.
그러자 그 옆에서 걷던 튜더와 산쵸도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으, 응?”
피기가 약간 당황해서 묻자 비키르가 피기를 향해 손짓했다.
“왜 그렇게 뒤에서 오나. 조금 빨리 걸어라. 오전 수업 과제 같이 하기로 했잖아.”
비키르는 자기 옆을 흘끗하며 말했다.
그러자 순간 피기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응! 갈게! 잠깐 다리가 아파서…….”
“다리? 어디 다쳤나?”
“아니야! 이제는 안 아파!”
피기는 뿌듯함이 벅차오른다는 표정으로 후다닥 뛰어와 비키르의 옆에 섰다.
그러자 튜더와 산쵸도 피기에게 한마디씩 한다.
“체조할 때 다리 다쳤냐? 어디가 아픈데?”
“작은 부상도 경시해서는 안 되지. 내가 북방에서 가져온 약초즙을 조금 나눠 주마. 심지어 골절에조차 효과가 있는 연고다.”
피기는 새로 생긴 두 친구의 걱정에 연신 괜찮다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무언가, 앞으로 4년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피기의 가슴 속에 싹트고 있었다.
* * *
이후 목욕이 끝나고 식당으로 가 아침 식사를 한다.
빵과 씨리얼, 구운 옥수수와 파인애플, 그리고 약간의 데친 채소들.
소시지나 치킨, 계란 프라이, 문어 다리를 구운 것들도 있지만 아침부터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식당에서만큼은 남자와 여자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았는데 그래도 대체로 1학년 남학생 여학생들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서 앉는 편이었다.
비키르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로 강의동으로 향했다.
피기와 튜더, 산쵸는 그런 비키르의 옆에 나란히 서서 걸어간다.
그때.
튜더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비키르를 불렀다.
“어? 잠깐만. 야 비키르! 여기는 중앙계단으로 가는 길인데? 교수님들이랑 4학년들만 이용 가능한 통로라서 우리는 못 가!”
“…….”
그 점은 비키르도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다만.
‘밤에 아카데미를 나가고 다시 들어올 때 사용할 수 있게끔 가장 인적이 드문 길을 찾아 놔야겠지.’
비키르는 전략상의 이유로 아카데미 안의 모든 건물의 모든 통로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가고 있었다.
그 덕에 학기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안의 건물 구조들을 거의 다 파악할 수 있었고 말이다.
물론.
“삐익! 거기 신입생! 왜 중앙계단을 이용하지!?”
그만큼 생활태도 점수 면에서 불이익도 많았지만.
이윽고, 비키르에게 경고를 준 이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돌로레스 룬 쿼바디스. 학생회장인 그녀가 비키르를 발견하고는 벌점을 먹인 것이다.
덥수룩한 앞머리에 뿔테안경, 비키르의 얼굴을 확인한 돌로레스는 기가 막히다는 듯 두 손을 허리에 얹었다.
“비키르. 또 너니?”
“죄송합니다. 길치라서.”
“이곳 중앙계단은 교수님들과 예비졸업생 선배님들이 연구를 하시는 곳이야. 정숙이 기본일 뿐만 아니라 기밀을 요하거나 아주 위험한 실험구역들도 많아서 신입생들의 통행은 금지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동아리 후배라고 봐주는 것 없어. 벌점이야.”
돌로레스는 마법 기록부에 비키르의 벌점과 그 이유를 적어 놓았다.
-기숙사동 3학년 층 비상구 이용 –1점
-연무장 4학년 전용구역 출입 –1점
-맹독실험동 1층 중앙계단 이용 –1점
-실험용 마물사육소 흡연구역 출입 –1점
-교수연구실 6층 중앙계단 이용 –1점
-열병기부 전용실습실 3층 중앙계단 이용 –1점
-체력단련실 이용가능시간 외 출입 –1점
-급식소 식량창고 옆 관계자외 통행금지구역 출입 –1점
.
.
벌써 빼곡하게 쌓인 벌점들.
