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축제의 밤 (2)
축제가 시작되었다.
아카데미 내부에 수많은 노점들이 늘어섰다.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흥겨운 음악 소리, 밤을 환히 밝히는 색색의 불빛들.
커다란 좌판 위에 산더미같이 쌓인 음식들이 흘러넘칠 듯 진열되어 있었고 오고 가는 남녀 모두 화려하게 꾸몄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가 유령 분장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좀비나 스켈레톤이었고 간간이 흡혈귀나 미이라 등도 보인다.
이는 주점을 오픈한 신문동아리 류케이온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어서 오세요! 낭만과 기사도가 깃들어 있는 유령 술집입니다!”
“안주가 친절하고 사장님이 맛있습니다! 어서들 옵쇼!”
“산쵸! 안주랑 사장님이 바뀌었어!”
튜더, 산쵸, 피기가 열심히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검은 갑옷을 입고 데스나이트 분장을 한 튜더는 기사도와 낭만에 대해 논하며 여성 고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아름다운 레이디, 저와 함께 류케이온의 주점에서 술과 시를 논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꺄악- 좋아요!”
“방랑기사님 같아!”
설녀 분장을 한 산쵸는 같은 근육 마초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와하하하- 류케이온의 주점으로 와라! 오후 9시까지라면 전사의 끓어오르는 피만큼 뜨거운 선지 스튜를 서비스로 내주지!”
“호오? 그거 단백질과 철분 덩어리겠군. 근손실을 보충할 수 있겠는데? 3대 1톤도 노려 볼 수 있겠어!”
“여장이라니, 자네 꽤나 남자다운 복장을 했잖은가! 껄껄껄- 당장 가보세!”
요정 분장을 한 피기 역시 여자들 사이에서 상당히 시선을 끌고 있다.
“저, 저기. 여기 전단지 받아 주세요!”
“어머? 이 귀여운 아이 좀 봐. 너도 아카데미 학생이니?”
“모성애를 자극하는 컨셉이라면 성공했단다 얘, 호호호- 가자, 누나들이 팔아 줄게.”
이로 인해 류케이온의 주점 앞은 사람들로 북적북적 붐비게 되었다.
한편.
“이, 이거 너무 불경한 복장인데? 논란 생기는 게 아닐까? 누가 이런 제비를 써 놔 가지고…….”
성녀 돌로레스는 주점 뒤에서 우물쭈물 망설이고 있었다.
검은 가죽 장갑, 검은 망토, 부츠, 그리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역병 의사 마스크.
바로 밤의 사냥개 룩이었다.
지나가던 튜더가 그런 돌로레스를 보고 웃었다.
“뭐 사회적 논란거리이기는 하죠, 밤의 사냥개가.”
“……역시 그럴까?”
“그래도 역병 의사 마스크가 밤의 사냥개만의 트레이드 마크는 아니지 않습니까? 원래 할로윈에 자주 등장하는 룩이기도 하고. 예전부터 축제 때면 늘 등장하던 복장이었는데요 뭐. 새삼 밤의 사냥개 때문에 특정 복장을 금지한다면 그것도 좀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하기야 당장 옆 주점만 봐도 종종 역병의사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원래 황도의 할로윈 축제 때마다 꾸준히 유행하던 복장이니만큼 새삼스럽게 그런 것들을 강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돌로레스는 갈등했다.
밤의 사냥개가 무고하다는 것은 자신만이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복장을 입었다가는 혹시나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돌로레스가 막 천막 앞으로 나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그 복장은 뭐지?”
역시나, 돌로레스의 복장을 불편해하는 존재가 나타났다.
모르그 밴시 교수. 열병기부의 지도교수임과 동시에 신문부 류케이온의 고문을 맡고 있는 존재였다.
“돌로레스 회장. 자네가 이렇게 사려 깊지 못한 복장을 할 줄은 몰랐군.”
“…….”
“아무리 생각 없이 즐기는 축제라고는 하지만 본인의 복장이 불러일으킬 사회적 파장까지 생각 못 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어찌 그런 구제불능 쓰레기 흉악범을 따라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밴시 교수의 비난은 신랄했다.
그의 말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었으나 마지막 대사는 돌로레스의 감정을 크게 건드렸다.
