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33
233화 등록금 (9)
콜로세오 아카데미의 알뜰바자회는 귀여운 이름답지 않게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쓰던 물건들을 저렴한 가격에 경매로 내놓는데 가끔 일부의 학생들은 직접 만들었거나 채취한 것들, 혹은 각 가문에서 가져온 정체불명의 골동품들을 내놓기도 한다.
이 바자회의 규모는 제국의 10대 경매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크며 아카데미 외의 사람들까지 경매에 참여할 수 있어서 수많은 이들의 시선과 발길을 끌어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 거대한 규모의 바자회에는 두 가지 커다란 세력이 양립하고 있었다.
‘귀족파’와 ‘호족파’가 바로 그것이다.
우선 쟁쟁한 귀족가 출신의 학생들이 모여 결성한 것이 귀족파. 7대 가문, 혹은 그의 외척, 방계들을 비롯한 엘리트들이 실권을 잡고 있는 집단이다.
반면 호족 출신의 엘리트들이 모여 결성한 호족파 역시도 귀족파에 뒤지지 않는 위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귀족파’가 소수정예, 철저한 그들만의 리그라면 ‘호족파’는 농업, 상업으로 유명한 토호 가문 출신이거나 유명한 용병 길드의 후계자, 혹은 대규모 광산이나 조선소 등의 후계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둘은 학교 내의 실세로 군림하며 계속해서 능력 있는 후배들을 휘하로 거두어 규모와 힘을 불려 나간다.
이러한 세력 구도는 졸업 후에도 이어지는 끈끈한 인맥과 체계가 되어 나아가 제국의 정, 재계를 아우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귀족파와 호족파, 학교를 암암리에 지배하고 있는 이 두 집단이 제일 처음으로 점찍은 올해의 1학년은 바로 비키르였다.
입학할 때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 중간고사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재. 뒷배 하나 없는 혈혈단신이라 꼬시기에도 딱 좋다.
이 능력 있는 1학년을 휘하로 거두기 위해 귀족파와 호족파는 사실 아주 오래 전부터 암암리에 물밑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키르는 단 한 번도 그들의 기대에 응하지 않았다.
기껏 보낸 편지는 읽히지도 않고 씹히기 일쑤였고 아무리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해도 도무지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2학년, 3학년에서 한 미모 한다는 여학생들을 파견하여 미인계를, 한 주먹 한다는 싸움꾼들을 파견하여 무력시위를 해 보려고 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는 통에 귀족파와 호족파 모두 뿔이 나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후우, 비키르, 이 건방진 후배님의 콧대를 한번 눌러 줄 필요가 있겠군.’
‘우리 밑으로 들어오기 전에 값어치를 한번 후려쳐 줘야지.’
아이러니하게도, 귀족파와 호족파는 서로를 누르기 위해 서로와 손을 잡았다.
단기적으로 보면 비키르가 공공의 적이 된 셈이다.
귀족파와 호족파가 비키르를 기선제압하기 위해 모략을 꾸미고 있을 때, 시기적절하게도 비키르가 알뜰바자회에 참가했다.
‘저 녀석, 등록금을 구하려고 한다며?’
‘놀 가죽이라. 마침 꼭 필요한 재료이긴 했지. 이참에 가격 한번 제대로 후려쳐 볼까?’
‘어차피 사냥길드 잘 만나서 한몫 잡은 것일 텐데 시세나 제대로 알까 몰라.’
‘맞아, 그 사냥 길드 의뢰인 아무나 안 받아준다며.’
귀족파와 호족파의 학생들은 이번 경매를 통해 비키르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경매가 시작되자 정말로 아무도 비키르의 놀 가죽을 사려 하지 않았다.
귀족파와 호족파 학생들이 미리 다른 학생들에게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호족파와 귀족파 학생들은 조용해진 경매장 뒤에서 킬킬 웃으며 곧 죽상이 될 비키르의 얼굴을 상상했다.
……하지만.
‘놀 가죽은 유용한 아이템이라서 탐내는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인기가 없군.’
비키르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고개를 돌려 경매장 무대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놀 가죽들을 돌아보았다.
‘아하. 너무 많아서 그런가?’
동시에, 비키르는 귀족파도 호족파도 모두 놀라 자빠질 만한 행동을 했다.
…화르륵!
그 자리에서 횃불에 불을 당기는가 싶더니 무대 위에 올려져 있던 놀 가죽에 불을 붙여 버린 것이다.
모두가 경악하며 자리에서 벌떡 기립하거나 말거나, 비키르는 묵묵히 눈앞의 놀 가죽들을 죄다 태워 버렸다.
뿌지직! 뿌직! 쿠르르륵!
무대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던 놀 가죽들의 절반가량이 그렇게 허무하게 타 버렸다.
…….
경매장 안에는 기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비키르는 짧게 물었다.
‘아직도 너무 많은가?’
동시에, 비키르는 한 번 더 불을 당겼다.
남아 있던 놀 가죽들이 또다시 절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비키르는 불을 끄지 않았다.
상황이 이쯤 되자 학생들 사이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놀 가죽은 학생들에게 있어서도 꼭 필요한 연구재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키르는 가차 없었다.
