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파워 인플레이션(Power inflation) (8)
인플레이션(inflation).
통화팽창(通貨膨脹). 화폐가 지나치게 많아져서 그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
* * *
제국의 중심지 황도(皇都)를 비롯한 주요 중심지역에 일제히 풍선들이 떠올랐다.
커다란 풍선들은 한날 한시에 하늘을 향해 올라갔고 이내 기압 차에 의해, 혹은 기타 등등 다른 외부적 요인들에 의해 터져 버렸다.
그리고 풍선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린다.
지폐나 금화 등등의 ‘돈’이었다.
황도에 엄청난 양의 돈이 풀린 결과, 시민들은 돈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지폐? 안 받아. 차라리 물물교환을 하자고.”
“이 금화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알아요? 당분간 예금은 못 받습니다.”
“아휴, 돈벼락 맞았다고 좋아했는데 좋아할 게 아니었네 이거.”
“지폐는 장작으로 쓰고 금화는 무게추로 써야겠군 그래.”
“이러다가 나라 망하는 거 아냐?”
식료품을 사재기하는 현상이 벌어졌으며 그 누구도 생필품을 돈과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거대한 혼란을 지켜보는 두 시선이 있었다.
“……화폐제조국 국장이 이래도 돼?”
녹금발의 미녀 씬디웬디. 그녀가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는 곳에는 갈색 머리의 중년 남자가 서 있다.
부르주아 주 데미안. 제국 화폐제조국의 국장이다.
둘은 높은 탑 위에서 황도 전역에 흩뿌려지는 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위조화폐. 육안으로는 절대 진위여부를 판별해 낼 수 없는.
그것은 데미안 국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그 위조화폐를 제국 전역에 유통하고 살포하는 역할은 물류 유통의 대가 씬디웬디가 맡았다.
데미안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무덤을 파려거든 두 개 파야지. 형님 것, 그리고 내 것.”
“좋은 자세네. 칼을 오래 갈았나 봐?”
“가문에 복수심을 품은 지는 오래되었지. 그걸 남의 손을 빌려 이룰 줄이야.”
“……나도 비슷한 처지라서 공감이 꽤 가네.”
씬디웬디와 데미안. 둘 다 복수하고자 하는 대상이 있어서 밤의 사냥개와 손을 잡았다.
“우리 둘 다 무서운 남자와 손을 잡았군.”
둘은 꽤나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휘이이잉-
저 멀리 쏟아져 내리는 금화의 소나기, 휘몰아치는 지폐의 바람.
데미안은 떨어져 내리는 금화의 빗방울을 맞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위조 금화는 겉보기에는 진짜와 다를 바 없으나 가짜 금속으로 주조했기에 무게가 확연히 가벼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금화에 맞아도 별로 아프지 않을 정도지. 손으로 들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수준이야. 뭐, 진짜들 사이에 섞여 들어간다면 구분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럼 지폐는? 지폐는 원래 가볍잖아. 겉보기에도 똑같고.”
“위조지폐와 위조금화 둘 다 마법 염료로 염색한 것인지라 두 시간만 지나면 알아서 색을 잃어버릴 것이다. 물가에 혼란을 길게 줄 생각은 없어.”
데미안의 말 그대로다.
황도에 뿌려지고 있는 위조화폐들은 2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쓰레기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적어도 그 2시간 동안 제국의 물가는 엉망이 될 것이다.
불태환화폐에 대한 불신은 제국의 시민들로 하여금 돈이 아닌 실질적 물건에 관심을 갖게 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돈’ 자체에 대한 욕심과 갈망은 사라진다.
씬디웬디가 물었다.
“한데. 겨우 두 시간 동안 화폐의 가치를 0에 가깝게 떨어트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두 시간이라. 한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에게야 당연히 무리겠지만.”
데미안은 턱을 짚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이 순간 목숨을 내걸고 싸우고 있을 어떤 비범인(非凡人)에게는 말이야.”
* * *
벨리알은 경악하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왜 회복이 점점 더 느려지는 게냐!?]돈을 아무리 빨아먹어도 체력이 회복되지 않는다.
돈. 인간의 탐욕. 그로 인해 부여되는 가치.
이것들의 순환고리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인간들이 돈을 원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놈들의 탐욕은 끝이 없지 않던가! 한데 어째서……!]벨리알은 혼란스러워 하는 듯했다.
지금껏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황금은 만능이 아니다.”
비키르는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며 말했다.
그 뒤에 ‘적어도 2시간 동안은’이라는 말은 생략되었다.
금고가 열리기까지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금고 속의 수많은 금은보화들은 점점 가치를 잃어갈 것이다.
‘제국 전역이 화폐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지금, 세상은 물물교환의 시대가 되었다.’
그럼 여기 산더미처럼 쌓아둔 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론 짧은 헤프닝에 불과하겠지만 그것은 비키르에게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번쩍!
신성력으로 인해 강화된 번천의 여덟 이빨이 벨리알의 전신을 사납게 난자했다.
돌로레스가 그런 비키르의 등 뒤로 끊임없이 버프를 보내 주고 있었다.
“룬 교인은 만물에 대하여 자유로운 주인이며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Lunianus homo omnium dominus est liberrismus, nulli subiectus)! 룬 교인은 전적으로 충실한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되어 있다(Lunianus homo omnium servus est offciosissimus, omnibus subiectus)!”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남녀의 영혼이 공명을 일으킨다.
