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298
298화 막학기(莫學期) (3)
“어휴, 목말라. 여기 우물이 어디 있소 영감?”
평범하게 생긴 노파 하나가 묻는다.
하지만 비키르는 그녀를 그저 평범한 노파처럼 대할 수 없었다.
‘……나보코프 룬 쿼바디스 1세.’
룬 교단의 교황. 쿼바디스가의 가주. 현존하는 극소수의 고전파 성녀들 중에서도 최고령자. 통일제국 전 전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200살이 넘도록 살아 있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전설’.
‘회귀 전에는 역사서로만 접했던 인물이지.’
나보코프 교황은 비키르가 회귀하기 전, 중년의 나이로 멸마전에 참전했을 당시에는 이미 죽고 없는 인물이었다.
원래는 권력에 눈이 멀었던 험버트에게 독살되었다는 설이 유력했던 인물.
하지만 험버트가 실종되고 없는 지금 그녀의 생명은 원래 예정되어 있었던 미래보다 더 연장되었다.
‘미래가 바뀌었다.’
그것이 그녀가 이번 학부모 참관수업 최대의 변수로 꼽히는 이유였다.
나보코프 교황이 앞으로 벌어질 인류의 미래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인가?
회귀하기 전에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기에 비키르 역시도 아는 바가 없었다.
‘막상 이렇게 직접 보니…… 그다지 도움이 안 될 것 같기는 하군.’
직접 만나본 나보코프 1세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겉모습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왜소한 체격에 눈앞의 사물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침침한 눈, 그리고 약간은 치매 기운도 있어 보인다.
그때.
“물! 물 어디 있냐구우~ 이 영감탱이야!”
나보코프 교황이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비키르의 머리를 탁 내리쳤다.
힘이라고는 하나도 실려 있지 않은 공격에 비키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멸망의 전선을 함께 넘어왔던 전우들 중 신관 출신이었던 녀석들이 항상 틈만 나면 한탄했었지. ‘나보코프 교황님께서 살아계시기만 했어도 인류연합이 이렇게까지 밀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물론 그때의 비키르는 직접 겪어 본 것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믿지 않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눈앞에 있는 치매 노인에게서는 그 어떤 강함도, 힘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비슷한 연배일 케인코르소 백작을 만났을 때와는 영 딴판인 기세.
결국 비키르는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식수대라면 이쪽에 있습니다. 물을 떠 드리지요.”
“목말라 영감. 빨리 떠 줘!”
비키르는 나보코프를 데리고 눈앞에 있는 식수대로 향했다.
커다란 항아리 모양의 식수대에는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샘솟고 있었고 그 옆에는 바가지들이 죽 내걸려 있다.
평범한 약수터의 모양새다.
비키르는 그중 바가지 하나를 잡았다.
그것으로 맑은 물을 떠 올리는 순간.
…주루룩!
바가지 밑으로 물이 새기 시작했다. 바닥에 구멍이 나 있었던 탓이다.
“이런. 물이 새는군요. 다른 것으로 떠 드리겠습니다.”
비키르가 바가지를 내려놓고 다른 바가지를 들려고 하는 순간.
풍덩-
바가지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
비키르가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나보코프가 바닥에 금이 간 바가지를 물항아리 안에 던져 넣는 게 보였다.
“이러면 안 새지.”
“…….”
나보코프는 홀홀 웃고 있었고 비키르는 그런 나보코프를 가만히 바라본다.
금이 간 바가지에서는 과연 물이 새지 않고 있었다. 왜냐면 아예 물속에 깊이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나보코프는 비키르를 향해 말했다.
“영감. 뭐든 자연스러운 것이 최고라네.”
“……자연스러운 것? 그게 뭡니까?”
“자연스러운 게 자연스러운 거지 뭐겠누. 그걸 꼭 알려 줘야 아남?”
비키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나보코프의 눈매가 인자하게 휘어져 있다.
“깨지거나 구멍이 난 바닥은 그냥 그 상태로 내버려 두는 게 답이여. 더 큰 것으로 감싸 안고 포용하면 구멍 나 새는 바닥쯤이야 얼마든지 채울 수 있는 법. 홀홀홀-”
하지만.
