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혼욕(混浴) (2)
“……너희들 지금 뭐하는 짓이니?”
학생회장 돌로레스. 아카데미의 최연소 조기입학자인 동시에 현 3학년 수석.
제국의 7대 가문 중 하나인 신앙성가 쿼바디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성녀인 동시에 제국의 젊은 귀족들 중 손에 꼽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존재.
그런 그녀를 눈앞에 둔 2학년 떨거지들은 그야말로 얼어붙었다.
상급생. 실력으로도 성적으로도 뒤지고 가문의 뒷배로도 뒤진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한 분위기 파악 정도는 할 줄 알 것이다.
돌로레스의 한쪽 손에 들려 있는 사료 그릇과 물그릇, 이 근처에 있는 유기견이나 유기묘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자신들은 유기된 새끼 강아지 하나를 가운데에 놓고 걷어차고, 침을 뱉고, 깨진 술병으로 찌르고, 담뱃불로 지졌다.
“……어, 언제부터 보셨습니까?”
제일 앞에 있던 녀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돌로레스는 그들이 학교를 다니던 근 2년간 단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싸늘한 표정과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부터 보지는 못했어.”
그 말에 2학년들은 약간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다만 너희를 경멸하기에 충분할 정도로는 봤단다.”
이어지는 돌로레스의 말에 그들의 얼굴은 또다시 하얗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성녀(聖女)라는 말이 이보다 더 적합할 수 없게끔, 돌로레스는 언제나 천사 같은 마음씨를 보여 주었었다.
늘 따듯하고 상냥한 미소와 친절한 태도, 부드러운 목소리는 교내의 모든 이들이 호불호 없이 좋아하고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돌로레스의 표정은 마치 북해도에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던 사람이 화를 내면 훨씬 더 무서운 법이다.
언제나 나긋나긋했던 돌로레스가 이렇게 화난 것은 모두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이윽고, 돌로레스는 무리를 헤집고 걸어와 바닥에 있는 비키르를 끌어안았다.
작고 검은 강아지의 몸을 하고 있는 비키르는 엉겁결에 돌로레스에게 잡혔다.
꼬옥-
돌로레스는 행여나 비키르가 아픔을 느낄까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고 그대로 가슴에 폭 끌어안았다.
“많이 아팠지?”
귓가로 흘러드는 따듯한 목소리에는 미약하게나마 신성력이 실려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몸의 상처들이 조금은 덜 쓰라려지는.
한편, 여섯 명의 2학년생들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었다.
‘아 진짜, 개새끼 하나 잘못 건드렸다가 미운털 박히게 생겼네.’
‘돌로레스 회장님은 이런 거 진짜 싫어하시는 걸로 아는데.’
‘어줍잖게 괴롭히면서 시간 끌지 말고 그냥 죽여 버릴걸.’
그때, 돌로레스가 눈앞에 있는 2학년생들을 쭉 훑어보며 말했다.
“……연쇄살인마들의 대부분이 동물학대로 범죄를 시작한다는 것. 너희는 아니?”
그 서슬 퍼런 눈초리에 모든 이들이 목을 양 어깨 사이로 움츠렸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반박거리는 있었다.
“그건 너무 과한 비유입니다. 저희는 이 나라를 이끌어갈 엘리트들 아닙니까?”
“맞습니다.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주인도 없는 개를 잠시 거칠게 다뤘다고 그런 비난이라니요.”
“저희가 술에 취해 잠시 실수를 한 것은 사과드립니다만, 그래 봐야 어차피 병이나 옮기는 더러운 개일 뿐이지 않습니까?”
나름대로 항변을 한답시고 한 이들의 말은 돌로레스의 표정을 더욱 더 얼어붙게 만들었다.
“나라를 이끌어가? 너희들이?”
그제야 2학년생들의 얼굴에서 술기운이 완전히 가셨다.
돌로레스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아카데미는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들을 양성하는 곳. 그리고 이곳 아카데미를 졸업해 국무(國務)를 맡아 보기 위해서는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정신이 필요해.”
