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그날의 그와 나의 (2)
시간은 유수와도 같아서 붙잡지 않았음에도 너무나도 쉽게 흘러가 버린다.
그래서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흐름이 더더욱 빠르게 느껴지는 법이다.
-모르그가의 암당(暗黨)-
늘 그림자에 잠겨 있는 이곳은 높은 탑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까마귀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음울한 하늘 아래 뾰족뾰족 솟아나 있는 탑들.
그리고 그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대의원좌(座)에는 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깡마른 체형에 껑충 큰 키. 등 뒤로 뿜어져 나오는 음습한 아우라.
검붉은 머리칼에 검붉은 눈동자를 가진 냉막한 인상의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모르그 스네이크.
마도종가 모르그의 암당을 책임지고 있으며 가문 내에서 서열 3위로 통하는 존재.
가주인 모르그 레스파네와 명당의 대의원인 모르그 아돌프에 이어 모르그가를 지배하는 실세 중의 실세이다.
하지만 친남매 사이인 레스파네와 아돌프가 우애 좋은 것과는 달리, 약간은 먼 항렬인 스네이크는 그들과 달리 겉돌고 있었다.
그리고 암당 역시 그런 스네이크의 성정에 맞게끔 가문 내에서 어쩐지 동떨어져 있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뭐 아무튼. 암당은 그림자 속에 숨어 은밀한 연구와 실험을 진행하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성과는 모르그의 창과 방패가 되기에 암당의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스네이크는 분명 모르그가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
그런 스네이크가 지금 인상을 찌푸린 채 제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곳에는 또랑또랑한 얼굴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소녀 하나가 서 있었다.
모르그 까뮤. 명당 소속의 중의원이자 장차 모르그가의 주인이 될 사람이었다.
스네이크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명당 소속의 소가주께서 여기는 어쩐 일이시오?”
명당 소속의 모르그가 이곳 암당을 찾아올 이유는 거의 없다.
분기별로 한 번씩 기술을 교환할 때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마저도 관록 있는 실무자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었기에 얼마 전 열일곱 살이 된 까뮤로서는 이곳에 올 이유가 더더욱 없는 것이다.
하지만.
“명당은 탈당했습니다.”
까뮤의 말에 스네이크는 두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말에는 눈썹을 까닥 움직였다.
“암당에 입당하고 싶습니다.”
폭탄선언. 당적을 바꾸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하물며 모르그가의 미래를 책임질 소가주의 신분에서야 더더욱.
스네이크는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겨우 입술을 뗐다.
“……어째서이지?”
“헛고생에 지쳐서요.”
까뮤는 바로 대답했고 스네이크는 또다시 침묵했다.
까뮤가 비키르를 찾기 위해 요 몇 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적과 흑 산의 수해를 수색했다는 것은 스네이크 역시 보고를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까뮤가 요 몇 년 사이 목적을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작은 수확조차 없었다는 것 역시도 잘 알고 있다.
“……결국 못 찾았나 보군.”
“네.”
까뮤는 시원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실패를 시인했다.
지난 시간 동안 수해를 미친 듯이 뒤졌지만 결국 비키르의 유해는 찾을 수 없었다.
8살 때의 인연. 그리고 15살 때의 재회.
붉은 송곳성에서 지냈던 며칠간은 까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결혼을 해서 신혼기간을 보낸다면 마치 그와 같았을까? 그때의 까뮤는 그 행복이 평생 이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하지만 그것은 깨졌다. 증오스러운 밀림의 원주민 놈들 때문에!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마물 때문에!
까뮤는 이를 악물고 수해를 뒤졌다.
그리고 뒤지면 뒤질수록 인정해야 했다.
비키르는 이제 없다. 죽었다. 뼈도 추리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까뮤는 흑화(黑化)하고 말았다.
“흑마법을 배워서 그를 되살리고 싶습니다.”
“……시신조차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
“녀석의 혼이 아직 구천을 떠돌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이미 망령화(亡靈化)했을지도 모르지요. 어찌 되었건 불러들여서 되살릴 생각입니다. 나중에라도 유해를 찾으면 더 좋고요.”
그 말에 스네이크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소가주. 당적을 바꾸는 것을 너무 쉽게 여기는 것 아니오? 명당에서 나와 암당에 들어오고 거기에 흑마도의 길까지 걷겠다니. 이것이 뜻하는 바는…….”
“어머니와 숙부, 그리고 소가주로서의 제 모든 권한을 버리고 평생 영원히 그늘에 숨어 살겠다는 것이지요.”
까뮤는 그런 스네이크의 말을 칼처럼 끊는다.
스네이크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반쯤 벌렸다.
