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오빠가 아니라 아저씨 (2)
“자, 잠깐만!”
성녀 돌로레스가 비키르의 앞을 가로막았다.
“애한테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 뽀뽀는 받았어?”
“못 받았습니다.”
“‘못’이 아니라 ‘안’이지! 애가 저렇게 뽀뽀를 해 주고 싶어 하는데 좀 받지!”
“쑥스럽습니다.”
그러자 돌로레스는 기가 막혀 입을 벌린다.
세상에 쑥스럽다는 말을 이렇게 당당히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결국 그녀는 비키르를 지나쳐 님펫을 안아 들었다.
“어휴, 저 매정한 오빠는 뽀뽀가 싫댄다. 대신 언니한테 해 주면 안 될까?”
“…….”
“아, 언니는 싫어……?”
하지만 돌로레스에게는 무척이나 단호한 님펫이었다.
돌로레스는 시무룩한 표정의 님펫과 멀어지는 비키르의 뒷모습을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인데…….’
님펫이 왜 비키르에게 마음을 열었는지는 그녀 역시도 알고 있었다.
납달리 도중 공을 하수도에 떨어트린 님펫, 그리고 그런 님펫을 위해 아무런 망설임 없이 하수도로 뛰어들어 공을 건져 온 비키르.
온몸에서 오물을 떨어트리면서도 무심히 공을 돌려주는 그 모습을 본다면 그 어느 누가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한 발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을 돌로레스의 마음까지 움직였는데 공을 하수도에 떨어트린 님펫 본인이야 오죽했을까 싶다.
‘……비키르. 참 알 수 없는 애야.’
돌로레스는 어느새 저 멀리 작아진 비키르의 등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후배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 * *
날이 어둑어둑 저물었다.
비키르는 대강당에서 나와 숙소로 향했다.
4인 1실로 된 남자 숙소는 튜더, 산쵸, 피기, 비키르가 사용한다.
숙소 앞에서 당직을 서고 있던 보육시설의 직원들이 학생들에게 손짓했다.
“자~ 봉사자님들 어서 들어오세요~”
“늦으시면 알죠? 건물 문들이 모두 닫힙니다! 저희도 못 열어드려요~”
“10시 이후에는 기숙사 바깥으로 나오실 수 없습니다!”
이곳 인둘겐티아 보육원은 이상할 정도로 통금이 엄격하다.
밤이 되면 모든 건물들의 문과 창문들이 다 잠기고 통행도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기숙사 사감들이 항상 복도를 돌아다니며 봉사자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었는데 비키르는 그것이 보호가 아니라 감시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특히나 아이들이 머무는 기숙사 쪽의 경계가 삼엄하지.’
천하의 비키르조차도 지금껏 아이들이 머무는 숙소들을 밤에 가본 적은 없었다.
건물 외부로는 경비 직원들이 돌아다녔고 내부에는 퀼티의 네 그림자들이 어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론토, 헤베, 페도, 에페보.
모습은 본 적 없었지만 희미하게 풍겨나오는 악취(惡臭)로 그들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이 귀찮은 네 장애물들이 버티고 있는 한 섣불리 일을 벌일 수 없었다.
그래서 비키르는 가만히 때를 기다렸다. 그들의 냄새가 더욱 더 옅어질 때만을.
그리고 오늘, 먹구름이 달을 집어삼킨 밤. 드디어 사냥의 시간이 된 것이다.
비키르는 공용사워장으로 가 태연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 수건을 몸에 둘렀다.
조금 있으면 저녁 점호가 시작되고 그 이후에는 취침 시간이다.
짐짓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로 물기를 씻고 나와 침대로 향하니 아니나 다를까.
“야, 비키르!”
계획대로, 튜더가 비키르에게 어깨동무를 걸어왔다.
비키르가 고개를 돌리자 튜더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속삭였다.
“너 인마. 이거 이거 복근 살벌한 것 좀 봐라. 누굴 죽이려고 이렇게 쩍쩍 갈라졌지?”
튜더는 익살맞게 웃으며 비키르의 배를 주물럭거린다.
그러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은근한 목소리로 비키르를 꼬신다.
“그래. 이 좋은 몸뚱이를 가지고 오늘 밤 그냥 침대로 가실 텐가?”
“그럼 뭘 어디로 가나.”
“이봐 비키르. 몸뚱이는 말야, 죽으면 썩어서 그저 한낱 흙으로 돌아갈 뿐이라고. 우리는 이 젊고 팔팔한 몸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지. 응? 너 정도면 공익을 위해서라도 그게 맞아.”
튜더는 비키르의 공익적인(?) 몸을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산쵸가 그런 튜더를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결국 밤에 몰래 여자 기숙사로 놀러 가자는 말을 참 길게도 돌려 말하는군. 너는 명색이 영웅 지망생이라는 녀석이 그런 말을 하나?”
“영웅본색이라는 말이 있지. 영웅은 본디 색을 좋아하는 법.”
튜더의 말에 옆에 있던 피기가 소심하게 거든다.
“영웅호색 아니야?”
“하하하! 아무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칠 레이디를 만나는 것은 기사의 로망! 그 누가 나를 잘못되었다 욕하리오!”
튜더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산쵸와 피기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나? 칠흑 같은 밤과 삼엄한 경계를 건너, 성벽의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 그녀들을 만난다는 것이! 방해꾼 용만 없었지 이거 완전 기사도 문학 아니겠나! 아시다시피, 우리 아카데미의 기숙사 역시도 남녀 기숙사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지. 이번 기회가 아니라면 4년 동안 영영 여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밤을 보낼 수가 없어!”
