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내 목은 당신의 칼집이 되어 (4)
모든 인간은 도수가 맞지 않는 색안경을 낀 채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소드마스터란 그 안경을 벗은 자들이다.
‘탈경(脫鏡)’.
철인을 넘어서 초인의 경지에 오른 그들은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심검(心劍)’.
능히 그것들을 베어 버릴 수 있다.
싹뚝-
지고(至高)의 영역에 이른 칼날이 대기를 한번 훑고 지나갔다.
일곱 번째 이빨은 거대한 궤적을 그리며 공간을 반으로 절단해 버렸다.
“……!”
비키르는 전신의 마나가 폭발하듯 증가하는 것을 느꼈다.
마나 폭주와는 달랐다. 어마어마한 힘과 고양감이 등을 떠받치고 있었다.
지금껏 케케묵은 허물을 뒤집어쓰고 살고 있었다는 자각.
방금 전의 자신이 벌레처럼 느껴질 정도의 해방감.
비로소 비키르는 옛날의 휴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끼는 소중한 것을 잃고 난 뒤에야 발견한 자신의 자아, 그리고 그 순간 오른 지고의 경지.
소드마스터의 넘치는 힘과 시야, 사고방식, 인간을 한참 전에 초월한 영역.
자신 외의 다른 모든 것들이 벌레나 소모품처럼 여겨질 만도 하다.
……하지만 비키르는 휴고와는 달랐다. 그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공감하지는 않는다.
휴고는 최후의 벽을 넘는 순간 마음이 향하는 대상을 잃었고, 비키르는 되찾았기 때문이다.
콰콰콰콰콰콰쾅!
칼이 먼저 지나간 뒤 약 1초 뒤에 소리가 따라왔다.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일어 주변의 검은 안개들을 일거에 싹 걷어버렸다.
하지만.
…털썩!
놀랍게도, 그 폭풍의 한가운데에 서 있던 까뮤의 몸은 멀쩡했다.
다만 그녀는 실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을 뿐이었다.
동시에.
[꺼헉!? 꺼으윽!?]흩어졌던 검은 안개가 다시 모여들어 하나의 구체를 이룬다.
세에레. 까뮤와 계약의 끈으로 얽혀 있던 존재.
하지만 방금 전, 비키르의 참격에 의해 악마와의 인연은 끊어졌다.
그 질기디질긴 영혼의 매듭이 끊어지는 순간 세에레는 까뮤의 몸 바깥으로 떨어져 나온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악마와의 계약을 깨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놈은 남은 생명력을 한데 쥐어짜 까뮤의 몸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그 앞으로 드리워진 것은 일곱 개나 되는 사냥개의 이빨이었다.
[안 돼! 나, 나는 게이트를 열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세에레는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역설했지만 그것은 되려 비키르로 하여금 그를 죽여야 하는 이유를 더욱 더 확실하게 한 셈이었다.
…번쩍!
결계 안의 공간이 일곱 조각으로 갈라졌다.
폭약과도 같은 굉음. 벼락보다도 빠른 참격.
폭풍을 동반한 일곱 개의 검붉은 천둥이 세에레의 잔여사념을 완전하게 공중분해했다.
파긱-
세에레는 고기조각 한 점, 영혼 한 자락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
비키르는 선 자리에서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세에레가 조금만 더 강해져 있었어도 상대하기 어려웠겠군.’
악마는 오래 묵을수록 강해진다.
특히나 대규모의 망자병 군단을 이끌고 다니는 팔번시 세에레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더 무서워지는 적, 조기에 발견해 처단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행운이었다.
한편.
비키르는 가면과 흑궁 아누비스를 회수했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육체는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키도 훤칠하게 커졌고 몸도 더욱더 다부져졌다.
“…….”
철혈의 그래듀에이터가 되기 위해 말려 버렸던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꽃은 소드마스터가 된 이후 다시금 생동감 있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때.
파직!
검은 번개 하나가 대기를 가로질렀다.
“……!?”
비키르가 고개를 돌리자 까뮤의 몸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의식을 잃은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바닥에 마법진 하나가 그려져 빛난다.
…파앗!
텔레포트. 근거리를 이동하는 기술이다.
까뮤의 몸을 이동시키고 있는 이는 역시나 제론토였다.
