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84
284화 파워 인플레이션(Power inflation) (2)
수없이 많은 촛불들이 일제히 불을 머리에 이었다.
흘러내린 촛농이 그 밑에 산더미처럼 쌓인 금화들을 타고 흐르다 딱딱하게 굳어 간다.
“……세상에.”
돌로레스는 환해진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벌렸다.
금고 안 거대한 세계를 한 글자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부(富).
인간이 얼마나 부유할 수 있을지에 관한 평범한 인간의 상상력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존재.
금화, 금괴, 보석을 비롯한 온갖 가치 있는 물건들이 언덕을 넘어 구릉을 만들고 커다란 산을 형성해 그 너머로 줄기줄기 뻗어 올라가는 산맥을 이루었다.
천장에는 종유석처럼 생긴 것들이 흘러내리는 모양새 그대로 굳어 있었는데 그것들 역시도 모두 황금과 보석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수없이 많은 황금 술잔과 검, 왕관, 목걸이, 귀걸이, 반지, 브로치, 값비싼 골동품, 눈을 멀게 만들 정도로 찬란하고 영롱한 보석들, 부동산 권리를 증명하는 수많은 문서와 서류, 놀라울 정도의 가치를 지닌 미술품, 극도로 희귀한 술이 담긴 병 등이 도처에 쓰레기처럼 그득그득 널려 있다.
그 부(富)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미처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모양새로.
온 세상이 다 금빛을 베이스로 한 오색빛깔의 찬란한 황금향(黃金鄕).
신화 책 한 페이지에 등장하는 황금 도시도, 늙은이들의 입을 통해 전설로 구전되는 해적왕의 은닉 재산도 이처럼 화려하고 웅장하며 사치스럽지는 못하리라!
“……별천지네.”
돌로레스는 약간 기가 죽는 것을 느꼈다.
평소 재물에 아무런 가치도 두지 않는 그녀였지만 이 정도 규모의 부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재물이 아니라 대자연 그 자체의 위용과 거룩함마저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형을 찾아오는 이들 중에 철모르는 하룻강아지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지. 어쭙잖은 호승심으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려 드는 이들 말이야. 그놈들의 기를 사전에 죽여 놓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네만.’
돌로레스는 데미안이 했던 말을 그제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넓은 세상에 돈푼께나 번 우물 안 개구리들이 한두 마리겠나?
그들은 부의 정점에 서 있다는 부르주아가 가주와 자신을 견주어 보기 위해 끊임없이 날파리 떼처럼 달겨 붙을 것이다.
그런 귀찮은 이들을 편하게 제거하기 위해서는 이런 풍경을 보여주어 알아서 기게 만드는 것이 확실히 효율적이리라.
그때.
“……!”
황금 무더기들의 사이를 걷던 돌로레스는 이윽고 금고의 심층부를 바라볼 수 있었다.
눈부시고 어지럽게 널려있는 금은보화들의 끝에 웅장한 둔덕 하나가 솟아올라 있는 것이 보인다.
금화로 이루어진 산, 그리고 계단.
그 위에는 상아를 통째로 깎아 만든 큼지막한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촛불 그림자가 일렁거리는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아 인사를 건네 오는 남자.
“환영하오, 성녀. 아니, 오라클의 대표여.”
장발의 흰 머리카락과 풍성한 턱수염, 온화한 눈매와 고집 센 입매가 공존하는 얼굴.
부르주아가의 가주 ‘부르주아 주 바르톨로메오’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 * *
“수완이 대단하시더군.”
만찬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 바르톨로메오가 한 말이었다.
돌로레스가 고개를 들자 바르톨로메오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그대가 투자했던 내역을 보았소. 리스크가 커서 큰돈을 투자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 과감함은 나도 한 수 배워야겠어.”
“씬디웬디라는 분의 사업 아이템을 믿었거든요.”
