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백발구십구중(百發九十九中) (2)
팽팽한 긴장감 속.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펑!
비키르의 활이 화살을 뱉어냈다.
그것은 직선에 가까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이내 과녁을 노크한다.
…푹!
한데? 꽂히는 소리가 조금 이상하다.
비앙카는 두 눈을 의심했다.
“……6점?”
너무 놀라서 말이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줄곧 비키르를 의식하고 있었음을 남들에게 들켰다는 사실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비앙카.
하지만 모여든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반응이었기에 다행스럽게도 들키지는 않았다.
“엥? 뭐야, 지금 빗나간 거야?”
“뭐…… 6점도 점수이긴 점수인데…….”
“아, 아깝다! 실수했나 보네!”
“에이, 어쩌면 역대급 신기록 탄생이었는데. 마지막에 망쳤네.”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수군거린다.
비키르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듯 조용히 활을 내려놓았다.
화살이야 나중에 밤이 되었을 때 수거하는 직원이 따로 있으니 굳이 회수할 필요는 없다.
이윽고.
삐빅-
비키르의 기록이 저 앞에 있는 마나 전광판에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10점샷 143개, 그리고 맨 마지막에 쐈던 6점샷이 1개.
이로서 비키르가 쏜 화살은 총 144발, 기록한 점수는 1440점 만점에 1436점이 되었다.
10점샷 141개, 9점샷 3개를 쏜 비앙카의 1437점보다 단 1점이 떨어지는 기록이었다.
1점 차이로 승리를 거머쥔 비앙카는 기쁘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마지막에 6점 뭐지? 그동안 쭉 10점만 맞히던 녀석이 마지막에 왜? 갑자기 집중력이 흐트러졌나?’
솔직히 마지막에 X10을 쐈을 때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그만큼 비키르의 기세는 파죽지세였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이겨 버리고 나자 오히려 의구심만 들 뿐이다.
사람들은 쉽게 모여든 만큼 쉽게 흩어졌다.
“에이, 김샜다. 연습이나 하러 가자.”
“그래도 평민 출신이 저 정도면 엄청난 거긴 한데.”
“하지만 신기록이라는 것은 그만큼 깨기 어려운 거지.”
“애초에 운이 좋았던 거 아냐? 과녁이 좀 가까웠다거나.”
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아무렇게나 주워섬기며 제각기 갈 길을 간다.
하지만.
“…….”
비앙카는 비키르가 자리를 뜰 때까지, 그리고 모든 어중이떠중이 구경꾼들이 사라질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는 주위의 시선이 모두 사라졌을 때쯤 아무도 없는 사로의 끝으로 건너갔다.
과녁들에는 수많은 화살들이 지저분하게 꽂혀 있는 것이 보인다. 이것들은 매일 밤 통행금지 시간 이후 직원들이 수거하게 되어 있다.
비앙카는 비키르의 과녁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 녀석, 그렇게 적은 마나보유량으로 어떻게 아카데미에 들어왔나 했더니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나? 비키르는 과연 필기만 잘하는 샌님이 아니었다.
그러나 비앙카는 평민 출신이 귀족 출신만큼이나 성과를 냈다는 사실에 귀족 특유의 질투나 시기심을 품지 않았다.
다만 호승심과 승부욕을 불태울 뿐.
‘하기야, 그때 납달리 끝나고 옷 벗은 거 봤을 때 잔근육들이 장난 아니었지. 혹독한 단련의 흔적이야.’
활이라면 적은 마나량으로도 충분히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마나량이 적어도 분배만 잘 해 가면서 원거리 딜을 넣어 준다면 동료들에게 충분히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뭐, 남자에게는 관심 없지만…… 그 녀석은 확실히 조금 특이하긴 해.’
비앙카는 턱을 짚은 채 과녁에 꽂힌 화살들을 분석했다.
비키르의 과녁 정중앙에는 굵은 원기둥이 하나 솟아나 있었다.
수많은 화살들이 한 곳에만 촘촘하게 뭉쳐 박혀 있었기에 기둥처럼 보이는 것이다.
모두 다 10점 안에 박혀 있는 화살들.