“근데 이러면 못 마시지 않습니까?”
비키르의 말에 나보코프가 으응?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러면 바가지가 물 밑에 가라앉아서 못 마시지 않습니까.”
“으응? 그야 뭐…….”
“그리고 모두가 함께 마시는 음용수인지라 이런 비위생적인 행동을 하시면 안 됩니다.”
“…….”
나보코프가 딱히 할 말이 없어 입을 반쯤 벌리고 있을 때.
“교황님!”
저 멀리서 돌로레스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뒤에는 사색이 된 표정의 모즈구스도 함께 오고 있었다.
“교황님! 여기 계셨군요! 십년감수했습니다!”
“홀홀홀…….”
모즈구스는 재빨리 다가와 나보코프를 업었다.
“루터 그놈은?”
“하필 오늘 독거노인들을 위한 공연이 있는지라 아쉽게도 못 오셨습니다.”
“에잉- 그놈답구먼.”
“여기는 물 드시러 오신 건가요? 한 잔 떠서 올릴까요?”
“됐네. 안 먹어.”
“그럼 여기는 왜…….”
나보코프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모즈구스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비키르를 돌아보았다.
가만히 서 있는 비키르와 그 옆에 엉거주춤 있는 돌로레스.
그 둘을 보는 나보코프의 눈매가 다시 한번 더 자애롭게 휘어졌다.
“간극을 억지로 메우려고 하지 말어. 뭐든 자연스럽게 품어 주는 게 최고여.”
“?”
“고마워 청년. 덕분에 나도 안심하고 갈 수 있겄어.”
나보코프는 말을 마치고는 모즈구스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그녀의 뒤로 물항아리 속에 가라앉은 금 간 바가지 하나가 물을 가득 담고 있었다.
* * *
“…….”
“…….”
비키르와 돌로레스는 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삼춘 안녕!”
방금 전 포메리안마저 나보코프의 손을 잡고 가 버렸기 때문이다.
…….
약간의 정적이 흐른 뒤.
“음. 저기…….”
돌로레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보니까 금 간 바구니에 물을 채우는 것으로 뭔가 이야기하셨던 것 같은데. 교황님께서 요즘 정신이 약간 흐려지셨거든. 너무 깊게 신경 쓰지는 마. 요즘 엉뚱한 말씀들을 자주 하셔서…….”
하지만 정작 이런 말을 하는 돌로레스는 방금 전 나보코프의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밤의 사냥개 님에게 축복 버프를 걸어드렸을 때 느꼈던 ‘공명’현상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교황님의 조언이 꼭 필요하다.’
교황. 고전파 성녀 출신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고 고결한 신성력을 갖추고 있는 존재.
‘꼬장꼬장한 고전파 성녀님들이 옛날에 종종 각성에 관련된 말씀을 하셨었어. 그때 허무맹랑한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새겨들을걸.’
이것은 단탈리안과 싸울 때 여실히 느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도 쭉, 돌로레스는 밤의 사냥개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기 위해서 나보코프의 조언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비록 나보코프가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었기에 들은 조언은 얼마 없었지만 말이다.
돌로레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짚었다.
그녀는 얼마 전에 있었던 벨리알과의 싸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너무 혼자서 애쓸 것 없다. 동료니까.’
어느새 밤의 사냥개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게 된 그녀.
그가 자신을 동료로 인정해 주는 순간 가슴 안쪽에서 뜨거운 불길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단탈리안과의 싸움에서 느꼈던 공명 현상에 비하면 천지차이였기에, 돌로레스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밤의 사냥개 님! 성함을 알려 주세요!’
돌로레스는 밤의 사냥개와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그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이름을 요구했다.
‘신성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때의 그 ‘공명’ 현상이 필요해요! 풀네임이 아니더라도 좋아요! 제가 당신을 부를 수 있는 아주 작은 애칭이라도…… 그저 이름의 한 토막만이라도 알려 주실 수는 없을까요?’
……물론 약간의 사심도 담겨 있었지만.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그의 이름 한 토막을 들었다.
‘……반.’