돌로레스는 밤의 사냥개가 시킨 대로 잘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바르톨로메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씬디웬디라. 서부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젊은 사업가지. 서부밀림의 야만족들을 구슬린 그 친구의 수완에는 나도 여러 번 감탄했던 바 있소. 다만 아직 황도의 재계에는 그 위명세가 퍼지기 전이라 알아보는 이들이 많지 않은 줄로 아는데. 우리 성녀님의 안목이 보통이 아니시군 그래. 연륜이 대단해.”
“연륜이라뇨. 아직 많이 부족한 십대일 뿐인걸요.”
“연륜이라는 것은 나이와 관계가 없소. 나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준비를 했고, 수많은 도전을 했으며, 수많은 실패를 했지. 준비, 도전, 실패. 이 세 개의 고리가 한데 엮어 연륜이라는 하나의 고리를 이루는 것이라오.”
바르톨로메오는 호감이 듬뿍 묻어나는 어투로 돌로레스를 연신 칭찬했다.
“이 정도 성과를 거두어 자신을 증명했는데 나이가 한 살이면 어떻고 백 살이면 어떻겠소? 당당해도 좋다오. 인간이 어디에서 출발했든 간에 달려온 거리가 멀다면 당당할 자격이 있지. 반면 불평이나 하느라 출발선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면 불평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만약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이가 콜로세오 아카데미의 평범한 학생이었다면 어땠을까?
세계제일의 거부가 아낌없이 주는 이 칭찬과 덕담, 인정과 존중에 마음이 흐물흐물 풀어졌을 것이다.
피나는 노력을 인정받았을 때의 그 뿌듯함, 쾌감.
그것으로 인해 느슨해진 마음의 빈틈을 기가 막히게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바로 악마의 혓바닥이다.
‘밤의 사냥개 님께서 말씀하시길 그중에서도 특히나 화술에 능한 존재가 바로 육번시랬어.’
돌로레스는 눈앞에 있는 바르톨로메오를 바라보았다.
신사적인 외모. 부드러운 목소리. 호감 가는 억양. 그리고 진심인 것처럼 전해져 오는 치하의 말들.
그러나 돌로레스는 그런 것들에 현혹되지 않았다.
그녀의 정신력이 강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번 투자 성과는 그녀의 힘으로 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인이 하지 않은 일로 칭찬을 받아 봐야 딱히 기쁘지 않다.
“과찬이십니다.”
돌로레스는 애써 미소 지었다.
그리고 바르톨로메오는 그녀의 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고 약간의 오해를 한 모양이다.
“으음. 퀼티의 일은 유감이오.”
“……?”
돌로레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바르톨로메오는 몹시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성녀는 신약파 소속이지.”
“…….”
“나는 구약파의 신관들과 친분이 깊고.”
아무래도 바르톨로메오는 돌로레스가 신약파의 소속이기에 구약파의 신관들과 친하게 지내는 자신을 못마땅해 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바르톨로메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나와 거리를 두려 한다면 실로 섭섭한 일이오. 성녀의 생각대로 나는 구약파의 신관들과 친하지.”
“…….”
“하지만 나는 신약파의 신관들과도 친해지고 싶다오. 그쪽에서 나를, 나와 구약파의 유대를, 우리들이 축적하는 부를 비인간적이고, 더럽고, 추악하며 요망한 것으로 비하하고 폄훼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바르톨로메오는 피가 흐르는 고기를 나이프로 썰며 말했다.
“사실 ‘부’라는 것은 무색, 무취, 무미의 존재라오. 형태도 없고, 맛도 없고, 향도 없지. 지독하게도 가치중립적이야. 좋게 쓰면 좋은 것이고 나쁘게 쓰면 나쁜 것이지.”
“…….”
“마치 불이 온 산을 태워 버릴 수도 있지만 겨울 골목에서 죽어가는 성냥팔이 소녀를 살릴 수도 있는 것과 같소.”
“…….”
