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황금연휴의 봉사활동 (2)
“저, 저기요……”
난데없이 등장한 싱클레어는 비키르에게 어색한 존댓말로 말을 걸어왔다.
비키르가 무슨 일이냐는 듯 빤히 바라보자 싱클레어는 우물쭈물 하며 입을 열었다.
“음, 비키르 씨도 여기로 정기 봉사활동 신청하셨나요?”
“아니.”
“어어? 그러면 왜 여기에……?”
“나는 벌점 때문에 왔다.”
“……아.”
비키르의 짧은 대답에 싱클레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는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계획 중이거든요. 봉사활동 점수 모아야 한다고 해서 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불우한 이웃을 돕고 나면 기분도 좋고 성취감도 들고 하니까…….”
“그렇군.”
비키르는 싱클레어의 사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지라 고개를 한번 끄덕여 준 뒤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비키르를 졸졸 따라오며 계속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같은 곳으로 봉사활동 장소를 배정받다니 우연이네요.”
“그런가.”
“사실 지난주에 봉사활동 신청서 내시는 것 보기는 했는데 설마 같은 곳으로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렇군.”
“비키르 씨는……”
비키르가 계속해서 단답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싱클레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방실방실 웃는다.
비키르는 싱클레어의 말을 잠시 끊었다.
“말 편하게 해라. 또래로 보이는데.”
“……앗, 사실은 제가 17살이라서. 비키르 씨보다 한 살 어리거든요.”
“상관없다.”
비키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싱클레어의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
“그…… 러면, 말 편히 할게!”
“그래. 다음부터는 편하게 대화하자고.”
비키르는 이만하면 대화를 부드럽게 끝냈다고 생각하고는 홱 자리를 떴다.
걸레를 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이번에도 그런 비키르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비키르가 남자화장실로 들어가 대걸레를 빠는 동안 싱클레어는 남자화장실 문 앞에 서서 그런 비키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남자 화장실까지는 따라오지 않는군.’
싱클레어는 비키르가 걸레를 다 빨고 나올 때까지 문 앞에 얌전히 서서 기다리다가 바로 비키르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저기. 나는 네가 휴일에 봉사활동 신청서 제출하길래 벌써부터 봉사 점수 관리하려는 건 줄 알았어. 내신 관리 차원에서.”
“강제로 제출된 것이다. 벌점이 너무 많이 쌓여서.”
“그, 그렇구나. 나는 네가 공부를 하도 잘해서 이번 것도 뭔가 있는 줄 알았지.”
싱클레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비키르를 힐끔힐끔 바라본다.
비키르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말했다.
“바쁘다. 물어볼 게 있으면 빨리 물어보고 가.”
“앗! 그래도 돼?”
그러자 싱클레어는 신이 난 듯 비키르의 옆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그녀는 지금껏 궁금했던 것들을 우르르 쏟아 놓기 시작했다.
“너는 공부 어떻게 해?”
“하루에 공부는 몇 시간씩?”
“예습, 복습의 비중은 어떻게 둬?”
“혹시 이번에 새로 나온 마법학개론 족보 구했어? 내가 보여 줄까?”
“너는 냉병기부 주전공이 뭐야?”
“검술? 아아, 냉병기부 검술 담당교수님 수업 잘 하셔?”
“너 저번에 냉병기부 쪽지시험 문제 다 맞았더라. 나는 한 문제 틀렸는데. 그때 그 문제 어떻게 풀었던 거야? 학부생 수준을 넘었던데.”
“아참, 이번에 마물 생체실험 A 강의 쪽지시험에서 ‘해부과정에서의 윤리’ 파트 문제 봤어? 그거 풀이과정 논란 있었던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음음, 또…… 아 물어볼 거 많았는데 막상 기회가 오니까 생각이 잘 안 난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모든 것들을 그렇게 잘 알아? 혹시 조기교육 받았어?”
