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7
27화 그래듀에이터(graduater) (2)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휴고의 집무실에서는 여전히 차고 비린 기운이 풍긴다.
오래된 장서들에 쌓인 먼지, 독한 담배연기, 식어 버린 커피, 그리고 미약하게 느껴지는 피 냄새.
비키르는 노련한 사냥개답게 냄새를 통해 분위기를 읽었다.
그러자 책상 뒤, 돌아간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몸을 돌려 비키르를 마주했다.
휴고 레 바스커빌.
철혈검가 바스커빌가의 가주.
오랜만에 보는 그의 얼굴은 비키르의 회귀 전 마지막 기억 속 휴고의 얼굴과 약간 더 닮아져 있었다.
문득. 비키르는 휴고의 콧등을 가로지르고 있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흉터 한 줄기를 발견했다.
회귀 전에도 있었던 흉터였지만 어떤 연유로 생겨났는지는 몰랐던 것이라 비키르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강녕하셨습니까.”
“음.”
휴고는 짧게 대답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비키르는 태연한 어조로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 나갔다.
콧등의 흉터가 왜 생겼느냐는 비키르의 질문에 휴고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적과 흑 산의 야만족을 토벌하던 중 화살에 맞았다.”
비키르는 약간 놀랐다.
천하의 휴고 바스커빌을 화살로 상처 입힐 수 있는 자가 있다니.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있는 휴고가 설마 눈먼 화살에 당했을 리는 없고, 분명 그를 노린 저격수가 있었을 것이다.
휴고는 피식 웃었다.
“활을 잘 쏘는 여자가 하나 있더군.”
“잡으셨습니까?”
“못 잡았다. 다만 나도 그 여우같은 것의 얼굴에 똑같은 것을 하나 새겨 줬지.”
휴고 정도 되는 칼잡이라면 아무리 원거리의 적이라 해도 칼끝의 아우라를 흩뿌려 요격이 가능했을 것이다.
휴고는 콧잔등을 길게 가로지르는 흉터가 아직도 욱신거리는지 손으로 잠시 콧대를 짚었다.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인 끝에 입을 열었다.
“아무튼. 교육을 마친 것을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더욱 힘들게야.”
휴고의 말에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육을 마칠 당시 수호기사 스태포드셔 바스커빌이 했던 말마따나, 이제부터가 진짜다.
전투이론 습득과 체력 단련, 대적관 함양 등의 기초훈련에 3년 6개월.
실제 마물이나 인간을 상대로 하는 전투 훈련, 야생에서의 생존술과 같은 실제 훈련에 또 3년 6개월.
하지만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투입될 적과 흑 산맥의 깊고 깊은 수해는 이제까지 겪고 익혔던 모든 생존법들을 전면으로 부정해 버리는 지옥이다.
누구의 말대로 타고난 혈통이 좋든가, 아니면 정말 죽을 각오로 노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21개월간은 적과 흑 산의 개척 작업에 투입되겠군.’
비키르는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원래대로였다면 그는 이 시점에서 ‘핏불 기사단’의 견습기사가 되어 적과 흑 산맥으로 보내지고 이후 21개월간 수없이 많은 사선을 넘나들게 된다.
몇 번 쓰고 버릴 사냥용 잡견답게 바로 실전으로 투입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휴고는 비키르에게 다소 의외의 제안을 해 왔다.
“하원의원(下院議員)을 맡아 보거라.”
그것은 실로 뜻밖의 일이었다.
휴고는 비키르에게 문관의 길을 권한 것이다.
물론 가문 전원이 노련한 전사로 구성된 바스커빌가이니만큼 문관이라고 해서 전투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바스커빌가의 어린아이들 중에 특별히 싹수가 좋고 실력이 뛰어난 이들은 중간에 문관 직을 한번 거쳐서 무관으로 전직하는 코스를 밟는 경우가 많았다.
휴고의 적장자와 차남 역시도 같은 코스를 밟고 있었고 말이다.
“남자라면 강해야지. 칼이 그렇듯 권력 역시도 마찬가지다.”
휴고의 말에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소모품들이 실전에서 죽어갈 때, 엘리트들은 가문 내외의 정치와 행정에 대해서 배운다.