그녀의 말에서는 강철보다도 단단한 신념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뜨거운 열정에 의해 단조되고 벼려져 날카로운 비수가 된다.
“하지만 너희는 반대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것들. 그런 인간들은 아카데미 바깥에도 바글바글해. 그런 흔해 빠진 것들에게 나라의 중책을 맡겨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귀족 실격. 노란 싹수. 엘리트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것들. 고위직으로 출세하면 출세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해충(害蟲).
그런 것들에게 돌로레스는 한 치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회장의 권한으로 너희들에게 각각 벌점을 부여할 거야. 내가 1년간 부과할 수 있는 모든 벌점을 너희 여섯에게 모두 부과한다.”
학생회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그것은 교수들이 학생회에도 일부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었기에 그렇다.
즉, 학생회장은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1년에 몇 명인가 정도는 아예 학교에서 퇴학시켜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쟁쟁한 가문의 자제들에게 이런 식으로 벌점을 몰아 부과했다면 잡음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여기에 있는 여섯 양아치들의 경우에는 딱히 쟁쟁한 뒷배가 없다.
시골의 영세한 귀족 가문이 신앙성가 쿼바디스에게 항의할 수 있을 리도 만무한 것이다.
눈앞에 있는 이 여섯 명은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회, 회장님! 이, 이건,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찌 후배를 퇴학시키시려고…….”
“그깟 개 하나 괴롭혔다고 퇴학이라니요! 저희도 나름 귀족 출신입니다!”
“저, 저는 귀족파에도 속해 있습니다. 제발 자비를!”
술기운이 싹 사라졌는지 바닥에 꿇어 엎드린 채 싹싹 비는 2학년생들.
그들이 그럴 만도 한 것이, 아카데미에 자식을 입학시키는 것은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
평범한 가문은 상상도 할 수 없고 나름 돈푼께나 있는 귀족가라고 해도 상당히 부담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 아카데미를 졸업하기만 하면 그만한 부와 권력이 따라오니 일단 이곳에 입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명예이다.
……하지만 만약 이곳에 입학했다가 퇴학이라도 당한다면?
커다란 명예는 그만큼 커다란 불명예를 낳을 뿐이다.
게다가 신앙성가 쿼바디스가 전 국토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난 수준이어서 이들에게 한번 밉보인다면 출세길은 막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국의 국교인 룬, 그리고 룬 교단을 대표하는 가문이 바로 쿼바디스 아니던가.
이곳 쿼바디스의 성녀 돌로레스에게 찍힌 이상 사실상 제국 내에서 귀족으로서의 삶은 끝난 것이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이 평생 불가능해질 테니까.
더군다나 가문 내의 젊은 후기지수가 이런 처지에 놓였다는 것은 해당 가문마저도 쇠락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뜻한다.
주가가 폭락할 것이고 시총이 증발할 것이다.
가문 내외의 교역길과 일거리들이 모조리 끊길 가능성이 농후했다.
“자, 잘못했습니다 회장님!”
“부디 벌점만큼은 봐주십시오! 제발! 제발요!”
“살려 주세요! 저 아버지한테 맞아 죽어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비로소 현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한 2학년생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빌었지만.
“너희들은 이 가엾은 강아지에게 자비를 베풀었던가?”
돌로레스는 여전히 단단했다.
바늘 한 땀 들어갈 틈 없을 정도로.
* * *
욕실.
풍덩-
비키르는 따듯한 물에 몸을 담갔다.
살랑살랑-
따듯한 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 의지와 상관없이 꼬리가 절로 움직인다.
밤의 사냥개. 상처 입고 지친. 아직 까만 새끼 강아지.
비키르는 눈을 감은 채 아까의 일을 떠올렸다.
‘너희들은 이 가엾은 강아지에게 자비를 베풀었던가?’
