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8
18화 드러난 이빨 (1)
“그래. 심득이 있었느냐?”
휴고 레 바스커빌.
그는 서고에서 나온 비키르를 곧장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비키르가 나올 시간 무렵의 스케줄까지 비워 놓고 기다린 것으로 보아 상당한 기대를 품고 있는 듯했다.
첫째아들과 둘째아들을 제외하면 그가 자식에게 이렇게 신경 쓰는 것을 비키르는 처음 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들뜨거나 당황할 이유는 없다. 전생의 비키르는 지금의 휴고만큼이나 나이가 많았으니까.
“약간은요.”
“호오.”
눈에서 이채를 발하는 휴고.
서고에 들어간 지 고작 하루, 무언가를 얻었을 리는 없다.
또래의 바스커빌들은 이제 막 마나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단계, 아직 제대로 된 실전을 겪어 보지도 못한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불과 8세의 아이가 상위의 검법서를 보고 무엇을 느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휴고는 그 자신조차 근원을 알 수 없는 미증유의 기대감으로 몇 번째 출생인지조차 모를 눈앞의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고 안에서 무엇을 느끼고 이해했느냐?”
“그것은 음…… 따듯하고…… 뾰족하며…… 날카롭고…… 물렁물렁하고…… 파근파근한? 그런 거요.”
“…….”
휴고는 손으로 잠시 머리를 짚었다.
어린아이의 대답이란 으레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
그러나, 경지에 이른 무인의 감일까? 휴고는 비키르의 두서없는 단어 나열 속에서 불현듯 무언가를 알아들었다.
“……설마.”
휴고는 자기가 중얼거려 놓고도 이내 고개를 미약하게 저었다.
아우라(Aura).
본격적으로 칼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증표.
세간의 평범한 칼잡이들은 죽을 때까지도 진입하지 못하는 영역.
철혈검가 바스커빌의 신동들이라고 해도 쉬지 않고 훈련하여 15세는 되어야 도달할 수 있는 수준.
그것이 바로 ‘소드 익스퍼트 초급’의 경지이다.
휴고는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렸다.
불과 8살의 어린아이다. 자신은 지금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고는 눈앞에 있는 아들의 마알간 민낯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휴고를 조급하게 만들어 입을 열게끔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 아비에게 보여 줄 수 있겠느냐?”
바스커빌가의 모든 인간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진짜 경지를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
제아무리 부모자식, 형제지간이라고 해도 그렇다. 그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
때문에 8살 난 아들을 대할 때에도 휴고는 조심스러운 어조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휴고의 고민은 비키르의 해맑은 대답에 너무도 쉽게 풀어져 흩어졌다.
“물론이죠.”
* * *
바스커빌가의 연무장.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는 이 널찍한 평지의 중앙에는 어린아이 하나가 홀로 우뚝 서 있다.
체구에 맞는 숏소드를 길게 늘어트린 채 눈을 감고 있는 비키르.
휴고가 비키르의 수준을 테스트 해 본다고 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연무장으로 몰려들어 그 광경을 구경했다.
“쟤가 스틱스 강에서 7분 잠수했다는 걔지?”
“뭐 요람에서 독사 두 마리를 목 졸라 죽였다더만.”
“이번 실기평가 때는 케르베로스를 잡아왔단다.”
의외로, 휴고는 몰려드는 구경꾼들의 시선을 막지는 않았다.
다만 연무장 한가운데에 있는 비키르를 지그시 바라볼 뿐이다.
휴고의 옆에 서 있던 베리모어 집사가 물었다.
“가주님. 도련님의 실력 테스트를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적당한 마물을 하나 상대하게 해볼 생각이다.”
휴고는 이 와중에도 냉혹했다.
불과 8살의 아이를 상대로 마물을 풀다니.
이윽고. 비키르의 테스트 상대가 될 마물이 도착했다.
수호기사들이 끌고 오는 마물은 녹색 피부에 큰 덩치를 가진 몬스터였다.
위험등급 : C
크기 : 2m
발견지 : 적과 흑 산맥 저지대
-인간과 비슷한 외모와 지성으로 유사인류종으로 지정된 존재.
강인한 육체와 낮은 지능, 뛰어난 번식력으로 부락을 이루어 서식하며 그 위험도는 야만족과 비교해 결코 낮지 않다.
