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축제의 밤 (5)
어셔 포 비앙카. 18세. 신궁비가(神弓秘家) 어셔 출신. 콜로세오 아카데미의 조기입학자.
축제 준비위원으로 참가한 그녀는 또다시 짜증스러운 일에 봉착하고 말았다.
“저, 저기…… 지금껏 쭉 지켜봐 왔어. 나 너를 좋아해!”
눈앞에 서서 편지를 내밀고 있는 남학생. 열병기부와의 합동 수업에서 몇 번인가 마주쳤던 기억이 있다.
비앙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코 밑에 붙어있는 인조 콧수염을 한번 쓰다듬었다.
눈앞에 있는 남학생의 얼굴을 다시 찬찬히 훑어보는 비앙카.
백 보 바깥에서 바늘을 쏘아 맞히는 그녀의 눈썰미가 예리하게 반짝였다.
‘떡 진 화장 -13점, 피부 각질 -11점, 정리 안 된 눈썹 -12점, 입술 톤 부조화 –14점, 면도에 의한 상처 –4점, 손톱 큐티클 정리 안 함 –4점, 퍼스널 컬러와 의복의 미스매치 –5점, 무리한 탈색으로 인한 머리카락 끝 갈라짐 –8점, 어색한 여장 –22점, 100점 만점에 총점 7점.’
눈앞에 있는 남학생은 꽤나 잘 생긴 편이었지만 비앙카의 미적 기준점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너무나도 엉성해 보이는 여장이 추가 감점 요소였다.
‘여장을 했으면 이쁘든가. 이쁘지도 않잖아. 안 이쁜 건 필요없는데.’
어려서부터 그녀는 예쁜 것들을 좋아했다.
예쁜 옷, 예쁜 요리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예쁜 인형, 예쁜 무기, 예쁜 남자, 예쁜 여자, 예쁜 말, 예쁜 안장, 예쁜 편자, 예쁜 카펫, 예쁜 카펫 청소 빗자루, 예쁜 카펫 청소 빗자루 거치대…….
이처럼 비앙카는 어셔 가 내부에서도 까다로운 심미안으로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갓난아이 때도 유모를 직접 외모로 선별해 곁에 두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래서일까? 비앙카는 남자들에게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예쁘지 못하다. 여자들에 비해 잘 꾸미지도 않고 가꾸지도 않는다.
어쩌다 예뻐지기 위해 화장을 하기라도 하면 저희들끼리도 남자답지 못하다고 수군거린다.
그래서 비앙카는 지금껏 남자들에게 관심을 끄고 살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남자란 기본적으로 예쁘지 않은 생명체, 평생 가까이 할 일 없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기 초부터 지금까지 선배들에게나 동기들에게나 무수한 고백을 받아왔지만 늘 단칼에 거절해 왔었던 그녀였다.
‘비앙카! 이번에 새로 개봉한 연극 ‘닳고닳은 뉴비 2’ 보러 가지 않을래?’
‘저 그거 3까지 봤어요.’
‘비앙카! 저녁 먹었어?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래?’
‘저 내일 점심까지 미리 먹었어요.’
‘비앙카! 우리 같이 주말에 신전으로 예배 드리러 가자!’
‘저 이단이라서 부두교 믿어요.’
‘비앙카! 이번 주말에 시간 언제 돼? 시간 좀 내봐.’
‘주말 없어요.’
‘비앙카! 이번 크리스마스에…….’
‘싫어.’
차라리 예쁜 여자 친구들이랑 놀면 놀았지 예쁘지 않은 남자들이랑은 도저히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굳이 예외를 꼽자면 어린 시절부터 같이 티격태격 싸우며 자란 소꿉악우(惡友) 튜더 정도?
‘……하지만 난 예쁜 사람이 좋은 걸 어떡해.’
본인도 이런 성격을 자책하며 바뀌려고 해 보았지만 취향 문제는 도저히 바뀌지 않았다.
애초에 갓난아이 때부터 유모나 하녀도 예쁜 여자만 고집했다고 하는 걸 이제 와서 어떻게 바꾸겠냐는 말이다.
100점 만점에 20점 이상 가는 남자라도 있다면야 어울리겠다만 아카데미에는 그런 사람들조차 몇 없었다.
또 외모적인 조건을 간신히 만족하는 남자가 있다고 해도 그 중에 어셔 가문의 장녀이자 냉병기부 수석인 그녀가 굳이 먼저 다가갈 정도로 대단한 능력이나 신분까지 갖추고 있는 이들도 없었고.
‘그래. 나는 나지. 남들에게 맞추려고 굳이 내 본질을 바꿔 가면서까지 애쓸 필요는 없어.’
그래서 비앙카는 입학 이래 남자를 만나 사귀거나 친분을 다지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지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다짐은 산산조각난 지 오래였다.
‘100점. 100점이요!’
주방에서 스튜가 가득 담긴 냄비를 국자로 젓고 있는 비키르.
그 모습을 보는 비앙카의 시선이 반쯤 풀려 버렸다.
미친. 아찔한. 황홀한. 몽환적이고 퇴폐적인.
