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그날의 그와 나의 (3)
모르그 스네이크.
그는 모르그가의 일원인 동시에 제국군에 등록되어 있는 정식 흑마법사이기도 했다.
12-73062191, 이것이 그의 군번. 즉, 그는 신원 보증이 확실한 사람이며 제국의 통제와 감시 하에 있는 군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비밀스러운 공간은 있었다.
암당의 본부 지하실. 아래로 자그마치 600층이 넘게 뻗어나간 지하공간.
-암부(暗扶) 666층-
이곳은 제국의 감시도, 모르그가의 시선도 닿지 않는, 오직 암당의 대의원만이 알고 있는 공간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고 이어지는 나선형의 층계를 직접 걸어 내려가며, 스네이크는 뒤따라오는 까뮤에게 말했다.
“소가주.”
“예. 스승님.”
“‘모르그’의 시초를 아시오?”
스네이크는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어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까뮤는 이에 대해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네이크는 등불을 들어 지하의 어둠을 밝히며 말했다.
“모르그가의 첫 시작은 영안실(靈安室), 시체 안치소였다오.”
“……!”
“그것도 신원미상의 시체들만 보관하는, 그런 업무를 도맡아 하는 작은 가문이었지.”
‘모르그(Morgue)’는 인간이 가문이나 국가라는 개념을 정립하기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왔던 아주 오래된 핏줄의 한 명칭으로 이 혈통을 이어받은 이들이 주로 하던 일은 신원미상의 시체를 수거해 연고자를 찾아주던 것이었다.
생전의 신상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시체들을 수습해 유족을 찾고 그 시체를 양도한 뒤 보수를 받는, 그런 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망자와 함께 있는 일이 많았고 시간이 흘러 망자와 대화가 가능한 이들도 점차 출현하게 되었다.
한때 일국(一國)에 버금가는 위세를 누리게 되었을 때도, 몰락 후 수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맥이 끊겨 있었을 때도, 다시 한번 마도의 종가(宗家)라 불리게 되었을 때도, 이 기묘한 능력을 타고난 이들은 꾸준히 출현했다.
바로 지금의 까뮤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엄밀히 따지자면 모르그가의 시초는 죽음과 아주 밀접하지. 시조(始祖)부터가 망자와 대화하여 그들을 부리는 이였으니까.”
“……태생부터가 흑마도에 닿아 있었군요.”
“바로 그렇소.”
스네이크는 등불을 들었다.
깊은 무덤 속의 석실처럼 조용하고 음울한 공간.
살갗에 와 닿는 대기마저 아주 싸늘했다.
스네이크가 중얼거리듯 말하는 목소리는 그의 발소리보다도 작았기에 까뮤는 한층 더 귀에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그렇기에 모르그의 흑마도인들은 알고 있지. 인간이 평생 살아가며 탐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진리란 모래사장에서 집어든 모래 한 줌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럼 대부분의 진리는 어디에 있죠?”
“그야 죽음 뒤지. 문 너머에 말이오.”
죽음의 문을 넘어야 인간은 비로소 완전히 자유로워지며 영원해진다.
그 뒤에 있는 무한한 진리를 탐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마법의 천재들은 결국은 흑마도에 귀의하게 되는 것이라오. 똑똑하고 뛰어난 이들일수록 유혹에 쉽게 흔들리게 되지.”
“죽음에 친숙해질 필요가 있겠군요.”
“아니. 그 전에 먼저 죽음을 경계해야 하오.”
“?”
까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스네이크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명심하시오, 소가주. 흑마법사야말로 죽음을 가장 경원시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건 왜 그런가요, 스승님?”
“죽음을 이해하고 친숙하게 느끼기 이전에 먼저 삶부터 이해하고 친숙하게 느껴야 하니까.”
스네이크의 말은 음울했지만 진중했다.
그는 까뮤를 향해 신신당부했다.
“삶. 타인을 향한 감정. 사랑. 우정. 신뢰. 세상의 그 모든 것들과의 유기적 관계.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삶의 소중함. 이것들을 먼저 이해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죽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오. 모든 것은 양면적이거든.”
“죽음과 먼저 친숙해질 수는 없나요?”
“그것은 겉멋에 취한 머저리들이 흑마법사를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오.”
“……어렵네요.”
“어렵지. 실로 어려운 일이지.”
세간의 편견과 달리, 진정한 흑마법사란 그 누구보다도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깊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죽어 가는 모든 것들을 동정하는 자.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대현자나 성인(聖人)에 가까운 존재였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게 이런 뜻인가.’
