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별이 다섯 개 (2)
별 다섯 개의 퀘스트가 너무도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쉬울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쉬울 줄이야…….’
비키르가 허탈한 마음에 막 돌아서려는 순간, 휴고가 그런 비키르를 불러 세웠다.
“참. 아들아. 오랜만에 집에 온 김에 ‘진급’ 좀 하고 가거라.”
휴고가 포메리안을 다독이며 하는 말에 비키르의 한쪽 눈썹이 까닥 움직였다.
진급(進級). 말 그대로 가문 내의 직위가 올라가는 것이다.
“지금부터 너를 ‘상원의원’으로 임명하마.”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휴고였다.
“…….”
비키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상원의원(上院議員)이란 무엇인가?
원로원의 밑이며 하원의원의 위, 수없이 많은 사냥개들을 거느리고 다닐 수 있는 권력의 중추.
주로 가문 내의 일을 맡아 보는 하원의원과 달리 상원의원들은 가문 외의 일까지도 맡아 처리하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답게 막중한 권력이 부여된다.
사실상 상원의원의 위로는 가주와 소가주밖에는 없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칠백작과 원로원까지 쳐야 하기에 바스커빌가의 계급구도 상 5위에 위치하는 권좌(權座)이나 칠백작 역시도 같은 상원의원 계급이고 원로원은 현역에서 물러난 이들의 명예직임을 감안할 때 상원의원들이야말로 가문의 최고 실세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가문의 역사를 근 일백 년 정도 뒤져 봐도 네가 최연소 상원의원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휴고의 말에 비키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포메리안이 나타난 뒤 약간 바보 같아졌어도 휴고는 역시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다.
그는 비키르를 상원의원으로 진급시킴과 동시에 앞으로의 임무 역시도 생각해 둔 모양.
“상원의원이 되었어도 당분간은 지금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좋다. 보직은 여전히 ‘황도 특파 요원’인 것이야.”
현재 비키르는 바스커빌가 내에서 ‘아카데미 입학생’ 신분이 아니라 ‘특수요원’ 신분으로 통하고 있었다.
하이브로, 미들브로, 로우브로가 정말로 학업을 위해 황도로 간 것과 달리 비키르는 황도에서 바스커빌가에 적대하는 세력을 색출하고 비밀리에 암살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것이다.
‘콜로세오 아카데미의 학생’ 신분은 그저 요원의 위장 신분 중 하나일 뿐.
휴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원하는 만큼 임무의 기간을 늘려주겠다. 단, 네가 생각하기에 업무가 종료되었다고 판단된다면 가문으로 돌아와 집무를 맡거라. 아직 언더독 시의 집정관 직이 비어 있다.”
“예.”
이로써 비키르는 18세에 정식으로 실세 중의 실세, 상원의원이 되었다.
상원의원은 권력의 중추답게 엄청난 권리들을 누릴 수 있다.
우선 8명의 보좌관을 보고 없이 재량으로 임명할 수 있었다.
보좌관이 된다면 정식으로 바스커빌가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며 바스커빌의 성씨를 쓸 수 있게 되는데 물론 8명 이상의 보좌관을 두는 것 역시도 가문에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할 뿐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보좌관들에게는 바스커빌식 검술을 4식까지 가르칠 수 있으며 의, 식, 주에 관련된 모든 편의들이 제공된다.
넉넉한 급여, 차량 지원, 모든 교통비 지원, 세금 면제, 기사단 인원 차출 등등 다양한 특권을 누릴 수 있으며 2급 이상의 황실 군사기밀 열람이나 전시에 민간인을 징집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
징집되거나 차출된 군사들을 독자적으로 지휘할 수 있으며 이는 자신만의 무력 집단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비키르는 상원의원이 되었으니 이제 자신만의 테스크 포스(TF)를 꾸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미 멤버로 낙점해 둔 인원들이 몇 있다.
‘씬디웬디, 치와와, 미니핀…… 일단 그들부터 포섭해야겠군.’