돌로레스는 그것을 보며 기가 막히다는 듯 입을 벌렸다.
“……너, 품행이 아주 불량한 아이구나?”
그러자 기겁을 한 피기와 튜더, 산쵸가 대신 앞으로 나서 돌로레스에게 꾸벅 사죄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말해 줬어야 했는데!”
“아이고, 이 녀석이 워낙에 길치라서요.”
“다음부터는 저희가 잘 데리고 다니겠습니다. 야. 너, 너는 언제 이렇게 벌점을 많이…….”
다들 비키르를 돌아보며 머리를 숙이라는 듯 눈짓했다.
하지만 돌로레스는 친구들의 탄원에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안 돼. 벌점이 도를 넘었어. 비키르, 너는 이번 주말에 강제 봉사활동에 나가야 해.”
교내 봉사라면 이미 주말 동안에 몇 번이나 해 봤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그 밴시 교수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는 까닭에서였다.
하지만. 돌로레스는 비키르의 예상에서 조금 벗어난 벌칙을 내렸다.
“벌점이 일정 수준이라면 교내 봉사로 끝내겠지만…… 너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 너처럼 생활 태도가 불량하고 게으른 녀석이라면 교내 봉사로는 정신을 못 차릴 거야.”
“……그렇다면.”
“그렇다면은 무슨! 너는 교외 봉사야!”
돌로레스의 말을 들은 피기와 튜더, 산쵸는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비키르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모두가 비키르를 가엾다는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교외 봉사.
그것은 주말에 화장실 청소, 혹은 급식실에서 배식 당번이나 좀 하고 마는 교내 봉사 수준이 아니다.
아카데미 바깥의 시설, 병원이나 수도원, 보육원 같은 곳에 가서 휴일 내내 궂은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
마침 이번 주말에는 주말 휴일과 개교기념일, 부활절 행사로 인해 열흘 정도의 황금연휴가 이어지는 기간.
비키르는 하필이면 재수 없게도 이 기간 동안에 강제 봉사형에 처해진 것이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반성해 봐. 운이 좋다면 마지막 날 기관장들의 평가에 따라서 벌점도 초기화될 수 있으니까.”
돌로레스는 싸늘한 시선으로 비키르의 위아래를 훑고는 뒤돌아서 가 버렸다.
튜더와 산쵸가 그런 비키르를 돌아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저번에 동아리 일로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나 보네. 기운 내라 임마.”
“밤의 사냥개가 악당이라는 소신 발언 말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비키르, 네 의견을 지지한다. 성녀님의 반응은 이해하기 어려워.”
한편, 피기는 안타깝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비키르. 네가 이번에 교외봉사를 가야 할 곳을 알려 줄게. 어디로 갈지는 알아야 마음의 준비를 하지.”
피기는 안 그래도 정보가 많다.
그래서 이번에 아카데미의 문제아, 혹은 낙제생들이 어디로 봉사활동을 가게 되는지도 알고 있었다.
“이번에 네가 가게 될 곳은 ‘인둘겐티아(Indulgentia) 보육원’이야.”
“인둘겐티아 보육원?”
비키르와 튜더, 산쵸가 되묻자 피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쿼다비스 가문의 방계인 인둘겐티아 가문에서 관리하는 보육원이지. 거기 보육원장이 보육재단의 설립자인 동시에 아카데미의 외부 강사도 맡고 있어.”
“보육원장? 그게 누구지?”
비키르가 진지한 어조로 묻자 피기는 고개를 한번 갸웃하더니 이내 대답해 주었다.
“퀼트 룬 인둘겐티아. 쿼바디스 가문의 외척 가문인 인둘겐티아 가문의 가주(家主)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비키르의 두 눈이 가늘게 좁아졌다.
퀄티(Guilty). 인둘겐티아 가(家)의 가주.
그는 일찍이 씬디웬디가 보냈던 보고서에서도 몇 번이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던 남자.
비키르의 다음 암살 대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