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64
264화 죗값 할인 시즌 (1)
기나긴 여정 끝에 비키르는 콜로세오 아카데미의 기숙사로 돌아왔다.
“먼저 씻어 비키르! 나는 우선 좀 할 게 있어서…….”
“뭔가?”
“아아, 대학리그 때문에 미뤄두었던 개인 작업물들 좀 정리하려고.”
피기는 기숙사 방에 들어오자마자 뭔가를 분주하게 하기 시작했다.
숫자와 도표, 그래프들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는 종이였는데 아무래도 금융 쪽에 관련된 무언가인 듯했다.
비키르는 말없이 샤워실로 들어갔다.
[핵핵핵-]새끼마담은 물이 좋은지 따듯한 물 밑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검은 털이 흘러내리자 녀석은 마치 물에 녹아내리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평소였다면 그런 새끼마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겠지만…… 비키르는 지금 미간만 조금 찌푸린 채 말이 없었다.
그것은 아까부터 계속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는 목걸이 때문이다.
목의 초커에 붉은 사슬로 매달려 있는 역오망성 목걸이.
바로 칠번시 데카라비아였다.
[크-하하하하! 나는 데카라비아! 금기시되는 존재! 종의 구원자! 거대한 파멸과 웅대한 창조의 혼합물! 그리고 이번 활동기에서는 예쁘고 아름다운 여주인을 모시게 된 행운아!]애초에 놈의 목소리는 비키르에게만 들리도록 설정되어 있는지라 비키르는 계속되는 수다에 귀가 아플 지경이다.
데카라비아는 비키르의 목과 가슴 부근에 걸려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드는지 돌아오는 길 내내 하이텐션이었다.
하지만 그 좋은 기분은 딱 여기까지였다.
비키르가 샤워실에 들어가 옷을 벗는 순간, 계속되던 데카라비아의 수다가 뚝 그쳤다.
[이봐 계약자! 누가 나를 집어갈 수 있으니 샤워를 할 때도 꼭 나를 몸에 지니고 들어가야 하는 것을 잊지 말…… 어?]거의 원형에 가깝게 활짝 뜨여있던 데카라비아의 눈알 속 동공이 흔들린다.
[…….]비키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데카라비아.
[……?]그리고 이제 다시 비키르의 아래쪽을 바라보는 데카라비아.
그동안 비키르는 잠자코 샤워를 했다.
[…….]데카라비아는 어느덧 굉장히 과묵해졌다.
급격히 말수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이제는 아예 정말로 무생물이 된 것처럼 미동도 없다.
몇 번인가 위와 아래를 번갈아 보던 눈도 어느 새인가 슬쩍 감겨 버렸다.
계속되던 수다가 갑작스럽게 멎은 것에 이상함을 느낀 비키르가 마나를 실은 손가락으로 데카라비아를 톡톡 두드리자.
[……나는. 데카라비아. 뭔가 명령을 내릴 것이라도?]“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잠시 뜨였던 눈이 다시 차갑게 감긴다.
상당히 건조하고 사무적인 대답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뭐, 이제야 좀 조용해졌군.”
결과가 좋으면 좋은 것이다.
비키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비키르가 샤워실에서 나왔을 때 피기는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샤워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뿌연 수증기를 등진 비키르가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고 있을 때.
“비키르. 나 좀 나갔다 올게!”
피기는 품에 서류들을 잔뜩 끌어안은 채로 말했다.
저래서야 앞을 볼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서류들이 피기의 품 안에 그득그득 쌓여 있었다.
비키르는 목에 수건을 걸친 채 의자에 앉아 물었다.
“어디 가나?”
“으응. 개인 작업물들을 교수님에게 보여드리러 가.”
개인 작업물이란 아카데미에서 과제로 내준 것 말고도 학생들이 개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따로 하는 공부를 뜻한다.
피기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모의투자대회’가 열리거든.”
“모의투자대회?”
“응. 뭐, 유망한 종목이나 섹터를 미리 발굴하고 조망해서 투자하는 대회야. 주최는 그 유명한 부르주아 가문이고. 우승하거나 순위권에 들면 많은 혜택이 있어!”
