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7
17화 독식(獨食) (4)
‘됐다.’
비키르는 책을 덮었다.
책의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외워 버렸다.
어찌나 집중해서 암기했던지 눈을 감고도 줄줄 암송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 거꾸로도 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성과는 바로 나타났다.
스슥- 슥- 사삭!
비키르는 책에서 배운 대로 수도(手刀)를 세워 허공에 검격을 그려 보았다.
첫 번째 이빨이 날카롭게 그려진다.
그리고 이내 두 번째, 세 번째 이빨.
여기까지는 8살의 몸으로도 가능했다.
키릭!
이윽고 네 번째 이빨이 그려졌다. 회귀 이전에 주특기로 썼던 바스커빌 제 4식이었다.
하지만.
…팟!
비키르의 손은 바스커빌 4식을 넘어 한 번 더 날카로운 궤적을 그린다.
제 5의 이빨. 크기가 조금 작고 뭉툭하기는 했지만 분명 다섯 번째 이빨이었다.
바스커빌 제 5식(五式).
그것이 비키르의 손에서 불안정하게나마 재현된 것이다!
“……세상에.”
비키르는 자기가 방금 움직인 손짓을 몇 번이나 다시 해 봤다.
결과는 모두 성공.
비록 어린아이의 작은 손과 짧은 팔인지라 검의 궤적이 제대로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분명 느껴진다.
다섯 번째 이빨이 자라나고 있었다.
“……어디 칼 없나?”
지금 이곳에 칼이 있었더라면 바로 아우라를 불어넣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고 안에 칼이 있을 리가 만무한 노릇.
그렇다고 손목의 동맥 속에 잠들어 있는 바알제붑을 끄집어내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뭐, 아무튼.
눈물이 날 듯 기뻤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확 치솟아 올라 목젖을 걷어차는 기분.
이 벅찬 기분을 비키르는 필사적으로 진정시켰다.
‘이제 마나만 받쳐 준다면 무조건 전생의 경지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겠군.’
검술로만 따지자면 이미 전생의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격조 높은 것을 습득했다.
비단 5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10식까지 강화가 가능하니만큼 미래의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한 검술이었다.
비키르는 눈을 감고 체내의 마나를 확인했다.
스틱스 강의 가호를 받아 넓어진 마나홀에는 지금도 천천히 마나가 쌓이고 있는 중이다.
정확한 경지를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이번 심득을 통해 비키르의 경지는 확실히 한 차원 높아졌다.
‘……그래듀에이터!’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서 그래듀에이터 초급으로 올라섰다.
칼끝에 액체형 아우라를 피워올릴 수 있는 그래듀에이터는 소드 익스퍼트와는 그 격이 다르다.
그래듀에이터들은 칼끝뿐만이 아니라 칼 전체에 아우라를 휘감을 수 있으며 이 아우라는 액체처럼 밀도가 높고 형태에 있어 그 변화폭이 꽤나 자유롭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래듀에이터의 액체형 아우라 블레이드가 소드 익스퍼트의 기체형 아우라 블레이드와 부딪치게 되면 수증기와 물이 부딪치는 것만큼이나 뚜렷한 우열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듀에이터들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육체능력을 가지고 있는 전투병기들.
이들의 숫자가 곧 가문의 위상을 견인하며 나아가 제국의 군사력을 상징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비키르는 회귀하기 전 30세의 나이에 이 경지에 이르렀었다.
……그리고 회귀 이후, 현재 비키르의 나이는 불과 8세.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발전이었다.
어지간한 칼잡이들은 평생 닿아보지도 못하는 꿈의 경지.
마법사로 따지자면 아마 4서클 마스터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아마 바스커빌 가의 근 백년을 통틀어도 이 나이에 이 정도 성취를 이룬 이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검술의 분위기도 확 바뀌었군.”
기존에 비키르가 사용하던 검술은 ‘찌르는 송곳니’ 검술로 바스커빌가의 사냥개들이 기본적으로 익히는 검술이었다.
찌르는 송곳니 검술. 그중에서도 4식.
비키르는 적의 급소를 송곳처럼 찌르는 네 개의 송곳니로 그간 수많은 사선들을 뚫고 나왔었다.
하지만 찌르는 송곳니 검술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컸다.
실전에 써먹을 수 있게끔 빠르게 강해지지만 그만큼 성장의 한계가 명확하다.
또한 적을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대신에 본인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도 컸다.
즉 버리는 카드로 쓰기 위한 사냥개들에게나 가르칠 만한 것이 바로 이 ‘찌르는 송곳니’ 검술인 것이다.
그러나, 비키르가 이번에 익힌 검술은 뭔가가 다르다.
‘도사리는 매복치’, 이름부터가 음흉하고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이 검술은 자신의 힘과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천천히 움직인다.
짐짓 아무 일도 없는 척, 어찌 보면 우아하고 기품 있게 느껴지는 칼의 선율.
하지만 그 속에는 상대방에게 최악의 고통을 선사하고자 하는 악의가 물씬 깃들어 있다.
일단 한번 찌르는 것에 성공하고 나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느껴질 정도로 잔혹한 연계공격들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광기 어린 맹공격,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은 철저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공방일체의 완벽한 검술 ‘도사리는 매복치’인 것이다.
