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혼욕(混浴) (1)
황도 중심가.
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수로 위 교각들의 중심에 높게 치솟아 있는 아카데미의 장벽이 보인다.
새벽의 다리는 조용하다. 늘 북적이던 길가에는 행인이 거의 없었다. 그저 일을 일찍 시작한 몇몇 성실한 이들만이 드문드문 돌아다닐 뿐.
그리고 비키르는 다리 위를 건너 아카데미로 가고 있었다.
천천히, 느리게.
몸 상태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허리에서 흐르던 피가 굳어 더 이상의 출혈은 없었지만 그래도 빠져나간 기력은 더디게 회복되고 있었다.
‘개의 몸으로 변해서 강해진 회복력으로도 이 정도면…… 인간의 몸으로는 거의 못 버티겠군.’
아마 인간의 몸이었다면 벌써 기절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윽고, 비키르는 쓰러져 가는 몸을 이끌고 간신히 아카데미의 외벽까지 올 수 있었다.
핵핵-
혀를 빼물고 걷는 까만 강아지.
아카데미 외벽을 순찰하고 있던 경비병들이 그런 비키르를 발견했다.
“어이쿠, 강아지가 뭐 이리 귀엽게 생겼나? 쬐끄맣기도 해라.”
“어이, 어이! 만지지 말라고. 딱 봐도 병 걸린 개 같은데. 더러운 게 옮으면 어떻게 하나?”
“더러우니까 치워 버리자고.”
경비병 하나가 비키르를 쓰다듬으려 하자 옆에 있던 다른 경비병이 이를 막았다.
뻥-
다른 경비병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걸어 나와 비키르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졸지에 엉덩이를 엊어 맞은 비키르는 멀리 나가떨어져야 했다.
경비병들은 그런 비키르를 향해 낄낄 웃더니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을 가 버렸다.
‘……서러운 유기견 신세로군.’
길거리를 떠돌아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거리의 삶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인간이 느끼는 길거리와 개가 느끼는 길거리의 느낌은 천지차이였다.
비키르는 이를 악물고 장벽 외곽으로 붙었다.
그리고 가능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벽에 바싹 붙어 걸었다.
어쩌다 평범한 행인들이 지나다니기만 해도 바짝 경계하며 멀어지게 된다.
언제 또 갑작스럽게 공격당할지 모르기 때문.
“워리~ 워리~ 여기 봐라~”
술 취해 지나가던 행인이 주머니에서 소시지를 꺼내 던졌지만 당연히 먹을 리 없다.
오히려 이쪽을 향해 관심을 보이는 존재는 위험하기에 더욱 더 멀리 떨어질 뿐이다.
“뭐야. 붙임성 없는 개네.”
취객은 소시지를 몇 번 흔들다가 바닥에 내버리고는 가 버렸다.
‘…….’
비키르는 조용히 벽에 붙어 걷는다.
눈은 주위를 살피면서도 머리는 전에 있었던 팔번시와의 전투를 복기한다.
원래대로라면 한참 뒤에 시체의 왕이 되었어야 했을 모르그 스네이크.
얼마 전에 씬디웬디에게 동향 보고를 받은 바에 의하면 그는 지금껏 특별한 이상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인간인 채로 남아 있는 모양인데.’
그리고 그 시점에 시체의 여왕이 등장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제론토에 아흐헤만의 시체.
게다가 마지막에 남겼던 그 말은…….
그 말고도 생각할 것은 더 있었다.
결전의 순간, 시체 여왕의 목숨을 끊어 놓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검술 실력의 부족 때문이었다.
비키르는 안드로말리우스 전에서 보았던 휴고의 무위를 떠올렸다.
한 번의 검격으로 만들어 낸 일곱 개의 이빨, 마치 괴물의 아가리처럼 다물리던 상악과 하악, 하늘을 일곱 갈래로 쪼개 버리던 그 어마무시한 위용을.
같은 바스커빌 7식이라고는 하지만 비키르의 7식과 휴고의 7식은 차원이 달랐다.
그것이 그래듀에이터 최상급과 소드마스터 사이의 간극이리라.
그러나 비키르 역시도 그 간극을 넘어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던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단탈리안 전에서 성녀 돌로레스의 버프를 받았을 당시였다.
비록 한순간이기는 했지만 비키르는 그 당시만큼은 휴고에 필적할 정도의 힘을 내뿜어 구번시 단탈리안을 거꾸러트렸었다.
문제는 성녀의 도움이 없어도 그 정도 힘을 낼 수 있어야 앞으로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빨리 지고(至高)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 …….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생각이 자꾸 끊기는군.’
생각할 것은 많은데 집중력은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다.
어서 안전한 곳을 찾아 휴식을 취해야 다음 계획을 짜고 행동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아카데미 안으로 가자. 기숙사든 양호실이든 가서 잠을 좀 자야…….’
비키르는 앞발로 땅을 파 굴을 만들었다.
성벽과도 같은 담장 아래의 개구멍은 무른 흙과 낙엽으로 메꿔 놓았기에 쉽게 다시 파낼 수 있었다.
비키르가 막 성벽 밑의 땅굴을 파고들어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왔을 때.
수풀가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어우, 술을 너무 마셨나. 이제 슬슬 졸리네.”
“이거 한 대만 태우고 얼른 들어가 자자고.”
“좀 있으면 동 트겠다 야.”
남학생 셋과 여학생 셋이 담장에 기대어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술 냄새와 담배 냄새, 이 시간까지 자지도 않고 놀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
비키르는 그들의 이마에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는 흉터 자국을 보았다.
