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9
29화 비키르 특별법 (2)
대도시 언더독의 중심가 도르트스마일 거리.
사람들이 북적이는 저잣거리 중앙 광장에 커다란 현수막에 쓰인 공고가 나붙었다.
집정관처에서 직접 이곳에 공고를 거는 것은 드문 일이었지만 공고의 내용 자체는 별달리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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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다 원래 있었던 법률들.
철혈검가 바스커빌이 관장하는 영지의 법률이라서 그런가 상당히 엄하다.
하지만 그 법률들이 제대로 지켜질 것이라 믿는 시민들은 거의 없었다.
“쳇. 법은 있는 놈들만 편들잖아.”
“윗대가리들은 다 해먹는데 무슨.”
“법 지키는 놈이 손해인 세상 아니겠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지.”
유난히 범죄율이 높은 언더독 시의 시민들은 있으나 마나 한 법률에 코웃음을 친다.
그들은 그동안 바스커빌가에서 온 관료들과 지방 유지, 세도가의 2세, 3세들이 어떻게 결탁하여 붙어먹는지 다 봐 왔다.
돈 가진 놈들, 권력 잡은 놈들, 힘 센 놈들이 자기들에게만 유리하게 만들고 해석하고 집행하고…….
돈 없고, 빽 없고, 힘 없으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저 울거나, 술을 마시거나, 스스로의 운을 탓하거나, 자기보다 더 운 없고 약한 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수밖에는 말이다.
이런 운명에 익숙해져 있는 언더독의 시민들로서는 당연히 법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전 부집정관들이 뇌물 수수로 싹 걸려 들어갔으니 뭔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그럴 리가 있겠냐? 이번에 바스커빌가에서 새로 온 부집정관이 15살이라더라.”
“뭐어? 15살이면 우리 막내딸이랑 동갑인데? 그런 얼라가 뭘 한다고…….”
“내 말이 그 말이다. 얼마 안 있어서 지역 유지들 로비에 홀딱 구워삶아지겠지 뭐.”
여론은 신입 부집정관에게 그리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이를, 누군가는 유명무실한 법을, 누군가는 수없이 흩어져 있는 불법 점조직들을, 누군가는 초임 관료를 향한 수많은 유혹들을 이유로 신입 부집정관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다.
바로 그때.
“어이! 친구들! 다들 중앙광장으로 와 봐! 빅뉴스야!”
안 그래도 북적거리던 저잣거리가 더욱 더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무슨 구경거리가 났나 싶어서 얼른 광장으로 몰려간다.
수없이 많은 인파.
그리고 그들 한가운데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텅 빈 자리가 보인다.
아무도 발을 들이지 못하는 원형의 공간.
그 가운데에는 냉막한 인상의 소년 하나가 막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15세의 어린 부집정관 ‘비키르 반 바스커빌’이었다.
* * *
비키르는 손에 막대기 하나를 들고 있었다.
길이 70센티미터. 무게 약 3킬로그램의 작은 말뚝.
사람들은 새로 부임했다는 부집정관을 보러 꾸역꾸역 몰려들었지만 결코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했다.
소년의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태산과도 같은 기운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범접 불가능한 아우라 뒤에는 몇 명인가의 공무원들이 초조한 눈치로 서 있었다.
치와와 바스커빌을 비롯한 집정관처의 직원들이었다.
“아이고, 집정관보님이 어쩌려고 이러시지?”
“꼭두새벽부터 저기에 그냥 서 계시는데 난들 알겠냐?”
“사람들 진짜 많이 모였네, 와아-”
비키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기는 시민들이나 공무원들이나 똑같았다.
그때.
“들으라.”
청중들이 어느 정도 모였음을 확인한 비키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새로 부임해 온 부집정관이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더욱 커진다.
‘저렇게 어린데?’, ‘실제로 보니 더 어려 보이는군’, ‘귀엽게 생겼네’, ‘저런 꼬맹이가 뭘 하겠다고’ 등의 진지하지 않은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비키르는 주변의 시선과 목소리들을 무시한 채 할 말을 이어나갔다.
“모두들 광장 북쪽에 붙여 놓은 공고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자 시민들의 시선이 한순간 북쪽을 향한다.
