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그날의 그와 나의 (4)
[나는 네게 힘을 줄 수 있단다.]그것은 악마의 꼬드김. 말 그대로 악마가 걸어오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까뮤로서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달리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무저갱 밑,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반신불수가 된 채 굶어 죽느니 뭐가 됐든 간에 일단 계약을 해야 했다.
‘좋아. 어떻게 하면 되는데?’
[간단해. 네가 죽고 난 뒤 그 몸을 내가 차지하는 거야. 그러면 나는 네가 남긴 유언을 그대로 이루어 주는 것이지.]‘그래. 하겠어, 계약.’
[오? 이렇게 빨리? 말이 잘 통하는구나. 역시 똑똑해. 지켜본 보람이 있어.]악마는 까뮤를 향해 간드러지게 웃었다.
이윽고, 악마가 자신의 진명(眞名)을 밝혔다.
[내 이름은 세에레. 마계에서 인간계로 넘어온 여덟 번째 마왕의 권능으로 인간 모르그 까뮤와의 계약을 행하노니…….]악마 세에레. 그녀는 까뮤가 죽고 난 뒤의 몸을 차지하는 대신 까뮤가 살아생전 품었던 뜻을 대신 이루어 주는 계약을 맺었다.
까뮤는 자신이 품고 있던 생명의 불꽃이 꺼지기 전 계약을 체결했다.
이윽고.
츠츠츠츠츠……
악마 세에레가 까뮤의 몸에 깃들었다.
그리고 세에레가 까뮤의 육체를 지배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은…….
[어!? 이게 뭐야!? 아직 덜 죽었잖아!?]바로 경악이었다.
까뮤 역시도 몸 한켠에 자리 잡은 다른 인격을 느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스승님께서 안배해 주신 건가?’
마지막 순간, 스네이크는 까뮤에게 향해야 할 데미지까지 모조리 자신이 끌어안은 채 산화했다.
그 결과 까뮤는 몸의 절반만이 죽어 버린 것이다.
계약에 의하면 악마 세에레는 까뮤가 죽은 뒤에야 몸을 차지할 수 있으니 이 경우에는 몸의 절반만이 세에레의 것이 되리라.
까뮤의 몸 절반을 지배하게 된 세에레는 펄펄 뛰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분명 버티지 못할 충격이었는데!? 다 확인하고 왔다구! 인간인 이상 죽었어도 벌써 죽었어야 해! 근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세에레는 시선을 틀어 까뮤의 눈앞에 반듯하게 앉아 죽어 있는 스네이크의 시신을 들여다보았다.
[아아아아아악! 저 마법사의 짓이구나! 제기랄! 육체의 격이 조금 떨어져도 저 남자의 것을 빼앗을 걸 그랬어!]‘빼앗아?’
[아, 아니. 빼앗는 건 아니고. 정당하게 계약을 해서 받을 걸 그랬다는 말이지.]‘빼앗는다라. 호오…… 날 속여서 대충 육체만 받아가려 했던 건가?’
[아니야! 그런 게 아니고……!]세에레가 펄쩍 뛴다.
까뮤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몸을 일으켜 보았다.
움직여진다. 예전처럼은 아니었지만 몸이 제법 말을 잘 듣는다.
다만 세에레가 지배하는 부분과 까뮤가 지배하는 부분이 서로 달라 몸의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결국, 까뮤와 세에레는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꼬여도 단단히 꼬였군. 그렇다면 이렇게 하자. 하루의 절반은 네가 이 몸을 사용해. 나머지 하루의 절반은 내가 이 몸을 사용할게.]‘그렇게 해서 내가 얻는 대가는 뭐지?’
[뻔뻔하기 짝이 없네. 너는 나 아니었으면 원래 벌써 죽어서 사라졌어야 했어. 아, 제기랄. 굶어 죽을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 볼걸.]‘빨리 말이나 해. 내가 너에게 내 몸을 빌려주는 대가로 너는 나에게 뭘 해 줄 수 있냐고.’