“생존경시대회가 끝이 아니었나? 별 대회가 다 있군.”
“맞아. 대회 진짜 많아. 검술대회, 궁술대회도 따로 있고 마법대회도 있지. 납달리 대회도 있고 많이 먹기 대회도 있고 권투 대회, 연극 대회, 노래 대회, 그림 대회, 훌륭한 장수풍뎅이 키우기 대회 등등…… 요 근래 들어서 부쩍 많이 개최되더라고?”
비키르가 놀 가죽을 팔아 번 거액을 장학재단에 기부한 이래 이런저런 명목의 대회들이 많이 늘어났다.
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위한 구실이었다.
‘밴시 교수가 의외로 일을 잘 하고 있군.’
비키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학재단이 일을 똑바로 할지 미심쩍었는데 생존경시대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가시적인 결과물들을 내놓는 것으로 보아 나름대로 믿을 만한 것 같았다.
한편, 피기는 말을 마치며 멋쩍게 웃었다.
“나는 성적이 조금 부족하니까 이런 대회들에서 입상을 해 가산점을 받아서 학점을 채우는 수밖에 없거든.”
사실 피기는 전투에 대한 재능은 평범 혹은 그에 살짝 못 미칠 정도이지만 그 외 다른 모든 종목에서는 우수한 재능을 드러내고 있었다.
행정, 법률, 의학, 예술 등에 해박했으며 재테크 역시도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정보 습득이나 분석, 취합에 능했으며 사회 저명 인사들의 최신 소식이나 근황 등에 대한 정보 역시도 빠삭했다.
(듣자 하니 훌륭한 장수풍뎅이 키우기 콘테스트에서도 이미 몇 번인가 우승했다고 한다)
‘씬디웬디가 봤다면 당장에 스카웃해 가겠다고 난리를 쳤을 테지.’
비키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평소 말수가 원체 적은 비키르인지라 덕담을 할 때의 효과는 굉장했다.
“……늘 고마워 비키르. 항상 격려해 줘서.”
피기는 감동 받았다는 듯 입을 꾹 다문다. 눈시울도 붉고 촉촉하게 변했다.
이윽고 피기는 비키르를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좋았어. 이번에야말로 꼭 그 애를 이길 거야.”
“……그 애?”
비키르가 의아하다는 듯 묻자 피기는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싱클레어 말이야! 걔도 이번에 모의투자대회에 참가한다고 했거든!”
싱클레어. 열병기부의 수석. 평민 출신의 신입생.
천재들만 모였다는 콜로세오 아카데미에서도 유난히 여기저기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천재이다.
그녀는 전공인 마법에 관해서는 마도종가 모르그의 마법사들만큼이나 대단한 재능을 보여 주었고 부전공인 냉병기부 수업 때는 칼, 창, 활 등의 병기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숙함을 보여 모두를 놀라게 했었다.
그리고 그 외, 이론이면 이론, 필기면 필기, 자격증이면 자격증, 아르바이트면 아르바이트, 못 하는 것이 없는 알파걸로도 유명했다.
심지어 그녀는 이번에 도서관 사서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도 각종 실기와 필기에서 모조리 1,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 냈다.
게다가 얼마 전 대학리그에서 1학년 새내기 신분으로 무려 전체 8위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기록했으니 그녀의 스타성은 이미 입증된 셈.
피기는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며 말했다.
“싱클레어는 또 회계나 사무업무 등도 엄청 잘 본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런가.”
싱클레어가 경제나 투자 등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몰랐던 사실이기에 비키르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려 주었다.
“이번 모의투자대회는 부르주아 가에서 스폰을 맡고 있는 대회다 보니 상금과 장학금, 더 나아가서 졸업 후 취업 자리를 위해 참가하는 학생들이 많아. 아마 싱클레어도 그렇겠지? 절대 지지 않겠어! 나 다녀올게!”
피기는 손을 흔들다가 서류 몇 장을 놓쳐 다시 줍고는 일어났다.
하지만 발꿈치 뒤로 떨어진 종이 한 장은 미처 보지 못했다.
비키르가 그것을 주워 피기에게 건네주려 했지만.
