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술게임 (3)
…철컥!
여자 기숙사를 담당하는 여자 사감이 문을 열고 방 안을 들여다본다.
“이상하다? 분명 무슨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조용한 방, 어둠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는 창문 밖에는 먹구름이 천천히 드리우고 있을 뿐이다.
색색-
귀를 기울여 보면 작은 숨소리들이 들린다.
사감은 학생들이 깨지 않도록 주의하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
다들 조용히 침대 위에서 자고 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채로.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던지라 사감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하지만 그녀는 모를 것이다. 그녀는 결코 잘못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제로, 지금 침대에 누워 있는 이불 덩어리들의 속에서는 꽤나 기묘한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야, 좀 떨어져- 너무 붙잖아.’
‘여기서 어떻게 떨어지냐? 퇴학당할 일 있어?’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비앙카.
그리고 그녀의 아래에는 지금 튜더가 빳빳한 자세로 깔리듯 누워 있었다.
그 둘은 원래 앙숙인 만큼 이런 상황에서도 티격태격 싸우고 있었다.
‘아 젠장! 왜 하필이면 네가 내 침대로 들어온 거야!’
‘상황이 급박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더러우니까 귓가에 대고 속삭이지 마! 입김 닿잖아!’
‘쉿! 이러다 들키겠어!’
튜더와 비앙카는 터질 듯 쿵쾅거리는 심장을 서로의 가슴팍에 대고 꾹 억눌렀다.
둘 다 슬쩍 고개를 들자 흰 이불 건너편으로 달빛을 받은 사감의 그림자가 옅게 투과되어 보인다.
‘……히익!’
튜더도 비앙카도 바로 지척까지 다가온 사감의 그림자에 놀라 서로 바짝, 더더욱 바짝 달라붙었다.
평소의 원한도 잊고 서로 꽉 끌어안은 둘.
덕분에 조금 이상할 정도로 봉긋 솟아올랐던 이불 덩어리의 높이가 약간 낮아지긴 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모든 침대에서도 공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이었다.
한편.
‘…….’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돌로레스는 방금 전의 상황을 회상하고 있었다.
……어디 보자, 일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더라?
문이 열리기 몇 초 전, 그녀는 촛불들을 싹 꺼 버리고는 재빨리 침대로 뛰어들었다.
모든 일은 찰나의 순간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방의 원래 주인인 여학생들이 자기 침대로 뛰어들었고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남학생들이 그런 여학생들을 따라서 침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위로 이불이 덮인 뒤 불이 꺼졌다.
돌로레스는 비상한 관찰력과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천재이기에 불이 꺼지기 직전, 어떤 남학생이 어떤 여학생의 침대로 들어갔는지를 정확히 떠올릴 수 있었다.
‘분명 튜더가 비앙카의 침대로, 피기가 싱클레어의 침대로, 산쵸가…….’
남학생과 여학생의 얼굴들이 번갈아 머릿속에 떠오른다.
다행이 남녀 성비가 딱 맞아 여학생 한 명이 남학생 한 명을 숨겨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돌로레스 역시도 한 명의 남학생을 침대로 숨겨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 침대에는?’
돌로레스는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남학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비키르.
그 무심한 표정을 떠올리자 순간 돌로레스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제 곧 그가 자기가 있는 이불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자 왠지 심장이 거칠게 쿵쾅거렸다.
‘으아아, 어떡해! 어떡해!’
지금껏 한 번도 이래 본 적이 없어서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돌로레스는 이불 귀퉁이를 잡은 두 손아귀가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을 느끼며 두 눈을 꽉 감았다.
…….
……한데?
시간이 지나도 비키르는 이불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쯤 되자 오히려 애가 타는 것은 돌로레스 쪽이었다.
곧 사감이 들어올지도 모르는 이 급박한 상황에 그는 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
돌로레스는 이불을 살짝 내리고 고개를 들어 침대 바깥을 보았다.
참고로 그때 비키르는 가만히 선 채 천장의 귀퉁이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됐군.’
애송이들은 적당히 취했고 적당히 즐겼다.
이제 다들 침대에 누워 자거나 기숙사로 돌아가겠지.
비키르는 이때를 노려 천장의 구멍으로 탈출해 퀼티를 암살할 생각이었다.
이쯤 됐으면 알리바이도 충분히 만들었으니까.
‘어차피 이대로 사라져도 겁먹고 남자 기숙사로 돌아갔겠거니 생각하겠지.’
따라서 비키르는 모두의 시선을 피해 사라지는 타이밍을 지금으로 잡았다.
그렇게 막 천장을 향해서 몸을 날리려고 할 때.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비키르의 옷자락을 잡는 손이 있었다.
성녀 돌로레스. 그녀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으로 비키르를 잡아끌고 있었다.
“……어?”
