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칼침의 무덤 (1)
비키르는 적과 흑 산의 수해 깊숙한 구역으로 들어왔다.
서부전선 207고지에서 저지대의 능선을 따라 안쪽의 소금강 유역까지 쭉 들어오다 보면 익숙한 장소가 보인다.
발락의 마을. 한때 비키르가 오랜 시간을 보냈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 이 장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발락의 전사들은 아흐헤만 사건을 겪은 뒤 수해 더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고 그 뒤로는 비키르 역시도 접촉해 본 적이 없다.
간혹 날아들곤 하던 아이옌의 편지도 어느 순간부터 끊겼기에 그들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씬디웬디의 증언에 의하면 발락의 전사들은 교역 때도 나타나지 않았다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수해의 원주민들은 모두 비키르를 영웅으로 칭송하며 씬디웬디의 교역에 전적으로 협력하고 있었지만 그중에 발락은 없었다.
씬디웬디 역시도 발락 부족과의 연락이 최근에 두절된 건에 대하여 의아함을 표했었고 말이다.
하지만 비키르는 걱정을 거두기로 했다.
“……어디 가서 쉽게 당할 만한 사람들이 아니지.”
발락에는 뛰어난 전사들이 많다.
그들을 이끄는 밤의 여우 아퀼라 역시도 무시무시한 강자이고 그녀의 딸인 아이옌 역시도 어린 나이에 지고의 영역을 넘볼 정도로 강하니 걱정을 받을 처지에 있는 이들은 아닌 것이다.
‘그들이 한번 연락을 끊고 숨는다면 이쪽에서 찾아낼 도리는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했으니 곧 다시 연락이 될 것이라 믿는 것이 상책이었다.
“일단 지금은 망령목을 찾는 것에 집중하자.”
비키르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망령목(亡靈木). 그것은 지금은 전설로만 치부되는 고대의 아티팩트 겸 마나연금술의 일종이었다.
마법사의 심상(心想) 속에 뿌리를 내리고 영혼의 업보를 양분 삼아 자라나는 마나의 나무.
추상과 형이상학을 먹고 살며 그 수확물을 물질계에 드리우는 불가해(不可解)의 존재.
그것은 ‘마도종가 사냥개의 회귀’라는 제목의 신화 책에 등장하는데 마도의 종가 모르그의 옛 선조들 중 하나인 ‘모르그 트제르시’의 일대기를 다룬 고문헌이다.
신화가 만들어진 연대는 미상, 다만 대륙이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되기 전 수없이 많은 군소국가들이 난립하던 시절로 추정된다.
그때부터 모르그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지라 그 진위여부는 누구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래를 살아 본 비키르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멸망의 시대가 도래했을 당시 이 망령목을 실제로 사용했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체의 왕 스네이크. 세에레의 계약자. 망령목은 원래 그의 손에 들어가야 할 고대 유물이었지.’
지금은 역사가 바뀌어 사라져버린 그가 원래 망령목의 주인이 될 인물이었다.
세에레는 스네이크의 몸을 조종해 망령목을 컨트롤했고 이로 인해 무시무시한 힘을 얻게 되었다.
망령목은 겉보기에는 말라죽은 것 같이 비쩍 곯은 고사목(枯死木)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식물은 죽은 자의 원념을 먹고 자라며 수많은 죽음과 망령을 흡수한 망령목은 세계수만큼이나 거대한 줄기들을 드리우게 되고 해골처럼 생긴 열매들을 주렁주렁 매달게 된다.
망령목 씨앗의 발아조건은 ‘대량의 죽음’.
수많은 망령들을 거름삼아 자라난 망령목은 흡수한 망령이 갇혀있는 열매를 가지 끝에 매달게 되는데 이 열매를 인간이 먹으면 망령이 가진 힘과 기술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망령목을 영혼에 심은 마법사는 필연적으로 흑마도에 심취할 수밖에 없으며 수없이 많은 피와 목숨으로 점철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귀 전의 스네이크는 망령목을 손에 넣고 지금껏 죽여 왔던 수많은 망자들의 시체를 군사로 만들어 부림과 동시에 그들의 망령을 열매로 만들어 모조리 섭취했다.
‘……그 마나량은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천재 ‘측천무후’, 모르그 까뮤가 타고난 자질과 부던한 노력으로 쌓았던 양에 필적할 정도였었지.’
둘의 전투는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을 부수고 땅을 뒤집어놓을 만큼 대단했었다.
말단 장교였던 비키르로서는 감히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 할 수 없었을 정도로.
‘그 둘의 싸움으로 섬 하나가 통째로 소멸했을 정도였으니.’
뭐 아무튼.
평화로운 시대에서는 씨앗이나 작은 덤불 상태로 숨어 있을 망령목, 그리고 전란의 시대에는 신화 속의 존재인 세계수만큼이나 거대하고 광활한 줄기와 가지를 드리우게 될 존재.
이번에는 이 망령목을 아군의 전력에 가세시켜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먼저 선점하는 것 역시도 멸망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해치워 두어야 할 필수적인 과업이었다.
‘이것에 끌리는 것을 보니 포메리안의 자질이 상당하기는 한가 보군.’
일반적인 흑마법사였다면 꿈도 꾸지 못할 것에 이리도 집착과 애정을 보이는 것을 보니 포메리안이 확실히 위대한 흑마법사로서의 가능성이 있기는 있는가 보다.
원래 이런 류의 고대 아티팩트와 만나게 되는 것에는 ‘인연’이라는 것이 중요시되기 마련이니까.