까뮤의 채근에 결국 세에레는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숨겨진 보물을 찾아주는 능력이 있지. 그것이 사람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야. 또 가축과 짐승을 떼죽음 시키는 것도 잘해. 시체를 소생시키는 게 일인 흑마법사와 케미가 아주 잘 맞지.]하지만 까뮤는 후자의 능력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람을 잘 찾는다고?’
그 능력이면 충분했다.
까뮤는 그렇게 세에레와 쌍무적 계약 관계가 되었다.
서로가 잠들었을 때 깨어나는 사이였다.
* * *
까뮤는 그 이후로 스네이크의 장례식을 치른 뒤 적과 흑 산을 다시 수색했다.
다만 모르그가에게는 스네이크와 함께 폐관수련을 한다고 통보해 놓은 상태였다.
아돌프는 걱정스러워했지만 레스파네는 말없이 넘어가 주었다.
‘누님! 스네이크 후작, 그 작자를 어찌 믿습니까!’
‘그는 까뮤에게 도움을 주면 주었지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스네이크 후작은 암당의 대의원인데 어찌!? 게다가 아직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마라.’
모르그가의 가주 레스파네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암당의 대의원 스네이크 후작과 그의 제자 까뮤는 가문 깊숙한 곳에서 폐관수련을 하는 것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이쪽을 주목하던 시선들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동안 까뮤는 혼자 계속해서 밀림을 수색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다만, 수해 깊숙한 곳에서 기묘한 것을 하나 주웠을 뿐이었다.
“……이 뼈는?”
강대한 원한과 마력을 가진 흑마법사의 유골이 땅 위에 그냥 널브러져 있었다.
‘이 정도씩이나 되는 흑마법사가 왜 여기서 죽어 있지?’
까뮤는 바로 마나를 불어넣어 리치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해서 ‘아흐헤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위 언데드가 까뮤의 충실한 시종이 되었다.
……그 뒤로 약간의 시간이 또 흘렀다.
적과 흑 산의 수해에 틀어박혀 수색과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까뮤가 세상으로 나올 결심을 한 것은 공들여 만든 몇 구의 언데드를 도둑맞은 뒤였다.
[뭐? 도시로 보냈던 언데드들이 사라졌어?]세에레 역시도 짜증을 냈다.
[그거 아마 단탈리안, 그 놈의 짓일 거야. 그놈은 손버릇이 나빠서 남의 것을 탐하는 것을 좋아하거든. 분명 잘 만들어진 언데드들이 도시를 활보하는 것을 보고 훔쳐 가서 자기 권속으로 삼았겠지. 뻔해.]세에레와 단탈리안은 함께 인간계로 넘어온 사이였지만 관계가 그리 좋지 못한 것 같았다.
“다른 언데드들은 몰라도 로제만큼은 꼭 되찾아 와야 해.”
너무 오래 속세를 등졌던 것 같아 도시의 최신 소식들을 알아보라고 보냈던 것이 화근이었다.
까뮤는 바로 숲을 벗어나 도시로 향했다.
단탈리안이 있다는 인둘겐티아가의 보육원으로 가는 길.
까뮤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콜로세오 아카데미에서 축제가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비키르가 죽은 뒤로 아카데미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까뮤는 아카데미를 그냥 지나쳐 바로 인둘겐티아가로 향했다.
그리고.
“……!”
까뮤는 처참한 꼴로 변한 폐허를 목도할 수 있었다.
누가 단탈리안의 아지트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까뮤는 서둘러 마나를 스캔했다.
다행스럽게도 로제의 영혼과 몸은 이곳에 있었다.
비록 산산조각 나 흩어지기는 했지만 까뮤의 고강한 흑마법이라면 다시 되살려낼 수 있다.
“단탈리안, 저열한 도둑 자식. 훔쳐 갈 게 따로 있지 어찌 감히…….”
까뮤는 다른 권속들은 제쳐 놓고 로제만을 되살려냈다.
츠츠츠츠……
그녀가 막 육촌 동생을 되찾았을 때.
“……거기 누구냐?”
까뮤는 무언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간파했다.
검은 로브에 역병의사 가면을 쓴 괴인(怪人).