그토록 궁금했던 그의 이름.
아직도 똑똑히 기억나는 뜨거운 숨결의 촉감이 돌로레스의 귓가를 다시 한번 새빨갛게 달궈 놓았다.
통성명(通姓名). 서로의 이름을 통(通)하여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이름에는 과연 신비로운 힘이 담겨 있었다.
단지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돌로레스는 지친 몸을 이끌고 놀라운 기적을 빚어낼 수 있었으니까.
‘돼, 됐다! 됐어요!’
다른 그 누구에게도 행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현상.
오로지 밤의 사냥개…… 아니 ‘반’과 함께 있을 때만 벌어지는 기적.
돌로레스는 그때를 떠올리자 다시금 가슴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머리도 빠르게 돌아간다.
‘그때 밤의 사냥개 님의 성함 중 일부인 ‘반’이라는 이름을 듣고 공명 폭이 확 증가했었어. 아마도 둘 사이의 거리감이 문제였던 것 같아. 거리감이 좁혀지면 좁혀질수록 신성 버프의 효과가 강해지는 거야. 밤의 사냥개 님과 나의 거리감을 더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조금 더 강한 공명을 일으킬 수…….’
밤의 사냥개와 돌로레스. 둘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벌어져 있다.
이 간극이 있는 한 돌로레스의 신성력은 밤의 사냥개의 영혼에 완벽하게 공명할 수 없다.
영혼의 동반자. 성녀가 각성하기 위한 요인.
영혼의 공명을 위해서는 감정의 동화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돌로레스는 밤의 사냥개라는 인물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었다.
그의 숙명을 이해하고 그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를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돌로레스는 조급해하고 있기도 했다.
조급해할수록 앞길은 더욱 더 막막해진다. 그것은 꿈도, 희망도, 미래도, 인간관계도 모두 그렇다.
‘밤의 사냥개님. 나는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예전에 기자들이 ‘성전(聖戰)’을 선포하는 것으로 오해했을 정도로 결연한 표정.
이제는 애처로움마저 느껴지는.
바로 그때.
[……네! 이로써 2학년 랭킹전의 최종 우승자가 정해졌습니다! 이제 다음은 대망의 3학년! 3학년 수석을 가리는 최후의 랭킹전입니다!]저 멀리 연무장에서 3학년 결승전 진출자를 찾는 방송이 들려왔다.
돌로레스가 허둥거리며 말했다.
“아앗! 비, 비키르! 저기. 사실 내가 할 말이 있어서 너를 찾아온 거였는데. 아휴, 오히려 내가 시간이 없게 되어 버렸네.”
“저 역시도 내려갈 생각이었습니다. 가면서 말씀하시죠.”
“어어, 그래 줄래? 고마워. 사실 싱클레어에 관련된 일이거든. 걔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혹시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 해서…….”
비키르는 돌로레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마 대화를 한다고 해도 큰 소득은 없겠지만.’
싱클레어의 의지는 이미 결연해 보였다. 아마 주위의 말 몇 마디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비키르는 돌로레스의 말에 집중하는 대신 다른 것들을 보고 있었다.
‘……나무, 그리고 마력석이라.’
연무장으로 내려가는 길 내내 빽빽하게 심어져 있는 가로수들, 그리고 아카데미의 외벽을 따라 솟아나 있는 마력벽들.
비키르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것들을 훑었다.
‘나무 뿌리와 마력석의 배치가 상당히 절묘하군.’
나무나 마력석이나 따로 배치되었을 경우에는 상관이 없지만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뒤섞여 있을 경우에는 자칫 보안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더군다나, 새로 들어온 이 마력석들에서는 극히 미미하지만 분명히 ‘냄새’가 나고 있었다.
밤의 사냥개만이 맡을 수 있는 ‘악마의 냄새’가.
‘이제 아카데미를 떠날 때가 왔다.’
이곳에 머문 지도 벌써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그간 나름대로 정들었던 장소.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키르는 단호하게 고개를 돌렸다.
모든 미련을 소용없게 만들어 버리는.
어쩌면 두 번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지 모르는 처절한 싸움이 곧 벌어질 테니까.