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 (3)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포메리안의 말은 사실이었다.
츠츠츠츠츠츠……
어느덧 줄리엣과 로미오 커플의 눈앞에 커다란 문이 생겨났다.
죽음의 문.
그 문은 너무나도 크고 육중해서 한번 열리는 것도, 한번 닫히는 것도 어마어마하게 어려워 보였다.
그러니 한번 열리고 한번 닫히면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로미오는 슬픈 표정으로 줄리엣을 돌아보았다.
줄리엣 역시도 울며 로미오를 바라본다.
[전에도 말했지? 당신이 어디로 가든 나는 당신을 따라갈 거야.]비가 쏟아지던 그날 밤. 둘이 했던 약속.
죽은 자가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떠나려는 로미오와 그 뒤를 따르려는 줄리엣.
그때. 데미안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안 돼! 안 된다! 그것만은 절대로 안 돼!”
데미안은 발작하듯 소리쳤다.
“줄리엣! 너는 아직 살아 있다! 어찌 죽은 자를 따라갈 수 있겠느냐!?”
그러자 줄리엣은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는 그날 밤에도 그렇게 말씀하셨지요.]딸의 말을 들은 데미안은 충격을 받은 듯 뒤로 반 보 물러섰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날 밤에도 그는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줄리엣! 너는 부르주아가의 후계자다! 어찌 저런 근본도 모르는 놈과 얽히려 하느냐!?’
그날 밤에 기억이 미친 데미안은 더듬더듬 변명했다.
“이, 이건 경우가 다르지 않니! 결혼이라면 허락하겠다! 이 못난 애비가 다 잘못한 일이야! 인정해! 하지만 이건…… 이건 아니잖아! 로미오는 이미 죽었어! 너는 살아 있고!”
[‘아직’일 뿐이지요.]“뭐, 뭐?”
줄리엣은 처연한 시선으로 데미안과 눈을 맞추었다.
[이 사람이 없다면 저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요.]“딸아!”
[몇 번을 말씀하셔도 똑같아요. 설령 다시 깨어난다고 해도 저는 바뀌지 않을 거예요.]그 말에 로미오는 슬픈 표정으로 줄리엣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줄리엣 역시도 로미오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데미안은 망연자실한 채 중얼거렸다.
“딸아. 너는 생령이 아니더냐. 생령은 저승으로 갈 수 없다고 했다. 너의 육체는 아직 살아 있으며 질긴 끈으로 이어져 있단 말이다. 이미 죽은 로미오는 몰라도 너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갈 수 없…….”
순간. 데미안은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고개를 들어 줄리엣을 바라보았다.
“주, 줄리엣. 너 설마……?”
[…….]그러자 줄리엣은 눈물 그렁그렁한 눈을 들었다.
이내. 그녀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이제 그만 저를 보내 주세요.]모든 것이 그날의 밤과 같았다.
‘저는 지금껏 아버님의 말을 잘 들어왔잖아요.’
[한 번도 아버님을 실망시켜 드린 적 없었던 자랑스러운 딸이었잖아요.]‘그러니 이번 한 번만.’
지금 귓가에 웅웅 울리고 있는 이 목소리가 과거의 것인지, 현재의 것인지 데미안은 분간하지 못했다.
다만 이미 진작에 다 말라 버린 줄 알았던 눈물만 계속해서 쏟아낼 뿐이다.
“……아아, 그렇구나.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거였어. 그래, 그런 것이었다.”
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주 잠시지만 착각했다.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저지른 과오의 무게를 아직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에 했던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그리고 지금. 현실을 깨달은 데미안은 이제껏 자신이 저질렀던 행동들의 진짜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냐?”
비키르가 짧게 물었다.
데미안은 끊어져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삼십 분 정도로군.”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몇 초간 고민하던 데미안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재빨리 뛰어가 방문 너머에 있는 하인들에게 있는 힘껏 외쳤다.
“결혼식 준비를 해라!”
* * *
결혼식 준비는 간소하게, 그러나 빨리 끝났다.
있는 사람이라고는 신부인 줄리엣, 신랑인 로미오. 혼주 측에 데미안.
그리고 친족은 주례를 설 수 없다는 가문 내 법도에 따라 비키르가 주례를 섰다.
포메리안은 신부의 드레스 자락을 잡아주고 부케를 받는 역할을 맡았다.
비키르는 역병 의사 마스크를 한번 고쳐 쓴 뒤 단상에 서서 짧게 말했다.
“언제나. 그대를 위하여 내가 있는 것이지 나를 위하여 그대가 있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시고. 살던 대로 잘 사시오.”
으레 고위 귀족들이 치르곤 하는 수 시간짜리 주례에 반해 뭔가 많은 것이 생략된, 그러나 꼭 필요한 핵심적인 것들은 다 들어 있는 주례였다.
줄리엣과 로미오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물 번진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이내 신랑 신부의 입맞춤.
혼주석에 홀로 앉은 데미안은 그 모습을 보며 눈물지었다.
이윽고.
끼긱-
의자를 밀어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딸의 영혼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 살거라.”
동시에. 그는 옆에 있던 베개를 집어 들었다.
데미안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침대 위에 누워 조용히 숨을 쉬고 있는 줄리엣의 몸이 보였다.
“잘 살거라. 딸아. 정말 잘 살아야 해.”