그리고 나이가 찬 엘리트가 비로소 칼을 뽑아 실전에 투입될 때, 그동안 숱한 실전경험을 통해 노련해진 소모품들이 그를 보좌하게 될 것이다.
엘리트는 약간 뒤늦게 시작하긴 했지만 소모품들을 개처럼 부리며 자신의 실력과 성과를 쌓고 그간 배웠던 정치와 행정 경험을 통해 더욱 더 큰 거인(巨人)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엘리트들만 바스커빌 5식 이상을 배울 수 있으니.’
소모품들에게 바스커빌 5식 이상의 상위 검술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실전에 뒤늦게 뛰어든 엘리트들이 조금만 노력해도 소모품 사냥개들을 금세 따라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안배.
나라의 고위직들이 백성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비키르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휴고의 곁에서 멀어지려 했는데 오히려 더욱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숨겨둔 실력 자체가 그리 대단하지 않기에 큰 상관이 없는 일이었고 이번 기회에 오히려 권력의 중추(中樞)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기에 비키르로서는 여러모로 호재다.
휴고는 비키르가 맡게 될 하원의원직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하원의원은 바스커빌가 영지 내의 지역구 행정과 입법, 사법을 보조하고 지역구를 위한 사업을 유치하거나 사무를 보는 일을 하지. 쉽게 말해 가문 내의 대소사들을 관장한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성과를 낸 하원의원은 상원의원(上院議員)으로 승급하여 가문 외부의 일까지 다루게 되는데 이는 현재의 비키르로서는 큰 관심이 없는 일이었다.
드르륵-
휴고는 서랍을 열어 몇 장의 서류들을 꺼내들었다.
베리모어 집사가 재빨리 도장과 인주를 들고 그 옆을 보좌했다.
“네가 맡게 될 직은 ‘언더독’ 시(市)의 부집정관이다.”
언더독 시라면 비키르도 잘 알고 있었다.
바스커빌가가 다스리는 광활한 영토에서 제일 번화한 마을. 아니, 마을이라기보다는 대도시(Metropolis)에 가까운 지역이다.
집정관이란 이곳의 입법과 사법을 관장하는 직책을 뜻하는데 부집정관은 집정관을 다방면으로 보조하는 업무를 맡는다.
비키르는 임명장에 적힌 내용들을 보며 말했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이군요.”
“그렇지. 현재 집정관 자리와 부집정관 자리가 모두 공석이다.”
하나의 집정관과 다수의 부집정관 자리가 모두 공석 상태가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원래 언더독 시의 집정관은 휴고의 차남이었고 바스커빌의 성을 받은 차남의 외척 사람들이 부집정관으로 있었다.
하지만 현재 휴고의 차남은 오랜 폐관수련에 들어가 버렸고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할 부집정관들은 뇌물수수 혐의로 한꺼번에 파면, 경질된 상태였다.
그리고 휴고는 그 공석들의 권한과 의무를 모두 비키르에게 넘겨주려는 것이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도시다. 잘 할 수 있겠느냐?”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집정관은 보통 30대의 인물들이 맡지만 간혹 천재 중의 천재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십대 초반에 맡기도 한다.
그리고 이 젊은 엘리트들은 차후에 가문을 대표하는 중책을 맡게 될 가능성이 컸다.
‘……가령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다거나 말이지.’
그리고 아카데미에서 4년의 수학을 끝내고 가문으로 복귀해서는 바로 집정관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그야말로 엘리트 중의 엘리트 코스.
휴고가 비키르에게 제안한 것은 그만큼이나 파격적인 인사발령이었다.
“과분한 권한을 내려 주시는 것 같습니다.”
“과중한 의무이기도 하지.”
휴고는 건조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네 성취가 가문 내에서 천재라 불리는 아이들보다도 최소 열 살 이상 빠르지 않느냐. 그러니 대우도 그만큼 해 주겠다는 것이다.”
대우에는 권리와 의무가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권력이 강해진 만큼 임무도 무거워진다.
바꿔 생각하면 임무가 무거워진 만큼 권력도 강해졌다.
“가주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휴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땅!
