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애완 뽀시래기 (2)
“…….”
비키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때 목숨을 걸고 싸웠던 과거의 호적수를 떠올렸다.
위험등급 : S
크기 : ?
발견지 : 적과 흑 산맥 10부 능선
-일명 ‘수해의 마담’. 자세한 종족명은 불명(不明)이다.
먼 옛날 유극지옥(油極地獄) 심층에 서식했던 가장 극악한 존재들 중 엄청나게 거대한 몸집을 지닌 거미들이 있었는데 ‘마담 여덟다리’는 태고 적에 살았던 그 커다란 거미들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먼 후손으로 추측된다.
몸 안은 온통 역겨운 독으로 가득 차 있으며 강철보다도 질긴 그물망은 유계의 지옥불을 제외한다면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다.
천하의 비키르조차도 전투 도중 몇 번이나 죽을 뻔했던 위험한 초고위마물이었다.
이 거대한 여왕거미는 지옥을 주름잡던 고대의 악마들조차도 상대하기 부담스러워해 따로 심연의 심층부 한 구석에 그녀들이 살아갈 독립적인 공간을 보장해 줬을 정도,
……그리고, 지금 비키르의 눈앞에는 그 무시무시한 거미가 남긴 마지막 후손이 있다.
[끼잉- 끵-]비키르의 손에 볼을 부비적거리는 동그란 먼지 덩어리 같은 존재.
복슬복슬한 털에 대충 그린 낙서처럼 성의 없이 돋아난 두 개의 다리로 앉거나 걸어 다니는 녀석.
‘마담의…… 새끼?’
마담 새끼, 혹은 새끼 마담.
이 작고 하찮은 녀석은 지금 비키르의 손등에 하얀 침을 묻히며 핵핵거리고 있었다.
하는 짓만 보면 영락없는 강아지 꼴이다.
“……알일 때 늑대가 품어 키워서 그런가?”
이래서 태교가 중요하다고 하는 거구나.
왜 임산부들이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외국어 강의나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끈적-
비키르는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방금 전 새끼마담이 핥은 곳에 하얗고 끈적한 점액이 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공기중에 닿자 이내 실낱처럼 가늘게 굳어 버린다.
“……이건 거미줄인가? 엄청나게 단단하군.”
비키르는 새끼마담이 입에서 뿜어낸 충사(蟲絲)를 늘어트려 보았다.
일반적인 거미줄은 동일한 양의 강철보다 인장강도가 훨씬 높고 탄력성도 우월하다.
더군다나 새끼마담은 무려 마담 여덟다리의 자손, 녀석이 뿜어낸 거미줄은 그야말로 최강의 와이어였다.
…뚝!
비키르가 상당한 아우라를 끌어올려 잡아당기고 나서야 실은 겨우 끊어졌다.
대충 뽑아낸 소량의 실이 이 정도다.
“탄성, 강도도 모두 강철의 수십 배 이상인가. 심지어 접착력까지 있으니…….”
심지어 일반적인 거미줄은 불에 힘없이 녹아내리는 데 반해 이것은 화염 저항력 또한 매우 높다.
‘하긴. 나도 케르베로스의 지옥불이 아니었더라면 이 거미줄을 끊어 내지 못했겠지.’
비키르는 마담 여덟다리와의 전투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끼잉- 끵- 헥헥!]한편, 새끼마담은 계속해서 비키르의 손등에 몸을 부비적거린다.
어미가 없어서 그런가 처음 본 상대의 애정을 갈구하는 듯한 움직임.
비키르는 문득 녀석이 가엾다는 생각을 했다.
‘네 어미는 실로 무서운 괴물이었단다.’
자신이 낳은 알들을 가차 없이 먹어치우던 그 게걸스러운 모습을 떠올리니 차라리 새끼마담에게는 어미와 생이별하는 쪽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아무튼.
각인 효과 때문인지 알에서 깨어나 제일 처음 본 비키르를 잘 따르는 새끼마담이다.
그때.
꼬로록-
새끼마담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비키르의 손등 위에 엎어졌다.
“……배고프냐?”