“아, 괜찮아! 그건 그냥 대회 포스터야! 없어도 돼!”
피기는 손을 흔들며 그대로 복도 너머를 향해 뛰어갔다.
이윽고 방은 텅 비게 되었다.
비키르는 책상 앞자리에 앉았다.
[핵핵핵-] [내 몸에 침을 흘리지 마라 더러운 강아지…… 아니, 거미인가? 뭐지 이거?]새끼마담과 데카라비아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새끼마담은 데카라비아가 뭐가 그리 좋은지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핵! 핵-!] [어허, 내 몸에 침을 흘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니, 그렇다고 손을 대진 말고, 아니, 올라타지도 말고 그냥 떨어져…… 엇, 암컷?] [핵핵……] [이런이런, 레이디셨나? 그렇다면 이 정도 실례는 눈 감아 주지. 실제로도 그냥 눈을 사르르 감고, 그대의 손길에 몸을 맡기……]비키르는 데카라비아에게 마나를 불어넣고 명령을 내렸다.
“눈을 떠라.”
[…….]잠시 고민하던 데카라비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삐걱댔다.
[음. 그래. 눈을 떴다. 새로운 취향에 말이지. 어쩌면, 저 얼굴에 남자인 쪽이 오히려 더……]“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눈을 뜨고 십상시에 대한 정보나 말하란 말이다.”
비키르가 손바닥으로 탁탁 때리자 데카라비아가 허둥지둥 대답했다.
[아, 아까 물어본 것 말이냐? 뭐였더라…… 그래. 십상시들 중 육번시(六番尸)에 관련된 내용이었지?]“그렇다.”
비키르는 다음 사냥감인 여섯 번째 십상시에 대한 정보를 데카라비아에게 묻고 있었다.
[육번시라. 그 녀석이라면 분명 구번시와 절친한 사이였지. 둘은 항상 붙어 다녔어.]씬디웬디의 조사로도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정보를 데카라비아는 알고 있다.
변변찮은 것이라고 해도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데카라비아의 말을 들은 비키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구번시라 함은 단탈리안. 인둘겐티아 가문의 가주 퀼티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지.’
단탈리안이 조종했던 퀼티는 신앙성가 쿼바디스의 구약파와도 밀접한 연이 닿아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단탈리안과 절친한 사이였던 악마. 여섯 번째 시체.
‘쿼바디스의 구약파를 조사하다 보면 단서를 잡을 수도 있겠군.’
인둘겐티아 가문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여전히 쿼바디스의 구약파에서는 면죄부들을 발행, 판매하고 있었다.
‘돌로레스의 95개조 반박문 사건’으로 인해 세간의 눈치를 보느라 면죄부 판매를 중단했던 것도 잠시, 대중들의 재판매 요구가 빗발침에 따라 구약파는 얼마 전부터 다시 면죄부 발행을 시작했다.
마침 또 새로운 계절을 맞이함에 따라 새롭게 바뀐 규격의 ‘면죄부’ 판매가 성행하고 있다.
놀랍게도 할인 행사까지 들어간 채였다.
‘한철 장사이니만큼 바짝 땡기겠지.’
비키르는 다시 한번 쿼바디스의 구약파를 조사할 생각이었다.
그와 연줄이 닿아 있는, 어쩌면 쿼바디스가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 숨어 있는 단서를 찾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 순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직감 비슷한 것이 비키르의 뇌리를 스쳤다.
“…….”
비키르의 시선이 현관 쪽을 향했다.
그곳에는 아까 전에 피기가 나가면서 떨어트린 포스터 한 장이 있었다.
경제의 흐름은 인간이 만들어 냈으되, 인간의 힘으로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극소수 천재의 직감은 거대한 흐름과도 닿아 있는 법.
만약 자신이 그 극소수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포스터를 주목해 주십시오.
이 대회는 ‘경제의 척추’라 불리는 곳에서 개최되며
여러분을 재계의 큰 무대로 이끌 계단이 될 것입니다.
대상 : 아카데미 전 학생
접수 기간 : 포스터가 배부된 뒤 일주일까지 (※포스터는 일주일 뒤면 자연히 소멸됩니다)
주최: 부르주아 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