“안 받았다고? 와아- 정말 대단하다. 그러면 아카데미 입학하기 전에 학원은 어디 어디 다녔어?”
“이런 걸 물어봐도 되려나 모르겠네. 혹시 기분 나쁘면 대답해 주지 않아도 돼. 평민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어느 지역 출신이야?”
“아아, 근데 혹시 너 눈 나빠? 그 안경 도수 되게 높아 보여서. 앗, 생각보다 안 높네? 그런데 안경은 왜 끼고 다녀?”
“헤어스타일은 혹시 의도한 거야? 아, 그냥 자라는 대로 둔 거구나. 혹시 앞머리를 자른다거나 뒤로 넘길 의향은 있어? 아, 없다구?”
.
.
대체적으로 공부법에 관련된 질문들이 많았다.
비키르는 건조한 어조로 대답해 주면서도 묵묵히 복도 청소나 빨래, 쓰레기 소각 등의 잡무를 해치웠다.
싱클레어 역시도 그런 비키르의 뒤를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일을 거들고 있었다.
잡무들이 일단락되자 싱클레어는 배에 메고 있던 전대를 뒤지더니 비키르에게 우유 한 병을 내밀었다.
“자, 이거 마시면서 해!”
“…….”
비키르는 우유병을 받아들고는 잠시 싱클레어를 내려다보았다.
“……?”
싱클레어는 여전히 해맑은 표정으로 비키르를 올려다본다.
이대로 두면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 것 같았기에 비키르는 슬쩍 자리를 떴다.
“잘 마실게. 그럼 이만.”
“앗, 어디 가? 나도 도와줄게!”
“화장실.”
비키르가 말한 것을 들은 싱클레어의 얼굴이 순간 확 빨개졌다.
“어, 어어. 그것은 도와주기 좀 힘들지. 얼른 갔다 와~”
싱클레어는 화장실 복도 벽에 붙어 서서 말했다.
비키르가 볼일(?)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릴 모양이었다.
* * *
비키르는 계속해서 질문공세를 퍼붓는 싱클레어를 겨우 다른 곳으로 보내고 혼자 남는 것에 성공했다.
“……모범생이라 그런가 학구열이 대단하군.”
비키르는 양동이와 걸레를 든 채 한적한 복도로 나왔다.
봉사활동을 온 아카데미 동료들은 모두 밖에서 식사를 하거나 아이들과 후식을 먹고 있었다.
비키르는 모두의 주의력이 가장 산만해지는 식사 시간 때 집중적으로 건물 내부 구조를 파악해 볼 생각이었다.
그때.
“……!”
비키르는 복도를 걷다가 한 아이와 마주쳤다.
“…….”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나이. 아름다운 금발. 흰 피부. 약간 쳐진 눈이 어딘가 슬퍼 보이는 소녀.
목에는 낡고 조잡한 금색의 목걸이 하나를 걸고 있었다.
목걸이에는 ‘님펫(Nymphet)’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것이 보인다.
비키르는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소녀에게 아까 싱클레어가 준 우유병을 흔들어 보였다.
“마실 테냐.”
“…….”
그러자 소녀는 비키르를 빤히 바라본다.
찰랑-
비키르가 손목을 한번 흔들자 병 속에서 우유가 회전한다.
그러자 소녀는 한번 흠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복도 저편으로 도도도 뛰어가 버렸다.
비키르는 별 생각 없이 다시 우유병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쟤 이름은 님펫이야.”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키르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뜨개질 바구니와 인형들을 든 돌로레스가 서 있었다.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자 신문부의 부장, 그리고 쿼바디스가의 성녀이기도 한 그녀는 매 주말이면 이곳으로 봉사활동을 나온다고 한다.
돌로레스는 비키르를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봉사활동은 열심히 하고 있어? 벌점 만회하려면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좋아.”
돌로레스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리고 여전히 매섭고 엄격한 시선으로 비키르를 바라보았다.