[핵핵핵-]시무룩해지는 검은 먼지뭉치.
제빵사가 실수로 까맣게 태워먹은 슈를 보는 듯한 외형이다.
‘그나저나. 이 녀석은 뭘 먹여야 하나?’
곤충을 먹여야 할까? 아니면 고기를?
비키르는 서랍에서 비스킷 몇 개와 소금에 절인 햄 한 덩어리, 식어버린 시금치 파이 한 조각을 꺼내 들었다.
전부 다 피기가 야식용으로 사서 비키르에게 나눠 준 것들이었다.
하지만.
[옴뇸뇸……]새끼마담은 비스킷과 햄을 그리 맛있게 먹지 않았다.
그저 주니까 예의상 입만 대는 수준.
심지어 시금치 파이는 입에 대자마자 퉤- 하고 뱉어 버리기까지 했다.
“……까다로운 녀석일세.”
비키르는 새끼마담을 왼쪽 손등에 올라오게 만들었다.
착!
녀석은 마치 손목시계처럼 비키르의 손등 위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개의 다리가 손목을 감싸며 붙들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손목시계였다.
“좋다. 네 먹이를 찾아보러 가자.”
비키르는 바로 기숙사의 방문을 나섰다.
하지만 갈 만한 곳이 많지는 않았다.
일단은 도서관. 정보를 얻기 좋은 장소이다.
비키르는 기숙사에서 나와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공원을 끼고 있는 도서관의 커다란 정문을 지나 로비로 들어가니 이윽고 콜로세오 아카데미가 자랑하는 거대한 서고들이 눈에 들어온다.
끝도 없이 놓인 높은 책꽂이들에는 온갖 종류의 장서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비키르는 자연/생물/마물 쪽 코너로 가서 책을 찾기 시작했다.
“거미…… 거미…… ㄱ…….”
비키르가 선반들을 하나하나 훑어보고 있을 때.
“앗! 비키르 형아!”
건너편 책장의 틈으로 동그란 눈동자 두 개가 보인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흰 머리칼의 소녀 하나가 이쪽을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싱클레어.
그녀가 호다닥 앞으로 가더니 책장 코너를 돌아 비키르를 향해 걸어왔다.
순둥순둥한 강아지 같은 모습, 만약 그녀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지금쯤 맹렬하게 흔들리고 있을 것이리라.
“형아가 도서관 오는 거 처음 보네.”
“음. 종종 온다. 너를 만난 것은 처음이지만.”
“공부하러 왔어? 아니면 책 대출?”
그렇게 묻는 싱클레어의 가슴팍에는 도서관 사서임을 증명하는 표찰이 붙어 있었다.
비키르는 잘됐다 싶어 물었다.
“혹시 거미에 관련된 책 있나?”
“아, 거미를 죽이는 방법이 궁금해? 그야 해충 퇴치 항목을 검색해 보면 쭉 나오지! 왜? 방에 거미 나와?”
음. 거미가 나오긴 하는데…….
그때, 비키르는 왼쪽 손목이 움찔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르릉……]새끼마담이 대충 그어진 낙서 같은 눈썹을 찡그려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름 위협적으로 보이려 소리까지 낸다.
비키르는 손목을 슬쩍 뒤로 감추며 질문을 정정했다.
“거미 퇴치 말고. 거미를 키우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아아, 거미 브리딩? 저어~쪽에 관련된 책들이 있기는 하지. 형아가 키우게? 거미 좋아해?”
“별로 좋아하지는 않…….”
비키르는 무심코 대답하려다가 멈추고 잠시 왼쪽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탄 빵조각이 울먹이는 눈으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았지만 이제부터 좋아질 것 같아서.”
“그래? 거미를 좋아하는구나 형아는…… 신기하네.”
싱클레어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비키르를 연신 돌아본다.
그녀의 질문은 거미 키우는 법이 적혀 있는 책을 찾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형아는 거미가 왜 좋아? 털이 많아서? 다리가 많아서? 눈이 많아서? 그러면 지네나 노래기, 그리마, 전갈도 좋아해? 딱정벌레 같은 건 어때? 곤충 종류를 다 좋아하는 건가? 아, 거미는 곤충이 아니지 참.”