경제에 빠삭한 씬디웬디, 행정의 대가 치와와, 그리고 지형과 마물생태학의 달인이자 무력도 어느 정도 받쳐 주는 미니핀이 팀에 합류한다면 앞으로의 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수해의 원주민들 중에도 쓸 만한 인재들이 많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아이옌의 얼굴이었다.
수백 발자국 너머에서 모기를 쏴 죽이는 그녀의 궁술 실력.
그 외에도 제국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뛰어난 전사와 주술사들이 수해에는 우글우글 많다.
비키르는 눈을 감고 꽤 먼 미래의 일까지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우선 씬디웬디, 곧 그녀의 도움이 필요해지겠지.’
그동안 돈이 급한 일이 벌어져도 굳이 씬디웬디의 도움을 거절하던 비키르, 하지만 이제 곧 씬디웬디의 자금력이 필요한 순간이 올 것 같았다.
노련한 사냥꾼의 직감이었다.
그때, 휴고가 비키르의 상념을 깼다.
“그래. 황도에서 성과는 좀 있었느냐?”
비키르는 휴고가 기대하던 답을 했다.
“보고 드린 대로입니다. 바스커빌가가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황제에게 거짓 보고를 올렸던 환관 세력, 횡령과 탈세를 통해 바스커빌가의 자금줄을 말리려고 했던 외척 가문 세력, 바스커빌가의 군사기밀을 빼내려고 했던 정보 길드의 주요 인사들을 지난 분기별로 암살, 3분기에 걸쳐 총 174명을 제거했습니다. 전부 다 노환이나 사고사, 다른 적대세력에 의한 암살, 실종 등으로 처리되었고 물론 꼬리를 잡히는 일도 없었습니다.”
물론 그 174명이란 전부 악마들과 내통한 자들.
악마들과 결탁하지 않고 단순히 바스커빌가를 적대할 뿐인 이들에게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은 비키르였다.
하지만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성과다.
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말미에 이상한 말을 덧붙였다.
“그런 것 말고.”
“?”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지 않으냐.”
휴고의 은근한 시선이 비키르에게 머문다.
“학교 내에서 만나는 처자는 없느냐?”
“??”
“다른 집안 아들들 보면 아카데미에 가서 연애도 하고 하던데. 그 왜 CC라고도 하던가.”
“???”
비키르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하지만 휴고는 껄껄 웃을 뿐이다.
“오시리스 녀석은 만나는 여자가 있는 것도 같은데 통 꼬리를 안 밟히더군. 물어봐도 대답도 없고 말이야. 이래서는 언제 손주를 보여 줄 건지 원.”
“…….”
“너도 분발하거라. 결혼은 일찍 하는 게 답이야.”
비키르는 휴고가 보여 주는 이런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목에 오스스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전생의 기억과 달라져도 너무 달라져서 이질감마저 들 정도였다.
그래서 비키르는 서둘러 화제를 바꾸었다.
“……참. 부탁드렸던 일은 어찌 되었습니까?”
“으음. 과거 세탁 말이구나.”
휴고는 예쁘게 땋인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비키르는 과거 아카데미로 떠나기 전 휴고에게 과거를 지워달라고 부탁했던 적이 있었다.
가령 붉은 송곳성에 세워져 있는 동상 등 비키르가 바스커빌가의 사냥개로서 존재했던 흔적 말이다.
“안 그래도 너의 생환 소문은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세간의 여론을 살펴보니 ‘비키르 반 바스커빌의 생존 및 귀환’이란 바스커빌 가문이 허세를 부리기 위해 만들어 낸 헛소문 취급을 받고 있더군.”
휴고의 말에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스커빌가의 사냥개들 중에는 반짝 떠올랐다가 한순간에 확 사라져 버리는 인물들이 많다.
워낙 많이들 태어나고 워낙 많이들 죽어 나가니 말이다.
물론 비키르가 나타나고 휴고의 성격이 바뀐 뒤로 그런 급격한 변화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었지만 어쨌든 비키르는 그 짧은 변화의 순간 잠깐 뜬소문처럼 언급되고는 말았다.
