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9
19화 드러난 이빨 (2)
바스커빌가에 나타난 희대의 천재.
불과 8세의 나이에 완벽한 소드 익스퍼트 초급자가 된 어린 전사.
“오크 말고 더 큰 것 없나요?”
비키르의 말에 연무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바스커빌가의 일원들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관심이 없는 냉정한 족속들이지만 단 하나, 전투에 관해서는 항상 늘 관심이 많다.
그것은 냉혈한 휴고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흐음.”
휴고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 휴고를 보는 비키르 역시도 생각했다.
‘적당한 선까지는 힘을 드러내는 편이 낫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일을 크게 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주 어릴 때 성과를 드러내는 것이 휴고의 경각심을 덜 부추길 것이다.
또 어릴 때 가능성을 드러내 놔야 휴고의 감시망에서 떨어져 지낼 핑계를 만들 수도 있었다.
가령 오지로의 파견이라거나 제국 수도로의 유학이라거나.
‘……아니면 아카데미 입학도 있겠지.’
세 번째는 별로 내키지 않는 패였기에 일단 보류, 비키르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일단 지금은 지금에 집중할 때다.
한편, 휴고 역시도 고민을 끝낸 모양이다.
“비키르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한창 실전 감각을 키워야 할 나이지.”
불과 8살의 아이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바스커빌가 내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휴고는 말을 이었다.
“먼 곳에서 채집해 온 오크가 내 아들의 성에 안 차는 모양이다. 가문 내 채집장에 더 상위의 마물이 있는가?”
누가 보면 곤충채집통에서 더 좋은 벌레라도 찾는 줄 알겠다.
하지만 바스커빌가의 채집장에 들어있는 마물들은 하나같이 다 흉악하기 그지없는 것들뿐.
8세의 아이가 상대하기에는 택도 없는 것들만 드글거린다.
그걸 아는지라 베리모어 집사를 비롯한 모두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아랫것들의 침묵을 견디다 못한 휴고가 먼저 생각을 밝혔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야만인들을 토벌할 당시 실험용으로 잡아온 개체가 하나 남아 있지 않던가?”
“……네. 딱 한 마리 남아 있습니다.”
베리모어 집사는 별 수 없이 사실대로 대답했다.
휴고가 피식 웃었다.
“오랫동안 먹이를 공급하지 않아서 약해져 있겠군.”
“하, 하지만 그만큼 포악해져 있을 테지요. 이제 막 8살이 되신 도련님의 상대로는 좀…….”
“뭐, 여차하면 수호기사들이 막겠지. 그것은 집사가 걱정할 일이 아닌 듯함세.”
베리모어 집사의 걱정에 휴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고민은 짧았고 결정은 더욱 짧았다.
이윽고, 수호기사들은 지하실 깊숙한 곳에서 비키르의 대전상대를 끄집어 내왔다.
쿵- 쿵- 쿵- 쿵-
지축이 옅게 흔들리는 소리.
이윽고, 각종 무거운 수갑과 구속구를 차고 있는 거대한 마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짧은 목, 두 개의 팔과 다리, 기괴하게 비틀어진 이빨, 400kg이 넘는 몸무게에 4m에 이르는 체구.
위험등급 : C+
크기 : 4m
발견지 : 적과 흑 산맥 2부능선
-거대한 체격과 흉폭한 심성을 가진 식인귀. 산지로 들어간 화전민들이 그대로 실종되는 것은 대부분 이 녀석들 탓이다.
불가해(不可解)의 재생력을 가지고 있어 치명상이라는 개념을 모르며 목을 완전히 잘라 내기 전까지는 결코 죽지 않는다.
녹색 피부의 거구귀(巨軀鬼)가 모습을 드러냈다.
삭아서 주저앉은 잇몸, 입술을 찢고 튀어나온 뻐드렁니들 사이로 끈적한 침이 질질 흐른다.
[그오옥- 그오오오옥!]트롤은 목과 손목, 발목을 휘감고 있는 쇠사슬과 무거운 납 추를 연신 흔들어대고 있었다.
비쩍 말라 있는 꼴을 보니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굶어 온 것 같았다.
“…….”
비키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의 트롤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트롤이 연무장 중앙으로 나오는 즉시. 사냥이 시작되었다.