돌로레스는 드물게도 매우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마치 회귀하기 전, 전장에서 ‘철의 성녀’라고 불리던 때의 그 모습이 아주 약간이지만 엿보일 정도로.
‘의외로군. 마족들과의 멸망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었는데.’
아무래도 단탈리안과의 싸움이 그녀를 많이 바꾸어 놓은 것 같았다.
보글-
비키르는 욕조에 코까지 담근 채 생각에 잠겼다.
몸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돌로레스의 가호를 받은 목욕물은 미약하지만 신성력을 띠고 있어 성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당연한 일이다.
비키르는 이곳에 몸을 담근 채 생각에 잠겼다.
팔번시. 시체 여왕.
한 끗이 모자라 결국 그녀를 죽이지 못했다.
‘내 경지가 더 높았더라면.’
그래듀에이터 최상급. 분명 한 나라를 대표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지만 그래도 역시나 단신으로 십상시와 상대하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아무리 갑작스럽게 만났다고는 하더라도 가진 힘의 절반 정도밖에 쓰지 못하던 시체 여왕을 상대로 이렇게 고전했다는 것은 반성할 만한 사실.
‘하기야, 안드로말리우스 때는 바스커빌가의 기사단을 빌렸고 단탈리안 때는 성녀 돌로레스가 함께했었지.’
결국 악마를 1:1로 사냥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비키르는 아직 불완전한 바스커빌 7식을 완벽하게 습득하는 동시에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상악(上顎)의 전치와 중절치, 측절치, 어금니.
그리고 하악(下顎)의 사랑니, 소구치, 대구치.
6식과 7식이 제대로 조화를 이루어야 진정한 7식을 이룰 수 있지만 비키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일곱 번째 이빨은 아직 작고 불안정하다.
‘도사리는 매복치 10식은 여섯 번째 이빨과 일곱 번째 이빨을 ’매복 수평 쌍사랑니‘로 부르고 있었다. 이는 6식과 7식 사이의 오묘한 이치를 이해해야 구사할 수 있는 궁극의 살인술…….’
6식의 교본에는 분명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6식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모두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7식 교본, 6식과 절묘한 조합을 이루는 쌍둥이 검술서에는 다음과 같이 내용이 기술되어 있었다.
-7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되찾아야 한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버려야만 그래듀에이터 최상급의 벽을 넘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소드마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다시 되찾아야만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영 알 수가 없군. 기껏 죽여 놓은 감정을 다시 소생시켜야 한다는 말인가?’
전생의 비키르 역시 그래듀에이터의 경지에는 올라 봤다.
수없이 많은 사선을 넘고 수없이 많은 동료들을 잃어 가면서 비키르는 점점 정밀하고 냉혹한 살인병기가 되었고 그래듀에이터의 경지 역시도 무던하게 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비키르는 결코 소드마스터가 될 수 없었다. 이론도 몰랐고 실제 되는 방법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스터를 넘어 그 위의 경지까지 가는 길이 닦여 있는 상황.
비키르는 안드로말리우스를 참살하던 휴고의 무위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철인(鐵人)이 되기 위해 모든 감정을 죽였다. 하지만 초인(超人)이 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감정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이건 대체…….’
비키르는 휴고에 의해 감정을 죽이는 법을 훈육받았다.
훌륭하게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쓰고 버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냥개들을 길러내는 방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일정 무위까지 빠르게 속성으로 키울 수 있는 방법. 어디까지나 보급형 그래듀에이터 군단을 만들기 위한 훈련방식이니만큼 지금의 나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기는 한데.’
아무래도 지금껏 해 왔던 실전경험 위주의 훈련방식에 변화가 필요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이미 마르고 마모된 감정들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
비키르가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끼이익-
작은 소음이 비키르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내.
“……!”
복잡한 상념들을 한순간에 흐트러트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 백전노장 비키르마저 일순간 평정심을 잃을 정도로 놀랄 만한 사건.
“초코야~ 누나도 들어왔어. 같이 씻자!”
성녀 돌로레스, 그녀가 욕실로 들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