까뮤는 점차 흑마도에 관심을 느끼고 있었다.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서의 순수함으로.
* * *
시간이 꽤 흘렀다.
까뮤는 스네이크의 가르침 아래 놀라운 속도로 지식을 쌓아 나갔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실력은 몰라볼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파앗!
검은 기류가 휘몰아치며 그 속에서 뼈과 가죽만 남은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모르그 로제. 과거 야만인들과의 싸움에서 전사한 까뮤의 육촌 동생이었다.
까뮤는 수해를 수색하다가 발견한 로제의 유골을 이용해 그녀를 망자병으로 만들었다.
“로제!”
까뮤와 로제는 서로 끌어안는다.
워낙 고클래스의 흑마법으로 인해 되살아난 그녀인지라 아주 낮은 수준의 지능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마도의 경지는 생전보다도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한편,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스네이크는 대단히 감탄했다.
“벌써 영성을 가진 망자병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줄이야. 실로 놀라운 성취로다.”
흑마도에 귀의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 정도 성취란 말인가?
까뮤는 이미 인간이 발견한 흑마도의 거의 모든 경지를 섭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은 부분들이야 나이를 먹어 갈수록 차차 정복해 나가면 될 일.
‘어쩌면 이 아이야말로 인간이 개척한 흑마도의 끝을 볼 수도 있겠어.’
스네이크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까뮤는 그 정도야 당연히 깔고 가는 것,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정도로는 안 돼요.”
까뮤는 슬픈 표정으로 로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스네이크를 향해 말했다.
“제가 찾고 있는 것은 망자를 완전히 소생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딱 거기까지가 인간의 영역이오. 그 이후부터는 신의 영역.”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앞에 인간과 신의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동시에, 까뮤는 스네이크의 앞으로 커다란 종이 하나를 펼쳐 놓았다.
어마어마하게 복잡하고 세밀한 도형들이 그려져 있는 도면이었다.
스네이크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 이건!?”
“완전소생의 마법진. 제가 나름대로 연구한 결과입니다.”
까뮤의 담담한 말을 들은 스네이크의 전신에 오싹한 소름이 타올랐다.
방금 전 로제를 되살린 술법에서 몇 단계나 더 발전한 모델. 심지어 몇 번을 꼼꼼히 뜯어 봐도 완벽해 보인다.
스네이크는 눈앞에 있는 젊은 천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싹튼다. 기특함, 질투, 공포, 애정, 그리고 슬픔.
과거의 ‘그녀’를 꼭 닮은 저 얼굴에서 자신은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스네이크는 마도의 심연 깊숙이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속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어 알 수 없었다.
다만 질문할 뿐이다.
“비키르라는 남자가 그렇게 좋은가.”
“…….”
까뮤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스네이크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대가 원한다면야.”
먼 옛날, 암당의 대의원좌에 오를 때 ‘한 여자’에게 했던 말을 수 십 년이 흐른 뒤 그녀의 자식에게도 할 줄은 몰랐다.
이윽고. 두 명의 천재 흑마법사가 술식 앞에 머리를 맞대었다.
“살리고자 하는 대상의 유해가 없는데 이 점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바스커빌가에 협조를 구해 약간의 핏방울과 머리카락을 모았습니다. 또한 수해에서 불러들인 불특정다수의 망령들 중에 그의 영혼 조각이 섞여 있을 수도 있지요.”
“그렇군. 육체의 파편이 있다면 영혼의 파편 역시도 반응할 테니 그때 선별하면 되겠어.”
입맛대로 움직이는 시체를 넘어 생전의 기억과 인격을 가진 시체.
아니, 그쯤 되면 그것은 이제 시체가 아니다.
스네이크가 입을 열었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역설을 아는가? 몸과 기억, 인격을 되찾았다고 해서 과연 그가 그일지는 고민해 볼 문제로군.”
“그런 존재론적인 고찰은 성공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아요, 스승님.”
이윽고, 까뮤와 스네이크는 술식과 재료들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마법진에 시동이 걸린다.
수도 없이 복잡한 도형들이 빛을 내뿜는다.
그 중앙에 있는 재료들.
