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어택땅 (3)
“…….”
비키르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다.
그리고 그 뒤에서 흰색 머리카락의 여학생 하나가 걸어 나왔다.
열병기부의 수석 싱클레어.
그녀는 자기 차례임을 직감한 듯 연무장을 향해 걸어 나갔다.
“열병기부 A반. 69번. 싱클레어 맞니?”
그때쯤 해서 싱클레어를 호명하는 사디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득한 관심이 묻어나는 대사였다.
싱클레어는 평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실기와 필기 성적이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그뿐만이 아니라 남는 시간에는 틈틈이 여러 교양수업과 동아리, 봉사활동, 게다가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알파걸로 그 유명세가 자자했다.
오죽했으면 학생들을 넘어 교수들, 심지어 학교 내부의 일에 관심이 많은 일부 극성 학부모들까지도 싱클레어의 이름을 알 정도였으니까.
……그래서일까? 사디 교수는 유독 싱클레어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돌로레스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싱클레어의 옆에 다가가 말했다.
“싱클레어야. 여차하면 시험을 중도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사디 교수는 아카데미 교수직 외에도 황실경비대의 체포조와 고문조의 자문위원으로 있는 사람이야. 실력이 확실하다는 얘기지. 그리고 재능 있는 학생을 보면 무조건 괴롭히려 드는 삐뚤어진 교수니만큼 너에게 해코지를 할 가능성이 커.”
하지만. 싱클레어는 전에 없던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예상하고 있었어요.”
“……뭐?”
“제 시험 담당이 사디 교수가 될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했어요.”
싱클레어는 고개를 들었다. 반짝이는 시선이 돌로레스를 향하고 있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회장님. 하지만 저는 이번 시험에서 성적을 잘 받아야 해요. 그래야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을 낼 수 있으니까요.”
“……네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하지만 사디 교수의 케이스는 일반적이지 않아. 만약 네가 이번 시험을 포기하더라도 다른 과목의 교수님들이 어떻게든 네 점수를 보충해 줄 거야. 가산점이든 특별점수든 뭐든 줘서라도.”
“……하지만.”
싱클레어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신음소리를 내며 뒹굴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이 보인다.
특히나 냉병기부에 비해 체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열병기부 학생들의 피해가 심각했다.
그것을 본 싱클레어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친구들을 저렇게 만든 사람을 피해서 숨을 수는 없어요.”
“…….”
“저도 다른 친구들과 같은 조건으로 시험을 치르고 싶어요, 회장님.”
싱클레어의 간절함은 돌로레스에게도 충분히 전해졌다.
그녀라고 왜 모르겠는가? 돌로레스 역시도 새내기 시절 한창 동기들과 우정이 두텁던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그래.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는 말도 있지.”
“고맙습니다, 회장님!”
“뭘. 대신 정말로 위험하면 바로 시험을 포기해야 해. 그리고 나에게 바로 뛰어와. 힐 해 줄 테니까.”
“네!”
싱클레어는 우렁차게 대답하고는 연무장 위로 뛰어 올라갔다.
이윽고, 호기심 가득한 사디 교수의 시선이 싱클레어를 향한다.
찢어 죽일 곤충을 내려다보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표정.
“어머~ 네가 ‘그’ 싱클레어구나. 성적도 좋고, 전투 센스도 뛰어나고, 성격도 다정하고, 착한데다가 각종 교양수업에, 봉사활동에, 동아리에 못하는 게 없다지?”
“감사합니다. 과찬이세요.”
“어머, 목소리도 좋네. 얼굴도 예쁘고…….”
사디 교수는 덕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망가트리는 보람이 있겠어.”
마지막만 아니었더라면 분위기가 꽤 훈훈했을 뻔했다.
츠츠츠츠츠……
이윽고, 사디 교수의 아우라가 스멀스멀 번지기 시작했다.
사디 교수의 아바타, 그녀의 체형을 똑 닮은 진흙 골렘이 늘씬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손에는 긴 넝쿨 채찍이 들려 있었다.
골렘의 입이 움직여 사디 교수의 목소리를 전한다.
[요 근래 학교에 터무니없는 루머가 퍼지고 있는데 말이야. 내가 재능 있는 학생을 괴롭힌다는?]그 말에 싱클레어가 움찔했다.
루머? 설마 사디 교수의 진의는 질투나 열등감 같은 것이 아니었던 것일까?