“어어, 만나서 뭘 하는데?”
“그래 피기! 좋은 질문이다! 뭘 하냐면…… 그냥 술 먹고 노는 거지! 술 게임도 하고! 조금 더 진솔한 이야기들도 주고받고! 어!?”
“흐음. 술 게임? 누구 하나가 쓰러져 죽을 때까지 주량을 겨루는 건가?”
“정말 산쵸스러운 의견이군. 여자애들이랑 그딴 게임을 왜 해!? 그런 무식한 북방식 술 게임 말고, 랜덤 게임을 하거나 진실 게임을 하거나 뭐 그런 거 말이다!”
북방 출신인 산쵸는 밤에 술을 마실 때 늘 땀내 나는 사내들과 함께해본 경험밖에 없었던지라 튜더의 말에 제법 흥미를 드러냈다.
피기 역시도 지금까지 한 번도 동년배 여자들하고 제대로 말해 본 적 없었던지라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튜더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난 찬성이긴 한데, 여자애들이 나를 좋아할지가 문제로군. ……색욕에 눈이 먼 근육돼지라고 생각할 수도.”
“후후, 이봐 산쵸. 여자애들도 남자애들과 생각하는 것은 비슷하단다. 이미 낮에 마음 맞는 레이디 한 명과 입을 맞춰 놨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가면 그녀들이 몰래 뒷문을 열어 우리를 맞이해 주기로 했다.”
“나, 나도 가도 돼? 너무 민폐만 끼치지는 않을지…….”
“핫하! 사람은 많을수록 좋지! 그래야 들켰을 때 처벌도 나눠 받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피기! 자신감을 가져라! 너는 통통 귀염상이라서 은근히 수요가 많다고!”
대화가 잘(?) 풀려간다.
이윽고, 산쵸와 피기를 포섭하는 데 성공한 튜더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비키르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튜더는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음. 비키르. 우리가 4인 1실을 같이 쓰고 있으니만큼…… 최대한 너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해 보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마지막 밤의 추억을 위해 한 번쯤 일탈을 경험해 보는 것도…….”
“가지.”
“에이 너무 그렇게 딱 잘라 말하지 말…… 어?”
튜더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산쵸와 피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비키르는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해두었다.
“가자. 여자 좋지.”
“…….”
이 세상에서 제일 매치가 안 되는 표정과 대사였다.
튜더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지금 여자애들이랑 결투하러 가는 거 아닌 거 알지? 친목이야 친목.”
“안다.”
비키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산쵸와 피기도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비키르. 어디 아픈 것은 아니겠지? 아프면 말해라. 북방에서 자라나는 약초로 만든 나의 연고는 정신까지도 아물게 만든…….”
“비, 비키르. 네가 웬일이야? 평소에는 여자에 아무 관심 없었……?”
물론 친구들의 걱정처럼 비키르는 평소 여자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 왔다.
비키르가 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오늘 밤이 악마를 죽일 최적의 기회이다.’
마침 달도 뜨지 않은 밤, 야음이 도래한 세상이야말로 밤의 사냥개의 사냥터로 딱이다.
비키르는 철부지 남녀들의 밀회를 핑계로 기숙사를 빠져나갈 것이고 삼엄한 경계의 빈틈을 찾아낼 것이다.
만약 암살행을 나서다가 조기에 발각되었을 경우 다른 남학생들의 핑계를 댈 수도 있겠다.
그 나이대 남자애들이 으레 그렇듯, 그 나이대 여자애들도 으레 그렇기 마련이고 청소년들의 풋풋한 사랑을 보는 어른들은 으레 관대한 미소를 짓기 마련이니까.
튜더는 지체 높은 귀족 출신이고 산쵸와 피기 역시 어엿한 아카데미의 학생들인 만큼 신원 보증 역시도 확실하다.
아마 비키르가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들킨다고 해도 여학생들의 숙소를 찾다가 길을 잃었다는 핑계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튜더는 신이 난 채 오늘의 계획을 브리핑했다.
“좋았어! 비키르가 동참했으니 우리 방 남자애들은 전원 참석 오케이. 다른 방 녀석들까지 합치면 은근히 머릿수가 좀 되겠는데? 일단 우리는 자정을 알리는 시계탑의 종소리가 들려오면 바로 화장실에 가는 척 하고 복도로 나가서…… 천장의 배기구를 따라…… 수도관을 타고 올라가면…… 여자 기숙사의 1층 화장실 창문의 걸쇠가 망가져 있을…… 비상구 쪽으로 올라가면 여자애들이 오늘의 접선 장소의 방 호수를 쪽지에 적어서 화분 밑에…….”
어린애들이 세운 밀회 계획이라기에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철저했다.
비키르는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이 풋내 나는 일탈 계획에 어울려 주었다.
이 밀회 계획에 참여하는 남학생과 여학생들의 수가 많을수록 시선을 분산시킬 여지도 많았다.
“……이렇게 해서. 오늘 밤, 당직 사감들이 교대하는 순간이 빈틈이다. 점호가 끝나면 모이고 자정 종이 울리면 출발하자고.”
솜털 보송보송한 하룻강아지들은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일탈에 신이 나서 끙끙거린다.
그리고.
이 작은 털뭉치들 사이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숨긴 노련한 사냥개 한 마리가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