즉, 물 35리터, 탄소 20킬로그램, 암모니아 4리터, 석회 1.5킬로그램, 인 800그램, 염분 250그램, 질산칼륨 100그램, 유황 80그램, 불소 7.5그램, 철 5그램, 규소 3그램, 기타 미량 원소 15가지, 피와 살점의 기억…… 이 모든 것들이 심한 악취와 열, 매연을 내뿜기 시작했다.
……잠깐, 악취?
까뮤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이론대로라면 원래 이 타이밍에는 인간의 살 냄새가 나야 했다.
하지만 지금 나고 있는 것은 살 썩는 냄새, 지독한 악취였다.
‘실패다!’
까뮤는 직감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 과정은 모르겠지만 결과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구동된 마법진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이윽고, 마법진 중앙에서 무언가 기묘한 것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 ……! ……! ……!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비키르는 아니었다.
저것이 마법진 바깥으로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까뮤는 이를 악물고 마나를 수습했다.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 담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역부족이었다.
…콰쾅!
마법진이 부서지며 마나가 역류했다.
“소가주!”
스네이크가 외치는 소리가 귓가에 아스라진다.
마법 실패의 대가는 죽음 뿐. 달리 뭐가 있겠는가.
까뮤는 전신의 힘이 탁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문이 보인다. 활짝 열려있는.
까뮤의 몸은 저절로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별과 가스 구름이 떠도는 아득한 심연 저 너머를 향해. 마치 먼지처럼.
‘이게 죽음인가.’
까뮤는 멍한 표정으로 유수에 몸을 맡겼다.
마법이 왜 실패했는지 모르겠다. 비키르의 육체 파편이 너무 오래된 것이어서일까? 아니면 수해에 그의 망령이 없었던 걸까?
어쩌면 그는 벌써 이 한 많은 세상을 등지고 성불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 이 세상에 남아 지지고 볶고 혼자만 발버둥 쳤던 자신이.
어쩌면 이 시점에서 그를 따라 저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바로 그때.
펄럭!
까뮤의 앞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문 앞에 선 남자. 모르그 스네이크.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까뮤를 향해 말했다.
“돌아가라.”
까뮤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스네이크는 다시 한번 말했다.
“그대의 소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 돌아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라.”
심연 속 새벽, 이슬, 노을, 구름이 부르는 문 너머를 향해 스네이크는 거침없이 발을 내딛었다.
‘삶을 사랑할 수 있는 흑마법사가 되기를 바라오.’
그것이 끝이었다.
동시에.
…쾅!
스네이크가 문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문이 닫혔다.
그가 들어가며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뚝!
심연이 까뮤를 끌어들이는 것을 멈췄다.
콰쾅!
이윽고, 폭발 소리와 함께 까뮤는 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커헉!”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온다.
까뮤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스승님!?”
하지만 고개가 돌아가지 않는다. 몸 전체가 돌이라도 된 듯 굳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바닥에 앉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스네이크의 모습이었다.
놀랍게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생기 있던 그의 피부는 바싹 마른 양피지처럼 변해 있었다.
순식간에 뼈와 살가죽만 남은 몸. 모든 생명력을 소진한 모습이었다.
“…….”
까뮤는 두 눈에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뿌옇고 축축한 시야에 돌가루가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스네이크는 죽었다.
까뮤를 살리기 위해 마나 폭주로 인한 리바운드 패널티의 대부분을 자신이 짊어진 것이다.
그동안 스승에게 마법을 배웠던 나날을 떠올린 까뮤는 옅게 흐느꼈다.
하지만 마음대로 흐느낄 수도 없었다.
스네이크조차 온전히 다 짊어지지 못한 충격이 까뮤에게도 왔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까뮤는 뇌의 절반, 몸의 절반이 죽어 버리고 말았다.
동생과 정인(情人)에 이어 스승까지 잃었다. 어머니와 숙부까지 등지고 내려온 결과가 이것이던가?
주위의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잃어버린 소녀. 가장 높은 곳에 있다가 가장 낮은 곳까지 추락한. 과거를 후회하며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인형.
이제는 아무도 없는 지하굴. 지독하게도 깊고 외로운 무덤 속에는 미처 다 죽지 못한 망자 하나만이 남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바로 그때.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꼬마 아가씨, 나와 계약하지 않으련?]그것은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꿀처럼 달콤한 유혹이었다.
까뮤는 그것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반신불수가 된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네게 힘을 줄 수 있단다.]대신, 그것이 직접 까뮤의 의식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쪽을 향해 내뻗어지는 거대한 손은.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힘을.]늪에 빠진 사람으로서는 감히 마주 잡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