X
잘 아는 흉터 자국이다.
왜냐하면 저것들은 모두 비키르가 직접 만들어 주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피기를 괴롭히던 2학년들인가.’
학기초라 바짝 긴장해 있던 피기를 호구로 보고 괴롭혔던 질 나쁜 쓰레기들.
그래서 비키르는 가면을 쓴 채 녀석들을 미행했고 아카데미 바깥으로 나갔을 때를 노려 뒷골목으로 끌고 가 흠씬 두들겨 패줬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비키르는 칼을 꺼내들어 이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이마에 열십자 모양의 흉터를 파 놓았다.
‘한 번만 더 아카데미 안에서 거슬리게 굴어 봐라. 그때는 네놈들뿐만 아니라 네놈들의 애비, 애미까지 싹 다 죽여 버릴 테니까.’
살벌한 협박은 덤이었다.
가면을 쓴 비키르에게 처참하게 구타당한 이후 이 육인조들은 아카데미 안에서 숨을 죽인 채 쥐 죽은 듯이 지냈었다.
평소 후배뿐만 아니라 동급생, 심지어 선배까지도 조금 만만해 보인다 싶으면 모욕하고 괴롭히던 녀석들.
하지만 자기보다 강하거나 신분이 높다 싶으면 후배든 동기든 선배든 간에 알랑방귀를 뀌며 굽실거리는 비열한 종자들.
하지만 압도적인 폭력과 공포에 노출된 뒤, 이것들은 아카데미 안에서는 거의 숨소리도 내지 못하게 되었다.
누굴까? 누가 청부 폭행을 했을까? 거기에 부모님에게까지 위해를 가하겠다고?
범인으로 짚이는 사람은 너무 많아서 특정조차 힘들 정도였다.
언제 어디서 또다시 보복이 들어올지 몰랐기에 그동안 쌓았던 업보들을 되새김질하며 끙끙 앓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이 녀석들이 잠잠해지자 학교 내의 말썽들도 확 줄어들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이들은 어디서 누가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을 사리고 있었지만 그 조심스러움이 갈 곳 없는 강아지에게까지 미치지는 않았다.
“어? 뭐야? 개새끼네.”
술병을 들이키던 남학생 하나가 수풀가에서 빠져나오는 비키르를 발견했다.
비키르는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개의 몸은 회복이 빨랐지만 아직도 몸 곳곳에 난 상처들은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여섯 명의 2학년생들은 킥킥 웃으며 비키르를 둘러쌌다.
“야, 아카데미 안에 이렇게 유기견들 돌아다녀도 되냐?”
“병 옮겠다. 우리가 치워 버리자. 쓰레기를 치우는 건 착한 일이잖아.”
“요즘 스트레스 심했는데 마침 잘 됐네. 일단 어디 좀 묶어 놔 봐.”
“산 채로 불에 태워 버릴까?”
“아휴, 불쌍해! 그냥 저기 하수도에 던져 버리고 끝내.”
“아, 갑자기 그 가면 쓴 자식 생각나네. 다음에 만나기만 해 봐, 그놈 마빡에 나도 똑같이 칼자국 새겨 준다. 일단 연습 삼아서 저 개새끼 몸뚱이에 새겨 볼까?”
여섯 명의 불량학생들은 담배꽁초나 단검 등등을 손에 쥐고 낄낄거린다.
몇몇은 비키르를 향해 불붙은 담배꽁초를 던졌고 또 몇몇은 술병을 집어던져 깨트렸다.
침을 뱉거나 발로 걷어차는 것은 예사였다.
비키르는 잠시 고민했다.
‘그냥 죽여 버릴까.’
참는 것도 힘이 있어야 참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런가 참기도 힘들다.
아무리 부상이 심하다고는 해도 인간의 몸으로 돌아간다면 1초, 아니 0.5초만 있어도 여섯 명의 목을 바닥에 구르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 개의 몸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내일 아침 아카데미 조간신문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나오게 되겠지.
그랬다간 괜히 다른 개나 고양이들에게까지 불똥을 튀길 것이다.
또한 시체를 유기할 장소도 마땅치 않았고 그럴 만한 체력도 없다.
무엇보다 아까부터 자꾸만 눈꺼풀이 감기려 하고 있었으니까.
[으르릉……]저 위에서 비키르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새끼마담이 벽 위에 붙어서 털을 빳빳하게 세운 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듯한 기세였다.
하지만 비키르는 고개를 저었다.
콜로세오 아카데미의 2학년 생도들은 나름대로 강하다.
여섯이나 뭉쳐 있다면 아직 어린 새끼마담으로서는 중과부적(衆寡不敵).
‘어쩔 수 없지. 잠시 인간의 모습으로…….’
비키르가 머릿속으로 흔적이 남지 않는 시체 처리법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냉병기부 2학년 B반.”
어디선가 극도로 건조하고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출석번호 8번 팔 유스피어, 29번 베트리 리얼벨트, 58번 하우징 옐로럽, 63번 씨위드 아임컴, 66번 바이슨 레드민, 71번 오일러 사우스미들.”
쓰레기 6인조의 출석번호와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뚝뚝 끊어서 부르는 목소리.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지?”
의외의 원군이 나타났다.
손에는 사료가 든 그릇을, 다른 손에는 물이 든 그릇을 들고 있는 여학생.
바로 학생회장인 돌로레스 룬 쿼바디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