비키르는 소드마스터 특유의 힘을 아낌없이 폭발시켰다.
바스커빌 8식. 고속으로 회전하는 소드마스터 중급의 아우라가 닿은 모든 것을 깎아내고 절단해 버린다.
철인(鐵人)의 육체. 초인(超人)의 정신.
극한까지 단련된 육체가 팽팽한 활시위처럼 장전되었다.
전신의 근육 섬유들이 가시처럼 곤두서 피부를 찢고 나올 듯하다.
최후의 일격을 찔러 넣을 극점(極點)을 포착한 동공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정면을 향해 겨누어진 날카롭고 육중한 살기가 엄지발가락 하나만으로 떠받쳐진 채 앞으로 쏘아져 나간다.
그리고 이내 세상을 갈라 버릴 기세로 몰아치는 참격!
콰콰콰콰쾅!
아우라의 폭풍에 휩쓸린 벨리알은 전신이 깎여나가고 박살난 채 울부짖었다.
이윽고.
비키르는 벨리알의 앞에 오연하게 섰다.
숙주였던 바르톨로메오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고 그 위에 현신해 있던 벨리알의 본체 역시 처참한 몰골이다.
굵었던 뿔은 하나가 부러졌고 다른 하나 역시도 균열이 잔뜩 가 있다.
역겹게 살찐 돼지머리 곳곳에서는 검은 피가 펑펑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목을 길게 빼라.”
비키르는 한번 잡은 승기를 절대로 놓지 않았다.
악마의 목을 가차 없이 파고드는 악마사냥꾼의 이빨.
사냥개는 돼지를 물어 죽인다. 그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하하하하핫!]벨리알은 최후의 순간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커다란 돼지코가 씰룩이는 것을 본 비키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엇이 우습지?”
[곧 처참하게 일그러질 네놈들의 표정이 기대되기 때문이다.]말을 마친 벨리알은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놈의 입에서 검은 연기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비키르의 가슴팍에 있는 데카라비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것은 놈의 마지막 능력인 ‘압제’다.]“그게 무슨 능력이냐?”
[…….]데카라비아는 잠시 망설인 끝에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자신을 죽인 이에게 그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게 만드는 능력이다.] [그 말이 맞도다! 나를 죽인 자는 죽게 된다!]벨리알이 맞장구쳤다.
놈은 돼지기름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굴리며 비키르와 돌로레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누구건 간에 나를 죽인 놈은 죽는다. 내가 함께 데려갈 것이다. 남은 하나는 아주 슬프겠지? 동료를 잃었으니 말이야.]“…….”
[그하하핫! 누가 나를 죽인 죗값을 치를 테냐!]그러자 돌로레스가 싸늘하게 말했다.
“악마를 죽이는 것이 왜 죄냐? 만약 그것이 죄라면 내가 너를 죽이고 그 죗값을 치르겠다.”
[큭큭큭- 룬의 교리에는 악마 역시도 룬의 창조물이요 창조물들끼리의 모든 살생은 죄라 하지 않던가? 정말로 확신할 수 있나?]벨리알의 돼지코가 벌름거린다.
돌로레스의 얼굴에 약간의 혼란이 어렸다.
바로 그때.
“악마의 혓바닥에 놀아나지 말도록.”
비키르의 칼이 벨리알의 멱을 순식간에 따 버렸다.
…푸확!
검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벨리알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을 굴렸다.
[어, 어찌 한 치의 미동도 없을 수 있느냐. 나, 나의 혓바닥에…… 이, 이놈…… 죄가 두렵지 않으냐……?]하지만 비키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탁!
벨리알의 이마에 무언가를 붙여놓았다.
검은 피로 물들어 가는 종잇조각.
그것의 정체를 눈치챈 벨리알의 표정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이 신실한 교인의 모든 죄를 사하노라.’
– 이 면죄부는 구약파에서 발행, 보증하였으며 위조 시 처벌을 받을 수 있음 –
㊞
순간, 벨리알의 눈앞에 과거의 한 장면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권속들 중 하나의 기억.
‘과거에 지은 죄를 회개할 수 있다면 미래에 짓게 될 죄도 미리 회개가 가능합니까?’
‘……한데 대체 얼마나 무거운 죄이기에 그런 비싼 면죄부를 찾으시는지?’
‘이웃집 돼지 한 마리를 죽일 것 같습니다.’
‘그래. 겨우 돼지새끼 한 마리 목숨에 여기까지 온 게 기특해서 준다.’
땅그랑-
‘네 회개되셨습니다~’
그것은 과거 비키르가 구약파의 신전에 가서 구입한 면죄부로 그 가격은 불과 1골드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 안 돼.]벨리알. 인류를 파멸시키기 위해 강림한 위대한 악마.
인간계의 모든 부를 독점하던 절대적 존재의 목숨은 불과 1골드짜리 주화 한 닢 어치의 면죄부로 대체된 것이다.
“끝이다. ‘무가치한 자’여.”
비키르가 짤막하게 말했다.
그리고 마검 바알제붑이 그보다도 더 짤막한 궤적을 그렸다.
…퍼억!
여섯 번째 마왕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