서류 한 장에 휴고의 인감이 찍혔다.
이걸로 비키르는 인구 수 50만 명의 대도시 언더독의 부집정관, 사실상의 집정관이 되었다.
‘잘 된 일이지.’
비키르는 생각했다.
부집정관의 권력을 잘만 이용한다면 바로 실전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게 실력을 키울 수 있다.
감춰 놓은 이빨과 발톱이 보다 날카롭게 벼려질 것이다.
이윽고. 비키르는 입을 열었다.
“가주님.”
“……?”
휴고가 고개를 든다.
용건이 끝난 뒤 꺼졌던 관심에 다시 약간의 온기가 깃들었다.
비키르는 그 실낱같은 온기를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예전에 있었던 모르그가와의 루비 광산 건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7년 전, 여덟 살 먹은 비키르는 모르그가의 사절단을 상대로 대담한 짓을 벌여 휴고의 속을 시원하게 해 줬던 적이 있다.
그때 분명 휴고는 흡족한 마음에 비키르에게 포상을 약속했었는데 당시의 비키르는 그 포상의 종류를 정확히 요구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 비키르는 그때의 행동에 대한 보상을 제법 명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를 한번 빌릴 수 있겠는지요.”
그 말에 휴고는 약간 고민하는 듯한 기색을 보인다.
“흐음. 그래, 그랬지. 그때 분명 네게 상을 내리겠다고 했었다. 너는 원하는 것이 생긴다면 말하겠다고 했었고.”
“어려우시다면 들어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 말에 휴고의 굵은 눈썹이 꿈틀했다.
“어려울 리가.”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랍 안에서 서류 한 장을 더 꺼내 가주의 인감을 찍었다.
“허튼 짓은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아들아.”
저놈의 ‘아들’ 소리는 몇 번을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비키르는 아들이라는 호칭보다는 휴고가 흔쾌히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것에 더욱 놀라고 있었다.
‘……회귀 전이었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부탁인데 말이지.’
아무래도 일이 생각보다는 더 수월하게 진행될 조짐이다.
* * *
가주실 밖으로 물러나온 비키르는 긴 복도를 걸어간다.
그 뒤로 베리모어 집사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도련님.”
“응.”
“가주님께서 도련님을 많이 아끼십니다.”
비키르는 별다른 대답 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베리모어 집사가 말을 이었다.
“도련님을 바로 실전에 투입하시지 않고 사실상의 집정관 직을 맡기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이것이 바로 제왕학(帝王學) 아니겠습니까? 분명 도련님을 크고 중하게 쓰실 겁니다.”
말 그대로, 쓰고 버릴 사냥개로 키울 것이라면야 지금부터 바로 전장으로 내보내 죽어라 굴려야 한다.
사냥개들이 죽음과 접하며 노련해지는 동안 그 주인 될 자들은 안전한 곳에서 사상과 지식으로 무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마련된 발판을 토대로 사냥개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지고한 경지를 향해 도약하는 것이다.
결국 하류인생은 죽었다 깨어나도 상류인생을 이길 수 없다. 문(文)으로도 무(武)로도.
그것을 새삼 절실하게 다시 느끼고 있는 비키르로서는 입맛이 쓴 일이다.
“그것은 내가 부집정관으로서 맡은 소임을 잘 해낼 때의 이야기겠지.”
“도련님이라면 분명 잘 해내실 수 있으실 테죠. 그곳에서 무난할 정도로만 성과를 내셔도 분명 다음 아카데미 입학생은 도련님일 겁니다.”
베리모어 집사는 비키르 역시도 아카데미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비록 그 이유까지는 짐작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말이다.
한편.
비키르는 회귀하기 전에 보고 들었던 유명한 관료들의 정책과 기행(奇行)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이윽고, 철혈검가 바스커빌의 가주 휴고 레 바스커빌의 인감이 찍힌 부집정관 임명장이 비키르의 품 속 안주머니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빨리빨리 성과를 내 보여야겠군.”
단기간 내에 능력을 인정받고 더 위로 올라갈 방법들은 무궁무진했다.
그리고 비키르는 그중 제일 효과 빠르고 확실한 길 하나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