팟-
비키르는 숏 소드를 뉘인 채 바로 달려들었다.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휴고를 비롯한 몇몇 노회한 바스커빌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이윽고.
부웅-
트롤의 팔이 휘저어졌다.
비키르는 몸을 낮게 움츠려 트롤의 주먹을 피하는 동시에 옆구리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었다.
결정타를 먹일 타이밍!
하지만.
홱-
비키르는 굳이 트롤의 옆구리를 칼로 찌르지 않았다.
다만 그대로 놈을 지나쳐 자세를 새롭게 했을 뿐이다.
휴고가 비죽 웃었다.
“좋은 판단이다.”
자고로 트롤이란 것들은 재생력이 뛰어나서 옆구리나 배 쪽의 상처 따위야 얼마든지 회복해 낸다.
치명상을 줄 만한 부위를 공격하지 않는 한 힘 낭비일 뿐, 때문에 비키르는 굳이 트롤의 빈틈을 노리지 않은 것이다.
쿵- 쿵- 쿵- 쿵-
트롤은 계속해서 비키르를 공격했다.
주먹으로 지면을 때리거나 발을 구르는 등 육중한 공격들이 이어졌다.
보통 8세의 바스커빌이었다면 시야를 꽉 메우는 이 공격들에 기가 죽어 실수를 연발했겠지만…… 비키르는 달랐다.
‘느려서 긴장감이 없군.’
지난 40여 년을 전장에서 굴렀던 노병(老兵). 이 정도 압박감에 평정심을 잃을 리 없다. 하품을 참는 것이 차라리 더 고역이리라.
비키르는 그저 느긋한 태도로 트롤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오히려 날뛸 때마다 체력을 잃어 가는 쪽은 트롤이었다.
노련한 바스커빌들은 이 광경에 하나같이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설마 트롤의 힘을 빼 놓으려는 건가? 기가 막히는군.”
“저 녀석 진짜 8살 맞나? 믿을 수가 없는데.”
“허허허, 가문 내에 저런 아해가 태어날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로고.”
비키르의 판단은 매 순간 아주 적절하게, 그야말로 최선의 루트만을 따라 내려진다.
트롤은 무거운 구속구 때문에 울화가 치미는 듯 점점 난폭해진다.
하지만 그만큼 비축해 놓은 체력을 빠르게 잃어 가고 있었다.
공격의 정확도가 떨어지고 속도는 더욱 느려졌다. 패턴 역시 점점 더 단순해지고 있었다.
비키르는 스스로 자멸해 가는 트롤의 태도를 관망하며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한 순간의 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오오옥!
트롤이 온몸을 던지듯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비키르는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재빨리 앞으로 튀어나갔다.
8세 어린아이의 몸으로는 트롤의 공격을 피할 수는 있어도 트롤을 죽일 수는 없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그렇다.
그것이 일반적인 상식임을 비키르는 잘 알고 있었다.
숨겨둔 힘을 개방한다면야 트롤쯤은 가볍게 쳐 죽일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일이 굉장히 복잡해진다.
따라서 비키르는 가능한 개연성이 있게끔 트롤을 죽이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려 온 것이다.
콰콰콰쾅!
트롤이 돌진해 오는 힘을 역이용한다.
놈의 무거운 몸이 밀려오는 힘을 역이용해 반대 방향에서 칼을 찔러 넣는다면 능히 질긴 가죽과 근육층을 뚫고 목의 신경다발을 왕창 끊어 놓을 수 있으리라.
이윽고.
…후욱!
비키르의 칼끝에 희미한 기체 아우라가 어린다.
방금 전의 오크전에서 모든 이들을 감탄시켰던 바로 그것이다.
키리릭-
비키르의 아우라는 뚜렷한 이빨 모양을 그리며 트롤의 목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푸욱!
날카로운 송곳니 하나가 트롤의 목에 깊게 박혔다.
그 순간, 비키르는 몸을 틀어 트롤의 옆구리 사이의 빈틈으로 빠져나오는 동시에 그대로 트롤의 목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버렸다.
“오오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절로 감탄성을 내뱉었다.