“그것을 굳이 나쁜 것으로 취급하는 이들은 한평생 큰돈을 만져본 적도 없는 패배자들일 뿐. 아니면 먼저 이 사회의 질서를 장악해 큰돈을 벌어들인 기득권에게 세뇌당한 불쌍한 사람들이거나.”
말을 마치며 바르톨로메오는 짧게 첨언했다.
“큰돈으로 큰 선을 베푼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 아니겠소? 그러니 구약파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시오.”
돌로레스는 이 논리를 자주 듣곤 했었다.
바로 양아버지인 험버트가 늘 설파하곤 하는 논리였으니까.
“…….”
돌로레스는 시선을 힐끔 돌려 테이블 어귀에 놓여 있는 모래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시간이 제법 흘렀다.
돌로레스는 속으로 초를 세며 입을 열었다.
“큰돈으로 큰 선을 베푼다라. 그 말씀대로 된다면 좋겠군요.”
“그렇지. 하하하-”
바르톨로메오는 돌로레스가 자신의 말에 동조한 것이 기쁜지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접시 위의 고기를 한 점 썰어 입에 넣고 씹었다.
“그보다 성녀. 왜 음식을 드시지 않소? 입맛에 안 맞으시나? 고기가 별로요?”
“아뇨. 좋은 고기인 것 같네요. 가주님께서 맛있게 드시는 것을 보니.”
“그야 당연하오. 최고급 고기니까. 나는 육질에 특히 민감하거든. 천천히 드시오.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
고기를 권하는 바르톨로메오의 손짓에 돌로레스는 상냥한 미소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사람 고기는 별로라서요.”
“……!”
순간, 바르톨로메오의 손이 멎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돌로레스를 바라보았다.
“후후후. 농담이 과하시군 성녀. 지금 이 고기가 노동자 하층민들의 피와 살을 착취한 결과물이라는 뜻이오? 그렇다면 아까 내가 했던 말을 다시…….”
“아뇨. 정말 사람 고기를 말한 거예요. 다 알고 왔어요.”
“……무엇을?”
바르톨로메오가 묻자 돌로레스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가셨다.
그녀는 딱딱한 어조로 대답했다.
“부르주아가의 가주 바르톨로메오가 쿼바디스의 구약파와 친분이 있는 것을 넘어 그들을 아예 통째로 집어삼키려 든다는 것.”
“허허헛-”
“이를 위해 지금껏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들을 양성해 쿼바디스가의 근간을 뒤흔들 밑작업을 해 왔다는 것.”
“허허헛-”
“그리고 이 모든 일의 흉수인 바르톨로메오의 정체는 사실 악마라는 것.”
“……!”
돌로레스의 마지막 말만은 바르톨로메오조차 웃어넘기지 못했다.
이윽고.
“후후후후- 크하하핫!”
낮게 웃던 바르톨로메오가 별안간 큰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주위로 산을 이루고 있던 수많은 금화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짤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공명한다.
돌로레스는 한 치의 떨림도 없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무섭지 않으세요? 당신의 정체를 알고 온 방문자가.”
“무서워? 그럴 리가.”
바르톨로메오는 웃는 얼굴,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돌로레스를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 나를 무섭게 할 수 있는 인간이 어디 있겠나?”
광오. 마왕의 자신감. 지금껏 큰돈으로 큰 악을 행해온 자.
압도적인 기세가 돌로레스의 전신을 쥐어짤 듯 밀려들고 있었다.
……그때.
파앗-
돌로레스의 몸에 가해지는 부담을 일거에 흩어 버리는 다른 기운이 있었다.
테이블 저편, 촛불의 붉은빛이 일렁이는 금화의 산 위.
바르톨로메오가 웃음기 가신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곳과 돌로레스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곳은 정확히 같은 곳이었다.
“여기에 있다.”
밤의 사냥개.
수도 없이 많은 지옥을 헤쳐 온 악마사냥꾼이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