불길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자가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팔번시 세에레. ‘시체의 왕’. 네놈이 나의 모방범이었구나.]이윽고, 그의 입에서 으스스한 음성변조음이 들려왔다.
까뮤는 누가 누구를 모방했다는 것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너는 누구냐?”
[나를 모르나?]“모른다. 너 따위는.”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는 모양이군. 신문도 안 보는가?]까뮤는 그의 질문에 가볍게 코웃음 쳤다.
“……신문? 그런 것을 왜 보나. 이 세상에 더는 미련이 없는데.”
비키르가 죽은 뒤 까뮤는 세상의 모든 일을 등져 버렸다. 그것이 설사 가문의 일일지라도 말이다.
이후 정체불명의 괴인은 말했다.
[악마는 죽인다.]“할 수 있다면 해 봐.”
흑마법사가 된 이후 동급의 상대와는 처음 벌이는 전투였다.
* * *
“……헉!?”
까뮤는 눈을 떴다.
밤의 사냥개와의 전투는 격렬했다.
특히나 마지막에 타올랐던 그의 아우라는 마치 태양과도 같아서 눈이 멀어 버릴 뻔했다.
“뭐였지 그건?”
까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했다.
맨 처음 밤의 사냥개가 활을 꺼냈을 때는 순간 이성의 끈을 놓았었다.
비키르를 죽게 만든 야만족의 궁술, 그것을 쓰는 이를 본 이상 절대로 살려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투가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무엇인가가 이상했다.
궁수인 줄로만 알았던 밤의 사냥개는 칼을 빼 들었고 아우라를 뿜어냈다.
너무 눈부셔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광경이었다.
‘설마?’
까뮤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나. 혹시나 비키르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중상을 입은 채 살아서 야만족 사회에 들어갔다면? 그래서 그곳에서 몸을 요양하면서 궁술을 배웠다면?
‘그러고 보니 그 활도 예사롭지 않았어. 분명 거미의 외골격을 깎아 만든 것이었다.’
비키르는 결국 살아나서 마담 여덟다리에게 복수를 한 것이 아닐까?
몸이 다 낫고도 되돌아오지 않은 것은 기억상실증 같은 것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다 가능성 희박한 희망일 뿐이지만. 또 모르는 거잖아?’
애초에 까뮤는 비키르의 유해를 찾아 되살릴 수 있다는 그 실낱같은 희망에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날 밤, 비키르가 운 좋게 살아남았을 가능성.
흉폭한 야만족들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
그들에게 뛰어난 궁술을 배웠을 가능성.
수해의 악몽 ‘팔각의 마담’을 죽였을 가능성.
그리고 이 모든 가능성들이 겹치고 겹칠 가능성.
하지만 그 희박한 확률은 무의식적으로 까뮤의 감정을 움직였고 기절한 와중에도 로제로 하여금 밤의 사냥개를 죽이지 않고 그 위치를 추적하게끔 만들었다.
“……좋아. 바로 확인해 보러 간다.”
까뮤는 몸을 회복하는 즉시 아무도 모르는 폐허의 밑바닥에 지하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그곳에 ‘라이프 배슬(Life vessel)’을 따로 만들어 두었다.
라이프 배슬이란 고농축된 어둠의 마나가 가득 담겨 있는 통으로 흑마법사에게는 여벌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까뮤는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이르렀을 경우 로제로 하여금 이곳으로 텔레포트 해 올 수 있게끔 안배를 해 두었다.
“알겠지, 로제? 내가 쓰러지면 나를 바로 여기로 데려와야 해. 그래야만 나는 살아날 수 있을 테니까.”
까뮤의 신신당부를 들은 로제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애초에 이곳에 올 일이 있겠느냐마는, 보험은 들어둬서 나쁠 것 없는 것이다.
‘이제 확인해 볼 시간이야.’
만약 세에레의 능력이 정말로 ‘만나고 싶은 이와 만나게 해 주는 것’이라면 한번 희망을 걸어 볼 만했다.
까뮤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리고 밤의 사냥개가 도망친 흔적을 따라 어둠이 내린 황도로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피유융- 펑- 뻐엉!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
한창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콜로세오 아카데미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