‘그는 흉악범이 아니야!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거룩하고 숭고한……!’
하지만 돌로레스는 그렇게 외칠 수 없었다.
그것은 오히려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밤의 사냥개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레스는 당당해지기로 했다.
“저는 이 복장이 좋습니다.”
“……뭣?”
“이러고 서빙을 할 거예요.”
돌로레스가 입술을 꽉 깨물고 하는 말에 밴시 교수는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실망스럽군, 돌로레스 회장. 어리기는 해도 똑똑한 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
“뭐, 행동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면 되겠지. 지도 교수라고는 해도 학생의 복장에 간섭할 권리는 없으니 알아서 하게.”
밴시 교수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고는 천막 안으로 돌아갔다.
한편.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튜더와 산쵸, 피기는 저희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뭐야? 밴시 교수가 왔네. 왜 온 거지?”
“밴시 교수만 온 것은 아니다. 다른 교수들도 왔어.”
“원래 축제 때가 되면 교수님들이 각 부와 반의 주점을 돌면서 매상을 올려 주잖아.”
그렇다. 교수들 역시 축제를 즐긴다.
자기 담당인 학생들이 하는 주점을 찾아 술과 안주를 팔아 주며 덕담도 해 주고 다른 손님들도 끌어 모아 주는 것이 교수들 사이의 암묵적인 관례였다.
따라서 모르그 밴시 교수 역시도 오늘 이곳 류케이온의 주점에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주점에서 일하는 학생들 중 밴시 교수의 방문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퉤!”
밴시 교수는 튜더가 서빙해 가져온 안주를 한입 먹고는 바로 바닥에 뱉어 버렸다.
“이 닭고기는 너무 덜 익어서 실력 있는 수의사가 진료한다면 살려낼 수도 있겠어.”
그뿐만이 아니다.
밴시 교수는 그 뒤로 날라져 오는 음식들에게 연이어 혹평을 쏟아 부었다.
“제국이 하나로 통일되어서 참으로 다행이야. 대륙에 아직 다른 나라들이 많이 존재했더라면 분명 그들은 기름에 욕심을 내서 이 부침개를 침공했을 테니까.”
“이 소고기는 샐러드와 따로 놓는 것이 좋겠군. 소고기가 너무 덜 익어서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아. 지금도 옆에 있는 샐러드를 먹으려고 하고 있잖나.”
“정말 훌륭한 철퇴로군. 단단하고 무거워서 언제든 적장의 머리를 때려 부술 수 있겠어. 아, 그런데 내가 주문한 빵은 아직인가?”
“이 식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물을 고르겠네. 물론 이 물마저도 건조하고 딱딱하기 짝이 없지만 말이야.”
“이 콩은 너무나도 덜 삶아져서 잘만 하면 심어서 다음 해를 노려 볼 수도 있겠군.”
“돼지고기가 하나도 안 익었잖아. 안 들리나? 이 돼지고기가 부르고 있는 하쿠나 마타타의 노래가락이.”
밴시 교수는 평소에 입맛이 어마어마하게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의 가차 없는 맛 평가에 주방에서 일하던 학생들이 울상이 되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돌로레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클레임을 많이 거실 것이라면 굳이 왜 방문하셨나요?”
“나도 방문하기 싫다네. 하지만 교수들 사이에서는 담당하는 학생들이 하는 주점에 가서 매상을 올려 주는 것이 관례라지 않은가. 그래서 나도 지금 이 더러운 의자에 꾹 참고 앉아 세금도 내지 않고 보건증도 없을 종업원들이 날라다 주는 저질 식재료, 불량한 위생, 조미료 범벅인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음식값이 저렴하지도 않고 현금만 받으니 세액공제도 안 되며 현금영수증도 받지 못하지만 말이야.”
밴시 교수의 지적에는 돌로레스조차도 할 말이 없다.
밴시 교수는 눈앞에 있는 감자볶음과 닭고기 요리를 혐오스럽다는 듯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맛이라도 있다면 내 이렇게 불평을 하지도 않았겠지.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인데 그게 없으니 가뜩이나 안 좋은 것들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 아니겠나? 더 볼 것도 없지. 이 안주도 아마 폐기물 같은 맛이 날 것이 분명…….”