싱클레어는 자기가 오해했나 하는 생각에 잠시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디 교수의 말은 확실히 더욱 미쳐 있는 것이었다.
[그건 진짜 오해야. 왜냐하면…… 나는 재능이 있는 놈이든 없는 놈이든 다 괴롭히거든. 호호호호!]동시에, 골렘이 휘두르는 채찍이 날아들었다.
짜악-
요란한 굉음과 함께 돌바닥이 갈라진다.
싱클레어는 황급히 몸을 날려 피했지만 채찍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여 싱클레어의 발뒤꿈치를 바짝 쫓아왔다.
키리릭-
마치 살모사 같이 표독스러운 몸놀림으로.
[다만 재능 있는 것들은 조금 더 오래 발버둥 치니까, 유난히 더 만신창이가 되는 거지 뭐. 호호호!]“…….”
[아까 산쵸였나? 걔가 뭐 나름 기대주였나 본데. 아카데미 수준도 많이 떨어졌어. 그런 형편없는 재능의 덩어리가 냉병기부의 에이스라니. 기대 이하야, 이하.]사디 교수는 말라붙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허공에 대고 계속 채찍질을 한다.
[너는 좀 어때? 열병기부의 에이스답게 한번 굴어 봐~]동시에, 채찍이 수없이 많은 굴곡과 매듭을 지으며 주변의 대기를 터트린다.
퍼퍼퍼퍼펑! 짜악- 짜작! 짝- 짜-악!
근처의 돌바닥들이 모조리 터져나간다.
싱클레어는 몸에 운신을 빠르게 도와주는 바람 마법을 걸었다.
“헤이스트!”
몸놀림이 빨라진 싱클레어는 채찍이 만들어 내는 올가미를 피해 연무장 외곽으로 이동했다.
실로 바람과도 같은 속도.
그러나.
사디 교수의 골렘은 너무도 쉽게 싱클레어의 움직임을 따라잡는다.
“헉!?”
이 헛바람 소리는 싱클레어의 입에서뿐만 아니라 이 시험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학생들과 교수들의 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사디는 골렘 조종을 너무도 쉽게 했다. 그 신들린 듯한 솜씨에는 같은 교수들조차 놀랄 정도.
보통의 교수들은 아무리 전투의 프로들이라 해도 멀리 떨어져 있는 골렘을 완벽하게 자기 몸에 맞게 조종하지는 못한다.
골렘에 동기화된 몸은 움직일 때 미세하게 둔해지고 또한 골렘 역시도 아바타화 되는 과정에서 찰나의 연동 딜레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멀리 떨어진 상대를 요격해야 하니만큼 거리를 잼에 있어 괴리감이 클 수밖에 없고 자신의 팔다리와 골렘의 팔다리의 길이나 굵기 차이를 계산하지 못해 미세한 오차가 나는 것 역시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호호호호- 도망만 다니면 점수를 못 얻는데?]사디 교수에게는 그런 것들이 일절 없었다.
그녀의 놀라운 집중력과 육체는 정말로 코앞에 있는 학생과 싸우는 듯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른다.
마치 진짜로 눈앞에 있는 상대와 근접전을 벌이듯 말이다.
“맞습니다. 도망만 다녀서는 점수를 못 얻지요.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싱클레어는 꿋꿋하게 선 채 마법을 캐스팅했다.
다중 마법 캐스팅.
세 개의 서클이 세 겹, 총 아홉 개의 마나 서클이 그려진다.
콰콰콰콰콰쾅!
무려 3개나 되는 3클래스 마법이 터져 나왔다.
불과 얼음, 폭풍의 노래.
그 나이 또래에서는 보기 힘든 어마어마한 재능. 마나 친화력으로만 따지자면 마도종가 모르그 가문의 마법사들 정도거나 그 이상이다.
그러나.
[호호호호-]쏟아지는 불의 창, 얼음의 창, 바람의 창을 본 사디 교수는 그저 간드러지게 웃어젖힐 뿐이었다.
[열병기부의 에이스도 뭐 별거 없는데 그닥? 차라리 바랑기안의 덩치들 쪽이 더 괴롭힐 맛이……]사디 교수는 흥미가 식었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퍼-엉!
발길질 단 한 번으로 싱클레어의 모든 마법들을 죄다 파훼해 버렸다.
“컥!?”
마법이 강제로 취소되자 마나가 역류한다.