아직도 우물쭈물하기만 할 뿐 사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자 비키르는 다시 한번 횃불을 들었다.
아예 싹 다 태워 버리려는 듯,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손짓이었다.
그러자 오히려 지켜보던 이들이 애가 달아 비키르를 막아섰다.
‘저건 다음 수업 준비물이잖아! 나, 나는 살래! 아직 준비 못 했단 말야!’
‘나도 혹한기 수행평가 앞두고 갑옷에 덧댈 게 필요했다고! 가뜩이나 매물이 적은데…….’
‘사! 나 살게! 상회입찰!’
‘미친놈아! 살게! 산다고! 그만 태워!’
그런 상황에서, 비키르는 단호하게 말했다.
‘최소 입찰 가격은 첫 경매가의 4배다.’
어쭙잖은 신경전 때문에 손해 본 값을 물어내라는 심보다.
결국 학생들은 귀족파와 호족파를 탓하며 비키르에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제값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귀족파와 호족파의 학생들이 역으로 벙 찐 것은 물론이다.
* * *
“……그래서. 그렇게 해서 경매가 끝났다고?”
밴시 교수는 기가 막히다는 듯 물었다.
비키르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덕분에 등록금을 모두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뿌직! 뿌드득!
책상 위에 올려진 질긴 가죽 자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이윽고, 안에 들어 있는 지폐와 금화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밴시 교수의 책상은 순식간에 돈으로 뒤덮여 버렸다.
그는 질기고 튼튼한 대형 가죽 자루의 옆구리가 터질 정도로 많은 액수의 돈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거스름돈이 필요하겠군.”
밴시 교수는 주머니에서 돋보기안경 하나를 꺼내 코끝에 걸쳤고 이내 섬세한 손가락 놀림으로 큼지막한 금화 몇 닢을 추려냈다.
“이것으로 자네의 등록금은 끝이야. 아, 4년 치 한꺼번에. 일시불로 모두 말이지.”
밴시 교수는 이제 남은 돈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비키르는 거스름돈을 수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나머지 역시도 등록금입니다.”
“……등록금이라고 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남는데? 강의동 건물을 사 버릴 생각인가? 학생이 아니라 교수직을 노리는 것이라면야.”
“나머지는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고학생들의 몫으로 써 주십시오.”
비키르의 말에 밴시 교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돌로레스까지도.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네.”
“지금 이 액수를 모두 장학재단에 기부하겠다는 건가? 장학금 명목으로?”
“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비키르의 말에 밴시 교수는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입매를 비틀었다.
종종 있다. 돈푼께나 있는 이들이 장학재단에 거액을 기부하고는 그 명목으로 이득을 취하는 경우가.
보통은 세금 공제(기부는 그 어떤 비용처리보다도 더욱 더 큰 세금혜택을 받는다), 긍정적 이미지 조성을 통한 학교 내의 영향력 확대, 나아가 정치적인 집단을 만들거나 세력을 키우는 등 비가시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이 주 목적.
……하지만 비키르가 제시한 조건은 밴시 교수의 예상을 또다시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 돈을 받기 위해서는 보육원 봉사활동 시간을 일정 시간 이상 채워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보육원?”
밴시 교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보육원 봉사활동을 나가는 것으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면 크게 남는 장사다.
알바와 장학금에 목을 매어야 하는 고학생들로서는 너무나도 감사한 제안.
즉 수업료를 그냥 거저 내주겠다는 말과도 다름없었다. 앞으로 십 수 년 동안이나!
‘대체 무슨 꿍꿍이인 게지?’
밴시 교수는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비키르의 전신을 훑었다.
하지만 아무리 빤히 쳐다봐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비키르의 태도에 밴시 교수가 먼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래. 알겠네. 교내에 상을 따로 만들고 그 명목으로 장학금을 수여하도록 하지. 상 이름으로 뭔가 생각해둔 게 있나?”
밴시 교수의 질문에 비키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밴시 교수는 더 듣기도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없나 보군. 그럼 그냥 ‘비키르 상’ 정도로 해두겠네. 이 상을 받는 학생들은 자네에게 아주 감사해 하겠군. 부유한 스폰서를 만나 운 좋게 공짜로 학비를 지원받는 꼴이니 말이야. 아주 유명인 나시겠어.”
그때.
비키르가 손을 들어 밴시 교수를 막았다.
“기부자의 이름은 익명으로 해 주십시오. 그리고 상 이름은 다른 걸로 하겠습니다.”
“?”
밴시 교수가 안경을 고쳐쓰며 고개를 든다.
기껏 거액을 기부해놓고 익명이라니? 그러면 세액 공제도, 유명세도 날릴 수 없지 않은가?
‘모든 인간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인다’라는 밴시 교수의 신념이 정면에서 부정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밴시 교수가 혼란스러워 하거나 말거나, 비키르는 여전한 무표정으로, 그러나 다소 낮아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상 이름은 ‘님펫(Nymphet)’으로 하지요.”
그 말을 들은 밴시 교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단.
“…….”
옆에서 이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돌로레스의 눈망울만 가늘게 흔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