그러나. 닭고기와 감자를 한 스푼 떠먹은 밴시 교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美味.
맛있다.
분명 맛있었다.
“……뭐지? 왜 맛있지?”
이 절묘한 불맛, 결을 따라 찢어지는 닭고기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뼈 국물 육수의 농후한 감칠맛, 그리고 모르그가의 특산품 감자가 부드럽게 뭉개지며 나오는 고소한 맛, 그리고 정체모를 붉은 소스에서 느껴지는 얼큰함과 짭짤함이라니.
“이런…… 이런 맛은 분명 전에 먹어 본 적이 있는 맛이야. 하지만 그 맛은 황도에서 제일 유명한 레스토랑에서나 겪어 봤던 맛인데? 어찌 이런 아카데미 축제의 주점 따위에서?”
밴시 교수는 닭고기 스튜를 몇 스푼 더 떠 먹은 뒤 고개를 들었다.
“이건 누가 만들었나? 설마 밖에서 전문 셰프라도 초빙해 온 건가?”
“그럴 리가요.”
돌로레스 역시도 약간은 얼떨떨한 표정이다.
그때, 지나가던 튜더가 고개를 돌렸다.
“아, 역시 입맛에 맞으시나요? 안 그래도 방금 주방 담당을 교체한 참입니다.”
“주방을 교체해? 누구로?”
“유난히 요리를 잘 하는 한 명이 주방을 모조리 맡아 보기로 했어요. 저기-”
튜더가 손가락을 뻗자 밴시 교수와 돌로레스 회장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자 주방의 발 너머, 커다란 프라이팬으로 불길을 누르고 있는 얼굴이 보인다.
쿠르륵……
오똑한 콧날에 짙은 눈썹, 잡티 하나 없는 흰 피부에 피의 호수와도 같은 눈동자.
검은 모자와 망토를 두른 한 여학생이 신비로운 불길을 피워내며 웍을 젓고 있었다.
살짝 찡그린 표정, 이마에 맺힌 땀방울.
하지만 화광에 젖은 그 얼굴은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그 퇴폐미 넘쳐흐르는 모습은 마치 맛으로 대상을 홀려 지배하는 마녀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 광경에 밴시 교수도 돌로레스도 멍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 과에 저런 여학생이 있었던가?”
천하의 밴시 교수조차 잠시 넋을 잃을 정도로 몽환적인 풍경.
하지만. 그런 밴시 교수의 감상을 깨부수는 튜더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교수님. 저희 아카데미의 전통을 잊으셨습니까?”
“……?”
튜더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하던 밴시 교수.
이윽고 그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떴다.
“……!”
그렇다.
아카데미에는 오랜 전통이 있다.
그것은 바로 TS.
남자는 여자로, 여자는 남자로.
즉, 주방에 있는 요염한 마녀는 여장을 한 남학생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그 남학생의 정체야 안 봐도 뻔한 사실이었다.
“주문! 비키르 특제 닭도리탕 3접시랑 비키르 특제 해물파전 2접시! 그리고 비키르 특제 소시지 야채볶음 6인분이랑 비키르 특제 오돌뼈 주먹밥 5인분이랑 또 비키르 특제…….”
“어어!? 이것 봐 얘들아! 또 신메뉴가 나왔어! 세상에 어떻게 남은 식재료들로 이렇게 맛있는 안주를 만들어 냈지? 이건 이름이 뭐야? 뭐? 없어? 그냥 남은 것들로 적당히 만든 거라고? 이것도 그럼 빨리 메뉴판에 정식으로 올리자! 32번째 특제 신메뉴 출시다!”
“으아아! 주방을 공개한 뒤로 남자 손님들이 지나치게 많이 폭주하고 있어! 이렇게 된 이상 얘가 남자라는 걸 밝히는 게 낫겠다!”
“어엇! 이번에는 여자 손님들이 폭주한다! 번호표 더 뽑아와!”
“아니!? 남자 손님들이 하나도 안 줄어드는데!? 오히려 더 늘었잖아! 어떻게 된 거야 이게!?”
폭주하는 주문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는 요리사.
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능숙한 솜씨로 간편하고 실용적이며 맛있는 요리들을 만들어내는 존재.
바로 비키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