“저 아이에게는 섣불리 호의를 베풀지 않는 편이 좋아.”
“……?”
비키르가 고개를 갸웃하자 돌로레스는 설명을 이어 갔다.
“저 아이는 태어나기를 여기서 태어난 아이야. 지난 13년간 보육원으로 봉사를 오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을 봐 왔지.”
“…….”
“처음에는 저 아이도 자원봉사를 온 학생들과 친하게 지냈어. 언니, 오빠 하면서.”
“…….”
“하지만 그렇게 친해진 언니 오빠들은 점점 시간이 갈수록 발길이 뜸하게 되었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들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졸업도, 취업도 해야 하니까. 당장 나만 해도 그런걸.”
“…….”
“1학년 자원봉사자들 100명 중 3학년이 되어서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오는 사람은 1명이 될까 말까야. 그마저도 졸업이나 취업 후에는 아예 발길이 뚝 끊기지. 그러니 보육원의 아이들이 자원봉사자들에게 쉽게 마음을 줄 리가 없어.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이곳의 아이들이 수많은 삶의 일부지만, 이곳의 아이들에게는 자원봉사자 언니 오빠들이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정말 크거든.”
대체로 맞는 말이었다.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이곳에 봉사활동을 오는 이유는 봉사활동 점수를 채우기 위함이 제일 크니까.
돌로레스는 착잡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려 멀어지는 님펫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아이는 짧게 정들고, 길게 그리워하고, 영원히 헤어지는 일에 지친 아이야. 그래서 아예 외부 사람들에게는 정을 안 주기로 자기 자신과 약속했나 봐.”
“……그렇습니까?”
“그래. 하지만 애가 만날 때마다 경계심도 많아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말도 아예 하지 않게 되었어. 뭔가 타인에게 모든 기대를 내려놓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 세상을 너무 회의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돌로레스는 자기가 이곳에 봉사를 온 지 벌써 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님펫은 자기 인사를 받아 주지 않는다며 슬퍼했다.
바로 그때.
“……!”
돌로레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비키르의 표정이 확 변했다.
“님펫이 얼른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 실어증(失語症)은 마음의 상처에서 기인하는 병이니만큼 주변 사람들의 따듯한 사랑과 관심이 필요…… 우웁!?”
돌로레스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비키르의 손이 빠르게 날아들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턱!
비키르는 성녀의 입에 손을 대고는 벽과 벽 사이의 오목한 곳으로 바짝 밀어 붙었다.
마침 건축 설계상의 미스로 생긴 작은 홈이 패여 있는 공간이었고 양옆으로 캐비닛이 튀어나와 있는데다가 그늘까지 져 있어서 복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읍읍!?”
돌로레스는 손으로 비키르의 가슴팍을 밀어내는 동시에 입을 막고 있는 손을 치우려 했지만 비키르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더욱 더 벽에 가깝게 밀어붙였다.
“쉿.”
이윽고, 비키르의 나직한 음성이 돌로레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돌로레스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니, 아니, 애초에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태어난 이래 남자와 이렇게 가깝게 있었던 적은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그녀가 난생처음 겪어 보는 이 갑작스럽고 무례하고 ……한(?) 상황에 몸이 굳어 있을 때.
“…….”
비키르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복도를 살피고 있었다.
얼굴 근육이 절로 딱딱하게 굳는다.
콧속 점액을 후벼 파는 악취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뚜벅- 뚜벅- 뚜벅-
대리석 바닥을 두드리는 구둣발 소리.
복도 저 끝에서부터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50대의 젠틀맨. 신실한 종교인. 성공한 사업가. 자애로운 아버지.
겉은 더없이 멀쩡해 보이지만 그 겉가죽 속에서는 압도적인 시취(屍臭)를 뿜어내는.
이 괴물이 바로 비키르의 이번 암살 대상 ‘퀄티(Guilty)’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