공간이동 마법이 발동되는 순간, 비키르는 고민했다.
칼을 뻗어 눈앞에 있는 제론토의 목을 날려버릴 것인가.
“…….”
[…….]그 짧은 사이 비키르와 제론토의 시선이 서로 마주한다.
“…….”
하지만 결국 비키르는 손을 쓰지 않았다.
실로 오랜만에 재회한 까뮤를 그냥 보내 주기로 한 것이다.
제론토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그런 비키르를 바라보았다. 마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라도 하는 것처럼.
비키르는 결계를 일부 해제해 주었고 제론토는 그 틈으로 까뮤를 데리고 사라졌다.
핏-
이윽고, 텅 빈 결계 안에는 비키르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아니, 혼자는 아니었다.
[핵핵핵-]어느새 어깨 위로 내려온 새끼마담이 비키르의 볼에 몸을 부비적거렸다.
마치 적을 왜 그냥 보내 주냐고 묻는 것 같은 눈동자.
비키르는 짧게 대답했다.
“제 언니를 끔찍하게 아끼는 동생이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제론토는 예전에도 까뮤의 의식이 끊겼을 때 비키르를 공격하지 않고 다만 그녀를 지키기 위한 행동만을 했다.
이번에도 역시 그녀를 데려가려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비키르는 판단했다.
‘흑마법사의 치료법은 일반적인 이들과 다르다. 포션이나 힐 마법은 흑마법사의 체내에 흐르는 어둠의 마나와는 상극 관계, 뭔가 다른 치료법이 있어야 할 텐데…….’
결계를 걷는 즉시 아카데미의 거리가 등장하니만큼 제론토가 까뮤를 제대로 치료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 *
한편.
“……결계가 사라졌다!”
눈을 감고 주위 마나의 흐름을 읽고 있던 밴시 교수가 외쳤다.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온 모든 교수들과 황실경비대의 일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밤의 사냥개는!?”
“미등록 흑마법사는!?”
“놈들이 그새 어디로 사라졌다는 겁니까!”
하지만 이들 중 가장 마도의 경지가 높은 밴시 교수조차도 이 결계가 어디에 세워졌으며 어디로 사라졌는지까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그저 있다는 것만 희미하게 감지하고 있다가 그마저도 놓쳤을 뿐.
결계를 놓친 밴시 교수의 얼굴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실로 은밀한 기척. 인간의 경지로는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수준의 결계술이오.”
아카데미의 차기 교감 후보인 밴시 교수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말 다한 셈이다.
모두가 경악하고 있을 때, 한 명이 높은 웃음소리를 냈다.
“호호호- 과연, 악마의 솜씨라 이거네. 역시 예술적이야, 밤의 사냥개.”
사디 교수.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그녀가 깔깔 웃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이 날카로워진다. 밴시 교수가 그들을 대표해 일침을 놓았다.
“제국의 교수이자 황실경비대의 자문위원으로서 범죄자를 찬양하는 듯한 언동은 삼가시오. 사디 교수.”
“그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 말라고 노땅.”
밴시 교수와 사디 교수는 또다시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한편.
학생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밤이슬이 내려 축제의 열기가 한풀 식자 다들 술과 분위기에서 깨어 맨정신으로 돌아왔다.
“뭐야? 왜 공연들이 다 중단됐어? 음악은 왜 꺼졌고?”
“뭐 빌런들이 습격해 왔다던데?”
“에이, 말도 안 돼. 아카데미에서 무슨~”
“진짜야. 그래서 방금 교수님들 다 모이시고 황실경비대도 옴.”
“와 대박! 습격해 온 빌런이 밤의 사냥개래!”
“미친!? 진짜로!? 피해는 어느 정도인데?”
“……의외로 없다는데? 피해가.”
모두들 웅성거리기 바쁘다.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 싱클레어 역시도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너 봤어? 봤지? 그 해골 가면 쓴 여자 진짜 무섭더라.”
“부끄럽지만 너무 무서워서 맞설 엄두도 안 나던데. 대체 뭐였지 그건?”
“와아- 나 진짜 심장 떨려서 기절하는 줄 알았어.”
“밤의 사냥개도 진짜 무섭더라.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것들 중에 제일 살벌했어.”