개중 몇 개는 뒤에서 온 화살들 때문에 여러 조각으로 쪼개져 너덜거린다.
하지만 그것들은 비앙카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단 한 발의 오발탄.
비앙카는 비키르의 과녁 가장자리 부근의 파란 선에 박혀 있는 화살 한 대에 주목했다.
맨 마지막에 쐈던 6점 샷. 이것 때문에 비키르는 무려 4점을 손해 보았고 그 때문에 자신에게 1점 차로 패했다.
물론 비키르 본인이야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비앙카는 그것이 못내 궁금했다.
‘왜 마지막에 6점을 쐈을까?’
집중력이나 체력이 떨어진 결과라고 보기에는 미심쩍다. 그 전의 점수들이 워낙에 좋았기 때문이다.
‘원래 활이 한순간의 집중력에 당락이 갈리는 무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이건 좀 심하잖아?’
하지만 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비키르의 집중력이나 체력이 마지막까지 버텨 주지 못했기에 끗발이 떨어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쳇, 마지막에 싱겁게 끝나 버렸네. 은근히 괜찮은 상대였는데 말야.”
비앙카는 혀를 차며 돌아섰다.
……돌아서기 직전, 비앙카의 눈에 들어온 무언가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응?”
시력 좋은 비앙카는 비키르의 과녁에서 시선을 떼기 직전 뭔가를 발견하고는 멈춰 섰다.
그것은 비키르가 마지막으로 쏜 6점짜리 화살, 파란색 선에 꽂혀 있는.
비앙카의 시선은 그 화살 끝에 닿아 파르르 떨린다.
화살이 뚫은 구멍에 삐죽 튀어나와 있는 작은 실선.
그것은 분명 곤충, 모기와 같은 아주 작디작은 벌레의 다리였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비앙카의 목이 바싹 타들어간다.
그녀의 시선은 과녁의 10점 칸에만 무수히 박혀 굵은 기둥을 만들고 있는 화살들의 무리와 그 무리에서 혼자만 뚝 떨어져 6점에 가 박혀 있는 화살 한 대를 번갈아 향하고 있었다.
혼자만 외떨어져 박혀 있는 딱 한 발의 오발탄.
하필 그 자리에 모기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 * *
비키르는 화살을 모두 다 쏜 즉시 연무장을 벗어났다.
‘마나를 쓰지 않고 하는 육체 단련이 진짜지.’
계속 팔 근육을 썼더니 상반신 전체가 뻐근하다.
발락의 전사들에게 배운 활쏘기 기술은 나날이 진보하고 있었다.
수해를 나와서도 쉬지 않고 계속 연습했기에 그렇다.
‘어디 가서 활로 밀려서는 안 돼.’
설사 그 상대가 신궁비가의 유력 후기지수라고 해도 그렇다.
그것이 이역만리 먼 타국에서도 전사부족 ‘발락’의 자긍심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비키르는 엄연한 발락의 사냥장 출신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다들 잘 있으려나?’
발락 부족이 원래의 근거지를 버리고 수해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는 풍문은 들었다.
최근 씬디웬디를 통해 발락 부족의 근황을 듣고는 있었지만 그것도 벌써 몇 개월은 지난 것 같았다.
간만에 활을 맘껏 쏘고 나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밤의 여우 아퀼라 족장, 늘 티격태격하던 아훈, 귀염둥이 여동생 아휼, 이제는 아버지가 된 바키라 등등…….
지난 2년간 함께 뒹굴며 울고 웃던 원주민 친구들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보고 싶은 저녁이다.
‘그리고 한 명 더 있지.’
비키르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날의 비 내리던 밤이 떠오른다.
‘……또 봐.’
여전히 어눌했던 제국어였다.
아이옌. 정글을 떠나던 그 날 배에 주먹을 날린 직후 입을 맞추어 오던 그녀.
비키르는 목에 찬 초커를 쓰다듬었다.
이 질긴 목줄은 그녀가 직접 채워 놓은 것으로 비키르와 아이옌이 처음으로 함께 사냥했던 옥스베어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때.