“힘을 숨기기에도 딱 좋군.”
비키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도사리는 매복치는 일견 보기에는 찌르는 송곳니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
그렇기에 검술 실력을 숨기는 것 역시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검술 이름부터가 ‘매복치(埋伏齒)’니까.
비키르는 주위를 둘러본 뒤 지켜보는 시선이 없다는 것을 끝까지 확인했다.
더 높은 경지에 올라섰다는 것에 대한 고양감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윙윙윙-
귓가에 들리는 파리 날갯짓 소리.
손목을 내려다보니 바알제붑이 검은 송곳 끝을 삐죽 내밀고 있다.
“들어가 있어.”
비키르는 바알제붑이 함부로 이빨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호되게 꾸짖었다.
한편으로는 이 바알제붑이 현재의 실력에 어느 정도나 영향을 끼칠지도 냉정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비키르 반 바스커빌.
나이 8세.
4개의 이빨을 안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검술 실력, 묽은 액체 수준으로 구체화된 아우라의 경지를 종합하면 그래듀에이터 초급의 실력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전생의 닳고 닳은 실전감각, 거기에 불안정하게나마 그려낼 수 있는 다섯 번째 이빨과 몬스터의 스킬을 흡수할 수 있는 마검 바알제붑의 힘이 더해진다면 충분히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해낼 수 있겠다.
‘마음만 먹으면 그래듀에이터 중급자까지는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암살이라면 100%, 정면승부라면 50% 정도의 확률이리라.
“……문제는 실력을 어디까지 공개하느냐로군.”
불과 8살의 나이에 그래듀에이터에 이르렀다고 하면 누가 믿어줄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실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원래 세상을 살아갈 땐 힘의 30% 정도는 숨겨야 하는 법.
“…….”
비키르는 8살의 어린아이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적절할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곧 답을 내렸다.
휴고에게 적당히 기대감을 심어주면서 실속을 빼 먹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주변의 적들을 너무 경계하게 만들지 않을 정도의 경지.
아예 힘을 숨겨 가면서 답답하게 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적당히 힘을 드러내야 휴고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기회가 생긴다.
‘가령 지방 파견이라거나, 아카데미 입학이라거나 말이지.’
비키르는 이곳 서고를 나가자마자 휴고에게 결과를 보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증명의 시험대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미 계산을 끝내 놓았다.
이윽고.
비키르는 주머니에서 독서용 돋보기 하나를 꺼내 오랜 시간을 창가에 두었다.
츠츠츠츠츠……
‘도사리는 매복치’ 검술교본의 표지는 돋보기를 거친 빛을 받으며 점점 검게 변해 간다.
화르륵!
곧 피어오르는 불씨.
비키르는 타들어 가는 검술교본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바스커빌 10식의 무리를 담은 검술서는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
오로지 비키르의 머릿속에만 남아 있을 뿐.
멀리서 하인들이 허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이게 무슨 냄새야!”
“킁킁, 잡서 칸이다!”
“보존마법도 안 걸려 있는 구역인데! 으아아!”
물동이를 들고 허둥지둥 뛰어온 하인들은 미안한 표정의 비키르와 마주했다.
“미안. 내가 돋보기를 아무데나 두는 바람에……. ‘굳이 꼭 보고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집사에게는 내가 잘 말할게.”
비키르의 말을 들은 하인들은 당치도 않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휴, 도련님께서 사과하실 일은 아니지요.”
“도련님을 똑바로 보필하지 못한 저희 잘못입니다요.”
“그나마 잡서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서 다행입니다 헤헤.”
하인들은 비키르가 했던 말 중 ‘굳이 꼭 보고해야 하는 일이라면’에 주목하는 듯했다.
비키르는 바닥에 널브러진 잿더미를 보며 말했다.
“뭐, 별 가치도 없는 잡서였어. 그냥 처음부터 없었던 셈 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너희들도 알다시피, 집사가 요즘 모르그 가와의 루비 광산 분쟁 건 때문에 꽤 바쁘잖아? 이런 시시콜콜한 문제에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겠어.”
그 말에 하인들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앗! 네네 그러신 것 같더라구요.”
“저희 같은 아랫것들이야 뭐 늘 윗분들 기분이 편안하시길 바랍죠.”
“도련님께서만 눈감아 주신다면야 저희야 뭐, 아휴~”
그들로서도 귀찮은 보고를 생략할 수 있어서 좋은 일이다.
“그래. 안 그래도 서고 청소하느라 일이 많을 텐데 미안해. 불탄 책은 내가 내용을 기억하고 있으니 적당히 다시 필사해서 채워 놓을게.”
비키르는 마무리까지 확실하게 한 뒤 돌아섰다.
‘좋은 분이시다. 하인들 입장까지 생각을 다 해 주시고, 다른 애들한테도 이 미담을 알려 줘야지.’
‘헉! 야! 그럼 책 탄 것도 말해야 하잖아!’
‘그냥 칭찬만 하면 되지! 착하고 인상 좋으시다고!’
경지에 오르며 한층 더 예민해진 청각.
뒤에서 하인들이 작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큰 관심은 없었다.
서고에서 나가자마자 있을 휴고의 부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