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내 목은 당신의 칼집이 되어 (3)
아우라 블레이드가 내뿜는 검붉은 화광에 세에레의 표정이 젖어 일그러진다.
[나를 죽이면 이 계집아이도 죽는다!]그러나 비키르는 베일 듯한 단호함으로 대답했다.
“아니. 너만 죽을 것이다.”
동시에 붉은 초승달이 떠 세에레의 목젖에 어렸다.
…핏!
붉은 혈액이 방울져 떨어진다.
순간, 세에레는 목을 뒤로 젖혀 참격을 피해 냈다.
비키르 역시 마지막 순간 칼을 비틀어 궤도를 꺾었다.
‘……실패인가.’
비키르는 속으로 혀를 찼다.
말로는 단호하게 성공을 자신했지만 그것은 블러핑(bluffing)이었다.
최후의 순간, 비키르는 까뮤의 목을 베는 것을 주저했고 그 덕에 세에레는 목숨을 건졌다.
…콰쾅!
비키르는 꼬챙이 투성이의 벌판을 구르며 이를 악물었다.
그래듀에이터 최상급에 오른 뒤로 베지 못하는 물질은 거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추상적인 것, 영혼이나 감정 따위의 것들은 베지 못한다.
비키르는 언젠가 보았던 휴고의 검격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도망치던 안드로말리우스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른 참격, 그것은 하늘을 일곱 조각으로 쪼개었고 물질과 반물질의 경계 어디쯤에 위치해 있던 안드로말리우스의 사념체를 베어냈다.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다면 까뮤와 세에레를 분리시킬 수 없다는 건가.’
현재 까뮤와 세에레는 계약의 끈, 악연(惡緣)으로 묶여있다.
그 질기디질긴 매듭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것이어서 강철도 끊어내는 그래듀에이터의 아우라로도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지고의 영역, 소드마스터의 아우라라면 다르다.
철인을 뛰어넘은 초인의 힘. 오로지 그것만이 까뮤와 세에레의 관계를 완벽히 베어내 단절시킬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내 힘으로는 둘 다 죽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데.’
실로 난감한 일이었다.
핏-
또다시 마법과 칼이 교차했다.
퍼퍼퍼퍽!
비키르의 왼쪽 팔뚝에 자그마치 스물네 개의 쇠꼬챙이가 박혀 들었다.
세에레 역시 칼에 맞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급소를 피해 간 일격이었을 뿐이다.
[호호호- 역시나, 행동이 말을 못 따라오는데? 좀 더 함부로 굴어 봐.]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독해질수록 대기에 번지는 마기 역시도 진해진다.
스르르르르……
세에레가 뿜어내는 살기(殺氣)에 닿자 그 기저에 섞여 있는 까뮤의 감정마저 전해져 온다.
슬픔, 애정, 갈망, 원망, 원망, 그리고 애틋한 그리움.
여덟 살 이후로 쭉 품어왔던, 지우고 감추려 해도 계속해서 싹트고 뿌리를 내리던 그 감정이 여과 없이 스며든다.
그것은 이내 비키르가 사라진 이후의 감정으로, 그리고 비키르를 찾기 위해 밤낮없이 수해를 뒤지던 시절의 감정으로, 그리고 비키르가 죽었다고 생각해 수색을 포기한 뒤 그를 되살리기 위한 연구에 몰두하던 시절의 감정으로, 그리고 어머니와 숙부를 등지고 암당의 일부가 되었을 때의 감정으로, 무시무시한 사고에 휘말려 몸과 영혼의 절반을 잃고 악마와 계약하기까지의 감정으로……
“…….”
비키르는 이를 악물었다.
제아무리 난다긴다해도 그래듀에이터의 실력으로는 어쩔 수 없다.
읍참(泣斬). 우는 한이 있더라도 참해야 한다.
하지만 사감은 사명감마저 짓누른다.
마음속에서 오래전에 죽인 줄 알았던 감정들이 다시금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었다.
‘휴고도 이런 기분이었나?’
그 역시도 아내와 딸을 잃었을 때 비로소 소드마스터, 초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들었다.
당시의 휴고가 어떤 종류의 감정을 얼마만큼이나 품고 있었을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비키르는 일단 차오르는 숨부터 골랐다.
퍼퍼퍼퍽!
지금 이 순간에도 몸을 뚫고 박히는 쇠꼬챙이들, 심지어 지옥불에 달궈져 있어 지독하게도 뜨겁다.
세에레는 새끼마담이 설치해 둔 거미줄의 함정을 모두 태워 버렸다.
그리고 묵묵히 고통을 받아내는 비키르를 보며 이죽였다.
[어차피 네게는 승산이 없어. 너는 이 계집아이를 죽이지 못한다.]“…….”
말이 없는 비키르를 향해 세에레가 조건을 걸었다.
[좋아. 그럼 우리 거래를 하자.]“……?”
비키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세에레는 비키르의 태도가 변했다고 생각하며 씩 웃었다.
[결계를 풀어.]그녀의 요구조건은 심플했다.
[네가 이 결계를 풀고 물러난다면 나는 이곳을 떠나겠어. 아무도 죽이지 않고.]“…….”
[하지만 이 제안을 거부한다면? 너도 알지?]세에레는 까뮤의 얼굴로 활짝 웃어 보였다.