참 궁금한 것도 많은 소녀라고 비키르는 생각했다.
‘원래 이렇게 재잘재잘거리는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평소 공부만 하는, 말 없고 조용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조금은 의외였다.
이윽고, 비키르는 책 몇 권을 대출받아서 조용한 곳으로 나왔다.
“……어디 보자. 거미를 키우는 방법.”
비키르는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온도와 습도 조절이 중요…… 곰팡이에 약하며…… 조명은 없어도 되고…… 허물을 벗을 시 각별히 유의…… 털갈이 시기는 개체마다 상이하며…… 배변훈련은 인내심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주위 환경의 영향을 잘 받으니 알일 때부터 태교와 조기교육에 신경 쓸 것…… 대형 거미의 경우 산책 시 꼭 입마개를 착용시키는 것이 매너…….”
지극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흐음. 유아식으로 작은 곤충이나 고기조각 등을 주라고 나와 있는데. 왜 이 녀석은 안 먹는 거지?”
비키르는 왼쪽 손목의 새끼마담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꼬르륵-
지금 이 순간에도 새끼마담은 시무룩한 자세로 늘어져 있었다.
그때.
비키르는 마지막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신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일부의 ‘비범한’ 거미들은 유체 시절 ‘독’을 먹으며 자란다.
“……독을 먹는다고?”
비키르는 뒷페이지를 넘겼다.
위대한 핏줄을 타고난 어린 거미의 경우 평생을 살아가며 어떤 독을 섭취했는지에 따라 그 결과값이 다르게 도출된다.
강한 독을 많이, 다채롭게 섭취했을 때에만 훌륭한 어른 거미로 자라날 수 있다.
반면 약한 독이나 다양하지 못한 독만 꾸준히 섭취했을 경우 아무리 많은 양을 섭취했다고 해도 덩치를 불리는 것에 한계가 있는 듯 보인다.
“그런가. 독을 먹이로 삼는가.”
비키르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새끼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자 검붉은 핏방울이 배어난다.
마담 여덟다리의 강력한 독이 깃들어 있는 피였다.
하지만.
[엑- 웩-]핏방울을 입에 댄 새끼마담은 바들바들 떨더니 또다시 옆으로 픽 쓰러져 버렸다.
“이 자식. 이번엔 뭐가 문제냐?”
비키르는 또다시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단,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의 경우 약한 독부터 차근차근 섭취해야 한다.
나이를 먹고 몸이 커지며 점점 강하고 다양한 독을 섭취하게 된 거미는 수많은 독들의 강점만을 한 데 취합시킨 맹독을 품게 되며 이내 지역 생태계의 정점으로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긴 어미의 독이 세기는 셌지.”
마담 여덟다리의 독은 확실히 전에 보지 못했던 맹독이었다.
강력한 산성에 신경독, 출혈독, 피부독, 근육독, 위장독, 악취독, 격통독, 호흡독, 원형질독 등등이 가진 최악의 특성들이 모조리 한 데 섞여 있지 않은가.
알에서 갓 부화한 새끼마담이 소화하기에는 확실히 버거운 독이었다.
“알겠다. 조금 더 약한 독을 구해 주도록 하지. 그때까지는 벌레로 참아라.”
비키르가 날아다니는 나비 하나를 잡아 주자 새끼마담은 기운 없는 표정으로 그것을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주인이 주는 것이라 일단 받아먹기는 한다만 그래도 노골적으로 맛없어 하는 기색.
바로 그때.
“비키르! 여기에 있어!?”
저 멀리서 피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키르가 고개를 들자 이내 이쪽으로 달려오는 피기의 모습이 보인다.
피기는 손에 신문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비키르! 큰일났어!”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나?”
“어떻게 알긴! 너 가는 곳이 맨날 기숙사, 교실, 동아리실, 도서관, 식당, 체력단련실뿐이잖아! 아,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거 봤어!?”
피기는 헐떡이는 숨을 고른 뒤 비키르의 눈앞에 신문기사를 들이밀었다.
“너 이제 완전 스타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