머릿속에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옅게 미소 짓던 비키르는 순간 자리에 멈춰 섰다.
저벅- 저벅- 저벅-
저 앞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기감이 유독 예민한 비키르는 그것이 돌로레스의 기척이라는 사실을 귀신같이 눈치챘다.
‘귀찮게 됐군.’
돌로레스는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만나면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을 위험이 있었다.
하필이면 숨을 곳도 별로 없는 오솔길, 길쭉한 물푸레나무들만 일직선으로 세워져 있는 산책로인지라 딱히 몸을 피할 수 있는 곳도 없었다.
비키르는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하던 끝에 품을 뒤졌다.
/ 복면
-동족상잔(同族相殘) +0
-인면수심(人面獸心) -Off
검은 개의 머릿가죽을 벗겨 놓은 듯한 두건.
비키르는 그것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순간.
츠츠츠츠츠……
비키르의 몸이 개로 변했다.
나이에 걸맞게, 아직 덜 큰 까만 새끼강아지로 말이다.
핵핵핵-
벗겨진 옷가지들을 대충 수풀 속으로 밀어 넣은 비키르는 땅바닥에 가만히 앉아서 돌로레스가 산길을 지나가길 기다렸다.
이윽고, 돌로레스가 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인지 잰걸음으로 총총총 빠르게 걸어오는 돌로레스, 그녀는 궁술 연무장을 향해서 부지런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연무장에 볼일이 있나? 거기에는 인적이 드문데.’
비키르가 기억하기로는 연무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그들 중 딱히 돌로레스가 찾을 만한 이들은 더욱 없었다.
있다면 비앙카 정도?
‘그래. 비앙카를 만나러 가는가 보군. 빨리 가라.’
비키르는 저도 모르게 자꾸만 입 밖으로 나오는 혀를 핵핵거리며 바닥에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
방에 두고 온 새끼마담과 비슷한 리액션이다.
바로 그 순간.
“어머?”
돌로레스가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는 가뜩이나 순해 보이는 두 눈을 더욱 더 순하게 뜨고는 이쪽을 내려다본다.
비키르가 엎드려 있는 바닥이었다.
“얘. 너는 누구니?”
돌로레스의 다정한 부름에 비키르는 약간 당황했다.
그래서일까? 늘 재빠른 비키르도 돌로레스의 기습적인 손길에는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와아, 털 부드러운 것 좀 봐. 오구오구~”
돌로레스는 손으로 비키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이내 볼과 턱까지 긁어 준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비키르의 등과 엉덩이를 주물주물거렸다.
“우와 정말…… 너 충격적으로 귀엽구나? 너처럼 귀여운 애는 처음 봐. 이름이 뭐야? 어디서 왔어? 같이 사는 사람 없으면 언니랑 같이 살래?”
‘…….’
비키르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돌로레스는 두 손을 뻗어 비키르의 양쪽 겨드랑이 밑으로 넣고 들어 올렸다.
“영차~ 앗? 언니가 아니라 누나였네?”
‘…….’
순간.
비키르는 멸망의 시대를 살아가던 때에도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미증유의 수치감을 느꼈다.
돌로레스는 순하고 착해 보이는 겉모습과 잘 어울리게도 상당한 애견가였다.
많지 않은 수입을 쪼개서 유기견들과 유기묘들을 보호하는 센터에도 매년 후원을 하고 격월로 봉사활동도 나간다고 들었다.
바로 그때.
실로 무시무시한 언행이 돌로레스의 입에서 나왔다.
“참. 너 누나랑 같이 살려면 중성화해야 하는…….”
비키르는 이 섬뜩한 언행을 계속 듣고 있을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고 판단, 빠르게 도주했다.
호다닥-
돌로레스의 품에서 벗어나 쏜살같이 도망치는 까만 털뭉치.
살짝 빼문 핑크색 혓바닥이 야무지다.
“앗! 얘~ 그러지 말고 누나랑 같이 가자! 누나가 돈가스 사 줄게! 얘 초코야!”
돌로레스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벌써 지어 놓은 이름까지 부르고 있었지만 비키르는 단 한 순간도 뒤돌아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