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술게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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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 위에 백색의 성이 지어졌다.
성녀가 이끄는 백색의 대군은 드넓은 천하 곳곳에 철옹성과 같은 성채를 짓고 군데군데 작은 요새들을 거점으로 삼아 영토를 넓혀나갔다.
아마추어 5단의 실력자 돌로레스는 바둑판 위에서 패왕으로 군림한다.
견고하기 그지없는 철벽의 수비와 점진적이고 확실한 공격은 전 국토를 백빛으로 하얗게 물들여 가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되었어야 하는데?
“으음.”
돌로레스는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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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고 깨끗한 순백의 철옹성.
잡티 하나 없이 고결한 이 백색의 성채에 아까부터 자꾸 시커먼 악의 무리들이 침입해 들어오고 있었다.
비키르. 그리고 비키르가 이끄는 검은 대마(大馬)들은 여러 줄기로 나뉘어 백색의 성채를 공략한다.
실낱같은 틈을 기가 막히게 파고 들어와 안쪽을 온통 초토화 시켜놓고 반대쪽 틈을 뚫고 나가는, 흡사 검은 기병대와도 같은 그 신출귀몰한 움직임 앞에 돌로레스의 성기사단은 속수무책이었다.
‘이, 이건 2급의 기력이 아니야. 이 녀석 나를 속였어!?’
돌로레스는 최대한의 잔여 병력을 끌어모아 성벽을 강화했다.
거점과 거점을 조금 더 촘촘하게 이었고 네 귀퉁이를 선점한 요새 역시도 성벽을 더욱더 두껍게 쌓았다.
그러나 흑색 창기병대는 이번에도 순백의 성벽을 뚫고 그것을 잔혹하게 짓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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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이었던 곳은 어느덧 텅 비게 되었고 그 자리는 검은색으로 채워진다.
‘아, 안 돼! 더 이상 들어오게 하면……!’
돌로레스는 최대한의 병력을 끌어모아 성채의 벽을 강화하고 요새의 활로를 확보했다.
최후의 보루. 마지노선. 지킬 수만 있다면 무조건적인 승리를 보장하는 알토란 같은 땅.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킬 수만 있다면’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이번에도 역시 비키르의 검은 군사들이 독니를 드러냈다.
마치 송곳과도 같은 모양새로 흰 벽을 무너트리고 안쪽까지 찔러 들어와 내부를 온통 유린해 놓는 검은 기운들.
돌로레스가 그토록 굳건하게 지켜오던 안쪽의 흰 국토는 결국 온통 비키르가 남겨 놓은 검은 자국으로 점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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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결국 호구(虎口) 안, 검은 사냥개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아다리.”
비키르는 성녀의 팔을 입에 넣었다.
이제 턱에 힘을 주어 깨물면 그녀의 오른팔은 뚝 끊어질 것이다.
왼팔, 그리고 오른쪽 다리, 왼쪽 다리, 몸통, 나아가 목까지도 결국 같은 운명에 처해지게 되었다.
대마들의 전멸을 목전에 둔 돌로레스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아무리 고민해도 저 검은 괴물의 아가리에서 탈출할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벌써부터 패배감이 엄습해 온다.
그리고 돌로레스는 도저히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원래 모든 바둑인은 승부사 아닌가.
그녀는 초읽기에 들어간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몇 번이나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난 돌로레스에게.
“장고 끝에 악수 두는 법입니다.”
비키르의 정신계 공격까지 이어졌다.
한편, 비키르는 속으로 조금 놀라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서는 이 정도 수준이 아마 5단인가.’
돌로레스의 실력이 형편없다기보다는 자신의 실력이 예상보다 뛰어난 축인 듯싶다.
비키르는 회귀하기 전 지루한 대치가 이어지는 전장에서 상당히 많은 이들과 바둑을 둔 경험이 있었다.
그때 바둑을 잘 두던 병장 한 명이 이렇게 말했었다.
‘기력이 어떻게 되냐구요? 저는 한 1급쯤 둡니다. 물론 전쟁 전에 평가받은 기준이지만요.’
그는 비키르 정도 되면 한 2~3급은 될 것이라 했었다.
자기가 1급이고 비키르의 실력은 자기보다 약간 처지는 정도이니 말이다.
‘하기야. 마계와의 멸망전이 벌어진 이후에는 기력을 공인받을 기관이나 대회들이 없었지.’
그래서일까? 비키르는 자기 자신이 한 2급쯤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된 검증을 받는다면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급수가 나올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딱!
마지막 돌이 판 위에 깔림과 동시에 돌로레스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졌어.”
불계패(不計敗). 집 계산의 의미조차 없다.
그러자 주변에서 탄성 소리가 이어졌다.
“와! 성녀님이 바둑으로 지시는 거 처음 봐!”
“회장님은 유년시절 신문에도 나오셨었잖아요? 바둑 신동으로.”
“콜로세오에 바둑 동아리가 있을 때도 마탑의 바둑 동아리랑 바랑기안의 바둑 동아리를 단신으로 학살하셨던 분이 우리 부장님인데…… 어떻게 이런.”
상대가 돌로레스인지라 다들 말이 조심스럽다.
원래대로라면 ‘찢어지셨다’, ‘개쳐발리셨다’ 등등의 가혹한 평가가 이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결과였다.
비키르가 막 판 위를 정리하려 할 때.
“자, 잠깐만! 한 판! 한 판만 더 해 줘! 이번에는 속기로!”
돌로레스가 두 손을 뻗어 비키르의 손에 매달렸다.
