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5
25화 모르그 까뮤(Morgue Camille) (6)
“저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고 하셔서 그 뒤부터는 안 들었습니다.”
그 말에 휴고가 급하게 손으로 입꼬리를 가렸다.
손 위부터는 무표정이긴 하지만…… 누가 봐도 웃음을 감추는 제스쳐.
까뮤 역시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후… 후후후후…….”
오직 아돌프의 이마에만 핏줄이 돋아났을 뿐이다.
이윽고, 그는 비키르의 눈높이에 맞추어 굽혔던 허리를 펴고 휴고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주님. 제가 잠시 이 아이와 조금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모르그 가의 대의원, 그것도 명당(明黨)의 최고의원씩이나 되는 자가 한낱 8살 아이를 상대로 이렇게 과도한 관심을 표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휴고로서는 상대측의 이런 과민반응에 대답해 줄 말이 많지 않았다.
“거 애를 상대로 뭐 하는 거요. 설마 제국의 마도성(魔道星)께서 8살 난 소년을 핍박하시는?”
전에 들었던 말을 잊지 않고 고대로 되갚아 주는 휴고였다.
하지만 아돌프는 완강했다.
“허허, 훗날 제 조카의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가 아닙니까. 이것은 모르그가 사절단의 책임자가 아니라 삼촌으로서 드리는 부탁이지요.”
“아 숙부! 그런 거 아녜요!”
“어허, 조카는 가만히 있으렴. 이 숙부가 알아서 하마. 다 이렇게 한 번씩 봐야 하는 거예요.”
까뮤가 대들자 아돌프는 짐짓 엄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슬쩍 휴고를 향해 눈짓하는 것이 체면 한번 세워 달라는 뉘앙스 같기도 했다.
“…….”
휴고는 모르그가의 사람들과 이렇게까지 오래 상종해 본 것은 간만이라고 생각하며 손사래를 쳤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뜻이다.
* * *
비키르는 아돌프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모르그 아돌프라 하면 회귀 전이라 해도 범접하기 어렵던 절대강자. 마흔에 벌써 공식 행사에 가주 대행으로 참석할 정도의 실권자이다.
그런 아돌프의 힘을 약간이나마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기회였다.
휴고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이 자리를 허락한 것이리라.
연례행사가 끝난 뒤 모두가 빠져나간 연무장.
드넓은 공터에 비키르와 아돌프가 마주보고 섰다.
참관인은 휴고 레 바스커빌과 모르그 까뮤.
그 둘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선 채로 연무장 중앙의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돌프가 말했다.
“바스커빌의 아이야. 지금부터 너의 자질을 시험해 볼 터이니 너의 모든 것을 보여 보거라.”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생각을 했다.
‘내 모든 것을 보이면 당신은 기절할 텐데.’
회귀 전 전성기 때의 힘으로 상대하면 어떻게 될까?
매복 및 암살이었을 시 50%, 정면대결이었을 시 10% 정도이려나.
하지만 지금은 회귀 전의 힘을 온전히 다 되찾지도 못했을뿐더러 최선을 다해 싸울 필요도 없다.
그저 적당한 선에서 아돌프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면 그만이다.
‘어디 마도성의 실력 좀 볼까?’
고수끼리는 악수만 해도 서로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던가.
비키르는 이번 기회를 통해 모르그가 최상위권 고수들의 실력을 어림잡아 볼 생각이었다.
이윽고, 아돌프가 말했다.
“아이야. 핸디캡을 주마.”
그는 손을 들어 올려 땅을 향해 한번 휘저었다.
쩌저저적!
땅에서 진흙이 솟아오르더니 이내 빙글빙글 돌며 항아리의 모양을 만든다.
화르륵!
아돌프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불길에 의해 항아리는 단단하게 굳었다.
꼴꼴꼴꼴……
이윽고, 만들어진 항아리 안에 저절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간단해 보이지만 흙, 불, 물, 자그마치 세 가지 마법이 한꺼번에 조합된 콤비네이션.
…딱!
아돌프가 손가락을 튕기자 물이 남긴 항아리는 서서히 허공으로 떠올라 아돌프의 머리 위에 놓였다.
물항아리를 짊어진 아돌프는 비키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물이 가득 찬 이 항아리를 머리 위에 올려놓은 채 너와 대련하겠다. 내 머리 위의 항아리에서 물을 한 방울이라도 흐르게 할 수 있다면 네 승리다.”
한마디로, 발악을 해 보라는 뜻이다.
비키르는 숏 소드를 잡은 채 자세를 잡았다.
아돌프는 팔짱을 낀 채 그런 비키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타닥!
비키르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바로 달려드는 비키르, 그 모습을 본 까뮤가 다급하게 외쳤다.
“어어!? 우리 숙부한테는 정면으로 달려들면 안 되는데!?”
그 말을 들은 아돌프는 엄청 서운한 표정으로 까뮤를 돌아본다.
“조카야. 그걸 말해 주면 어떻게 하니.”
동시에, 아돌프의 눈앞으로 투명한 방벽이 만들어진다.
텅!
비키르는 달려들던 자세 그대로 벽에 부딪쳐 튕겨나가고 말았다.
“칼잡이들을 상대할 때는 쉴드 마법이 최고지. 어지간한 아우라 소드로도 막기 힘들 것이다.”
아돌프의 말은 사실이었다.
특히나, 아돌프는 쉴드 마법의 대가. 때와 장소에 맞게 다양한 크기와 두께, 모양의 쉴드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방금 전에도 마나의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딱 비키르의 몸통을 가로막을 면적의 쉴드를 만들어 냈던 아돌프였다.