[네 마나가 모두 동나는 순간, 나는 이 결계를 깨부수고 나가서 이 아카데미 안에 있는 모든 아이들을 죄다 죽여 버릴 거야.]세에레 역시도 지금 이 상황에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하기야, 이곳에서 아무리 죽자사자 싸워봐야 세에레에게 이득될 것은 하나도 없다.
살아남아 봐야 본전, 악마는 절대 밑지는 거래는 하지 않는다.
[너만 물러난다면 모두가 살 수 있어. 너도 나도 이 계집애도, 그리고 아카데미의 모든 민간인들도.]세에레는 당연하다는 듯 결계를 풀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비키르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악마와는 거래하지 않는다.”
[뭐? 너 이 계집아이를 죽일 셈이야?]“아니. 너만 죽일 것이다.”
[아니 뭐 이런 벽창호가…… 네가 무슨 수로?]세에레의 말에 비키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듀에이터의 액체 아우라. 확실히, 이런 말랑말랑한 것으로는 까뮤와 세에레와의 계약의 끈을 잘라낼 수 없다.
소드마스터의 고체 아우라. 그런 단단한 것이어야만 보이지 않는 저 무형의 매듭을 끊어낼 수 있으리라.
동시에 아까부터 머릿속에 부유하던 생각이 정리된다.
-6식의 극의에 오르기 위해서는 감정을 버려야 한다.
-하지만 7식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감정을 품어야 한다.
비키르는 지금 자신이 까뮤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회귀 전, 멸망의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에 대한 존경.
그리고 회귀 후, 나름대로 정이 든 동갑내기 소꿉친구.
‘막내 여동생이 있었다면 저런 느낌이었을까?’
조카인 포메리안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그런 감정이 있다.
비키르가 죽였다고 생각한 감정은 미약하게나마 살아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다.
그리고. 비키르가 막 그 감정을 발견하는 순간.
[……지금이야!]갑자기 세에레의 표정이 바뀌었다.
까뮤의 눈 속 흰자위와 검은자위가 순간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피눈물을 흘리며 외치는 까뮤.
그녀의 기백이 순간 세에레의 정신을 밀어내고 몸의 지배권을 되찾은 것이다.
……그래 봐야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까뮤의 몸 뒤로 밀려난 세에레가 항의했다.
[미친년! 감히 12시간을 넘기고서도 몸을 빼앗아!? 이건 계약위반이야! 네 영혼이 바스라질 거다!]하지만 까뮤는 여전히 몸의 통제권을 부여잡고 있었다. 영혼이 깎여나가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녀는 입과 손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 채 외쳤다.
[빨리 해!]까뮤의 두 손은 단단한 뼈의 갑옷을 잡아 찢으며 자신의 목과 가슴께를 드러내고 있었다.
영혼과 영혼이 한 육체 안에서 서로 충돌한다.
마나 폭주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까뮤의 몸 뒤로 안개처럼 부유하게 된 세에레가 기겁해서 외쳤다.
[마나 폭주가 또 온다! 너 그 고통을 또 겪을 셈이야!? 이번에는 진짜 죽는다고!] [비키르! 어서!]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외치는 까뮤.
이제 정말로 그녀와 목과 가슴은 비키르의 칼집이 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
까뮤의 목을 향해 붉은 궤적을 휘두르는 그 순간. 비키르는 생각했다.
‘실수하면 안 된다.’
기회는 단 한 번.
그동안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노련한 백전노장조차도 이번에는 손아귀가 땀으로 흠뻑 젖을 수밖에 없었다.
찰나를 찰나로 쪼갠 그 무시무시할 정도로 짧은 순간.
비키르는 수없이 많은 고민과 번뇌, 갈등 속에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비키르가 죽였다고 생각한 감정은 뿌리를 내린 뒤 싹을 틔웠고 결국에는 열매를 맺고야 말았다.
펑! 하고 터져 나오는 감정의 소용돌이. 범람.
그것은 그동안의 모든 메마르고 갈라 터진 결핍을 격정적으로 휩쓸어버렸다.
눈앞에 있던 벽.
그 어떤 것으로도 넘거나 무너트릴 수 없을 것 같았던 크고 높았던 벽이 파도에 젖은 모 래 성 처 럼 우 르 르- 무 너 져 내 린 다.
이렇게나 쉬운 것이었나? 싶을 정도로 다소 어이없게.
그와 동시에, 벽 뒤에 막혀 있었던 미증유의 힘들이 폭발적으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 ……! ……!”
전신 혈맥에 힘이 넘친다. 마치 인간을 초월해 상위의 다른 무언가가 된 듯한 고양감.
비키르는 전에 이런 기분을 딱 한 번 느껴 본 적이 있었다.
성녀 돌로레스의 가호를 받아 단탈리안의 목을 벨 때 말이다.
……다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지금 여기에 성녀는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눈앞에 있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이빨을 드러낸 상처투성이의 사냥개 한 마리뿐!
이윽고.
비키르가 휘두른 칼끝의 궤적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일곱 번째 이빨, 그 어떤 이빨보다도 크고 날카롭게 빛나는 핏빛의 궤적이 눈앞에 있는 까뮤의 목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리고.
벨 수 있는 것을 베는 칼은 베지 못하는 것을 벨 수 있는 칼이 되었다.
싹뚝-
지고(至高)의 영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