비키르조차 함께 당황할 정도로 돌로레스는 당황해 있었다.
그녀는 식은땀 범벅인 얼굴,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동자로 비키르의 옷자락을 잡고 자신의 이불 속으로 끌어당겼다.
“잠깐, 잠…….”
비키르가 뭐라고 변명할 시간도 없었다.
이불이 확 덮어졌고 비키르는 돌로레스의 몸 위로 엎드리게끔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끼이익……
방문이 열리고 사감이 들어온 것이다.
* * *
“내가 잘못 들었나?”
이불 밖, 머리맡에서 사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돌로레스는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외쳤다.
‘아니요! 잘 들으셨어요! 죄송해요! 제가 죄송해요!’
그런 돌로레스의 위에는 비키르가 납작 엎드려 있다.
현재 둘은 서로의 코끝이 맞닿아 살짝 구겨질 정도로 가깝게 맞붙어 있었다.
‘……하.’
비키르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악마를 참살할 기회는 다시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마당에 이곳에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야 하다니.
하지만 비키르의 한숨은 돌로레스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나 보다.
‘뜨, 뜨거워!’
타인의 숨결이 와 닿은 귓가가 불태워지는 듯 뜨거워진다.
성녀는 전신이 간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리고 동시에, 큰 시련 하나가 돌로레스를 덮쳤다.
요의(尿意).
아까 바둑에 져서 탄산음료, 아니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아까부터 트림이 나오고 배가 볼록하다.
그런 마당에 비키르가 몸으로 아랫배를 무겁게 누르고 있으니 마려운 것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돌로레스는 신이 아니라 이불 바깥에 서 있는 사감을 향해 속으로 간절하게 외쳤다.
‘제발 빨리 돌아가 주세요!’
하지만 방 안 모두의 염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감은 방안을 계속 둘러보고 있었다.
“으음, 조금 건조하군. 아카데미의 봉사자 님들이 목 아프시면 안 되지. 바닥에 물을 조금 뿌릴까?”
“창문이 바람에 덜컥거리네. 혹시나 잠귀가 밝으신 분들이 깨실라.”
“방 온도는 적절한가? 너무 추우신 것은 아니겠지? 다들 이불을 푹 덮고 주무시는 것을 보니 추우신가?”
사감의 따듯한 배려가 역설적으로 모든 이들을 더욱 더 고난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특히나 이불 속에서 오줌을 참고 있는 돌로레스의 경우에는 더욱더 말이다.
‘화장실! 화장실만 보내 준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돌로레스는 이를 악물고 온몸에 힘을 콱 주었다.
그리고 비키르는 돌로레스의 때 아닌 악력(?)에 당황해야 했다.
‘……?’
돌로레스는 양 허벅지로 비키르의 허리를 꽉 힘주어 조이고 있었다.
요의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비키르로서는 충분히 영문 모를 일.
비키르가 막 돌로레스에게서 몸을 살짝 떼어 놓으려 할 때.
…탁!
돌로레스가 두 손을 올려 비키르의 등을 잡았다.
도리도리-
그녀는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제발 떨어지지 말아 줘!’
눈빛으로 말해요. 뭐 그런 거다.
지금 아랫배를 누르고 있던 비키르가 몸을 움직인다면 그 조금의 무게 이동으로도 신체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비키르는 돌로레스의 이 필사적인 시선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스럭-
비키르가 돌로레스의 배에서 몸을 떼는 순간.
‘새…… 샜다.’
돌로레스는 몸에서 힘이 약간 풀리는 것을 느꼈다.
위에 올라타 있는 비키르가 이 사실을 눈치챘을까? 만약 눈치챘으면 어떻게 하지?
‘아, 아니야. 눈치 못 챘을 거야.’
기껏해야 하반신이 아주 조금, 극미량 젖은 정도이다.
옷도 있고, 이불도 있고, 땀도 났고, 상황도 워낙 급박하고 하니 눈치 못 챘을 것이다.
돌로레스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과 흐릿해지는 시야로 무아지경에 빠져 가고 있을 때.
…쾅!
돌로레스의 머리 위, 침대의 기둥 부근을 후려치는 손바닥이 있었다.
사감. 그녀가 돌로레스의 침대 바로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별안간 들려온 그 큰 소리에 방 안 모두가 얼어붙었다.
특히나 바로 앞에서 그 소리를 들은 돌로레스의 놀람이 가장 컸다.
흰 이불 너머로 달빛에 비친 사감의 그림자가 아주 가깝게 바싹 드리워져 있었다.
들켰나? 결국 들켜 버린 것일까?
1초가 1년 같은 침묵 속에 방안의 시간이 흐른다.
…….
이윽고, 사감이 혼자 중얼거렸다.
“……어머? 날이 더워서 그런가, 이 날씨에 모기가 있네.”