황실에서 받은 표창장 역시도 한 해에 수백, 수천 장씩 뿌려지는 것이었고 원래 상이라는 것은 받은 사람 본인만 기억하지 남들은 금방 잊어버리는 것들 아니던가.
비록 언더독 시의 주민들은 여전히 비키르를 그리워하며 추모하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제 과거는 말끔하게 지워진 것이로군요.”
“그렇다. 지금도 특작조 요원들이 힘을 쓰고 있으니 소문 때문에 정체를 들킬 것이라는 걱정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뭐, 일부의 입 싼 떠벌이들은 벌써 제거되었으니 말이야.”
휴고는 바스커빌가의 신분을 계속 숨길 것인지, 그리고 언제 드러낼 것인지에 대한 처분을 모두 비키르의 재량에 맡겼다.
상원의원 진급식은 이렇게 은밀하고 간소하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삼춘!”
……갑자기 대화에 난입해 든 포메리안만 아니었어도 말이다.
“나 이거 가꼬 시퍼!”
비키르는 뭔가 싶어 포메리안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포메리안은 작은 책 하나를 들고 있었다.
포메리안은 책의 페이지를 펼치더니 한 챕터를 펼쳤다.
그것은 이제 믿는 사람도 없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낡은 신화의 한 자락이었다.
모르그가의 까마득한 선조들 중 하나인 ‘모르그 트제르시’의 일대기를 다룬 책.
포메리안은 그 부분에 실려 있는 삽화 하나를 비키르에게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시커멓게 말라죽은 나무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망령목(亡靈木)’, 흑마법사들이 꿈에도 그리는 전설의 아티팩트.
마도의 종사(宗師) 트제르시가 심었다는 기묘한 나무에 관한 내용이었다.
“가꼬 시퍼!”
포메리안은 비키르를 올려다보며 눈을 똘망똘망 빛낸다.
불안한 느낌을 받은 비키르가 고개를 슬쩍 돌리자 그곳에 눈을 번뜩이고 있는 휴고가 보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져오너라, 아들아.”
“…….”
“내가 직접 가고 싶지만 현재 모르그가와의 신경전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구나.”
현재 모르그가는 암당의 수뇌부가 바뀐 것 때문에 분주하다.
바스커빌가로서는 이 혼란을 틈타 세력을 확장할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휴고는 비키르를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툭!
그것은 ‘검붉은 호각’, 바스커빌의 군권 전부를 운용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
비키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거나 말거나, 휴고는 진지했다.
“필요하다면 기사단 전부를 내어주마. 가서 포메리안이 원하는 물건을 가져오너라. 아, 그것으로 두루마리의 퀘스트를 대신하면 되겠구나.”
비키르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휴고는 지금 이것이 뭔지는 알고 가져오라고 하는 걸까?
‘망령목은 실존하는 아티팩트다.’
그리고 심지어 비키르는 회귀 전의 기억으로 인해 이것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의외로 바스커빌가의 영지 내 가까운 곳에 있는 장소인지라 어차피 한 번쯤은 가 보려 했던 곳이기도 하지. 왜냐하면…….’
비키르가 익히고 있는 바스커빌 7식.
그 다음의 경지에 대한 힌트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안 그래도 본가를 방문하는 김에 한번 들리려 했던 곳이거늘.
‘소드마스터 다음의 경지. 그리고 바스커빌 8식에 대한 단서가 잠들어 있는 곳.’
어차피 그곳을 조사하러 가려던 김에 바스커빌가의 군권까지 넘겨받았으니 남는 장사다.
두루마리의 퀘스트는 이미 해결했고 이제 7번시 데카라비아와 만나는 일만 남았겠다, 그 전에 8식에 대한 힌트를 얻어두면 더 좋은 일.
결국은 포메리안이 복덩이인 셈이다.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비키르는 포메리안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돌아섰다.
속전속결(速戰速決).
삼 일 안에 모든 것을 마무리 짓고 아카데미로 돌아갈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