저런 위험할 정도의 미모는 같은 여자들 사이에서도 본 적이 없다.
대체 어디서 저런 말도 안 되는 게 튀어나왔단 말인가?
어렸을 적 코피 터트리며 읽던 19금 동인 만화에서나 볼 수 있던 캐릭터가 페이지를 찢고 튀어나온 느낌.
그것도 퇴폐미 뿜뿜 터져 나오는 피폐 여주 캐릭터가 직접 말이다.
비앙카는 지금 이 시점에서 부모님께 감사했다.
백 보 바깥의 거리에서도 바늘귀를 살필 수 있는 시력을 물려주셨으니 당연히 감사할 수밖에.
‘와…… 어떻게 남자가 저렇게 예쁘지? 깔 게 없네.’
아주 먼 거리에서도 눈에 마나만 불어넣는다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다.
그래서 비앙카는 수 킬로미터 밖에서 주점 전단지를 나눠 주면서도 계속해서 감탄하고 있었다.
잡티 하나 없이 세공된 상아처럼 희고 부드러운 피부, 눈이 소복하게 내려와 쌓일 듯 길고 풍성한 속눈썹, 짙고 곧은 눈썹과 그 아래 피의 호수처럼 붉은 눈동자.
원래도 잘, 아니 예쁘게 생긴 것은 알고 있었는데 화장을 하고 나니 그 미모가 한껏 더 미쳤다.
구경꾼들이 마나 스크린샷 카메라를 들고 몰려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마나 스크린샷 한 장 찍을까? 하지만 도촬은 범죄인데. 그냥 한 장만 같이 찍어달라고 할까? 으으…… 여장의 날은 1년에 한 번뿐인데. 오늘 놓치면 내년은 또 어떨지 모르고.”
좀비, 스켈레톤, 구울, 흡혈귀, 데스나이트, 마녀, 늑대인간 등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도 비앙카는 비키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툭!
비앙카의 어깨가 한번 흔들렸다.
파라락-
손에 들고 있던 전단지 몇 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어깨가 부딪친 것이다.
“아 진짜, 눈을 어디다 달고 다니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비앙카.
그런 그녀의 눈에 확 들어오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뼈. 해골 가면. 그리고 그 안으로 빛나는 시뻘건 눈동자.
‘헉!?’
비앙카는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웬 해골 분장을 한 여자 하나가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자의 전신에서는 말로는 형용키 힘들 정도로 으스스한 냉기가 흐른다.
할로윈 분장치고는 지나치게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해골 가면과 갑옷.
‘……지, 진짜 같네.’
비앙카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도 한 성깔 해서 어디 가서 기싸움으로는 밀려 본 적 없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해골 가면의 여자에게는 어째서인지 기를 펼 수가 없었다.
마나나 아우라가 아닌 존재감 그 자체, 클라스가 다른 압도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해골 가면 속에서 잔뜩 쉰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해라.]하대. 딱 한 번은 그냥 넘어가 준다는 듯, 마치 하잘것없는 벌레에게 아량이라도 베푸는 것 같은 어조.
“…….”
하지만 비앙카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입 다물고 눈 깔아라.’
본능이 시키는 경고가 머릿속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8년 인생 동안 겪어 봤던 것 중 가히 최악의 섬뜩함.
동기들 중 기 좀 쎄다 싶은 아이들도, 무게 잡는 고학번 언니들도, 하다못해 교수들 중에서도 이렇게 소름 끼치는 인상을 주는 여자는 없었다.
……아니.
굳이 하나를 꼽자면 사디 교수, 그 미치광이 정도가 유일할까?
온몸의 털이 바짝 곤두섰다. 등허리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마치 거대한 구렁이 앞의 고슴도치가 된 듯한 기분에 비앙카는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들을 줍는 것도 잊고 후다닥 물러났다.
[……흥.]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돌아서는 해골 가면의 여자.
간간이 가면이나 갑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의 상태나 체형, 목소리로 보아 동년배의 또래로 짐작된다.
하지만 그녀가 뿜어내는 존재감은 가히 어셔가의 신동이자 냉병기부의 수석 입학생인 비앙카를 압도하는 것.
“……대체 누구지?”
저렇게 할로윈 코스튬을 정성들여 입고 왔을 정도면 분명 아카데미 학생일 것인데 그렇다면 비앙카가 모를 리 없다.
“마탑이나 바랑기안에서 왔나? 하지만 거기에도 저 정도 실력자는 없을 텐데. ……혹시 복학생?”
비앙카는 식은땀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고 이내 종종걸음으로 움직여 신문부의 주점으로 향했다.
호객은 여기서 중지다.
방금 전의 공포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려서 도무지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주점으로 가서 비키르에게 교대해달라고 해야겠다. 솔직히 나보다는 걔가 호객하는 게 손님들 끌어 모으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고…….’
비앙카는 요리에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편이었으니 그쪽이 더 효율적인 판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단 한시라도 빨리 저 살벌한 여자로부터 멀어질 필요가 있었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비앙카는 걸음을 재촉했다.
신문부의 주점 주방.
비키르가 있는 곳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