오크. 무기를 들지 않은 평범한 성인 남성 네다섯 명에 필적할 만한 전투력을 가진 마물이다.
몸 전신이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타고난 강골, 면역력과 회복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
바스커빌에 의해 생포된 이 오크는 과거 전쟁광 부족의 일원이었던 것답게 온 세상을 증오하고 미워할 준비를 마쳐 놓은 상태였다.
주변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흐음. 아무리 그래도 8살 애한테 오크는 조금…….”
“오크라 하면 최소 15세는 되어야 상대할 수 있을 텐데.”
“뭐, 여차하면 수호기사들이 나서겠지.”
제아무리 철혈검가 바스커빌의 인원들이라 해도 이번 매치는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
하지만 휴고는 별다른 말없이 매치를 진행시켰다.
이윽고.
…철그럭!
구속구에서 풀려난 오크가 연무장 한가운데로 해방되었다.
수호기사들의 창과 칼에 밀려난 오크는 이빨과 잇몸을 훤히 드러낸 상태로 침을 흘리며 중앙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칼을 든 비키르가 서 있었다.
[크아아아악!]오크는 두 손을 쫙 펼친 채 비키르에게 달려들었다.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8세 유아, 그리고 이로 인한 방심.
하지만 비키르는 몸을 낮게 숙여 오크의 두 손을 피한다.
체급과 신장 차이를 노린, 대단히 노련한 움직임이었다.
“호오?”
휴고의 눈에 이채가 어린다. 다른 바스커빌들의 시선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비키르는 주위의 놀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바로 다음 동작을 연계했다.
사뿍!
칼을 들고 그대로 공중제비를 돌아 버린 것이다.
비록 8세 어린아이라고는 하나 몸무게가 꽤 나간다.
비키르의 체중이 완전히 다 실려 있는 칼은 오크의 한쪽 손목을 그대로 잘라 버렸다.
[그워어억!?]오크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자각하지 못했다.
눈앞에 있던 상대가 갑자기 꺼지듯 사라지고 손목까지 떨어져 나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오크가 미처 현실을 깨닫기도 전에 다음 현실이 가혹하게 몰아닥쳤다.
오크의 손목을 자르고 사타구니 밑으로 빠져나온 비키르는 그대로 오크의 발목마저 절단했다.
쿵!
오크가 손목이 잘려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발목도 잘려나가 쓰러진 뒤다.
주변에 정적이 흐른다.
바스커빌가의 모든 이들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쟤가 8살이라고?”
“저 피지컬이 어떻게? 무슨 백전노장 같은데?”
“마나도 안 끌어올리고 저게 가능했던가. 나는 저 나이 때 뭐했지…….”
연무장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시간이 갈수록 불어난다.
심지어 수호기사들이나 하인들도 와서 구경하고 있을 정도로 판이 커졌다.
하지만.
“…….”
오로지 휴고만은 여전히 입을 다문 채 말이 없다.
물론 비키르는 휴고의 반응을 이해했다.
‘아직 서고에서 깨우친 게 무엇인지 보여 주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방금 오크의 손목과 발목을 날린 것은 정말로 그냥 피지컬이다.
아직 서고에서 깨달은 것은 보여 주지도 않았다.
이윽고.
비키르는 심호흡을 한 뒤 칼을 가볍게 퉁겼다.
약 4kg. 어린아이가 들기에는 꽤나 무거운 숏소드이지만 비키르의 손에 들리자 마치 강아지풀처럼 휘둘러진다.
그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거늘, 비키르는 또 하나의 경악할 만한 연출을 선보였다.
…파앗!
칼끝이 희미하게 빛난다.
그 빛의 정체를 눈치챈 바스커빌가의 모든 이들이 입을 한데 모아 경악했다.
“아우라 블레이드!?”
소드 익스퍼트를 상징하는 기체형 아우라.
그것이 비키르의 칼끝에서 도깨비불처럼 으스스한 빛을 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혈액을 장작삼아 태우는 것처럼 시뻘건 아우라.
바스커빌가의 상징과도 같은 살기(殺氣)의 집약체.
그것을 본 오크는 본능적으로 겁을 집어먹고는 뒤로 물러난다.