저 멀리, 콜로세오 아카데미에 교수로 있는 사촌 동생 모르그 밴시 만큼이나 표정 변화가 없는 그이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놀란 모양.
이윽고, 스네이크는 끙 소리를 내며 앉은 자세를 고쳤다.
“……암당에, 이 내게 대체 뭘 바라고 있는 거요, 소가주?”
“아까도 말했지만, 흑마법을 배워서 되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기껏해야 망령, 혹은 시체를 움직이게 할 뿐이오.”
“거기에 생전의 영성을 깃들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걸로 압니다만.”
“!”
스네이크의 표정이 한번 또 움찔 떨렸다.
까뮤가 말하는 흑마법은 죽은 자를 거의 완전한 상태로 되살려내는 ‘완전소생의 술’로 자기 목숨을 제물로 삼는 위험한 종류의 고대 흑마법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위험한 고대 흑마법이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모르그가에서도, 제국에서도 엄격히 금기시하고 있는 외도마법(外道魔法)이다.
“……그 마법은 배우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공확률이 극히 희박하지. 그리고 만 번 양보해서 대상을 살려내는 것에 성공했다고 쳐도 그 이후 타락하거나 폭주할 가능성이 높소.”
“제가 살리려고 하는 이의 영혼은 강인합니다. 일단 성공한 뒤부터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성공만 할 수 있다면요.”
까뮤의 믿음은 굳고 단단했다.
그녀의 눈빛을 본 스네이크는 잠시 멈칫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이내 딱 잘라 말했다.
“거절하오.”
이후 검은 병풍들이 펼쳐지며 스네이크와 까뮤의 사이를 가린다.
명백한 축객령.
하지만 까뮤는 나가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스네이크 후작. 당신이 우리 엄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압니다.”
순간, 펼쳐지던 병풍들이 우뚝 멎었다.
까뮤는 병풍 너머에 있을 스네이크를 향해 계속 말을 이었다.
“근친 간의 사랑 역시 외도(外道). 당신은 하늘을 볼 면목이 없다며 모르그의 그늘 속 음지로 숨어들었지요. 천재적인 재능 탓에 반강제로 암당의 수장이 된 지금도 당신은 여전히 가주를 사랑하고 있어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드르륵!
시야를 가리고 있는 검은 병풍들이 모두 치워졌을 뿐이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스네이크가 어느새 대의원좌에서 내려와 까뮤의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돌프가 말하던가? 내가 더러운 인간이라고? 가서 그런 말로 조롱하라고 시키던가?”
하지만, 까뮤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숙부는 내게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원로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듣고 알았을 뿐.”
“헛소리. 원로들은 이미 다 늙어 죽었을 텐데?”
“사자유언(死者有言). 죽은 자들도 말이 많더군요.”
이윽고, 까뮤가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뒤로 검은 아우라가 맺히는가 싶더니 허연 수염을 기른 노인들의 영혼이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원로들의 망령이었다.
벌써 흑마법을 쓸 줄 알게 된 까뮤를 보고 스네이크가 깜짝 놀라 물었다.
“이 흑마법은 대체!? 누가 소가주를 가르쳤소!?”
“독학했습니다.”
“……뭐, 뭐라고?”
스네이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독학으로 흑마법을 배웠다고? 그게 가능키나 한 소리인가?
그 말은 혼자서 하나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이라면 실로 경이로운 재능.
“……과연.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라는 것이 사실이었군.”
스네이크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태도가 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과는 관계없는 일이지. 나는 소가주가 암당에 입당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소.”
“그것은 어머니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 싫기 때문인가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해서?”
까뮤의 반문에 스네이크는 일순간 말문이 막히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뒤이어진 까뮤의 행동은 더더욱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녀는 옷고름을 풀고는 앞으로 걸어왔다.
이윽고, 모든 옷이 바닥에 떨어지고 까뮤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까뮤는 스네이크에게 말했다.
“저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똑 닮았지요. 그런 제 몸을 취하게 해 드린다면,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요?”
그녀는 스네이크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목표를 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실로 강하고 뜨거운 열망이 까뮤의 눈을 찬란하게 빛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을 본 스네이크의 동공이 흔들린다.
“……옷을 입게.”
“…….”
“옷을 입어, 소가주.”
스네이크는 고개를 돌린 채 손짓했다.
…차라락!
옷이 뱀처럼 일어나는가 싶더니 까뮤의 전신을 휘감아 버렸다.
어느 샌가 옷을 멀끔하게 입은 모양새가 된 까뮤의 앞으로.
“다시는 그녀를 향한 내 감정을 모욕하지 마라.”
천하의 모르그 스네이크 후작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그런 스네이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까뮤.
이윽고 그녀의 입이 열렸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