싱클레어는 눈과 코, 입, 귀에서 피가 나오는 것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머리 위로 골렘의 주먹과 발길질이 무지막지하게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쾅!
사디 교수가 운용하는 골렘의 피지컬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골렘에 투여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은 분명 제한되어 있는데 사디 교수는 그 제한된 양의 마나로도 최적의 효율을 보이는 모션만을 골라 취한다.
그리고 순간순간 폭발적으로 터트리는 마나의 운용에 범접불가의 피지컬이 더해져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골렘 컨트롤이 나오는 것이다.
미친 듯이 유연하고, 기괴할 정도로 꺾이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휘어지고, 괴물처럼 빠른 골렘.
그것은 마치 몸 전체가 한 줄기의 채찍과도 같다.
“꺄아악!”
싱클레어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소낙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골렘의 주먹과 발길질을 피해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고 있는 싱클레어.
그리고 그녀의 귀에 사신의 음성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머? 얘, 잊을 게 따로 있지. 내 채찍을 잊었니?]골렘의 주먹과 발길질이 하도 무시무시해 잠시 잊어 버렸었다.
사디 교수의 주무기는 채찍이다.
“……!?”
싱클레어가 정신을 차린 순간, 그녀는 어느 새인가 몸 주위에 넓게 똬리를 틀고 있는 채찍줄기들을 볼 수 있었다.
…콰득!
순식간에 조여든 올가미는 싱클레어의 몸 전체를 단숨에 묶어 버렸다.
“……! ……! ……!”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싱클레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킬힐의 송곳 같은 뒷꿈치가 싱클레어의 안구 표면에 닿을 듯 접근해 왔다.
스팟!
싱클레어는 재빨리 고개를 뒤로 젖혀 사디 교수의 발길질을 피했지만 뒤이어 오는 두 번째 발차기만은 피하지 못했다.
…뻐억!
묵직한 미들킥.
갈비뼈들이 모조리 부러져 내장을 찌르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싱클레어는 그대로 허공을 날았다.
실 끊어진 연처럼 연무장 바깥으로 나가떨어지는 그녀.
동시에, 상태창이 떴다.
-유효타: 3번 (각 1점)
-유효 회피: 16번 (각 1점)
-유효 방어: 0번 (각 1점)
-치명타: 0번 (각 10점)
=총점: 19점
열병기부 최고의 인재. 어떤 시험에서건 1등을 놓쳐 본 적 없는 그녀의 총점은 고작 19점.
평균에 겨우 미치는 점수였다.
“싱클레어!?”
기겁을 한 돌로레스가 떨어지는 싱클레어를 받아들었다.
쿨럭쿨럭 피를 토하는 싱클레어에게 힐 마법이 걸어졌다.
뒤늦게 뛰어온 교수들 역시 싱클레어를 급히 치료하기 시작했다.
한편, 싱클레어는 돌로레스를 올려다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죄송해요 회장님…….”
“말하지 마 싱클레어! 내장이 아물려면 시간이 걸려!”
“쿨럭! 컥! 장학금…… 못 받겠네요.”
그 말에 돌로레스는 울컥한 표정으로 싱클레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막말로, 싱클레어의 등록금 정도는 돌로레스가 대신 내줄 수도 있다.
명문가 쿼바디스 출신인 그녀는 꽤나 부유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나간다는 것. 그것이 시험이든 학비든 간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싱클레어에게는 그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때.
“호호호호-”
조용해진 대기에 웃음소리가 번진다.
사디 교수. 그녀가 싱클레어의 눈물을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장학금 못 받아서 우는 거니? 얘, 선생님이 돈 내 줄게 울지 마~ 뭘 그런 걸로 우니? 거지도 아니고.”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알고도 하는 말. 그것은 싱클레어의 속을 두 번 뒤집는 행위였다.
혓바닥에 가시라도 달린 듯한 사디 교수의 말에 학생들이고 교수들이고 모두 표정이 굳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는 이가 하나 있었다.
“…….”
비키르. 오직 그만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사디 교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디 교수가 입을 열어 외치자 비키르의 표정에도 드디어 파문이 일게 되었다.
“자 바로바로 갑시다. 다음 순서는 냉병기부 B반의…….”
그녀의 살기 번들거리는 눈알이 떽데굴 굴러 비키르가 있는 방향을 향했다.
그리고 이내, 창백한 피부와 대비되는 새빨간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피기. 올라오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