손바닥을 든 그녀는 아차 싶어 말을 이었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어휴, 이렇게 큰 소리를 내다니. 봉사자님들 죄송해요오-”
사감은 이미 잠든 그녀들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보이며 뒤로 물러났고 이내 방 밖으로 호다닥 나가 버렸다.
끼이익- 쿵!
문이 닫히고 사감의 발소리도 복도 저편으로 멀어진다.
약간의 침묵 후, 침대 위의 이불들이 비로소 하나씩 젖혀지기 시작했다.
“후아- 들키는 줄 알았네.”
“나 진짜 쫄았어. 그래서 약간 울었어.”
“스릴 넘쳤다 이건 진짜. 하하!”
남학생 여학생들이 하나 둘씩 침대 위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
“…….”
튜더와 비앙카처럼 서로를 죽일 듯 쏘아보며 얼굴만 붉히고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유쾌한 헤프닝 정도로 생각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여기에 단 한 명. 이번 일이 유쾌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 ……! ……! ……! ……!”
성녀 돌로레스. 아카데미의 학생회장.
사감이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만은 아직 이불을 걷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
식은땀이 비 오듯 나고 눈이 뱅글뱅글 돌며 시야가 뿌옇게 점멸한다.
……저질렀다. 저질러 버렸다.
이미 하반신에서는 뜨듯하고 축축한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바둑에 져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양도 장난이 아니다. 이것은 땀이나 습기라고 우길 수도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축축함.
심지어 그 술에 비타민이 많았나 색깔마저도 하필……
애초에 본인의 침대와 이불, 옷만 버렸으면 상관없겠는데 바짝 붙어 있던 비키르의 바지까지 완전히 다 적셔 버렸으니 도저히 숨길 수도 없다.
게다가 냄새는 또 어쩔 것인가?
이 사실이 바깥에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 쌓아 왔던 고고하고 자애로운 학생회장의 이미지는 간 곳이 없어질 것이다.
앞으로 졸업까지 약 2년. 그동안 어떤 별명이 따라붙게 될지는 뻔한 일이었다.
‘오줌싸개.’
얄짤없다. 돌로레스는 아마도 수년간은 이 별명 때문에 고생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는 신앙성가 쿼바디스가의 명예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요 가문 내의 정적들에게 있어서도 좋은 핑계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돌로레스는 앞으로 펼쳐질 부정적인 미래를 예견하고는 울상을 지었다.
그래서일까? 모든 학생들이 이불을 걷고 침대 밖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도 이불 속에서 훌쩍이고 있었다.
당장 몸 위에 올라타 있는 비키르의 얼굴을 어찌 봐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말이다.
……바로 그때.
파악!
이불이 가차 없이 젖혀졌다.
비키르가 돌로레스를 밀어내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한 점의 망설임도, 자비도 없는 단호한 움직임으로.
‘아!’
돌로레스는 정말 끝이구나 싶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비키르는 더러운 것이 몸에 묻은 것에 대해 불쾌함을 표할 것이고 방 안 분위기는 급속도로 어색해질 것이다.
분위기가 완전히 망쳐진 상태로 술자리가 파할 것이고 이제 수많은 가십거리들이 생산되겠지.
머릿속이 온통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식은땀은 이미 전신을 축축하게 적셨다.
몸이 뜨겁고 혓바닥이 말을 듣지 않는다.
‘……확 뛰어내려 버릴까?’
돌로레스가 창문을 바라보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고 있을 때.
그녀의 정신을 퍼뜩 돌아오게 만드는 한 마디가 있었다.
“술자리는 이제 파하지.”
비키르의 나직한 중저음이 모두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튜더가 침대 밑에서 남은 술병을 꺼내며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밤은 이제 시작인데! 술게임은 지금부터지!”
“아니. 여기서 끝낸다.”
“……?”
비키르가 이렇게 자기주장을 강력하게 펼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튜더도 산쵸도 피기도 고개를 갸웃한다.
그때.
비키르가 이불을 완전히 걷고 모두의 시선 앞으로 나섰다.
축축하게, 그리고 노랗게 젖어 버린 바지.
그것을 본 모두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자연스럽게, 비키르의 하반신을 향해 머물렀던 시선은 침대 위 돌로레스의 하반신으로 향했다.
마찬가지로 축축하게, 그리고 노랗게 젖어 버린 침대와 이불.
방안에 존재하는 모든 남녀의 표정이 경악에 젖는다.
돌로레스는 화살처럼 떨어져 내리는 모두의 시선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좌절, 절망, 수치, 자괴, 비통, 절규, 그 모든 것들의 무저갱 속으로 한없이 곤두박질치는 자신의 자아를 느끼며.
…….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돌로레스를 확 잡아끄는 구원의 동아줄이 있었다.
“내가 술 먹고 오줌을 싸 버렸거든.”
비키르의 손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