“맞아 맞아,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오줌 쌀 뻔했…….”
그때.
“정말이다. 너무 무서워서 숨도 못 쉬겠더군.”
은근슬쩍 친구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비키르였다.
친구들은 경황이 없는 와중이어서 그런가 그간 비키르의 부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비키르! 어디 있었어 너 인마! 걱정했잖아!”
“아까 주점 주방에 있지 않았던가? 무사해서 다행이다.”
“으앙, 비키르! 걱정했었어! 교수님들 모시고 와서 너부터 찾았는데 없어서!”
“그러고 보니 너 어디 있었던 거야?”
“형아도 교수님들 불러오러 갔었구나!”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 싱클레어는 각각 비키르를 맞이하며 한마디씩 했다.
그때.
“……비키르?”
비키르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성녀 돌로레스.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비키르를 돌아본 것이다.
“이 거리를 수색하는 동안 너를 본 적 없는데? 그동안 어디에 있었니? 네 성격에 친구들을 두고 어디로 숨거나 도망쳤었을 리 없고.”
순수한 호기심이 엿보이는 눈동자.
중간고사에서 친구들을 위해 한 몸 바쳐 희생했던 비키르가 이런 재난 상황에서 혼자만 몸을 피했을 리 없다.
돌로레스가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자 튜더, 산쵸, 피기, 비앙카, 싱클레어의 시선 역시 다시금 비키르를 향한다.
“……그것이.”
비키르가 약간 주저하던 끝에 변명거리를 말하려 하는 순간.
“이 평민 녀석! 혼자서만 방어선에서 빠지면 어떻게 하냐! 죽을 뻔 했잖아!”
“했잖아!”
“했잖아!”
비키르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주는 세 명의 목소리가 있었다.
하이브로, 미들브로, 로우브로 세쌍둥이. 녀석들이 비키르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자식이 활 좀 잘 쏜다고 말야. 그렇게 앞서 나가면 우리가 뭐가 되냐고! 담부터는 나대지 마라.”
“나대지 마라.”
“나대지 마라.”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일까?
바스커빌가의 세쌍둥이들은 비키르의 머리를 쥐어박거나 멱살을 잡기도 하는 듯 요란을 떨었다.
순간, 비키르가 아무도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세쌍둥이들을 향해 눈을 빛냈다.
‘오버하지 마라.’
‘……네.’
세쌍둥이들은 비키르를 면박 주는 것을 살짝 줄였다.
그 뒤로는 뭐, 예전의 일상과 똑같았다.
튜더가 비키르를 괴롭히지 말라며 뛰어들었고 바스커빌가의 세쌍둥이들은 적절한 타이밍에 빠져 주었다.
교수들은 저마다 사태를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연구 논문을 쓸 좋은 소재를 잡았다 싶은 눈치였다.
“밤의 사냥개는 사실 밤에만 힘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동이 틀 것 같으니 도망친 겁니다.”
“그렇다면 그 정체는 흡혈귀 종류의 마물일 수도 있겠군요.”
“한데 이 사태는 결과적으로 누가 진압한 거요?”
“목격자들 진술을 듣자 하니 밴시 교수와 사디 교수의 공이 큰 듯합니다.”
“그 전에…… 오래 전에 아카데미를 졸업한 전대의 학생회장인 오시리스 레 바스커빌 군이 이 자리에 있었다는군요! 저는 그가 도와준 것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갑론을박. 끼워 맞추기식 결론. 모든 것들이 전과 똑같았다.
“…….”
비키르는 대사건의 마지막과 일상의 시작이 접목되는 부근에 서서 고개를 들었다.
땅거미의 끝. 새벽이 트는 먼동.
밤이 가고 아침이 온다.
가장 어두운 어둠도 가장 약한 빛에 의해 물러난다.
비키르는 오늘 그것을 증명했고 이 자리에 살아서 서 있었다.
회귀하기 전, 목숨을 내걸고 싸웠던 전장의 끝에 서서 무사히 새벽을 맞이하는 그때의 가슴 벅참이 새삼스럽게 심장을 두들긴다.
……다만. 오직 한 가지.
‘괜찮을까.’
사라져 버린 까뮤가 걱정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