과연 그곳에는 커다한 현수막에 적혀 있는 법률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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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지켜지지 않아서 그렇지 익숙하긴 익숙한 법률들이다.
돈도, 권력도, 힘도 없는 약자들에게만 추상같은 법.
이 법률이 만들어진 이래 이 법률에 의해 처벌받은 평민들의 숫자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처벌받은 귀족이나 부호들의 수는 0명이라는 것이 현실을 냉혹하게 드러낸다.
시민들의 시선은 다시 현수막에서 떨어져 비키르에게로 돌아왔다.
비키르는 말을 이었다.
“저것은 새삼 새로울 것도 없는, 원래부터 만들어져 있었던 법률들로 지금껏 바스커빌가의 자치령을 존속시켜 온 아주 지엄하고 확고한 것이다.”
그러자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작게 새어나왔다.
지켜지지 않는 법, 아니 돈 많고 권력 있고 힘 센 자들에게 한해 지켜지지 않는 사법 체계에 대한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하지만 비키르는 굳이 웃은 자를 색출해 처벌하지 않았다.
“…….”
다만 그저 무심한 시선으로 대중들의 면면을 훑어볼 뿐.
관대함과 무관심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태도였다.
비키르는 다시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부집정관이 바뀌었어도 바스커빌가의 자치법은 여전히 지엄하며 그대로 지켜질 것이다.”
비키르가 청중들의 비웃음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청중들은 조금 더 대담해져 갔다.
곳곳에서 ‘퍽이나!’, ‘그러시겠지요!’, ‘네네 알겠쯉니당!’ 등의 비아냥거림이 들려온다.
그 광경을 보다 못한 치와와 사무장이 뒤에서 버럭 소리쳤다.
“이 사람들! 어느 안전이라고 그리들 입을 함부로 놀리는가! 여기 이분은 바스커빌가의 본가에서 나오신 분이시다! 정녕 칼날에 목젖이 도려내져야 정신들을 차릴 텐가!?”
치와와 사무장이라면 시민들에게 제법 인망이 두터운 현지인 출신 공무원이다.
그래서 야유를 보내던 사람들 역시도 눈치를 보며 목을 움츠렸다.
“쳇. 치와와 씨가 저리 말하는데 그만들 하자고.”
“참나, 어떻게 부집정관보다 사무장이 더 카리스마 있나 그래.”
“차라리 치와와 씨가 부집정관이 되시면 좋을 텐데.”
“저 꼬맹이 녀석 좀 보라고. 치와와 사무장이 아니면 사람들의 야유에 반박도 못 하잖나.”
“법이 더욱 개판이 되겠네 이거.”
평소대로였다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반응들이지만 비키르의 어린 나이와 앳된 얼굴, 그리고 주변 반응에 대한 무관심은 그들로 하여금 이런 만용을 가능케 했다.
“…….”
아니나 다를까, 비키르는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부하인 치와와에게도 비교당하며 평가절하 되는 이 분위기 속에서도 비키르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서 있을 뿐.
괜히 낯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하는 이들은 치와와 사무장을 비롯한 시청 공무원들이었다.
한편, 아무런 반응도 없는 비키르의 모습에 야유를 하던 시민들마저도 맥이 빠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어린애라 그런가 이런 모욕에도 꼼짝 못하네.”
“저렇게 어린 애가 어떻게 법을 집행하겠느냔 말이야.”
“……한동안 범죄자들이 더 기승을 부리겠구만.”
포기와 체념, 조롱과 분노, 동정과 경멸의 시선들이 비키르 한 명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비키르가 들고 있던 막대기를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더니.
…푹!
그것을 그대로 땅에 꽂았다.
지면 아래 10cm가량 박힌 막대기.
꽤 묵직하긴 하지만 그래봤자 작은 말뚝에 불과하다.
어린애들도 쉽게 뽑아 들 수 있을 정도.
……?
모든 시민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선 비키르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부집정관의 입법 권한으로 새로운 특별법 하나를 공포하겠다.”
비키르 특별법 1조 1항.
“이 말뚝을 뽑는 자에게는 현찰로 1억 골드를 지급할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