하지만, 비키르 또한 여간내기가 아니다.
…타탁!
비키르는 뒤로 튕겨나가는 반탄력을 이용해서 거리를 벌린 뒤 바로 궤도를 틀어 옆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따악! 딱!
비키르는 자기가 이동하는 쪽의 반대 방향으로 자갈돌 몇 개를 걷어차 날려 보낸다.
돌은 그대로 물항아리를 향해 날아갔다.
“요행수를 노리는 것은 좋지 않지.”
아돌프는 돌이 날아오는 쪽은 보지도 않은 채 손을 써 쉴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들어오는 비키르를 향해 또다시 자그마한 쉴드를 소환한다.
또다시 부딪쳐 튕겨나가는 비키르.
아돌프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나도 공격하마.”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불의 창들이 소환된다.
허공을 향해 빠르게 내리꽂히는 불벼락! 하나하나가 단단한 연무장의 토질을 뚫고 구덩이를 푹푹 패이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그것을 본 까뮤가 빽 소리쳤다.
“숙부! 너무하잖아요! 나랑 대련할 때도 그런 마법은 안 썼으면서!”
“……조카야. 지금 누구 편을 들고 있는 거니?”
몹시 서운한 표정의 아돌프이다.
하지만 비키르는 날아드는 불의 창을 정신없이 피하고 있었다.
‘흐음. 이 정도인가.’
비키르가 알고 있던 마도성 아돌프의 힘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었다.
이 정도라면 이미 익숙한 수준.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알겠군.’
회귀 전의 노련한 실전경험, 그리고 회귀 이후에 가지고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
이 두 가지를 잘 조합하면 상대의 방심을 이끌어내고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겠다.
‘잘 하면 죽일 수도 있겠지만.’
섬뜩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기도 했지만…… 굳이 그런 대형사고를 칠 필요는 없었다.
지켜보고 있는 휴고의 시선을 생각해서라도 이 상황을 잘 넘길 필요가 있었다.
“에잇!”
비키르는 불벼락에 쫓겨 다급해진 것처럼 움직였다.
섣불리 칼을 뽑아들고 아돌프를 향해 휘두르는 비키르.
하지만.
“어림없지.”
아돌프가 만들어 낸 쉴드가 비키르의 칼을 막아 낸다.
깡! 따앙! 땅! 챙!
비키르는 재차 칼을 휘둘렀지만 그 역시 쉴드에 모두 막혀 버렸다.
아돌프가 고소를 머금었다.
“몇 백 번을 해도 마찬가지란다. 네 칼로는 쉴드를 뚫을 수 없지.”
하지만 비키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부웅-
칼이 휘둘러진다.
따앙!
그리고 쉴드를 때린다.
비키르는 계속해서 같은 동작을 반복했고 아돌프 역시 계속해서 같은 쉴드로 칼을 막아 냈다.
깡! 까앙! 땅! 따앙!
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속해서 같은 곳을 두드리고 있었다.
기계처럼 정교한 움직임으로 날아드는 비키르의 칼, 무수히 반복되는 같은 궤도의 칼질.
이쯤 되자 아돌프 역시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호오.”
비키르의 칼은 아까부터 계속해서 쉴드의 같은 부분을 때리고 있었다.
쉴드 역시 점점 칼에 의해 닳고 있었다.
특히나 한 부분에만 계속해서 충격이 가해지니 그 부분의 마법 피로도는 벌써 상당히 중첩되었다.
“하하하하- 계속해서 같은 곳을 때려서 쉴드를 뚫겠다 이거지? 발상 한번 대담하구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속해서 같은 곳을 노릴 수 있는 집중력과 검술 실력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겠어.”
그러나, 아돌프의 눈빛은 이내 차갑게 가라앉는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에 불과하지. 내 쉴드의 내구도와 네 칼의 내구도를 따져 보고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이냐?”
그 말대로였다.
따앙! 깡!
비키르의 칼이 아돌프의 쉴드를 열 몇 번째로 때리는 순간.
…파캉!
비키르의 칼은 그만 산산조각이 나 부러지고 말았다.
결국 비키르는 부러진 칼을 회수한 채 뒤로 물러나야 했다.
휴고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이 없었고 까뮤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돌프는 저 멀리 물러선 비키르에게 말했다.
“고집 있게 한 가지 자세를 고수하려는 태도는 좋지만, 그것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 하는 것이다. 자질이 꽤나 훌륭하긴 하다만 내 조카의 배필이 되기에는 자격이 한참 부족하…….”
훈계와 함께 대사를 마무리하려던 아돌프.
……하지만.
그는 이내 정수리가 축축해짐을 느끼고 말을 멈췄다.
‘뭐지?’
아돌프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느꼈을 때.
졸졸졸졸-
그의 정수리를 흥건하게 적신 물이 줄줄 흘러내려와 얼굴을 세로지르기 시작했다.
“……?”
어안이 벙벙해진 아돌프가 고개를 들자 물줄기가 질질 새고 있는 물항아리가 보인다.
‘…파캉!’
아까 부러져 튕겨나갔던 비키르의 칼 파편이 물항아리의 옆구리에 박혀 물을 줄줄 새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정수리부터 턱, 아예 목덜미까지 흥건하게 젖은 아돌프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터벅- 터벅- 터벅-
비키르가 그 앞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차고 넘치는군요.”
물론 항아리의 물을 말하는 것이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