…차착!
비키르는 새끼마담의 실을 타고 커다란 나무 아래서 뛰어내렸다.
“여기서부터인가.”
비키르가 현재 도착한 곳은 수해 깊숙한 곳에 있는 사막지대.
특이하게도 흰 모래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 사막이었다.
유우니 사막. 사막 중에서도 유난히 건조한 사막으로 통하는 소금사막이다.
조금의 습기조차 허용하지 않는 극한의 건기(乾氣)가 지배하는 구역.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하얗고 짠 소금과 말라죽은 초목뿐이다.
슥-
비키르는 허리를 굽힌 뒤 바닥의 흰 모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이윽고 손가락을 떼자 손가락 끝이 심하게 쭈글쭈글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닿는 모든 것들의 수분을 빨아먹는, 실로 기괴한 소금모래였다.
오래 전, 한 악신(惡神)이 흘린 눈물이 말라붙어 생겨났다는 이 광활한 소금 사막은 지금껏 이 짜디짠 건기로 수많은 것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증거로 흰 모래벌판 위에는 수없이 많은 마물들의 시체가 미이라화된채 널브러져 있었다.
비키르는 한동안 이 소금사막의 한복판을 걸었다.
그리고 이내 꽤나 눈여겨볼 만한 것 하나를 발견했다.
“……!”
그것은 뼈와 가죽만 남아 있는 거대한 마물의 사체였다.
위험등급 : S
크기 : 44m
발견지 : 적과 흑 산맥 10부 능선
-일명 ‘사하(沙河)의 용’.
용과 악마의 교잡종으로 여겨지는 끔찍한 존재.
숨결을 뿜어내면 창공의 새가 떨어져 죽으며 비늘로 덮인 몸이 한번 기어간 곳은 반 세기 동안 풀이 자라지 않는 사막이 된다.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끔찍한 재앙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적과 흑 산맥의 10부 능선에 둥지를 틀고 움직이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이것이 움직이는 순간 인류는 대비해야 하리라.
어떠한 창검과 마법으로도 절대 죽일 수 없는 이 질기디 질긴 공포를!
세외의 삼재(三災).
궁신 아도나이, 마담 여덟다리,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이 사하의 용 ‘바실리스크’이다.
“마담이 사라진 뒤 이놈이 날뛰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왜 여기서 죽어 있지?”
바실리스크와 거미는 본디 천적 관계가 아니던가.
이처럼 마담과 사하의 용은 오랜 시간 동안 지독한 앙숙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기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마담 여덟다리가 사라졌으니 다른 한쪽이 강성해질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한데?
“안 그래도 한번 사냥하러 갈 생각이었는데, 손을 덜었군.”
바실리스크가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죽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동안 사냥 계획을 꼼꼼하게 짜뒀던 것이 무색한 일이었다.
비키르는 바실리스크의 사체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바실리스크는 수명이 다 되어서 죽은 것은 아닌 듯싶었다.
멸망의 시대 당시에 목격했었던 개체에 비해 덩치가 훨씬 더 작았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몸 이곳저곳에 칼자국이 뚜렷하게 패여 있었으니 말이다.
칼이 가죽을 찢고 살을 파고 들어가 뼈를 부러트린 흔적, 그리고 그 상처가 바실리스크 특유의 어마어마한 재생력으로 인해 급속도로 재생되어 아문 상흔들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아우라에 의해 그을린 흔적들 역시 뚜렷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바실리스크의 두꺼운 비늘에 액체가 튄 듯한 자국들이 빼곡하게 나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망인(亡人)의 살아생전 경지는 그래듀에이터 최상급이었으리라.
이 모든 궤적들을 되짚어 올라가자 뚜렷한 형태가 나타난다.
‘바스커빌 4식!’
먼 옛날, 바스커빌가의 사냥개 한 마리가 여기서 외로운 사투를 벌였던 듯싶다.
비키르는 바실리스크의 사체 부근을 수색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바실리스크의 사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너덜너덜 찢겨진 흑풍의 자락이 휘날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삭풍에 닳아버린 해골.
걸레짝이 된 바스커빌가의 제복이 흰 소금모래 위에 널브러져 있다.
저 특유의 두터운 망토는 분명 핏불 기사단 소속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스커빌가의 기사.
죽는 그 순간까지 4개의 이빨밖에 쓰지 못한 것을 보면 아마도 출신이 그리 대단하지 않은 존재였으리라.
하지만 그는 4식을 오래도록 수련하여 혼자서 사하의 용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비키르는 마치 회귀하기 전의 자신을 보는 듯한 유골의 모습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이름 없는 핏불을 향해 조용히 묵념을 올렸다.
“……좋은 곳으로 가시오.”
이윽고, 상원의원을 상징하는 금뱃지가 유골의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 놓였다.
비키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를 표한 셈이다.
그때.
“……?”
공양을 위해 허리를 굽힌 비키르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펄럭-
유골의 갈빗대 사이에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양피지 묶음. 누군가에게 보내는 서신이었다.
서신의 봉인이 붉은색인 것으로 보아 특급 군사기밀, 바스커빌가의 가주가 직접 작성했다는 뜻이다.
“……설마 휴고의 것인가?”
편지는 건조한 소금 속에 파묻혀 있었기에 보존이 아주 잘 되어 있었다.
비키르는 망설임 없이 봉인을 뜯어내고 그것을 펼쳐보았다.
이윽고, 편지 안의 내용이 비키르의 망막에 아로새겨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상당히 놀라운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