놈은 오크라는 몬스터가 가진 특유의 스킬 ‘고속재생’으로 손목과 발목의 상처를 치료하려 했으나.
/ 송곳
-1슬롯: 화상(火傷) -케르베로스(A+)
-2슬롯: 출혈(出血) -헬하운드(B+)
-3슬롯: 고속재생 -시궁쥐 노르베기쿠스(F)
안타깝게도 비키르의 몸속에 깃들어 있는 바알제붑의 능력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헬하운드의 출혈 스킬은 오크의 고속재생 스킬을 압도했다.
이제 오크는 지옥의 사냥개가 가진 이빨의 필멸적인 힘을 고스란히 다 느끼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피가 나지 않을 정도의 얕고 경미한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피를 끄집어내게 되며 보통의 상처보다 훨씬 더 오래 출혈이 지속된다.
손목이나 발목이 잘려나갔다면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꿀꺽… 꿀꺽… 꿀꺽…
숏소드에 묻은 피가 천천히 사라져 간다.
바알제붑의 힘이 깃든 숏소드는 아귀처럼 오크의 피를 탐했고 오크는 저항 한번 해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혈액을 조공으로 바쳐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뿌욱!
비키르의 칼이 휘둘러졌다.
그리고 연무장에 모여든 모든 사람들은 보았다.
허공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섬뜩한 송곳니 하나를.
바스커빌 제 1식(一式).
‘찌르는 송곳니’ 하나가 뚜렷하게 드러나 오크의 목덜미에 깊게 박혔다.
당연하게도 오크는 그 순간 바로 숨통이 끊어졌다.
지옥불에 타는 듯한 격통과 함께.
바스커빌가의 15세 청소년들이 보일 법한 무위를 여과 없이 드러낸 비키르.
당연히 주변에서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미친. 나는 여덟 살 때 마나를 느끼지도 못했었는데.”
“나는 그때 손바닥 위에 겨우 마나 덩어리 빚고 그랬지.”
“저 녀석은 완벽한 익스퍼트 초급으로 보이는데? 세상에, 이게 가능한 일인가?”
지금까지 최연소 소드 익스퍼트의 기록이 14살이었던 마당에 8살이라니.
천재들만 모여 있다는 검가 바스커빌에서도 전무후무했던 일이다.
베리모어 집사가 경악과 흐뭇함이 혼재된 표정으로 말했다.
“……추, 축하드립니다 가주님. 희대의 천재가 출현했군요. 가문의 흥복입니다.”
“……으음.”
휴고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베리모어는 보았다. 콧수염 아래 가려진 휴고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것을.
자식 칭찬은 아무리 해도 모자라지 않은 법인지라 베리모어는 내친 김에 조금 더 말을 보탰다.
“성인 남성 네다섯 명과 겨뤄도 힘으로 밀리지 않는 것이 오크 아닙니까. 세상에, 8살배기가 그런 오크를 저리도 가볍게 죽이다니. 제국의 어떤 가문을 통틀어도 이런 천재는 다시 없을……”
“크흠. 그만하게 집사.”
휴고는 낯간지럽다는 듯 베리모어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짐짓 언짢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오크가 좀 이상하더군.”
“예?”
“오크 하면 뛰어난 재생력이 특징인데 아까 저놈은 피가 안 멎었잖아. 갑작스레 대량의 피가 빠져나가니 필연적으로 둔해질 수밖에 없지. 비키르 녀석의 칼에 독이라도 발라져 있었던 건가?”
“에이, 그럴 리가요. 수호기사들이 확인하고 넘겨준 칼입니다. 그냥 평범한 것이죠.”
“크흠. 그럼 오크가 많이 약해져 있었나 보군.”
하여간 도무지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줄 모르는 남자라니까.
베리모어는 옅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아무튼. 바스커빌가에 희대의 천재가 나타난 것만은 맞다.
불과 8세의 나이에 완벽한 소드 익스퍼트 초급자가 된 어린 전사.
휴고를 포함한 모두가 이 성과에 상당히 놀라고 있을 때.
“잠깐만요.”
비키르가 모든 이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휴고는 돌아서려다 말고 멈춰서 비키르를 바라본다.
둘의 시선이 한데 마주쳤다.
비키르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크 말고 더 큰 것 없나요?”
묻고 더블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