파르르 떨리는 손. 베개를 잡은 데미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손에 든 베개로 줄리엣의 얼굴을 꾹 눌렀다.
많은 힘을 줄 필요도 없었다.
오랜 시간 누워 있어 쇠약해져 있던 줄리엣의 몸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누워 있을 뿐이다.
그저 끊어질 듯 말 듯 들려오던 작은 숨소리가 점점 더 작아지다가 이내 그마저도 더는 들려오지 않게 되었을 뿐.
추욱……
줄리엣의 몸이 더욱 더 힘없이 늘어졌다.
그러자 줄리엣의 생령에도 변화가 일었다.
그녀는 몸이 한층 더 또렷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로미오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로미오! 이제야 당신의 말이 들려요!]줄리엣은 로미오의 품에 안겨 활짝 웃었다.
이윽고.
줄리엣과 로미오가 데미안의 앞에 섰다.
로미오는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 데미안에게 인사를 올렸다.
줄리엣 역시 고개를 살짝 숙여 귀족 영애로서의 예를 표했다.
[아버님. 저희 잘 살게요.]“……이미 죽은 것들이 살기는 무슨.”
데미안은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붉게 충혈된 눈은 이미 눈물범벅이다.
댕- 댕- 댕-
괘종시계의 종소리가 열두 번 울려 자정을 알린다.
줄리엣과 로미오는 데미안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넨 뒤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카펫 위를 지나 저 멀리 죽음의 문으로 향했다.
결국. 신랑과 신부는 경계를 넘었다.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피안(彼岸)의 선. 그 육중한 죽음의 문을 열고 높은 턱을 넘어 둘만의 세계로 떠났다.
…쿵!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처럼 무겁고 둔중한 문이 닫혔다.
죽음과 삶, 저승과 이승이 단절된 것이다.
…….
무덤 속처럼 고요한 침묵이 장내를 짓누른다.
데미안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렸다.
“……행복하렴. 딸아. 행복하렴. 그곳에서는 꼭 둘이 행복해야 한다. 꼭.”
얼굴은 일그러진 채 굳어 버렸다. 절제된 눈물이 굵게 방울져 레드카펫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쾅!
죽음의 문이 갑자기 요란한 굉음과 함께 열렸다.
[아빠!]그 무거운 문짝을 걷어차고 나온 줄리엣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아빠 안녕! 안녕!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언젠가 꼭 다시 만나!]줄리엣은 울고 있었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찬란한 미소를 지은 채, 정말로 펑펑 울며 아빠를 부르고 있었다.
동시에.
…쿵!
죽음의 문이 비로소 완전히 닫혔다.
그것은 나타났을 때처럼 천천히 희미해졌고 이내 모두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춰 버렸다.
그리고.
털썩-
데미안은 자리에 무릎 꿇었다.
그리고 코와 입을 크게 벌렸다.
“흐허어어어어어어엉-”
그 진중했던 표정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눈에서는 눈물, 코에서는 콧물,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흘러내려 완전히 엉망이 된 얼굴.
그는 딸의 몸이 뉘어진 침대에 기대어 그렇게 한참을 펑펑 울어 젖혔다.
“…….”
비키르는 여전히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그런 비키르의 옆으로 포메리안이 와 섰다.
“삼춘. 저 아찌는 왜 우러?”
그러자 비키르는 포메리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도 몰라.”
“삼춘도 모르는 게 이써?”
포메리안의 말에 비키르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는다면 그 뒤에서라도 함께 하고 싶었어.’
왜일까? 머릿속에 한 여자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비키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르는 것, 물론 있지.”
“모르면 배워야 된대써!”
“음. 원래는 딱히 배우고 싶지 않았었는데…….”
포메리안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비키르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짧게 말을 이었다.
“한번 알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르겠다.”
바로 그때.
긴 시간 흐느껴 울던 데미안이 고개를 들었다.
비키르는 그가 감정을 일부 추스를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고개를 든 데미안은 줄리엣의 침상 근처에 유령처럼 서 있는 비키르를 보며 물었다.
“……자네는 정녕 살아 있는 사람인가?”
“꿈이라면 혼자 꿔라. 이제 정산 시간이야.”
비키르는 단호하게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데미안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거래 대금을 치러야겠지. 하지만 그 전에 자네에게 꼭 할 말이 있어.”
“뭔가?”
“고맙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데미안이 비키르를 향해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 보인 것은.
약간의 침묵 후 고개를 든 데미안은 말을 이었다.
“자네 덕에 딸내미를 보내 줄 수 있었어. 완전히 보내 주었네.”
시집을 보냈다는 건지, 저승으로 보냈다는 건지 애매한 상황이었지만 어느 경우에든 들어맞는 말이었다.
데미안은 짐짓 웃어 보이며 말했다.
“하하. 말 안 듣는 딸내미 녀석 어디로든 보냈으니 이제 속이 아주 후련하네. 기쁘기도 하고.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다 비슷한 것 아니겠나. 원래 결혼은 무덤인 것이거늘.”
“얼굴이나 좀 닦고 말해라.”
“이런. 실례했군.”
데미안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과 콧물, 침을 닦아냈다.
이윽고, 다시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돌아온 데미안은 비키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내게 원하는 게 뭔가.”
“부르주아가 가주의 목.”
“주지.”
전광석화 같은 대화.
지나치게 빠른 쿨거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