본디 모든 바둑인은 승부사, 특히나 천재라 불리는 이들은 더욱 그렇다.
돌로레스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분야에서만큼은 승부욕이 남달랐던 것이다.
결국, 비키르는 돌로레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승부는 속기(快棋). 룰은 간단하다. 다음 수를 고민할 때 3초 안에 결정할 것.
그렇다면 한 판을 두는 데 걸리는 시간도 획기적으로 단축되게 된다.
비키르와 돌로레스는 다른 학생들의 술자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돌로레스의 침대 앞쪽으로 아예 자리를 옮겨 버렸다.
하지만 학생들은 술잔을 든 채 그 뒤를 졸졸졸 따라와 대국이 벌어지는 판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아무래도 관전하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
“의외로 되게 재밌네. 바둑이란 거.”
“그러게, 아버지가 두시는 거 볼 때는 지겨웠는데.”
“나 잘 모르는데. 방금 부장님이랑 비키르가 팽팽하게 뒀던 거야?”
“나도 잘 모르지만…… 방금 전의 승부가 팽팽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알겠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전장(戰場), 또다시 성녀의 백과 비키르의 흑이 사납게 맞붙는다.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판에 번갈아 깔리는 흑과 백.
그리고 이내 비키르의 입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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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패불청(萬覇不聽).”
그 말을 듣는 순간 돌로레스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뒤집어엎을까?’
지난 십수 년 동안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폭력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을 느낀 돌로레스는 이번에도 역시 잔뜩 위축된 목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졌어.”
그러자 숨도 쉬지 못하고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주위 학생들이 그제야 탄성을 내뱉는다.
싱클레어가 식은땀을 훔치며 말했다.
“나도 바둑 꽤 잘 둔다고 생각했는데…… 형의 수는 도무지 읽을 수가 없네.”
피기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비키르의 스타일이 요즘 스타일이 아니야. 현재 기사들 중에 이렇게 두는 사람 아무도 없어. 분명 정석도 없고 수순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두지?”
한편, 돌로레스 역시도 복기를 하면 할수록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바둑의 기본은 ‘집을 짓는 것’이다.
하지만 비키르는 집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엄청난 난전(亂戰), 그야말로 개싸움.
비키르는 자기 집을 짓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집을 부수는 것에만 올인했다.
뒤가 없는 사람처럼 미친 듯이 물어뜯고 또 물어뜯는 비키르의 공격에 결국 돌로레스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던 것이다.
“…….”
비키르는 울상이 되어 고개를 떨군 돌로레스를 보고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전에도 말했듯,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전쟁을 겪어 본 사람을 평생 이해할 수 없다.
멸망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는 집을 짓거나 가정을 꾸리는 것 따위는 무의미했다.
언제 악마들의 습격을 받아 일가족이 몰살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전장을 떠돌아다니며 적의 근거지를 먼저 파괴하는 것만이 사는 길, 그것만이 유일한 활로(活路)였다.
그런 분위기와 기세, 가치관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것이 바로 비키르의 기풍(棋風)이었지만 그것을 돌로레스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이 알 리 없었다.
“어우, 나는 바둑 잘 모르는데도 얘가 미친개처럼 둔다는 것은 알겠다.”
“광견 스타일이라…… 뭐, 나름대로 매력 있네.”
튜더와 비앙카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작 돌로레스 본인에게는 주변의 이런 수군거림들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원래 누구나 보드게임 하나쯤에는 자부심이 있기 마련이다.
……한번 제대로 임자 만나 털리기 전까지는.
그렇게 해서 한번 탈탈 털리고 나면 원래 있던 세계가 통째로 뒤집어지기 마련.
아무리 그동안 무패의 전적을 자랑했다고 하더라도 패배 한 방에 모든 자신감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결국 돌로레스는 이번에도 벌주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끄윽.”
탄산음료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트림이 나온다.
돌로레스는 볼록 튀어나온 아랫배와 트림을 감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때.
딸꾹!
웬 딸꾹질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뭐지? 설마?”
돌로레스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주변의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다들 헤실헤실 웃는 얼굴들이 발갛게 물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돌로레스는 재빨리 탄산음료가 든 유리병의 라벨을 확인했다.
그러자 역시, 음료수라고 하기에는 뭣할 정도의 알코올이 함유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너희들 날 속였구…… 딸꾹!”
돌로레스 역시도 얼굴이 점점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몸이 뜨겁고 땀이 난다.
어느덧 빈 술병들이 수북하게 쌓인 방 안, 얼굴이 빨갛게 물든 남학생들과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점점 더운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저벅- 저벅- 저벅-
문밖에서 난데없는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돌로레스는 방금 전까지 몰려오던 취기가 싹 가시는 것을 느꼈다.
“사, 사감이 온다!”
돌로레스의 말을 들은 방 안의 모두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마치 찬물이라도 한 바가지 뒤집어쓴 사람들 같았다.
“병! 일단 술병들부터 숨겨!”
“아앗! 천장 판넬이 갑자기 안 열려! 우르르 나가기엔 창문은 너무 좁고!”
“그럼 남자애들 어디다 숨겨!?”
“침대! 이불 속으로 들어가 다들!”
“하, 하지만 남녀가 유별하거늘 어찌?”
“지랄 말고! 꼴에 남자라고…….”
“닥치고 불 꺼! 불부터 끄라고 빨리!”
다들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철컥!
방문을 열쇠로 여는 소리가 들렸다.
끼기기긱-
사감이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