비키르의 노련한 실전경험은 이 자리에서 천재적인 재능으로 둔갑된다.
……하지만.
[그오오오오옥!]트롤은 죽지 않았다.
놈은 목에 뚫린 구멍에 주먹을 욱여넣고는 씩씩거리며 상처를 치료했다.
지켜보던 이들 사이에서 옅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이런. 바스커빌 1식으로 트롤까지는 무리인가.”
“기체 아우라로는 확실히 조금 힘들지.”
“아깝군. 그래도 8살 아이가 여기까지 한 게 어딘가. 이것만 해도 기념비적인 일이야.”
바스커빌 1식. 하나의 이빨로는 트롤을 잡을 수 없다.
그것은 비키르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벨제붑의 출혈 능력이 있으니 시간만 지나면 저 트롤은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그렇게 이기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만하면 되었다. 더 이상은 위험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하…….”
휴고가 손을 들어 대전을 중지시키려는 순간.
“구속구.”
비키르가 입을 열었다.
“구속구를 풀어 주세요.”
그 말에 모든 바스커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트롤의 구속구를 풀라고? 이 판국에?
“…….”
“…….”
“…….”
모든 이들의 시선이 비키르와 휴고를 번갈아 향하고 있었다.
“…….”
천하의 휴고도 황당함을 금치 못한다.
이윽고,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아들아. 너는 이미 네 가치를 충분히 입증해 보였다. 만족함을 알고 물러나는 것 역시 칼잡이의 소양이다.”
타이르는 듯한 어조.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휴고의 태도에 모든 바스커빌들이 놀랐다.
하지만 놀람도 잠시, 비키르의 말이 다시금 모든 이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다음 공격에 죽이지 못한다면 깔끔하게 단념하겠습니다.”
일격(一擊) 선언.
비키르의 말에 휴고를 포함한 모든 바스커빌들이 놀라야만 했다.
끈질긴 것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저 트롤을 대체 어떻게 쓰러트릴 것인가?
“…….”
휴고는 입을 다물었다. 전투를 재개해도 좋다는 신호이다.
[크오오옥! 끄르륵!]트롤은 사납게 날뛴다.
수호기사 몇몇이 트롤의 난동을 피해 다가가 수갑과 사슬들을 풀어 주고는 다시 연무장 바깥으로 나갔다.
이윽고. 완전히 자유로워진 트롤이 몸을 일으켰다.
시뻘겋게 충혈되어 이제는 눈동자조차 보이지 않는 붉은 눈.
[그-와아아아아아악!]내장이 토해져 나올 듯한 포효와 함께, 트롤은 온 힘을 다해 비키르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비키르는 여전히 냉막한 시선으로 트롤을 바라볼 뿐이다.
‘힘을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가?’
이것에 대한 문제는 이미 애저녁에 답을 내려놓고 있었다.
…파앗!
비키르의 숏소드 끝이 아까보다 조금 더 환하게 빛난다.
몇몇 노련한 이들은 바로 알아보았다. 비키르의 칼에 실려 있는 아우라의 밀도가 변화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에 대해 놀랄 시간도 없이, 비키르는 바로 다음 행동을 이어나갔다.
키리릭- 카락!
돌진해 오는 트롤을 향해 수놓아지는 칼끝. 선명하게 드러나는 송곳니.
구속구를 풀어 더욱 빠르게 달려오는 트롤, 그리고 이로 인해 더욱 강력해진 반작용의 힘.
이윽고.
…푸욱!
아까보다 더욱 빠르고 강해진 트롤의 몸에 아까보다 더욱 빠르고 강해진 칼끝이 역으로 박혀든다.
그리고.
이번에 트롤의 목에 박혀든 이빨은 분명 두 개였다.
트롤의 목에 구멍을 뻥 뚫어 놓은 첫 번째 이빨.
그리고 트롤의 목덜미 옆을 사납게 물어뜯는, 작고 희미하지만 분명히 보이는 두 번째 이빨.
바스커빌 2식(二式).
그리고 소드 익스퍼트 중급.
……! ……! ……! ……!
휴고를 비롯한 모든 바스커빌들이 입을 딱 벌린 채 제자리에서 기립하는 순간.
…쿵!
목이 잘려나간 트롤의 거체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