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고백 (2)
청빛으로 물들어 가는 밤하늘.
어둑어둑한 새벽녘의 복도에 노크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똑똑똑- 찰칵!
문손잡이 돌아가는 소리가 낮게 들려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은 바로 열리지 않았다.
비키르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밤의 여자 기숙사는 조용하기 그지없다.
발냄새 탓인지 빨래를 잘못 말린 탓인지 어디선가 나는 꼬릿한 냄새, 닫힌 방문을 뚫고도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 군데군데 파괴된 곳이 보이는 공용 사물함.
전체적으로 남자 기숙사 복도랑 큰 차이가 없는 풍경들이다.
비키르가 깨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
끼이익…
문이 작은 소리로 수줍게 열렸다.
“형아야?”
안에서 싱클레어가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비키르의 얼굴을 확인한 싱클레어는 활짝 웃으며 속삭였다.
“어서 들어와.”
문이 열리고 안쪽의 따듯한 공기가 피부에 와 닿는다.
알 수 없는 무슨무슨 베리 향이 달달하게 감도는 방안은 그리 꾸며져 있는 티는 나지 않았지만 나름 아늑하고 엔틱한 분위기를 내는 소품들로 인해 꽤 고즈넉해 보였다.
“비앙카는. 같은 방 아니었나?”
“다른 친구 방에 가서 자는 것 같더라. 요즘 나랑 사이 별로 안 좋거든.”
“둘이 제일 친하지 않았던가? 갑자기 왜.”
“……그냥. 다 내 잘못이지 뭐. 헤헤-”
싱클레어는 멋쩍게 웃으며 비키르를 맞이했다.
그녀는 흰 티에 분홍색 돌핀 팬츠를 입고 목에는 젖은 수건을 둘렀다.
아직 덜 마른 짧은 머리카락에서는 옅은 샴푸향이 풍기고 있었다.
“자! 형아!”
싱클레어는 비키르에게 무언가를 홱 던졌다.
엉겁결에 받고 나니 표면에 차가운 물방울이 붙어 있는 캔맥주가 보인다.
싱클레어가 씩 웃으며 과자들을 꺼냈다.
“시간이 시간이라 뭘 먹을 수가 없네. 안주가 좀 빈약해도 참아 줘.”
“상관없다.”
“다행이야. 아 참, 형아 보드게임 잘 하지?”
싱클레어는 손뼉을 치더니 침대 밑에서 이런저런 보드게임들을 끄집어냈다.
젠가나 루미큐브, 우노 같은 간단한 룰의 게임.
“어때? 오랜만에 한번 붙어 볼까?”
“……정말 오랜만이긴 하군.”
비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드게임 하면 회귀하기 전 내무반에서 전우들과 함께 지겹게도 플레이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때의 기억보다 먼저 나는 것은 예전 보육원 봉사활동 때의 기억이었다.
‘나도 많이 무뎌진 건가.’
비키르는 회귀 이후 참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것은 주변 환경도, 비키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와르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젠가를 본 싱클레어가 두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아아~ 진짜. 왜 계속 나만 걸리는 거야!”
“무게중심을 보는 눈이 중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만 잘 지킨다면 결코 쓰러지지 않아.”
“칫. 말이 쉽지.”
싱클레어는 입술을 삐죽이며 다음 젠가를 쌓아올렸고 이내 얼마 가지 않아 또 무너트리고 말았다.
“아우, 형아랑은 보드게임 못 하겠다 진짜. 왜 이렇게 잘해? 밥 먹고 이거만 하던 사람 같애.”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
“응?”
싱클레어가 두 눈을 토끼처럼 뜬다.
비키르는 대답 대신 그저 조용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이윽고, 텅 빈 캔맥주들이 꾸깃하게 구겨지는 수가 늘기 시작했다.
술기운이 오르자 싱클레어의 표정이 약간 풀어진다.
유달리 흰 피부에 붉으스름한 홍조가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은하수 보러 가고 싶다.”
싱클레어가 무심코 중얼거리는 말에 비키르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기분이 꿀꿀한 날이면 항상 여기 와서 은하수를 봐.’
언젠가 싱클레어가 했던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고민이 있으면 옥상에 간다고 했었지.’
은하수가 잘 보이는 옥상에서 캔맥주를 마시는 것이 싱클레어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은하수 명당인 옥상은 출입통제구역이 되었다.
돌로레스 학생회장이 친히 그곳을 막아 버린 탓이다.
‘……벨리알 사냥 준비를 하는 동안 거기가 접선장소였으니.’
비키르는 턱을 한번 쓸었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돌로레스 학생회장이 옥상을 막아서 섭섭하겠군.”
순간, 돌로레스의 이름을 들은 싱클레어가 눈에 띄게 흠칫했다.
호수처럼 넓고 맑은 그녀의 눈망울에 일순간 깊은 수심이 어렸다.
비키르는 그 동요를 놓치지 않고 보았다.
“학생회장과 무슨 일이 있었나?”
비키르는 다시 한번 물었다.
일전 부르주아가에서 있었던 일을 비키르가 모를 리 없다.
다만 이상한 점이 있어서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려는 것이었다.
‘악마와 악마사냥꾼의 싸움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정신이 망가지는 심약한 캐릭터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는데.’
비키르는 약간의 의아함을 가진 채 싱클레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
“…….”
정적이 가라앉은 방. 비키르는 무거운 침묵을 짊어진 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러자 이윽고, 대답이 돌아왔다.
“나 자퇴하려고.”
그것은 질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상당히 뜻밖의 것이었는지라 비키르조차도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뭐지? 회귀하기 전의 세상에서 싱클레어는 성실하게 4학년까지 모두 마친 뒤 아카데미를 졸업하게 되는데…….’
말 그대로다.
싱클레어는 입학할 때 전교 1등이라는 화려한 성적을 기록한 이래 4학년 졸업반 때까지 단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알파걸.
그 와중에 2학년 때 부학생회장, 3학년 때 학생회장 직을 맡게 되면서 그 위명세를 날리다가 4학년을 마치고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그 즉시 세상에서의 모든 행적과 자취를 감춰 버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바뀌었다.
싱클레어가 1학년을 마치기 직전, 기말고사의 최종 결승전만을 남겨둔 지금 자퇴 선언을 한 것이다.
“물론 아직은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어. 형아한테 제일 먼저 얘기하는 거야.”
싱클레어는 힘없이 미소 지었다.
비키르는 짧게 물었다.
“학생회장 때문인가?”
“그건 아니야. 회장님이랑은 상관없지 당연히. 그냥 내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싱클레어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비키르는 회귀 전 그녀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단 한 번의 휴학도 없이 스트레이트로 수석을 거머쥔 채 졸업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번아웃이 왔나 봐. 얼마 전부터 계속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어. 그래서 일부러 애들에게 정 떼려고 차갑게 굴었고…….”
싱클레어는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비키르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다만 핵심을 찔러 물었을 뿐이다.
“보아하니 돌로레스 학생회장과 뭔가 문제가 있었나 보군.”
“에이~ 아니라니깐. 그냥 내가 좀…….”
“부르주아가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가?”
순간, 비키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싱클레어의 표정이 굳어졌다.
‘역시.’
비키르는 정곡을 짚었음을 깨달았다.
부르주아가에서 있었던 대사건. 여섯 번째 시체 벨리알을 사냥했던 그날의 밤.
싱클레어는 유독 심한 충격을 받았던 듯싶다.
“아, 아니야. 그날 아무 일도 없었…….”
그녀는 크게 당황해서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턱-
비키르는 말없이 손을 뻗어 그런 싱클레어의 두 손목을 잡을 뿐이다.
“무슨 일이냐.”
“……!”
“무엇이 너를 그토록 힘들게 만든 거야.”
“…….”
싱클레어의 동공이 순간 확 팽창하는가 싶더니 미약하게 떨렸다.
그것을 본 비키르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악마와의 전투는 으레 인간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사냥한 악마가 고위 악마일수록, 전투가 길고 치열할수록 더더욱 말이다.
비키르는 악마사냥 이후 극심한 후유증을 호소하던 전우들을 많이 봐온 터라 이런 류의 상담에는 꽤 익숙한 편이었다.
‘전투 후의 트라우마라면 극복 가능하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비키르는 장차 인류 연합에 큰 힘이 될 수 있는 싱클레어가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싱클레어의 대답은 확실히 비키르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를 죽였어.”
“뭐?”
비키르가 되묻자 싱클레어는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 평소와 달리 부정확하고 뭉개져 있는 발음으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밤의 사냥개가 아빠를 죽였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비키르의 머릿속에 번개가 떨어지는 듯한 충격이 일었다.
밤의 사냥개가 그날 밤 부르주아가 안에서 물어 죽인 것은 오로지 하나, 벨리알뿐이었다.
그리고 벨리알이 차지한 인간의 몸뚱이, 숙주. 그것은 바로 부르주아가의 가주 바르톨로메오였다.
‘그렇다는 것은…….’
비키르가 수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며 무어라 입을 열려는 순간.
와락-
품 안으로 뛰어드는 무게감이 있었다.
싱클레어가 앞으로 상체를 숙이는 동시에 비키르의 몸을 끌어안은 것이다.
가슴팍이 따뜻하게 젖어드는 것을 보니 싱클레어는 울고 있는 모양.
비키르는 그녀를 밀어내지도, 안지도 못한 채 자리에 얼어붙었다.
“…….”
“…….”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는 두 남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싱클레어의 떨림이 차츰차츰 잦아들었다.
사냥개는 입을 반쯤 열고 있었으나 아직 품속으로 파고든 어린 양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을 딱히 찾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바로 그때.
싱클레어가 비키르의 품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형아가 대답할 차례야.”
그리고는 물기 어린 눈망울,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형아는 나 어떻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